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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란 황새의 외다리서기이다...
2016년 10월 01일 18시 14분  조회:4984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6년 09월 07일 07시 36분 ]

 

 

==='간담이 서늘'해지는 교통사고현장===

[7강] 시의 행 만들기(1) 


3.행은 어떻게 만드는가 

행은 시의 구조에서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 학자에 따라서 그 분류가 다르기는 하지만 김춘수 시 
인은 리듬의 단락으로 행 만들기, 의미의 단락으로 행 만들기, 
이미지의 단락으로 행 만들기 이상, 셋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오규원씨의 현대시작법도 김춘수씨의 분류를 따르고있습니다. 
이 말은 리듬이나 의미나 이미지 그 어떤 것을 중요시하였는 
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여기에 강희근 시인은 힘 줌의 작은 마디를 하나의 행으로 
놓는 경우를 첨가하여 네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박용래님의 <액자 없는 그림>을 읽어보겠습니다. 

능금의 
떨어지는 
당신의 
地平(지평) 
아리는 
氣流(기류) 
타고 
수수 이랑 
까마귀떼 
날며 
울어라 
물매미 
돌 듯 
두 개의 
태양 

이 시는 리듬을 중시하여 행을 구분한 예입니다. 
만약에 이 시를 의미를 중시해서 행을 재배치 한다면 

능금이 떨어지는 당신의 地平 
아리는 氣流 타고 
수수 이랑 까마귀떼 날며 
울어라 
물매미 울 듯 두 개의 태양 

아마,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러나 이렇게 바꾸어 
버리면 시인이 원래 강조하고자 했던 하나 하나의 단어의 
그 이미지와 시 전편에 걸친 경쾌한 리듬이 죽고 말게 됩 
니다. 따라서 시인이 처음부터 의미의 단락을 중시했다면 
문체나 어휘 선택이 달라졌을 것이 확실합니다. 

이렇듯 시인이 어디에 그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시 전체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을 감안하시고 강의를 들어주시기 바랍니 
다. 

또 같은 시인의 <울타리 밖>이란 시를 보면요. 

그 길에 아지랑이가 피듯 태양이 타듯 
제비가 날 듯 길을 따라 물이 흐르듯 그렇게 
그렇게 

天然(천연)히 

울타리 밖에도 花草(화초)를 심는 마을이 있다 
오래오래 殘光(잔광)이 부신 마을이 있다 
밤이면 더 많이 별이 뜨는 마을이 있다 

앞의 시와 한 번 비교해 보십시오. 앞의 시는 한 단어가 한 
행이 되었고 또 시 전체가 한 연으로 되어 있지요. 다음 시 
는 '천연히'라는 한 단어가 한 행인 동시에 한 연이 되어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듯 행과 연의 구분은 작가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 
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순전히 작가 중심으로 되어 있습 
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의 마음이라 해도 충분하거 
나 필요한 이유 없이 마음대로 하면 안되겠지요. 

여기에서 보면 '천연히'는 단 한 마디의 단어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이 말 하나로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 
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 속의 '천연히'는 앞과 뒤에 있는 
가 연과 맞먹는 이미지의 중량을 작가가 부여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실제로 이 이미지는 한 행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을 만큼 효과적입니다. 

정형시(시조)는 규칙적으로 행과 연이 규정되어 있으므로 시인 
의 자유가 한정된다 하여도 자유시에서는 행과 연은 시인의 
자유의사에 따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원칙이 있다고 앞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는 김춘수 시인의 구분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보기로 하겠습니다. 

1)리듬의 단락으로 행만들기 

리듬을 중시하여 리듬의 한 단락을 행으로 놓는 경우입니다. 

에즈라 파운드는 시를 음악시, 회화시, 의미시로 나눈 일이 
있습니다. 이는 물론 시가 언어의 음악적 성질 그것만으로, 
회화적 이미지 그것만으로, 또는 의미 그것만으로 되어 있지 
않고 시가 어떠한 것을 중요시하고 있느냐에 하는데 따른 
구분이라는 주장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김춘수의 행과 연을 
리듬, 이미지, 의미의 단락에 따라 구분한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오규원님의 이야기를 참고로 들어보겠습니다. 

"시의 리듬이란 언어를 음악적 효과가 나도록 소리를 유형화 
한 것이다. 소리와 의미의 복합체인 언어를 '의미를 수식하고 
변형시키고' 의미를 확충하도록 소리를 작품속에 조직하는 것 
이다. 
그런 시의 리듬은 정형시의 그것과 자유시의 그것과는 다르다. 
정형시의 리듬은 압운과 율격을 기본으로 한다. 압운은 영시 
나 한시에서 볼수 있는 바처럼, 시행의 시작, 끝, 중간에 유 
사한 소리를 내는 음절을 반복시키는 것이다." 

리듬은 우리의 전통시가인 고시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조의 초.중.종의 3장은 지금 현대시에 나타나는 행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 각 행은 음수율과 음보율을 갖고 있는 규칙 
적인 리듬에 근거하여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윤선도님의 <오우가>의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작은 것이 높이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중에 광명이 너만한 것이 또 있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벗인가 하노라 

아마 학교에서 배워서 잘 아시겠지만, 시조의 각 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한 번 살펴 보시지요. 
글자 수는 3.4조의 음수율이 일반적이며 자연스럽게 끊어 읽는 
단위를 한 보라 할 때 보통 4번, 즉 4음보로 되어 있습니다. 
그 글자 수도 종장의 첫구에서 3음절, 5음절을 제외하고는 
대개 2자에서 5자까지 변형이 가능했었습니다. 

현대시조가 그 형태를 많이 다양화하고 자유스러워졌다 하여도 
아직은 그 정형성이 고스란히 살아있습니다. 

조병기님의 <접시꽃>을 읽어볼까요. 

누구의 목숨일까 
기다리는 동구밖 

속사연 아직 남아 
뜬눈으로 밤새우고 

이슬밭 남 먼저 일어나 
뻐꾸기를 손짓한다 

어머니 가시던 해 
그토록 서럽더니 

울타리 기대 서서 
먼 산을 바라는가 

때절은 옷자락 벗고 
촛불 하나 켜느니. 

이 시조는 각 장의 구들을 한 행으로 놓음으로써 한 행이 
2음보율을 살려내고 있습니다만 행을 중첩하여 읽어보면 
고시조와 같은 4음보율이 살아납니다. 


김소월님의 <가는 길>을 읽어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山에도 가마귀, 들에 가마귀, 
西山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이 시의 행을 살펴보면 행을 구분하는 기준이 리듬에 의한 것 
임을 그냥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만히 소리 내어 읽 
어보십시오. 아마 7.5조의 음수율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예는 우리가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전부터 시조와 정형시들을 많이 읽어왔기에 그냥 구 
분이 가리라고 봅니다. 

시조와 같은 정형시는 아니라도 리듬의 단락으로 행이 구분된 
현대시를 부분으로 한 번 읽어보고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김수용님의 <쌀난리>를 읽어보겠습니다. 

넙적다리 뒷살에 
넙적다리 뒷살에 
말이 빼라지 
손에서는 
손에서는 
불이 나라지 
수챗가에 얼어빠진 
수세미모양 
그대신 머리는 
온통 비어 
움직이지도 않는다지 
그래도 좋아 
그래도 좋아 

이 승훈님의 <별안간>을 읽어보겠습니다. 

별안간 따분해 
찾아간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별안간 천둥이 쳐 
비가 내려 
꽃잎이 떨어져 
찾아간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별안간 너래도 
만나고 싶어서 
기막힌 치욕이 
와락 나를 껴안고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시의 행과 연은 작가의 의도를 껴안 
은 채 리듬을 창조하는 방향에서 운용되는 것입니다. 
오늘 배운 과목과는 상관이 없지만 계절에 맞는 시 
두 편을 올리겠습니다. 

강계순님의 <봄>-작은 손 18입니다. 

오랜 잠 속에 누워 있었네 
숨 쉬고 있던 모든 것들 단칼에 베어내고 
차디찬 뒷모습으로 떠나간 그대 
깊이 벤 상처 땅 속에 묻고 
아주 오래 어둠 속에 갇혀 있었네. 
이제 밤낮 익은 암호가 어디선가 
누설되지 않은 주파수를 변조하여 
깊고 단단한 잠 속으로 삐삐삐삐 
은밀하게 타전해 오더니 
물빛 사발통문을 만들어 여기저기 뿌리면서 
그대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섰네. 
흙 묻은 손발 햇살로 씻어내고 
삭고 찌든 어둠도 부드럽게 밀어내고 
연초록의 화신으로 다시 일어서서 
보이지 않던 빛 다시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 다시 들리게 하는 
비밀의 주파수 삐삐삐삐 
신비한 암호를 보내면서 여기에서 저기에서 
호출부호를 누르고 있네. 

다음은 김명리님의 <나비는 튜브 모양의 꽃들을 
좋아한다>를 올리겠습니다. 

원추리 노란꽃 위에 남방나비가 앉았다 
물봉선 붉은꽃 위에 작은주홍부전나비가 앉았다 
비비추 보라꽃 위에 사향제비나비가 앉았다 
하악을 찢어져라 벌리고 노려보며 
말짱한 대낮에 
꽃잎 우산살을 낱낱이 펼쳐 든 어수리 
환삼덩굴잎 뒷면에다 
마악 알을 낳은 네발나비가 이리로 날아올지 
멧노랑나비, 큰흰줄나비 
갈고리나비 떼가 날아들지 
오오 모두들 가만히 스치고 날아가버릴지! 

===========================================================

 

경계 
이영광(1965∼ )

모내기철 기다리는 남양주 들판
해질녘, 논은 찬데
황새는 물 위에 떠 있다
보이지도 않는 긴 다리를
철심처럼 진흙에 박아놓고

가까이서 보면 그는 외발,
가늘고 위태로운 선 하나로
드넓은 수면의
평형을 잡고 있다
물 아래 꿈틀대는 진흙 세상의
혈을 짚고 서 있다

황새는 꿈꾸듯 생각하는 새,
다시 어두워오는 누리에 불현듯 남은
그의 외발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한 발마저 디딜 곳을 끝내
찾지 못했다는 것일까
진흙 세상에 두 발을 다 담글 수는
없다는 것일까

저 새는 날개에 스며 있을 아득한 처음을,
날개를 움찔거리게 하는 마지막의 부름을
외발로 궁리하는 새,
사라지려는 듯 태어나려는 듯
일생을 한 점에 모아
뿌옇게 딛고 서 있었는데


 
사람 그림자 지나가고,
시린 물이 제자리에서 하염없이 밀리는 동안
새는 문득, 평생의 경계에서
사라지고 없다
백만 평의 어둠이 그의 텅 빈 자리에
밤새도록 새까맣게 들어앉아야 한다


 
발레의 기본동작 중 하나인 파세(passe)를 하고 있는 듯 우아하게 외다리로 선 모습이 특징처럼 떠오르는 황새. 문득 황새가 왜 외다리로 서 있는지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봤다. ‘두 발을 다 들면 자빠지기 때문’은 웃자고 한 답이고, ‘대개 오래 서 있을 때에 체온이 땅으로 빠져나가는 걸 반으로 줄이기 위해서’가 정답일 테다. 과학 상식이 어떻든 외다리로 서 있는 황새는 고고하고 초연해 보인다. 

해질녘, 물이 차 있는 논에 황새가 외다리로 서 있다.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니고 두 다리로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외다리로 선 그 모습을 보며 시인은 ‘한 발마저 디딜 곳을 끝내/찾지 못했다는 것일까/진흙 세상에 두 발을 다 담글 수는/없다는 것일까’ 생각하다가 날이 컴컴해져 외다리는커녕 황새도 안 보이자 빛에서 어둠으로 넘어가는 ‘평생의 경계’를 본다. 시에서 외다리는 있음과 없음, 존재와 비존재, 삶과 죽음… 등등 두 상반된 세계를 이어주는 점이(漸移) 지점이다. 중학생 때 영어선생님이 생각난다. 어딘지 고결하게 느껴졌던 건 그분 성품이 닿은 거지만 한쪽 다리를 저셔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두 다리 동물이 두 다리로 굳건히 땅을 딛고 있지 않을 때의 아슬아슬한 균형은 보는 이를 긴장시키면서 비세속적 세계로 한 발 이끈다. 시인 이영광의 세밀한 자화상을 보는 듯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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