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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예리한 눈에서 탄생한다...
2016년 07월 11일 21시 18분  조회:3953  추천:0  작성자: 죽림

[5강] 따뜻한 가슴으로 사물을 보라 

강사/김영천 

입추가 넘으니 아침 저녁으론 매우 쌀쌀해지고 
아침엔 일찍 일어나기가 영 어려워집니다. 아무런 
원칙이 없는 것 같아도 계절만큼 정확히 제 궤도를 
지키는 것이 없습니다. 

시를 쓰는데도 아무런 원칙이 없이 자기 마음가는대로 
쓰는 것 같아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가지 원칙들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이지요. 

청록파 시인 중의 한 분인 조지훈 시인은 글을 잘 
쓰려면 눈은 과학자를 닮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물을 관찰하는데 치밀하고 날카로운 눈을 
가지라는 이야기 입니다. 

제가 강의 할 때마다 거의 강조해왔지만, 우리들은 
사실 주변의 모든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고 낯이 익어서 
별반 새로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내 주위의 하나도 어제와 똑 같은 것은 없습 
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어느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 모파상이 플로베르를 
스승으로 모시고 글 공부를 하였는데요. 그는 아무래도 
자기의 표현력에 불만을 갖고 선생님께 그 표현의 
비법을 물었습니다. 이 때 플로베르는 "매일 아침 자네 
집 앞을 지나는 마차를 관찰하고 그대로 기록하게. 
그 것이 글쓰기의 가장 좋은 연습이네"라고 대답하였 
습니다. 

모파상이 그 말대로 이틀간 지켜보았으나 너무 단조롭고 
아무 변화 없는 그 모습을 보고 플로베르를 
찾아가 선생님의 지도가 잘 못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선생님은 " 관찰이야 말로 글 쓰기의 훌륭한 연습인데 
왜 쓸모 없다 하는가.자세히 살펴보게나, 개인날에는 
마차가 어떻게 가고, 비가 오는 날에는 어떤 모습인가, 
또 오르막길에서는 어떠한가. 말 몰이꾼의 표정도 비가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또는 뙤약볕 아래서는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살펴보면 결코 단조로운 것이 아님을 알 
것이네"라고 답하였다 합니다. 

자기의 잘 못를 깨닫고 선생님의 교훈을 따른 모파상은 
역사에 남을 명작을 남기게 되었지요. 
우리도 그렇게 관찷하는 눈을 가지고 사물을 보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여기 황동규의 <풍장,17>을 옮깁니다. 

땅에 떨어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물방울 
사진으로 잡으면 얼마나 황홀한가? 
(마음으로 잡으면!) 
순간 뛰어올라 
왕관을 만들기도 하고 
꽃밭에 물안개로 흩어져 
꽃 호흡기의 목마름이 되기도 한다. 

땅에 닿는 순간 
내려온 것은 황홀하다. 
익은 사과는 낙하하여 
무아경으로 한 번 튀었다가 
천천히 굴러 편하게 눕는다. 


사소한 물방울 하나도 관찰하는 눈으로 바라보니 
이렇게 훌륭한 시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의 사물들을 우리도 관찰의 눈으로 
바라보면 분명 좋은 시를 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중국의 저명한 서예가 왕희지도 그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필체가 거위가 연못에서 헤엄칠때 
힘차게 물을 가르는 그 발동작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여기에서 새로운 운필법을 창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형식적이고, 틀에 짜인 기계적인 
관찰은 사물의 피상만을 보거나, 습관화의 연장일 뿐 
임으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그 것의 감추어진 아름 
다음을 찾기 위해서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하는 것입 
니다. 


다음으로 사물을 볼 때는 따뜻한 가슴으로 보아야 
합니다. 

시는 궁극적으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조태일은 시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사랑을 모성적 사랑 
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런 조건과 이해타산 없이 순수하게 
자신이 지닌 것들을 내어주며 한없이 베풀어주는 것이라 
고 보았던 것입니다. 

요즘 여성 시인 중에 가장 좋은 시를 쓰는 시인 중의 하나 
가 나희덕 시인인데, 나희덕 시인의 시를 많이 읽으면 
여러분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나희덕의 <어린 것>을 읽어봅니다. 

어디서 나왔을까 깊은 산길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새끼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맑은 눈빛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고집할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은 
내 앞에서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 
젖이 차 올라 겨드랑이까지 찡해오면 
지금쯤 내 어린 것은 
엄마 젖이 그리울까 
울면서 젖을 짜버리던 생각이 문득 난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난만한 그 눈동자. 
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고 
갈 수도 없다고 
나는 오르던 산길을 내려오고 만다 
하, 물웅덩이에는 무사한 송사리떼 


여러분도 아마 산에 가다가 다람쥐를 마주 친 적이 
가끔 있을 것입니다. 
다람쥐가 우리를 지켜보는 것은 외려 무서워서이겠 
지만 시인은 다람쥐 새끼를 보고도 젖이 도는 어머니 
의 마음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조태일님의 글을 잠깐 옮겨봅니다. 
"시 속에서도 이렇한 모성적 사랑이 근원적으로 흐르고 
있다. 왜냐하면 시는 뭇 생명들에 대한 뜨거운 연민과 
안타까움의 노래이자, 생명을 위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성이 모든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명의 원천이며, 
그 것들을 품고 기르는 위대한 창조성의 本인 것처럼 
시 역시 온갖 사물들을 품으면서 그것들의 지닌 의미와 
아름다움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것이므로 모성과 시는 
그 본질에서 서로 통한다." 

모든 사물을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보면, 정말 
감동적인 시가 써지는 것이지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서로 사랑의 교환을 원합니다. 
비록 영혼을 갖지 않은 무생물조차도 그렇습니다. 
시인들은 시를 통해, 이러한 생명들에게, 아니 무생물에 
까지 사랑을 주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린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또 
그 사물을 따뜻한 마음으로 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진정 감동적이고 좋을 시를 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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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 ―1987년 
―박준(1983∼)

엄마는 한동안

머리에 수건을

뒤집어쓰고 다녔다

빛이 잘 안 드는 날에도

 

 

이마까지 수건으로

꽁꽁 싸매었다

봄날 아침

일찍 수색에 나가

목욕도 오래 하고

화교 주방장이

새로 왔다는 반점(飯店)에서

우동을 한 그릇 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우연히 들른 미용실에서

눈썹 문신을 한 것이 탈이었다

아버지는 그날 저녁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왔다며

밥상을 엎으셨다

어린 누나와 내가

노루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의 한 해 전, 누나도 어렸다니 화자는 더 어렸을 테다. 엄마가 ‘봄날 아침/일찍 수색에 나가’셨다니 화자가 살던 집은 서울 서북쪽 외곽인 수색보다 더 바깥쪽이다. 넉넉지는 않아도 알근달근한 한 가정, 저녁상 자리에서 분란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밥상을 엎고 아이들은 ‘노루처럼/방방 뛰어다’니며 울부짖고. 원인은 ‘엄마가 이마에 지리산을 그리고’ 온 것.

시에 그려진 그 봄날, 엄마의 유유한 행보에는 아마 이웃 아낙 몇이 함께했을 것이다. 한 동네 아낙들이 우르르 목욕도 하고, 반점(飯店)에서 (아무렴, 반점에는 ‘화교 주방장’이지) 우동도 먹고, 미용실에도 들르고. 눈썹 문신을 하러 미용실에 들른 건 아닐 텐데 분명 미용사님께 꼬임을 당했을 것이다. 실력도 별로였을 미용사님한테 ‘야매’로 눈썹 문신을 시술받은 뒤 미용실 거울을 보며 엄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을지도 모른다. 시커먼 ‘지리산’ 두 개가 이마에 턱 얹혀 있으니까. 미용사님은 예쁘다고 설레발치셨을 테고 엄마는 긴가민가하며 울상을 하고 웃었을 테다. 어쩌면 같이 간 동네 아낙 모두 같은 형상이 돼서 그날 저녁 집집마다 아내들이 남편한테 봉변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어떤 남편은 낄낄 웃었을라나? 당최 화를 참지 못하는 모습으로 미루어, 대한민국이 전반적으로 가난의 때를 벗기 시작한 1987년, 화자의 아버지는 그 대열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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