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랑
―이성선(1941∼2001)
나는 다른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안다
풀잎과 마주앉아서 서로 마음 비추고
남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로
함께 꿈꾸며
별을 바라 밤을 지새는
시인이면 족하여라
그것만으로 세상을 사랑한다
그와 내가 둘이서
눈동자와 귀를 서로의 가슴에 묻고
사랑의 뿌리까지 영롱히 빛내며
저 하늘 우주의 울림을
들으면 된다
세상의 신비를 들으면 된다
그의 떨림으로 나의 존재가 떨리는
그의 눈빛 속에 내가 꽃피어나는
그것밖에는 더 소용이 없다
그렇게 별까지 가면 된다
일반적으로 시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풀잎과 마주앉아서 서로 마음을 비추고/남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로/함께 꿈꾸며/별을 바라 밤을 지새는’ 사람일 테다. 남부럽지 않게 잘살아 보려는 욕망이니 정치니 착취니 인기니 유행이니, 이런 세속에서 멀리 떨어져 맑고 순수하게 사는 사람. 세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그 신비를 캐고 아름다이 노래하는 사람. 통념이 대개 그렇듯 기본은 맞는 생각이지만, 이런 이미지가 고정관념이 되면 시인을 세상과 멀찌감치 떼어놓는 힘으로 작용하며, 저 스스로 이 ‘보호구역’에 드는 시인도 많다.
하지만 시인 이성선이 그런 ‘시인이면 족하여라/그것만으로 세상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에는 간단치 않은 울림이 있다. ‘나는 다른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시의 어조가 시종 쓰라리다. 풀밭에서 지새우는 별이 빛나는 밤. 풀처럼 낮게 앉아 ‘사랑의 뿌리가 영롱해지도록’ 풀잎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들어 별을 본다. 풀잎은 떨고 그 떨림, 시인에게로 별에게로 전해진다. 전 우주가 ‘눈동자와 귀를 서로의 가슴에 묻고’ 사랑으로 떨며 꽃피어난다.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시공간! 시인은 ‘그것밖에는 더 소용이 없다/그렇게 별까지 가면’ 된단다. 자연, 그 소박한 세계와 통하는 ‘남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에 대한 시인의 순정한 사랑이 ‘된다’ ‘된다’ ‘된다’라는, 자신을 다독이는 듯 쓸쓸한 종결어의 반복으로 미묘하게 변주된다. 욕심은 없지만 긍지는 높은 시인 이성선…. 화려하고 교묘하고 장엄하고, 현란하고 때로 요사스러운 시가 백화난만한 시절에 풀잎 같은 시인의 외로움과 당혹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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