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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은 현대의 돈키호테이다...
2016년 05월 06일 23시 50분  조회:4505  추천:0  작성자: 죽림

3-1. 등기된 언어질서 읽어내기

순수한 원형의 공간을 지향하면서 순수한 언어를 꿈꾸는 시인의 의식은 자신의 진정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지만 자신의 관념속에서 언어와 삶을 추상화시켰다는 것은 현실의 음영을 틈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분히 문제적이다. 순수한 언어, 투명한 심상의 세계를 다루는 언어들은 추상적인 세계에서만 가능하며 현실의 구체적인 형상을 통한 인식이라는 문제가 자신의 관념속에서만 「위험하게」채색될때 한 개인의 삶은 표백될 수 밖에 없다.

세번째 시집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에서부터 시인은 일상의 구석 구석을 대상화시키면서 관념의 개념적 인식에서 탈피, 현실로 무게중심이 바뀌어가는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楊平洞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永登浦. 永登浦에서 11시 열차로 사랑하는 서울을 떠남.    내 사랑은 두고 서울만 떠남. 좌석이 없어 입석을 구입, 맥주를 마시는 핑계로 식당차에     편히 앉음. 떠나며 돌아보니 속옷 바짓가랑이가다 나온 永登浦가 떠나는 나를 보더니 한    번 픽 웃고 돌아섬. 떠남. 역사의서울, 꿈의 서울, 여자의 서울                

                                          -「한 나라 또는 한 女子의 길」에서



시의 화자는 이제 양평동으로 영등포로, 거리로, 남산으로, 버스 정거장으로 자신의 존재를 풀어 놓는다. 관념의 입김이 지배적인 초기시들과는 달리 시어선택이 상당히 대조적임을 눈치챌 수 있다. 기차의 식당차, 술집 뒷골목, 쇼핑센터같은 도시적인 삶의 공간들과 이에 수반되는 세목들이 시의 소재가 되고 시인은 현실속으로의 적극적인 진입을 시도한다.

시인은 「양평동」 연작을 쓸 무렵부터 시의 힘에 대해 확신하면서 시의 순수성이 마주친 현실을 시 안에 수용하기 시작한다. 그는 부정적인 세계의 모습, 일그러진 현실의 이면을 들추어내면서 자본주의적인 삶의 양태가 가장 고도화된 도시공간에 초점을 둔다. 무질서와 타락, 자본으로 넘실거리는 도시공간은 현대 산업사회의 기형적인 구조에 의해 획일성과 자동성을 고유한 존재방식으로 부여받는다. 시인은 이러한 부정적인 세계의 모습을 시의 현실로 시화(詩化)한다.

「커튼을 걷고 창밖을 내다봄. 거리는 오늘도 安寧함. 安寧한 거리에 하품나옴」(「나의 데카메론」)이라거나, 「어제 나는 술을 마셨고/마신 뒤에는 취해서 유행가/몇 가닥을 뽑았고/그래서 세상이 형편없어 보였고 또/세상이 형편없었으므로 안심하고/네 다리를 쭉 뻗고 잤다」(「빈약한 상상력속에서」)에서처럼 그가 몸담고 있는 도시속에는 수동적이고 사물화된 우울한 일상의 모습이 넘쳐 흐른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부정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거나 수락하지는 않는다.



   幻想. 흔들리는 나무 잎사귀. 실바의 펠리시아노 기사담 다시들다 팽개침. 등기되지 않    은 현실, 幻想. 등기되지 않은 현실속으로 뛰어듦. 갑옷,투구, 방패 손질함. 스스로 구속할    자기의 이름들을 구함.        -「등기되지 않은 현실 또는 돈키호테 略傳」에서



시인은 투구와 방패를 메고 「등기되지 않은 현실」속으로 뛰어드는 현대의 돈키호테이다. 그 환상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등기된 현실만을 보게 될 때 시인은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는 획일적인 판단과 시각을 강요하는 제도화된 현실을 「등기된 현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작 시인이 투시해야 할 것은 「당신의 눈에도 보입니까. 등기되지 않은 현실」이라고 되묻듯이 그 등기된 현실이 아니라 「등기되지 않은 현실」 -현실과 대립되는 환상, 꿈 이상같은- 환상극의 현실이다. 환상과 현실이 전도된 돈키호테의 희극적인 모습속에는 일그러져 있는 사회의 비극성과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이제 시인은 그 모순된 현실속에서의 억압적인 삶을, 등기화된 언어질서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작업으로 나아간다.



   시는 추상的이니 구상的은 오해마라. 시인은 病身이니 안 病身은 오해마라. 지금 한국은    散文이다. 정치도 散文 사회도 散文 시인도 散文이다. 散文的이기 위한 전쟁시대, 시인들    이 전쟁터로 끌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끌려가는 시인의 빛나는 制服, 끌려가지 못하는 病    身들만 남아 制服도 없이 아, 시를 쓴다.                          -「詩人들」에서



중기로 접어든 오규원의 시는 「산문적」인 삶에 대해 예리한 시선을 보낸다. 70년대. 고도경제 성장과 산업화의 물결속에서 「잘 살아보자」는 자력갱생의 성장 이데올로기 깃발만이 맹목적으로 휘날리던 시절. 급속한 사회변동과 자본주의의 거센물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개인의 실존은 위협받거나 위태롭게 흔들린다. 현실의 억압을 견디기에는 전통적인 시 양식이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일종의 좌절감이 깔려 있는 이 시는, 당시 오규원의 시적 입지점을 드러내주는 시론이기도 하며 이후의 시의 향방을 예고해주는 징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삶 속에서 오규원의 시는 본격적인 「산문화」의 경향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시양식으로서는 도저히 현실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세계는 복잡하고 추악하게 뒤틀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조리하고 타락한 세계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시인의 지적인 양식은 점차 사회 비판력을 얻게 되며, 그는 어떻게 현실에 새롭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의식을 반어나 패러디 같은 양식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속하는 시들은 대부분 희화적인 어조와 본격적인 일상어를 채용하고 있는데, 이로써 현실과 세계에서 오는 갈등과 중압감에 대응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이제, 시인은 모든 「기교」를 동원해 현실과 맞닥뜨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3-2. 현실을 방법적으로 드러내기-시쓰기의 기교



사랑이 技巧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나는

사랑이란 이 멍청한 명사에

기를 썼다. 그리고

이 同義反復이 이 시대의 후렴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까지도 나는

이 멍청한 후렴에 매달렸다.                  -「사랑의 技巧. 2」에서



시인은 현실속에 침윤된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고 인정하면서,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에 대해 반성적인 인식을 개입시킨다. 그래서 그에게는 「기교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사랑이 곧 기교라는 등식, 이 「멍청한 명사」에 매달린 화자는 사랑도 꿈도 시쓰기도 그 결과가 비참한 것임을 반어적으로 깨닫는다. 「슬픔의 기교」는 그에게 곧 시의 「패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규원은 기교 그 자체를 시화하거나 추구하는 시인이 아니다.

그가 기교를 시화한다면 그것은 그가 자신의 시작(詩作)행위에 대해 매우 명징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즉 자신의 시작의 의미를 반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방법적으로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방법적 긴장」은 그의 시작 행위의 숨겨진 원리이며, 현실에 대한 시적 주체의 인식을 심화시켜 주는 계기로서의 적극적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그에게 기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가 말하는 기교는 변화하는 세계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표현하기 위해 생겨나며 타락한 현실, 타락한 언어가 가진 허위의식을 드러내려는 전략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시인은 자신을 규정짓고 있는 삶과 세계에 우회적인 태도, 즉 시는 언제나 「너의 패배가 아닌 나의 패배」라는 자조적인 진술을 통해 현실과의 의식적인 긴장된 거리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는 「침묵의 상징시대, 동사가 없는 시대, 물먹이기 시대」(「물에 물먹이기」에서)의 한 복판에서 현실적으로 순수한 언어란 불가능한 것임을 고통스럽게 깨달으며 「아직도 서정시가 씌어지는」 현실을 「신기해」한다. 현실은 시인에게 부정적이고 대립적인 것이며 타락한 세계에서 왜곡되지 않은 언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태도는 현실과 시가 상호대립적인 관계에 놓여있다는 믿음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초기시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오규원은 「배반을 모르는 시가 있다면 말해보라. 의미하는 모든 것은 배반을 안다. 시대의 시가 배반을 알 때까지 쮸쮸바를 빨고 있는 저 여자의 입술을 시라고 하면 안되나」(「버스 정거장에서」에서)라고 반문하면서 일상의 공간에서 시의 의미공간을 더 넓히고자 한다.

다시 말해,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시양식으로부터 탈피할 적극적인 방법론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것은 파편화된 현실을 파편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상상력과 현실의 긴장관계를 끝까지 견지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는 기존의 규범적 사고와 언어적 질서를 거부하면서 새로운 인식과 지평의 전환을 보여주는데, 이렇게 현실과 대결하는 시적 정신은 더욱 팽팽한 긴장을 수반하며, 그를 점점 더 「싸움」의 복판으로 나아가게 한다.



                 3-3. 기능화 된 언어를 전복시켜 해석하기-방법적 인용



                          ♀♀ 중간생략 ♀♀



시인이 한창 원기왕성한 시절, 광고문구나 CF를 방법적으로 인용한 일련의 상품 광고시는 도구화된 사회에서 기존의 시 언어가 아닌 도구화된 형태의 글쓰기, 즉 새로운 미학적 모험이라는 전략으로 맞선다는 점에서는 가히 선구자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시적인 탐구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문학적 언어」와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순수한 문학적 언어에 관심을 가지기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와 자아 사이의 긴장된 갈등을 첨예하게 보여주는 문제가 더 절박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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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바다가 보이는 교실 10 / 정일근

 

          

 

 

 

 

 

 

 

 

 

 

바다가 보이는 교실 10

유리창 청소

 

                             정 일 근

 

참 맑아라

겨우 제 이름밖에 쓸 줄 모르는

열이, 열이가 착하게 닦아놓은

유리창 한 장

먼 해안선과 다정한 형제섬

그냥 그대로 눈이 시린

가을 바다 한 장

열이의 착한 마음으로 그려놓은

아아, 참으로 맑은 세상 저기 있으니

 

 

정일근 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 중에서

 

 

 

 

정일근 연보

 

1958년 경남 진해시에서 정성모 안숙자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

 

1970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별세.

 

1980년 제30회 진주 개천예술제 백일장 대학·일반부 시 장원.

       <고대신문> 주체 전국대학생 현상공모 시 당선.

 

1981년 월간 <한국문학> 대학생 문예 시 당선. 국풍81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1984년 <월간문학> 4월호 시조부문 신인상 당선.

       <실천문학> 10월호 신인작품모집에 <야학일기> 등 7편 발표.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당선.

       경남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 졸업. 진해남중학교 국어교사 임용.

 

1986년 <서울신문(현 대한매일)> 신춘문예 시조(저물 무렵의 시) 당선.

       <시힘> 동인에 참여.

 

1987년 4인(황선하, 민병기, 김태수, 정일근) 시집 <가자 아름다운 나라로> 발간

       제1시집 <바다가 보이는 교실> 발간.

 

1988년 <부산매일> 문화부 문학담당 기자로 전직.

       이후 <경향신문> 사회부, 전국부, <문화일보> 사회2부 기자로 근무.

1988~1998년 : 기자 근무 시 <경향신문> 노조 대의원, 언노련 대의원. 제3회 이달의 기자상 수상.

 

1991년 제2시집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발간.

 

1992년 부산에서 울산으로 이사. 개인 시창작 강좌인 <울산시인학교> 개설 운영.

 

1993년 제3시집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 발간.

 

1995년 제4시집 <처용의 도시> 발간.

 

1996년 ‘문학의 해’기념 문체부장관 표창.

       울산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 과정 지도교수.

 

1997년 문예진흥기금 수혜로 경주남산연작장시집 <감지의 사랑> 300부 한정본 발간.

 

1998년 뇌종양 진단 후 수술. 제5시집 <경주 남산>, 사랑시선집 <첫사랑을 덮다> 발간.

       문예진흥원 한국문학 특별창작지원금 및 언론인고용지원센터 저술지원금 수혜.

       2002년 울산월드컵 문화시민운동협의회 계간 <울산사랑> 편집주간.

       울산월드컵 문화축제 위원.

 

2000년 울산MBC 제작 다큐멘터리 <히말라야에 나팔꽃이 피는 까닭은?> 직접 취재.

       이 작품으로 한국방송대상(라디오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

       제10회 한국시조작품상 수상(작품 : 목욕을 하며).

 

2001년 제6시집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 발간.

       이 시집으로 제6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수상.

 

 

2002년 울산대 국문학부 문예창작 과정 강사. 대통령 월드컵 기장 수여.

 

2003년 제7시집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발간.

       제18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 경남대학교 공로상 수상.

 

 

2005년 제8시집 <오른손잡이의 슬픔> 발간.

 

2006년 제9시집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 발간. 영랑문학상 수상.

 

2008년 포항동해국제문학상 수상.

 

2009년 제10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발간. 지훈상(문학 부문) 수상.

 

2010년 이육사시문학상 수상.

 

2012년 육필시집 <사과야 미안하다> 발간.

 

현재 경남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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