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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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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없다? 있다!...
2016년 06월 27일 20시 14분  조회:4081  추천:0  작성자: 죽림
1. 현대ㆍ문명ㆍ문화ㆍ문학
오늘날 우리가 발붙이고 살고 있는 삶의 현장으로서 현대의 특질은 과연 무엇이며 어떠한가? 수렵생활과 뒤이은 농경사회로부터 시작된 인류사는 어느 새 산업화 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로 줄달음쳐 가고 있다. 그만큼 급속히, 또한 눈부시게 인류의 문명은 진보하여 인간의 생활을 편하게 하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불안하고 왜소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를 불연속성의 시대, 불확정성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불연속의 시대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물질 문명의 과도한 발달과 산업화의 촉진, 대도시화의 추세로 인하여 자아와 세계, 인간과 자연의 연속되지 못하고 끊어져버린 모습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섬」

이 시에서처럼 현대인은 섬처럼 서로 단절되어 홀로 떠 있는 것이기에 누구나 고독감과 소외감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아에 비해서 외부의 세계, 정신에 비해 물질세계가 지나치게 거대화되어 자아는 세계에, 정신을 물질에 종속되고 짓눌려버림으로써 단절과 소외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자아와 세계, 정신과 물질 사이의 등가화 또는 자아의 주체화를 획득하는 일이야말로 오늘의 삶에 있어서 가장 간절한 명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불확정성의 시대란 무엇인가? 그것은 물질문명, 과학기술의 발달은 물론 거대 사업자본의 팽배화로 인해 오히려 인간의 미래가 더욱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위기의 인식을 말한다. 물질문명이란 인간이 편리하게 살기 위해 고안하고 발달시켜온 것이지만, 동시에 그 과도한 발달은 인간에게 있어 정신문화의 위축과 불안감을 고조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물질문명과 산업의 거대화로 인해 빈발하는 각종 대형 재해와 사건․사고가 바로 그러한 불확정성 시대의 인간상실현상을 반영하고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물질가치를 추구하는 문명의 속성이 정신가치를 추구하는 문화현상을 함께 섭수해 들이고 발전시켜오지 못한 필연적인 귀결이라 하겠다.
따라서 오늘날 문화가 그러한 것처럼 그 문화의 핵이자 정수라 할 수 있는 문학이 하나의 위기의 시대에 처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위의를 지키고 인간정신이 승리를 진지하고 깊이 있게 탐구하는 형식으로서 문학은 자본주의의 격랑에 밀려 좌초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값싼 대중문화와 상업자본의 폭력 아래 진정한 문학, 순수한 인간탐구의 문학은 점점 뒷전으로 물러나고 위축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문학의 위기란 바로 인간의 위기이며, 인간정신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오늘날 문학다운 문학, 참문학 정신의 회복과 확립이야말로 현대가 처한 불연속성과 불확정성에 맞서 인간성을 수호하고 인간의 정신가치를 고양시킬 수 있는 소중한 관건이 아닐 수 없겠다.


2. 자아발견과 자아실현 또는 자기구원에의 길
무엇보다 필자는 오늘의 우리 문학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은 참된 시정신의 회복과 확립이 긴절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참된 시란 무엇이고, 참 시인의 길이란 또 무엇인가?
오늘날에 있어 시의 회복이란 말 그대로 인간성의 회복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시를 쓰고 일고 또 학교에선 가르치고 연구하기까지 하는가?
첫째로 그것은 시를 통해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현실에 있어 정신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아가서 자기를 온전하게 실천하며, 궁극적으로 자기를 구원하는 길로 나아가고자 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우물 속에는 달 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저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들어가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자화상」

시를 쓰는 가장 원초적인 동기는 바로 자아발견의 노력에서 비롯된다. 나는 과연 무엇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또한 해서는 안 될 일은 무엇이며 해야하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를 분명히 아는 일이 중요하다. 또 나의 장점은 무엇이고 단점은 무엇인가와 같은 문제는 물론 어떻게 <참 나>를 발견하고 완성해가야 할 것인가를 하는 명제들과 연관된다.
인용시에서 있어서도 나를 발견하는 일은 ‘들여다봄-미워서 돌아감-가엾어짐-다시 돌아가서 들여다봄-다시 미워짐-그리워짐’ 이라는, 다시 말해서 윤동주는 이 시를 통해 자아란 이미 완성돼 있는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차츰 깨달음을 얻고 있다. 이러한 자아발견을 위한 노력이 윤동주가 시를 쓰게 된 동기가 된 것이고, 또 우리들이 이 시를 읽고 내 삶을 비추어보고 배울 수 있는 이유가 된다고 하겠다.
두 번째로 시를 쓰고 읽는 일은 자기를 이기는 과정, 즉 자기극복의 과정을 보여주는 일이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는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을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한용운,「님의 침묵」부분

삶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부족한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납득시키고 온갖 난관을 극복해 가는 과정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한용운의 이 인용시는 바로 시가 이러한 자기극복의 과정을 탐구하는 것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즉 시는 좌절에서 위안을, 슬픔에서 기쁨과 힘을,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행해 나아가려는 자기극복의 동기에서 시가 쓰여진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자신이 처한 정신의 어려움은 물론 온갖 삶의 위기를 이겨내고 좀더 인간적인 삶의 가치를 찾고자 노력하는 데서 시의 시작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끗이다. 또 우리는 이러한 시인들의 참담한 자기극복의 노력과 인내를 읽고 배움으로써 자신의 처한 절망과 고통을 이겨내고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까닭이다.
셋째로 시는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고 자기를 실천하는 길, 자아실현의 길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매운 계절의 채쭉에 갈겨/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절정」

우리는 왜 사는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를 거쳐,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누구도 이에 선명한 해답을 던져주기는 어렵다. 그러기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학이 있고 철학이 있으며, 사학과 문학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한 자기 분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사는 것은 우리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이육사는 이 시를 왜 썼겠는가? 열여섯 차례나 피검되고 중국과 만주를 오가는 피어린 고통의 연속사이에서 과연 무엇 때문에 이 시를 썼겠는가? 해답을 한 가지다. 그가 시를 쓴 까닭은 자신에 대한 존재확인이자 존재증명이고 자아실현인 까닭이다. 까뮈가 말했던가? 쓴다는 것 그것은 부조리한 삶에 있어서 존재증명을 위한 안간힘이자 몸부림이라고.
그렇다! 믿고 의지할 것 없는 배척간두의 현실에서 육사에게 시는 유일하게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거하고 확인할 수 있는 존재증명의 방법이자 자아실현의 방법일 수밖에 없음이 자명하다. 그러한 자아실현의 방법이 치열했고, 존재증명의 안간힘이 철절했기에 깨닫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로 시는 궁극적인 면에서 자기구원의 길을 의미한다.
삶의 근원적 목표는 무엇인가? 한계지어진 인간 영혼이 종교를 통해 정신의 구원을 얻고자 하듯이 가난한 영혼은 운명의 형식으로서 시를 통해 정신의 구원을 갈망한다는 뜻이다.

3. 사회실천과 민족어 완성의 길

그렇지만 시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너에게 묻는다」

원천적으로 삶은 ‘나’에게서 시작되어 ‘너’를 거차 다시 ‘나’로 회귀하는 자기도모 또는 근원회귀의 속성을 지닌다. 자아발견에서 시작되어 자기극복, 자아실현, 자기구원으로 마무리되는 속성을 지닌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시는 공적인 면에서는 더불어 사는 삶,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삶, 역사적 삶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받지 않느냐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 한용운,「군말」

한용운의 ‘님’이 개인적인 의미에서 ‘연인/부모/형제/친구’ 일 수 있지만, 공적인 차원에서는 ‘조국/민족/민중’ 일 수도 있다는 구조적 원리이며 성층적 이치이다. 이 시가 쓰여진 사회․역사적 환경이 일제강점기이고 시인자신이 독립투사라는 점에서 그러한 해석은 논리적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시는 개인구원의 길이지만 넓게는 사회, 역사를 향해 열린 총체적인 인간구원의 길이기도 한 것이다. 민족이 위기에 처하거나 사회․역사적인 시련에 봉착했을 경우에 시는 불의와 부정에 대한 싸움이고 반역일 수 있음을 물론이다.

황톳길 선연한/ 핏자국 핏자국 따라/ 나는 간다 애비야/네가 죽었고/지금은 검은 해만 타는 곳/구 손엔 철삿줄/뜨거운 해가/땀과 눈물과 메밀밭을 태우는/총부리 칼날 아래 더위 속으로/나는 간다 애비야/네가 죽은 곳
- 김지하,「황톳길」

그렇다! 시는 때로 잘못된 역사와 독재 권력은 물론이거니와 부정부패,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이고 투쟁이다. 또한 그것은 그리고 <시드는 힘과 새로이 피어오르는 모든 힘의/기인 싸움을 알리는 쇠나팔 소리>(김지하,「들녘」부분)와 같이 혁명이고 반역이기도 한 것이다.

아울러 시는 그러한 인간정신의 높은 움직임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숙명적인 면에서 언어와의 싸움을 전제로 한다. 즉 문학, 특히 시는 언어와 변증법적 관계에 놓인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오는 서역 삼만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수 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서정주,「귀촉도」

한과 허무로서 사랑과 인생의 비극적인 모습을 이처럼 아름답고 슬픈 한국어로 표현해낸다는 일이 말대로, 그리, 쉽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고유어와 방언 및 토속어, 그리고 개인적인 조어를 활용함으로써 그야말로 한국어의 비극적 황홀의 한 경지를 열어 보여준다고 하겠다. 결국 시는 궁극적인 면에서는 민족어 완성을 향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족의 정서와 혼의 형식을 탐구하고 완성해 나아가는 것을 궁극적인 이상으로 한다. 일찍이 하이데거가 말했듯이 시는 역사적인 차원에서 민족어 완성을 향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시는 개인의 삶에서 시작되어 사회․역사적 삶의 지평으로 열려 가는 길이며 동시에 민족어의 완성을 위한 순례의 길, 구도의 역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점에서 시대현실과는 끊임없이 길항하면서 언제나 영원정신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고 보편적인 생명사랑, 인간사랑, 자유사랑의 길로 열려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시인의 길, 인간의 길, 생명의 길
오늘날의 사회현실은 과연 어떤한가? 바야흐로 현대시 100년 일제 강점의 질곡도 무너지고, 분단 이래의 고질적인 군사통치의 폭력도 점차 사라져 가는 이즈음 오히려 환경파괴와 오염은 날로 심각해가고 각종 사회병리 현상도 가중되어 가고 있다.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폭삭 주저앉아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는가 하면, 자식이 부모의 유산을 노려 부모를 살해하고, 헤아릴 수 없는 반인간적 대형사고는 물론 반인류적 사건․사고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있다. 참으로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너, 또한 우리 모두 그러한 폭력과 재앙으로부터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러기에 바로 우리들 지친 마음에 참된 시심을 일러주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서시」

참된 인간의 길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시심을 간직하는 길, 진짜 시인의 길을 걸어가려는 데서 그 바람직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인용시에서 시인이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첫째 그것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하며 사는 자세가 그것이다. 그런 시가 있지 않던가?

못을 뽑습니다/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여간 여렵지 않습니다/못이 봅혀져 나온 자리는/여간 흉하지 않습니다/오늘도 성당에서/아내와 함께 고해성사를 하였습니다/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아직도 뽑아낸지 않은 못 하나가/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못대가리 하나가/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 김종철,「고해성사」

와 같이 속죄하는 마음, 참회하는 마음이야말로 시의 근본이고 인간에게 영성을 회복시켜주는 근원적 힘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이 부끄러움을 알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 노력하는데서 인간의 인간다움, 인간의 위의가 지켜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둘째로 그것은 진정으로 괴로움을 아는 마음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괴로움이 없는 인간, 괴로움이 없는 인간이란 그야말로 인간성이 마비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기계인간, 무쇠인간이 아닌 이상 물질, 영혼과 육체 사이에 끊임 없는 갈등이 존재하며 그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향한 번뇌가 따를 수 밖에 없다는 듯이다. 부끄러움, 괴로움을 통해 인간은 죄의 길로부터 속죄의 길, 장죄의 길로 나아가게 됨으로써 마침내 인간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셋째로 시인의 길은 <별을 노래하는 마음>을 간직하는 일이다. 그것은 별이 상징하듯이 진․선․미를 향한 동경의 마음이자 갈망의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끊임없이 진실의 길, 착함의 길, 아름다움의 길을 찾아가고자 하는 갈망의 삶, 형성의 삶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바로 ‘아가’를 사랑하는 마음이며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고, 하늘의 별과 땅의 꽃 그리고 고향과 조국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넷째로 그것은 자기 운명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하겠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라는 이 시의 핵심 구절이 그것이다. 삶의 처음도 나에서 비롯되고 그 끝도 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스스로의 운명을 뜨겁게 끌어안고 참되게 사랑하는 길, 즉 운명애의 길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길, 그것은 바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자 최대의 행복일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운명을 사랑해야 하듯이 너의 운명, 나아가서 민족과 인류의 생명, 모든 목숨 있는 것들의 생명을 긍정하고 긍휼히 여겨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종일 헤매어
지친 에버리지
떨어져 시든 꽃잎 위에 엎드리니
내일 떨어질 꽃잎 하나가
보다 못해
미리 떨어져 이불 덮어주는
저녁답
-유안진,「자비로움」

운명애는 바로 인간애의 길이며, 생명사랑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가질 때 과연 이 땅에 함부로 남을 해친다든지 나아가서 함부로 죽이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오늘날 인간의 위기는 바로 문학의 위기이자 시의 위기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 바로 이 점에서 지금 오늘날 21세기의 화두는 단연 ‘생명’이다. 21세기는 시를 통해서 생명존중과 생명탐구, 그리고 생명사상의 길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참문학의 회복과 진정한 시정신의 확립을 통해 문명의 위기, 인간상실의 비극을 극복해 나아가야만할 운명의 시간, 결정의 순간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문학사랑, 시사랑의 등불을 이웃에게 하나씩 점화해 나아감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생명사랑, 인간사랑, 자유사랑의 정신을 새봄의 풀잎처럼 싱싱하게 키워나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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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오 바쇼 이전의 작품(1118~1716년)  / 시인 최윤희
 

 
 
 
 
사이교 西行 (1118~1190)
 
 
사람의 발길도 끊어진 산골 마을 외로움이 없다면 살기도 괴롭겠지
원하건데 꽃 아래 봄에 죽기를. 그 추운 음력 이월의 봄에
 
 
소기 宗祇 (1421~1502)

우는 풀벌레 아랑곳하지 않고 풀이 시드네
세상을 사는 것은 거듭 겨울비를 긋는 것
 
 
 
야마자키 소칸 山崎宗鑑 (1465~1554)

 
둥그렇게 나와도 긴 봄날 햇살이구나
쓰디쓰구나 언제까지 거친 바람 머위의 새순
음력 사월 날아와 크게 울어라 두견새
발을 짚고서 노래하는 개구리인가
사호 아가씨가 입춘날 오줌을 싸서
아지랑이에 옷자락은 젖었도다
달에 손잡이를 달면 부채이구나
바람은 차고 찢어진 문풍지의 음력 사월
흩날리는 매화 가볍게도 신의 봄
지는 꽃을 나무아미타불이라고 말하고 싶다
휘파람새의 딸인가 울지 않는 두견새
소리 나지만 보이지 않는구나 숲속의 대싸리와 두견새
오작교구나 오늘 오랜만의 은하수
꽃 향기 훔쳐서 달아나는 폭풍우여라
나의 아버지 돌아가실 때에도 방귀를 뀌어
추워도 불 가까이 가지마 눈사람
두 손 짚고 노래 불러 바치는 개구리여라
소칸은 어디 갔는가 하고 누가 물으면 잠깐 볼일이 있어 저세상에 갔다고
전해 주시오
 
 
아라키다 모리타케 荒木田守武 (1473~1549) 

여름밤은 밝았어도 떠지지 않는 눈꺼풀
꽃잎이 떨어지네 어, 다시 올라가네 나비였네
날아가는 매화 가볍게도 신들의 봄
내 전 생애가 나팔꽃만 같아라 오늘 아침은
동틀 무렵의 늦가을 차가운 비 마을에 스며
무엇인가 밟아서 부수는 소리 들리네
나팔꽃에 비바람 친다 곧 지겠지
꽃보다도 코 속에 있었네 꽃 향기는
장맛비에 빛의 비 섞인다 반딧불이
 
 
마쓰나가 데이토쿠  松永貞德  (1571~1653)

 
모든 사람이 낮잠을 자는 것은 가을 달 때문
시드는 빛은 무엇을 근심하는 살구꽃인가
아 혼자 서게 된 아이 해인가
안개조차 얼룩으로 피어올랐구나 범띠 해
대측천이 가지고 왔구나 요술방망이 용띠 해
매화도 먼저 향기를 내는구나 말띠 해
오늘 아침 매달린 고드름이여 침 흘리는 소띠 해
원숭이 재갈을 물었는가 두견새
편안하게 세상을 사는가 울지 않는 두견새
슬픈 이야기 들려주고 싶구나 두견새
먹는 것보다 마음의 약인가 사슴 울음소리
저녁 활을 쏘는 것은 잠든 새를 노리는 초승달
달의 벌이 내리는구나 구름에게 가을바람
정원의 모래도 모두 은백의 달밤이구나
먼저 머리에 두건을 쓰는 음력 시월인가
사납게 내리는 빗소리여 아프다고 말하는 초겨울비
산속의 마귀할멈이 오줌을 누네 초겨울의 산 주행
마음의 약 둥글게 빚어 내리게 하는 싸라기눈이여
내리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구나 애주가
미끄러져서 사람도 눈사람처럼 굴러졌구나
세차게 내리는 소리 아프다고 말하는 겨울비
내일은 이렇겠지 어제 생각한 일도 오늘 대부분 바뀌는 것이 세상일이라
 
 
스기키 보이치 杉木望一  (1586~1643)
 
 
꽃 속에 와서 사람들 웃음소리 듣는 봄의 산
 
 
 
마쓰에 시게요리  松江重頼 (1602~1680)
 
 
밤에 내린 눈 알지도 못한 채 잠이 갓 들어
술고래는 동쪽에 있는가 신년 축하 안주
소리 내지 않고 온 해여 원숭이 재갈
봄이 오고 작년은 어디로 원숭이띠 해
경사를 오늘 아침 가져 오는구나 오카에비스
계모 휘파람새인가 닮지 않은 두견새
자기 이름처럼 사계절 내내 울음소리 듣고 싶구나
소나기구나 두견새 목소리를 낫게 하는 의사
웃음소리 들으며 더욱 걸맞는 단풍이여
사랑하는 아이도 여행을 시켜라 가을 기러기
쉬고 있는 기러기 무리 속에 괴롭구나 쇠물닭
사라카와를 다니는 밤배구나 하늘에 떠 있는 달
천상으로 가는 배편이 되어라 초승달
산기슭이여 경대가 되는 초저녁달
산 지킴이와 돌아보기를 겨루는 초겨울비여
처음부터 벌어져 피는구나 눈꽃
가을이 옴을 이 아침 한 발로 느끼네 잘 닦인 툇마루
순례하는 막대기만 가는 여름 들판
산 물고기 칼자국의 소금이여 가을바람
잠깐 멈추게 꽃이 핀 쪽으로 종 치는 것은
 
 
 
니시야마 소인  西山宗因  (1605~1682)
 
 
흰 이슬방울 분별없이 내리네 어느 곳에나
산다는 것은 나비처럼 내려앉은 것 어찌 되었든
바라보느라 고개가 뻐근하다 꽃이 필 때면
꽃을 밟으니 함께 아쉬워하는 목화 면양말
유채꽃 한 송이 피어 있는 소나무 밑
바다는 조금 멀어도 꽃나무 사이에
늦게 핀 벚꽃 너에게 부는 저녁의 강풍 나에게도
결국 누군가의 살을 어루만지리 이 잇꽃은
 
 
 
야스하라 데이시쓰 安原貞室  (1610~1673
 
 
시원함의 덩어리 같아라 한 밤중의 달
오는 해의 마음에 매달린 목숨이어라
녹아서 서로 화해했구나 얼음과 물
아, 이거! 이거! 이 말만 되풀이한 벚꽃 핀 요시노산
 
 
 
간노 다다토모  神野忠知  (1625~1676)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강둑에 제비꽃 하나
푸른 바다에 날개 희고 검은 오리 머리는 붉다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서리 내리는 달 있는 것은 죽은 몸의 그림자
 
 
 
가와이 지게쓰  河合智月  (1633~1718)
 
 
나이가 드니 목소리 기운 없구나 귀뚜라미
내 나이 늙은 것도 모르고 꽃들이 한창
귀뚜라미가 울고 있네 허수아비 소매 속에서
 
 
 
노자와 본초  野澤凡兆  (1640~1714)
 
 
눈 내리는가 등잔불 흔들리는 밤의 여인숙
꽃 지는데 절 문 닫아걸고 떠나다
겹쳐져 있다 눈 쌓인 산과 눈이 없는 산
땔감으로 쓰려고 잘라다 놓은 나무에 싹이 돋았네
길고 긴 한 줄기 강 눈 덮인 들판
 
 
이하라 사이카쿠  井原西鶴  (1642~1693)
 
 
섣달그믐날 정해진 것 없는 세상의 정해진 일들
궤짝 속으로 봄이 사라져 가네 옷을 갈아입으며
뜬세상의 달 더 본 셈이 되었네 옷을 갈아입으며
봄과 여름이 손마저 엇갈리는 옷 갈아입기
 
 
 
야마구치 소도  山口素當  (1642~1716)
 
 
오두막의 봄 아무것도 없으나 모든 게 있다
꼭지 빠진 감 떨어지는 소리 듣는 깊은 산
세상에 들러 잠시 마음 들뜨는 섣달그믐날
나를 데리고 내 그림자 돌아오는 달 밝은 밤
눈에는 푸른 잎, 산에는 두견새, 첫 가다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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