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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상업예술이 결코 아니다...
2016년 06월 16일 21시 49분  조회:4603  추천:0  작성자: 죽림
[6강] 시의 주제


강사/ 나 호열

새벽, 흰 눈이 조금 오다가 그쳤습니다.
'눈'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떠올리십니까? 뭐라고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는 없어도 느낌이 가슴 언저리로부터 스며오는 것을 느끼지는 않습니까? 조금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은 눈이 내린 것을 보고 '오늘 길이 미끄럽겠군' 하면서 출,퇴근 걱정을 하게 될 것이며, 또 어느 사람은 지난 겨울 '첫 눈이 내리는 날 만나자'고 약속했던 사람을 기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눈이 오니 길이 미끄럽다'라는 생각은 아주 현실적이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사고의 형태입니다. 사물이나 사건은 우리에게 다양한 행동을 요구하게 되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판단을 하게 됩니다. 전 번 시간에 논의되었듯이 시를 쓰는 가장 원초적인 발단은 '서정'입니다. 서정은 어떤 사태로 인하여 발생하는 미묘한 심리상태로 효용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즉 '첫 눈이 내리는 날 만나자'는 것은 첫 눈에 의미를 두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일상적인 효용을 따지는 것과는 다릅니다.

첫 눈이라는 의미는 아주 복합적이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상징'에 대해서 배우지는 않았지만 첫 눈 내리는 날 만나자고 했을 때의 첫 눈은 ( )에 대한 상징입니다, ( )안에는 우리는 많은 의미를 넣어볼 수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첫 눈은 이러이러한 것이다 라고 마음 속에 정의를 내렸습니다. 당신의 정의 내용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어 당신은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전하고 싶습니까?
당신은 언제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드십니까? 기쁠 때보다는 슬플 때, 외롭다고 느낄 때, 무엇인가를 새롭게 발견해 내었을 때......

우리는 자주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돌아온 후에 그 아름다운 경치를 시로 써 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막상 글로 옮기려 하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왜 그럴까요? 설악산은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객관적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악산은 아름답다라고 느낍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름답기 때문에 시를 쓴다> 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시쓰기의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설악산이 아름답다 라고 표현하면 할수록 내용은 진부해 집니다. 설악산이 아름답다라고 느끼는 것은 1차적인 감정의 단계입니다. 2차적인 단계는 글 쓰는 내가 설악산 그 자체와 마주치는 것입니다. 설악산이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가를 생각하는 단계입니다. 3차적인 단계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표현(장식)해 내는 것입니다. 주어져 있는 설악산(소재)을 설악산의 아름다움이 내게 (우리에게) 주는 의미 (주제) 로 변환해 나가는 것이 시쓰기의 어려움이며 즐거움입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 할 때에는 시의 소재와 주제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해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소재는 나에게 서정을 주었던 것 (시를 쓰게 만들었던) 그 대상이요, 주제는 그 대상으로부터 얻어들여지는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은 의미이다.!

시쓰기의 실제를 하나 들어 봅시다. 우선 세 편의 시를 감상해 보기로 합시다.

< 예문 1>

겨울 파계사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지나쳐버린
삶 또는 죽음

헝크러진 바람 한 꾸러미
대숲에 놓아주려
흔적없이 푸르른 웃음으로
전생을 걸어가려 하네
아픔을 잊고
아픈 다리까지 잊어버릴 때
나무들이 뿜어내는 침묵이
더욱 짙은 향기로 퍼져가고
새들이 날아가네
수신될 수 없는 전파처럼
다시 만나야 할 곳으로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낙엽 대신
반야심경 독경 소리가
우수수
발 밑에 떨어졌네


<예문 2>

팔공산 파계사

파계사 진입로는 울창한 숲길,
좌우편 아홉 개의 물줄기를 하나로 모아서일까.
계곡엔 맑고 차가운 물이
철철 흐르매, 그냥 발 담그고 쉬고 싶구나.

진동루 앞의 넓은 마당에는
느티나무, 전나무, 은행나무 거목들이.
이곳 저곳 눈에 띄는 돌축대가 아름답다.
이 유서깊은 고찰이 영조 때엔 왕실의 원찰로도.

법당인 원통전의 관음보살 뵙고 나서
다시 사찰의 규모를 살피니,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것이

정말 알뜰 살뜰 잘도 가꾸어진
절임에 틀림없다. 주변의 울창한
산림과 어울려서 그윽하고 한적한 맛이 좋구나

<예문 3>

마음. 47

마음에 근심 없으면
날마다 좋은 날
마음에 번뇌 없으면
날마다 기쁜 날

사랑도 미움도
마음에서 비롯되고
시기도 질투도
마음에서 비롯된다

한 마음 놓아 버리면
새 마음 살아나서
사는게 즐거운
사바가 정토러니

세 편의 시를 읽고 나니 어떤 시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가요? 아마도 <마음. 47>이 가장 구체적인 심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요? <팔공산 파계사>는 원로시인이신 박희진 님의 시이고 첫번 째 <겨울, 파계사>는 강의자의 시입니다. 박희진 시인의 시는 자신의 주관적 인식을 배제하고 가급적 객관적인 풍경묘사로 사실감을 전해 주려고 함으로서 오히려 더욱 큰 진실감, 산사의 고적함을 표현해 내려고 한 것 이겠지요. 그에 비해서 <겨울 파계사>는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 같습니다. 파계사의 분위기는 배경으로 자리잡아 있고 작가의 삶에 대한 인식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굳이 시의 주제를 이야기 한다면 삶은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쉽게 지나쳐 버리는 것이고 우리의 삶은 후생(미래)을 향하여 가는 것 같지만 삶의 반복성으로 인하여 오히려 되돌려 지는 것, 전생을 향하여 가는 반성적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시의 소재는 겨울 파계사의 정경이 되겠습니다.
박희진 시인의 시의 주제는? 도시세계의 번잡함을 떨친 적요의 세계, 다툼이 없는 세계, 그런 것이겠지요. 있는 그대로 보여 줍니다. 다른 번듯한 주제를 찾으려 하면 더 허망해지지요. 나무와 절의 역사 그런 것들이 이 시의 소재가 되는 것이지요.

< 마음. 47>은 파계사 원통전 벽면에 붙어 있던 글입니다. 작자는 누구인지 잘 모르겠고....
일단 읽으면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다 옳은 이야기이고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 보면 이 글은 시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글 쓴 이의 체취, 생활, 구체적인 사색의 땀방울, 이런 것들이 보여지지 않습니다.
강의 요점 정리에 보시면 '시는 무용이다' 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걸음은 어느 한 점에서 다른 어느 한 점으로 이동하여가는 동작입니다. 춤은 어디로 향하는 목적이 있는 것 아니지요? 몸을 구부리고 펴면서 드러나는 근육의 움직임, 표정, 공간과 육체의 배합으로 춤은 어디에 닿는다는 목적에는 전혀 맞지않는 행위입니다.

결론이 없는 사색의 과정, 어떤 분위기의 전달만으로도 시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되는 것입니다.
요즈음 한참 김장들을 하느라고 집집마다 난리들이지요. 맛있는 김장김치를 먹으려면 무슨 재료가 필요할까요, 배추, 무, 갓, 마늘, 고추가루, 소금 등등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하나요? 소금으로 배추를 절이고 속을 버무리고 섞는 일! 그렇습니다. 섞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섞는 것이 아니라 김치를 만든다는 목표가 있어야 하겠지요. 나의 생활의 체험, 반성 이런 것들이 시의 소재를 만나서 함께 버무려져 맛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는 멋있는 단어를 골라서 나열하는 것이 아니고 그럴싸한 결론을 내는 것도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이 무심하게 지나치는 사건과 사물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에다 자신의 입김을 불어넣는 것이지요.
은유, 상징, 아이러니 등의 기법이 자연스레 녹아드는 것이 좋은 시의 요건 입니다.

시적 소재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주제라는 것은 내가 전달하고 싶은 그 무엇이다!
同價紅裳이라고 이왕이면 전달하고 싶은 그 무엇을 예쁘게 포장하는 것!(표현하는 것)
아! 저 꽃은 너무 아름다워요 하는 것 보다 달덩이 하나 매달린 저 꽃 ! 하는 것이 훨씬 낫지요?


< 강의 요점 정리>

1. 시 속에 함유된 여러 의미중 가장 중심적인 내용이 주제이다.
2. 시의 話者를 통하여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중심 생각이다.
3. 시의 주제는 매우 다양하나 주제를 위하여 시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 주제를 배제하고 언어 자체가 가지는 감각적 요소를 바탕으로 아름다움 그 자체를 강조하는 시들도 많다.
4. 시의 주제는 시인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이다.
5. 시의 주제는 미로 속을 헤매는 보물찾기처럼 그 과정 탐색을 통하여 예술적 희열을 맛보게 하는 그 속에 있다. (은페성과 암시성)
6. 시인의 생각은 시 속에, 마치 과일 속에 숨어있는 영양소처럼 숨어 있어야 한다. - 발레리
7. 독창적 사고에 의한 낯설게 하기, 그리고 응축!
8. 어떤 경험을 정서화하고 형상화한다는 것은 시의 독창적 예술성을 만드는 것이다.
9. 시는 자아의 세계를 1)정서적으로 2)주관적으로 통일하는 양식이다.
10. 시는 舞踊의 언어이다.

11. 소재를 추상화 한 것이 주제이다.
12. 시는 시인의 상상이나 직관에 의해 형성되기는 하지만 그 내용은 인류의 보편적 사고 체제나 정서에 합치되어야 생명력이 있다. (보편성의 문제)
13. 시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하여 쓰여졌다기 보다는 의미요소를 다른 요소와 융합하여 미적 구조를 실현하는 장르이다.
14. 주제가 명시적으로 드러날수록 시의 품격이 떨어질 위험이 크며, 그것이 독자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실현한다는 말은 성립되기 힘들다.

15. 나의 상상력이나 환상은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꿈꾸기에 고리를 달고 있으며, 그 꿈꾸기는 시의 뼈대, 또는 몸짓을 만들어준다. 나의 시는 그러므로 꿈꾸기에 다름 아니다. 꿈은 메마른 삶을 적셔준다. 보다 나은 삶을 올려다보게 한다. 그곳에 이르는 사닥다리를 놓아주고, 오르게 한다. 좌절감이나 절망감을 흔들어 가라앉히고,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그 길을 걸어가도록 밀어주고 이끌어준다. 지금, 여기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세계, 어쩌면 이룰 수 없는 세계도 꿈의 공간에서는 반짝인다. 꿈의 공간 만들기, 그 공간에서 살기는 뒤틀리고 추한 몰골을 하고 있는 현실을 뛰어넘게 한다. - 이태수

16. 오늘의 시가 상업예술이 아니고 비상업적 예술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입장에서 우리는 모든 상업주의를 거부한다. 지나친 테크닉 위주의 장인적인 상업성과 지난친 독선의 정치적인 또 다른 상업성도 우리는 거부한다. 시인은 가수도, 정치가도 아니다. 시인은 다만 운율있는 언어로 자신의 성을 구축하는 언어의 주인일 뿐이다. 주제가 없이 도도히 범람하는 현란한 의상과 공허한 핏대를 똑같이 우리는 배격한다. 그러나 시는 시인의 성실한 삶을 반추하는 그 시대의 사회적 산물이며 무엇보다도 시정신을 내포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올바른 주제와 올바른 아름다움이 있는 참다운 시를 지향하며 우리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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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 객석에 앉은 여자 / 김승희
 
    
 
 
 
 

 
 
 
 
객석에 앉은 여자
 
                                   김 승 희
 
그녀는 늘 어딘가가 아프다네.
이런데가 저런데가
늘 어느 곳인가가.
 
아프기 때문에
삶을 열렬히 살 수가 없노라고
그녀는 늘상 자신에게 중얼거리고 있지.
 
지연된 꿈, 지연된 사랑
유보된 인생
이 모든 것은 아프다는 이름으로 용서되고
그녀는 아픔의 최면술을
항상 자기에게 걸고 있네.
 
난 아파,
난 아프기 때문에
난 너무도 아파서
 
그러나 그녀는 아마도 병을 기르고
있는 것만 같애.
 
삶을 피하기 위해서
삶을 피하는 자신을 용서해 주기 위해서
살지 못했던 삶에 대한 하나의 변명을
마련하기 위해서
꿈의 상실에 대한 알리바이를 주장하기 위해서!
 
그녀는 늘 어딘가가 아프다네.
이런데가 저런데가
늘 그저 그런 어떤 곳이.
 
 
김승희 시집 <달걀 속의 生> 중에서
 
 
 
 
 

 
김승희(金勝熙) 연보
 
 
1952년 3월1일 광주광역시에서 김인곤과 정경미의 5남매 중 첫째로 출생.
       숙명여고 졸업
       서강대학교 영문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그물속의 물> 당선.
 
1976년 산문집 <고독을 가리키는 시계바늘> 출간.
 
1979년 제1시집 <태양미사> 출간.
 
1980년 70년대 작가와의 대화집 <영혼은 외로운 소금밭> 출간.
 
1982년 이상 평전 <제13의 아해도 위독하오> 출간.
 
1983년 제2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 출간.
 
1984년 산문집 <벼랑의 노래> 출간.
 
1985년 산문집 <33세의 팡세> 출간.
 
1987년 제3시집 <미완성을 위한 연가> 출간.
 
1988년 산문집 <단 한 번의 노래 단 한 번의 사랑> 출간.
 
1989년 제4시집 <달걀 속의 生> 출간.
 
1991년 제5시집 <어떻게 밖으로 나갈까> 출간. 제5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1993년 산문집 <사랑이라는 이름의 수선공> 출간.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산타페로 가는 사람> 당선.
 
1995년 제6시집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싸움> 출간.
 
1997년 소설 <산타페로 가는 사람> 출간.
 
1999년 소설 <왼쪽 날개가 약간 무거운 새> 출간.
 
2000년 제7시집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웃음>, 산문집 <너를 만나고 싶다> 출간.
 
2001년 산문집 <남자들은 모른다> 출간.
 
2003년 제2회 고정희상 수상.
 
2006년 제8시집 <냄비는 둥둥> 출간.
 
2007년 산문집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출간.
 
현재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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