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 두 시간은 총론이라 생각하시면 되겠구요
오늘부터는 지난 강의를 이어하는 강의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강의 방법은 전과 같은 방법으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선 커피 한 잔 하시구요.
오늘은 제가 커피를 준비하였습니다.
내일부턴 누구 집 가까우신 분들이 좀 준비해주시면 고맙겠네요.
1.시의 행과 연
형태상으로 보자면 시의 구조는 행(行)과 연(聯)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행과 연은 시의 형태를 만들어
주는 구조의 기본골격이란 말과 같겠지요.
행은 단어, 구(句), 절(節) 또는 그 것들의 연합으로
되어 있고 연은 하나의 행, 또는 행의 연합으로 구성
됩니다.
그러므로 이론상으로는 단 하나의 단어만으로도 한 편
의 시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하이데거는 시를 가리켜 '언어의 건축물'이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 건축물을 이루는 기본골격이 바로 행과
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자기 집을 새로 지으신 분들이 계
실 것입니다. 아니 아파트에 사신다고 해도 마찬가지
이지요. 아무리 훌륭한 재료를 썼다 하더라도 구조가
좋지 못하면 형태가 온전하지 못하지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시상과 좋은 시어를 사용하여 시를 쓴다
고 하더라도 행과 연을 잘 이루지 못하면 시적 성공률
은 그만큼 떨어질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처음 시를 쓰거나 아직 많은 시를 써보지 않으신 분들
은 아무런 필연성이나 계산성도 없이 뗐다 붙였다 행
과 연을 구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행과 연
의 구성은 전적으로 작가 개인의 마음대로 입니다. 그
러나 행과 연의 잘못으로 시적 전달이 잘 못 되거나
시적 감응을 반감시킬 염려가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
다. 어떤 경우는 불필요한 행과 연을 구분해서 오히
려 전체적인 형태마저 기형적으로 만드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시의 구조는 매우 치밀한 것입니다.
오늘부터 하는 강의를 잘 들으시어 여러분들의 시작
에 많은 참고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첫 행은 어떻게 시작하는가
우리는 시작이 절반이란 말을 늘 합니다. 그만큼 시작
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여러분들도 시를 쓰거나, 꼭
시가 아니고 편지를 쓸 때도 첫 번 화두를 펴기가 제
일 힘들다는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첫 줄만 시작하면 그 뒤로는 줄줄이 나오는 글들도
늘 그 첫 마디 한 마디에서 막히거든요. 그만큼 처
음 시작이 중요합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그 다음
단추도 바로 끼어지는 것이 여기에서도 그대로 적용
이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시에서 첫 행은 독자들의 관심과 호기심까지
유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소
설이나 다른 글을 보더라도, 아니면 싸이버 세상의 모
든 글들도 첫 행에 이상한 글이 있다던지, 너무 흔한
말이라든지 이런 글이 있으면 더 이상 읽고 싶지 않
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처음 만나는 사람의 첫 인상
과 같은 것이지요.
거기에 시의 첫 행은 다음에 이어지는 행들과 연들을
끌어 올리며 시 전체의 내용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스켈톤은 시의 첫 행의 이미지가 그 다음에 오는 모
든 이미지에 연결되어 그것이 전체의 이미지로 확산
이 되어진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너무 복잡
한 설명이어서 여기 생략합니다만 대개 그런 뜻입니
다. 다만 첫 행의 시는 시 전체를 압축적으로 하여
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이상화의 시에서는 이 첫 행
에 시 전체의 주제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
나 이렇게 시 전체 주제가 첫 행에 압축되어 있는 것
은 아닐지라도 시의 첫 행은 전체 시의 내용과 직결된
다는 점을 늘 마음에 두셔야 할 것입니다. 그 첫 행
의 이미지가 무척 중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의 첫 행은 어떻게 해야하나 누가 한 번 이야기 해
보시지요.
대답하기 어렵지요?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마치 우리
가 무슨 일을 할 때 처음에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이
늘 그렇듯 답하기 어렵습니다.
조태일님도 이야기 했지만 첫 행에 대한 모범답안은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 하는 분류는 순전히 그 동안 써 온
많은 시인들의 시를 참고하여 작성한 것임을 참고하
시고, 다만 참고로 삼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로지 시는 여러분 개인의 창작물임으로 시의 첫 행
도 보다 독창적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시간적 언어
즉 특정한 시간이나 계절 등을 첫 행으로 시작할 수
가 있습니다.
시간과 계절은 생명의 생성과 성장, 결실, 소멸가 관
계가 깊으며 우린 이 시간성과 계절성에 민감하게 반
응합니다. 아마 지난 가을을 아주 힘들게 지나신 분들
이 계실 것입니다. 아니면 이제 돌아온 봄을 견디기
힘들어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즉,나는 봄을 탄다, 나는 가을을 탄다 하시는 분들
이 계시는데 어떤 분들은 환절기를 견디기 힘들어하시
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이런 마음을 시의
첫 행에 끌어내면 아주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절에
대한 아픔이 없다고 그 계절에 대해 아무 감각이 없는 것은 아니
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외려 가슴 깊이 아픔을
삭히는 분도 있을 터이며 더구나 그런 이유로 시를 못쓰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는 다만 한 예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직접적 반응을 일으키는 시간적 언어
를 첫 행으로 사용하면 충분히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박봉우님의 <별밭을 찾아>를 읽어보겠습니다.
늦은 밤
별밭을 찾아간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 밤을
남몰래 울어 본다
내가 여기 서 있다는 것이
더욱 無意味(무의미)로울 때
나의 고독은 더한층 심연이다
별들만이 아는 비밀
세상에 태어나 서 있을 때처럼
無意味로운 것은 더욱 없다
오늘도
별밭을 찾아
고독들 피흘리는
고독을 나누어 본다
시간으로 시작되는 첫 행은 아주 그 숫자만큼이나 많
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이 앞으로 전개될 시적
담론의 배경을 미리 알려주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우
리에게 너무 익숙한 표현일 수가 있어 오히려 관심을
반감시킬 수 있으니, 상투적인 표현을 피하고 새로운
변화를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영석님의 <매>를 읽어보겠습니다.
하늘이 시퍼렇게 얼어붙은 겨울날
手話(수화)를 나누던
너와 나의 하얀 손이
까마득히 낙엽진 날
마음속 깎아지른 벼랑을 떠나
온종일 허공을 맴도는
매 한 마리
사계절이 시의 첫 행으로 오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
습니다.
특히 봄과 겨울이 많다고 합니다. 이러한 계절이 첫행
으로 자리잡은 까닭은 시간의 흐름이나 바뀜이라는
단순성을 넘어서 하나의 원형이 되고 있는 보편적 의
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드롭 프라이에 의하면 봄은 영웅의 탄생신화, 희
극, 열광적 찬가, 광상곡의 원형이며, 여름은 인간으
신격화와 낙원에 관한 신화, 로맨스, 전원시, 목가의
원형입니다. 가을은 신과 영웅의 사망에 관한 신화,
비극과 엘레지의 원형이며,겨울은 대홍수와 혼돈의 신
화, 영웅 패배의 신화, 풍자와 아이러니의 원형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노드롭 프라이의 말을 이해하시려면 먼
저 이 원형이라는 문학비평용어를 알아야하실 거 같
아 여기 짧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문학의 원형 이론은 케임브리지대학의 비교인류학파로
부터 유래한다고 합니다. 이 학파의 기본 책자는 프레
이저의 『황금가지』인데, 이 책의 대부분은 다양한
문화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 속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신화나 제의의 기본적인 형태들이 있음을 주장했고,
또 그 것을 추적한 것입니다.
다른 한 편으로 이 이론은 융이라는 심리학자의 심층
심리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융은 "원형"이란 용
어를 "원초적 이미지"에 적용하였는데, 이 것은 바로
우리에게 옛 선조들의 생할에서 반복되던 경험 형태들
의 "심리적 잔존물"로서, 인류의 "집단 무의식"을 통
하여 전해져 내려오고, 신화, 종교,꿈, 개인적 환상뿐
만 아니라 문학작품 속에서도 표현되고 있다고 융은
주장하였습니다.
점점 더 어려운 용어가 나오는군요. 쉽게 말하면 우리
의 글에는 알게 모르게 그 원형 즉 그 뿌리에 신화의
요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알에서 조상이 나
온다는 것이 박혁거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을 그런 이야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라는 이야기도 여러 나라에서 발
견됩니다.
그래서 어떤 소설을 끝까지 추적하다 보면 어떤 신화
에 도달한다고 보고 분석하는 것이 비평의 한 방법인
신화원형 비평입니다.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비약하고 있습니다만, 이 강의
실에서 아주 열심히 공부하는 분 중에 비평에도 관심
있으신 분이 있는 것 같아서 아주 조금 더 설명을 하
겠습니다.
이 원형이란 용어는 문학비평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
어 왔습니다.
비평에서 "원형"은 신화, 꿈 심지어는 사회적 행동인
제의 양식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작품 속의 인물 유
형, 또는 이미지들에 적용되기도 합니다.
특히 노드롭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에서 원형적 접
근을 성경에까지 확대시켜, 문학이론과 문학비평의 실
제에 있어서 많은 진보적 발전을 하게 하였습니다.
이 비평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은 문학 속에 내재한 신
화형태를 강조합니다. 즉 먼저도 설명했지만 모든 문
학 작품은 신화원형 이론에 의해 분석하면 그 원형은
신화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을 보면, 보다 한정적이긴 하지만
문학 속에서 자주 재현되고 있는 다른 원형적 테마,
심상, 그리고 인물들로는 지하여행, 승천, 아버지를
찾는 행위, 낙원과 지하계 심상, 프로메테우스 같은
반역적 영웅, 속죄양, 대지의 여신, 죽어야 할 운명
에 놓인 여자 등입니다.
이를 더 자세히 하기엔 어려움으로 이 정도로 마치고
본 강의로 들어가겠습니다.
(강의를 처음 들으신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는데요.
강의를 받을 때 어려운 인용이나 설명이 있을 것입
니다. 여기에서도 신화원형 같은 용어는 비평 용어
임으로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만 아시면 되지. 굳이
이해하거나 외우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배우는 이론임으로 참고하시
라고 올렸습니다. 싸악,,,,잊어버리세요. 후훗)
이가림님의 <석류>를 읽어보겠습니다.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등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트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이 시에선 불특정의 시간이 첫 행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가지의 시간적 표현이 오히려 막연
한 시간이 자아내는 울림으로 시적 상상력을 자극하
고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고로 유경환 시인의 시의 첫행에 대한 견
해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별다른 생각없이 시의 첫 줄을 써 왔었다. 지극히 자
연스럽게 첫 시작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쓰려고
하는 것을 몇 달씩 가슴에 넣고 삭여오다가 잎이 돋
듯 그렇게 나오는 것을 원고지에 옮겨 써왔던 나의 시
작 태도에 기인했던 것일께다.
그러나 한 십여년 전부터 이런 나의 시작태도에 변화
가 생겼다.
난 그것을 겪어야 할 변화라고 생각하고 싶다. 쓰려
고 하는 내용을 유도하는, 그런 의미를 의식하게 되면
서 부터 내적인 작은 고민이 자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고민은, 첫 줄만 써놓고 버리는 원고지의 양을
차차 늘여서, 오히려 시 작업에 저해 요소로 까지 영향
을 미친다. 아마 이 것은 나만의 경우가 아닌듯 싶
다. 시의 첫 줄이 그대로 시제가 되는 예를 미루어 보
거나, 또는 내용 전체의 의미를 표상하는, 함축적인
감각을 지니게 되는 예를 미루어 볼 때에, 나만의 고
민이 아니구나 하고도 생각하게 된다.
이 것은 시를 어렵게 생각하게 되는 한 과정 또는 매
듭 단계에서 겪는 고민이 아닐까 여겨진다.
쓰지 않고선 못배길 정도로 내적인 발효가 이루어진
경우엔 쉽게 나오고, 그대신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당
위성을 가지고 시작할 때엔 어렵게 나오게 된다.
나의 경우 길을 가다가, 책을 보다가, 또는 산책을 하
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을 아무데나 한 줄씩 메모
해두는 버릇이 있는데 거의 이 한 두줄의 메모가 그대
로 첫줄로 등장할 때가 있다.
첫 시작의 첫 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 시의
경직성을 띠고 전개되기 쉽고, 첫 시작의 첫 줄에 전연
의미를 내포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도입구의 역할만
하게 쓰면, 시는 자연스럽게 풀려 나갈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요즘 첫 시작의 첫 줄에 마음을 써야하
는 모순의 고민을 지닌다. 이것은 시를 어려운 것으
로 알기 시작했다는 한 반증이 아닐까 자위해 본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강의지만 모두 경청하여주셔서 감사합
니다. 강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하고 토요일
일요일은 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여러분들이 토요일
까지 강의를 받으시기에 힘이 드시는 것 같더라구요.
그럼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대신 밑에 좋은 프로그램 올리니 토,일요일에 많이 들어가
보세요.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
외로운 사랑
―이성선(1941∼2001)
나는 다른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안다
풀잎과 마주앉아서 서로 마음 비추고
남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로
함께 꿈꾸며
별을 바라 밤을 지새는
시인이면 족하여라
그것만으로 세상을 사랑한다
그와 내가 둘이서
눈동자와 귀를 서로의 가슴에 묻고
사랑의 뿌리까지 영롱히 빛내며
저 하늘 우주의 울림을
들으면 된다
세상의 신비를 들으면 된다
그의 떨림으로 나의 존재가 떨리는
그의 눈빛 속에 내가 꽃피어나는
그것밖에는 더 소용이 없다
그렇게 별까지 가면 된다
일반적으로 시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풀잎과 마주앉아서 서로 마음을 비추고/남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로/함께 꿈꾸며/별을 바라 밤을 지새는’ 사람일 테다. 남부럽지 않게 잘살아 보려는 욕망이니 정치니 착취니 인기니 유행이니, 이런 세속에서 멀리 떨어져 맑고 순수하게 사는 사람. 세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그 신비를 캐고 아름다이 노래하는 사람. 통념이 대개 그렇듯 기본은 맞는 생각이지만, 이런 이미지가 고정관념이 되면 시인을 세상과 멀찌감치 떼어놓는 힘으로 작용하며, 저 스스로 이 ‘보호구역’에 드는 시인도 많다.
하지만 시인 이성선이 그런 ‘시인이면 족하여라/그것만으로 세상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에는 간단치 않은 울림이 있다. ‘나는 다른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시의 어조가 시종 쓰라리다. 풀밭에서 지새우는 별이 빛나는 밤. 풀처럼 낮게 앉아 ‘사랑의 뿌리가 영롱해지도록’ 풀잎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들어 별을 본다. 풀잎은 떨고 그 떨림, 시인에게로 별에게로 전해진다. 전 우주가 ‘눈동자와 귀를 서로의 가슴에 묻고’ 사랑으로 떨며 꽃피어난다.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시공간! 시인은 ‘그것밖에는 더 소용이 없다/그렇게 별까지 가면’ 된단다. 자연, 그 소박한 세계와 통하는 ‘남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에 대한 시인의 순정한 사랑이 ‘된다’ ‘된다’ ‘된다’라는, 자신을 다독이는 듯 쓸쓸한 종결어의 반복으로 미묘하게 변주된다. 욕심은 없지만 긍지는 높은 시인 이성선…. 화려하고 교묘하고 장엄하고, 현란하고 때로 요사스러운 시가 백화난만한 시절에 풀잎 같은 시인의 외로움과 당혹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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