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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돌과 물과 바람들의 침묵을 읽는것...
2016년 10월 01일 18시 18분  조회:3964  추천:0  작성자: 죽림

[9강] 시의 행과 연의 관계 


오늘은 시의 행과 연의 관계를 먼저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연의 구분에 대해서 공부하고, 시의 첫 행을 공부 
했으니 시의 마무리를 공부함으로 우선 시의 행과 연에 대한 
단원은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1.시의 행과 연의 관계 

시에서 반드시 행이나 연의 구분을 해야하느냐는 문제가 최근 
더욱 부쩍 많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옛날 정형시에서는 
그 형태적으로 행과 연이 정해져 있었지만 현대시로 발전해 
오면서 그 형태와 내용의 자유스러움으로 인해서 최근에는 
행과 연을 구분하지 않는 시들이 많이 이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시의 행이나 연을 어떻게 구분하십니까? 일단 행 
에 대해선 앞 시간에 배우긴 했지만, 사실 그 동안은 본인의 
기분에 따른 구분을 하였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면서도 요즘은 시의 행과 연이 없는 시가 더 멋있게 보이 
고, 더 현대적으로 보이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행과 연의 구분이 없어도 아주 성공적인 시를 읽으면서 
과연 행과 연의 구분이란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하는 의아심 
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행과 연의 구분은 철저히 작가의 의도에 따르는 
것입니다. 공간적, 시간적, 의미적, 조화적, 이미지적, 통일적 
구분의 필요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하기도 안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시는 행과 연을 구분해야 그 이미지가 더 살아나고, 시 
가 더 전달이 잘 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요. 그러나 구분에 
큰 의미가 없고 행과 연을 구분하지 않는 산문시이면서도 그 
운율이나 의미 전달, 이미지의 활용 등에 문제가 없다면 구태 
여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조병무님의 설명을 참고하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허영자님의 <연> 

꽃아 

정화수에 씻은 몸 
새벽마다 
참선하는, 

미끈대는 검은 욕정 
그 어둠을 찢는 
처절한 미소로다 

꽃아 
연꽃아. 

ⓑ조병무님의 <송광사에서> 

돌들이 마주 앉아 침묵한다 
물들이 마주 앉아 침묵한다 
바람이 사이를 누비며 
한올씩 한올씩 캐어내는 재미 
구름밑에 
하늘밑에 
한폭의 그림으로 자리하는데 
스님은 어디론가 
바쁘게 간다. 
흔적도 없이 
빠르게 간다. 

ⓒ조영서님의 <과실은> 

저 속엔 스스로 트이는 하늘이 있습니다. 해는 한 변두리와 
알맞은 빛깔을 내던졌고, 나는 의미가 익어 가는 눈짓을 보 
내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에게로 향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가을은 다시 차고 넘치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신동춘님의 <거리 3> 

꽃을 짓이기어 얻은 진한 진액에서 꽃의 아름다움을 찾아보 
지 못하듯 좋아하는 사람 곁에 혹처럼 들러 붙어 있어도 그 
사람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는다. 

꽃과 꽃만큼 아름다운 사람은 옆에 있을 때 굳이 멀리 두고 
보듯 보아야 하고 떨어져 있을 때 애써 눈앞에 놓고 보듯 보 
아야하느니. 우리는 서로 날 때와 죽을 때를 달리하기 때문에 
꽃과 꽃처럼 사랑스러운 이에게 가는 데는 참으로 그 길밖에 
딴길이 없다 한다. 

지금까지 인용한 시들을 중심으로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는 행과 연의 구분이 있는 자유시 ⓑ는 행은 있되 연의 구 
분이 없는 자유시 ⓒ는 행과 연의 구분이 없는 산문시 ⓓ는 
연구분은 있되 행은 산문시로 되어 있는 특징이 각각 있습니 
다. 

ⓐ의 경우, 행과 행 사이의 시간적 공간적인 쉼과 의미의 전 
달, 리듬적 요소, 회화적인 생동감 등 복합적 요소가 모두 나 
타나게 됩니다. 
아무리 행과 연이 작가의 자유라하지만 우리는 분명 시의 연 
이나 행 구분이 아무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 건 이미 
배운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자유시엔 하나 이상의 연 구분이 가능하고 그 연 
구분 자체가 시적 생명감을 더욱 불어 넣어 주기도 합니다. 
그 것은 의미의 전달이 연과 연의 구분, 행과 행의 구분 속 
에도 포함되어 있는 때문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첫행이면서 첫연인 '꽃아'와 둘째 연 '정화수 씻은 몸/ 새벽마 

다/참선하는' 은 도치되어 있습니다. 즉 정화수 씻은 몸 새벽 
마다 참선하는 꽃의 모습을 그 연을 변경시킴으로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시를 읽을 때 
도 '꽃아' 다음엔 잠시 쉼의 간격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에서는 연 구분이 없이 한 행, 한 행의 의미 전달과 음악적 
요소만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연 구분이 없으면 다소 그 탬포 
가 빨라지지만 우린 그 행간의 시간적 개념을 생각하면서 감 
상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는 산문시 형태입니다. 그러나 이 시에서도 우리는 분명히 
운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다만 자유시처럼 행과 연의 구분 
으로 시의 호흡을 하지 않기 때문에 전달 속도가 다소 빠르긴 
하지만 오히려 생동감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는 ⓒ와 비슷한 산문시 형태지만 연의 구분이 있습니다. 앞 
의 연과 뒤의 연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유지해보려고 하는 것 
입니다. 

조향님의 <영결>이란 시의 마지막 세 연을 읽어보겠습니다. 

건너편 언덕 신작로 오르막길. 
이승의 버스가 씨근거린다. 

永 
訣 
終 

天 

이 시를 보면 <永訣終>을 한 자씩 띄움으로써 영결이란 행사의 
시간적 느림과 힘듬, 그리고 아쉬움이 나타나게 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天'을 한 연으로 잡은 것은 시각상 
으로나 운율상 멀고먼 곳으로 망령이 가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 
다. 
아마, '天'자를 앞 연에다 붙여서 썼다면 그 의미는 반감되고 
느낌도 사라지고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연의 구분에 의해 
독자에 대한 의미나 감정의 전달이 달라질 것입니다. 

이경순님의 <비>를 읽어보겠습니다. 

구름에서 내려온다. 

비비비비비비비비비 
비비비비비비비비비 
빈가지에푸름이피고 
비비비비비비비비비 
비비비비비비비비비 
애타는가슴을적시고 
비비비비비비비비비 
비비비비비비비비비 

물 위에로 흘러간다. 

이 시는 세 연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은 한 눈에 매우 회화적이고 청각적인 이미지의 
시이구나 느낄 것입니다. 벌써 읽기 전부터 비가 주룩주룩 
나리는 모습을 떠올릴 것입니다. 
빗방울이 계속적으로 이어서 떨어지는 수직의 모양 속에 
'빈가지에푸름이피고'나 '애타는가슴을적시고'는 추임새 정 
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늘에서 수직으로 쏟아지는 시는 땅바닥에 고여 수평으로 
흐릅니다. 
아래 '물 위에로 흘러간다'는 고인 물이 흘러가는 모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1연 '구름에서 내려온다' 
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형태를 나타냅니다. 

마지막으로 박목월님의 <폐원>의 일부를 읽어보겠습니다. 

눈이 
오는데 
옛날의 나직한 종이 우는데 

아아 

여기는 
명동 
성니코라이 사원 가까이 

이 시에서는 2연인 '아아' 한 행이 하나의 연이 되어 있습 
니다. 시인 김춘수님의 해설을 옮깁니다. 

"여기서 연의 구실을 하고 있는 감탄사의 앞뒤에 배치된 연 
들을 생각해보라. 앞의 연은 과거의 회상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뒤의 연은 완전히 현실의 어느 지점이 
각성되고 있다. 즉 이 두 개의 연은 '아아'라는 감탄사를 
사이에 하고 회상에서 현실로 완전히 각성하는 그 대목들이 
다. 그러니까 이 '아아'는 감개무량과 가벼운 감탄을 나타 
내는 '아아'인 것이다. 그것은 이 시의 주제로 보아 충분히 
하나의 연을 차지할만한 중령을 지니고 있다." 

한 연의 '아아'라는 감탄사를 가지고 과거의 회상에서 현실로 
의 각성하는 것에 대한 감격이면서 과거와 현재를 구분시키는 
장치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최근 시 중 시의 행은 존재하는데 연의 구분이 없는 시 하나를 
예시로 올립니다. 
고진하님의 <새가 된 꽃, 박주가리>입니다. 

어떤 이가 
새가 된 꽃이라며, 
새가 아닌 박주가리 꽃씨를 가져다 주었다 
귀한 선물이라 두 손으로 받아 
계란 껍질보다 두꺼운 껍질을 조심히 열어젖혔다 
놀라왔다 
나도 몰래 눈이 휘둥그래졌다 
새가 아닌 박주가리 꽃의 
새가 되고 싶은 꿈이 고이 포개져 있었다 
그건 문자 그대로, 꿈이었다 
바람이 휙 불면 날아가버릴 꿈의 씨앗이 
깃털 가벼움에 싸여 있었다 
하지만 꿈이 아닌, 
꿈의 씨앗도 아닌 박주가리의 生, 
어떤 生이 저보다 가벼울 수 있을까 
어느 별의 
토기에 새겨진 환한 빛살무늬의 빛살이 
저보다 환할 수 있을까 
몇며칠 나는 
그 날개 달린 씨앗을 품에 넣고 다니며 
어루고 또 어루어 보지만 
그 가볍고 
환한 빛살에 눈이 부셔, 안으로 
안으로 자꾸 무너지고 있었다

===========================================================

 

박남수의 '새' 그리고 시와 자연의 축복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새에 지나지 않는다.

전문 3연, 각 연 앞의 1,2,3 표시를 생략한 박남수의 '새......, 순수가치의 옹호와 추구를 주제로 하는 명편이다. 
박남수는 평양 태생(1913)으로 일본 쥬우오오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정지용의 <문장>을 통하여 1939년 박두진과 같은 해에 등단했다. 그 뒤 어떤 사유에선가 10수 년간 침묵타가 50년 대에 둘어 시작을 재개. 지적 서정의 새 경지에 힘써 상당한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즐겨 현실을 제재 삼았으나 앞의 시에서도 헤아려지는 바, 힘차거나 장엄하기보다는 매우 내향적인 것이 특색이다.
오영진 등과 협력, '문학예술'을 창간하여 상당 기간 편집을 주관했으며 제 5회 자유문학상(1957), 제1회 空超文學賞을 수상했다. 저서에 <초롱불>, <갈매기 소묘> 등 시집이 있으며 여러해 전 미국에 이주하여 살다가 그곳에서 타계(2001)했다. 김현승의 평설(한국현대시해설)을 보자.

......포수의 탄환으로 결국 붙잡는 것은 피에 젖은 새(육신)일 뿐 새의 순수는 아니라는 표현은 새의 진실을 잘도 표현하나 매우 시적인 표현이다.
시인 박남수는 순수 동경과 순수에의 지향을 그의 시 창작에까지 파급시켜, 되도록 의미를 배제한 언어와 언어의 엄밀한 결합으로서 예술적인 순수상태를 구축하여 그가 포착한 순수정신을 언어의 분야에서도 실현시키려 애쓴 듯 보인다......

서두에 저 시편을 두게 된 것은, 지난 10월 하순, 도봉산 부근에서 있은 시낭송회(184회)에 초대시인 명색으로 과분 참여하여 새 소리를 들으며 대자연 순수무잡 가까이 자리했음에선가, 어린 날 가을 소풍 같은 싱그러움에 듬뿍 젖은 중에 아하 그렇구나 그렇구나 떠오른 것이 저 시편..., 그것은 작금 우리 시의 큰 낭패 중 하나인 애매모호 억지 꾸밈이 덜한, 맑고 깨끗한 자연에 동화 공존하는 우이시회 토속 서정에도 말미암았을 터이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우주의 지퍼를 내린다

대자연과 동화 공존하는 정성수의 환호'아침을 열다'..., 싱그럽다. 그리고 찬란하다. 김삼주의 '백로' 서두도 도봉 깊은 골짝 물 소리를 낸다.

이슬처럼 하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강심을 향하여 물비늘들을 다독이는
백로의 비
이따금씩 찬이슬 같은 바람이 강변을 훑어
수거되지 못한 빈 술병들은 휘파람을 흘리고

시심을 후련히 씻어 내리는 칼날 같은 것일 수도 있음인데......

아이는 아이끼리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볼 비벼대며 하늘을 가리고 서 있는
나뭇잎 사이로 틈틈이
아침해의 긴 다리는
흰 살을 보이면서 아기자기 뛴다
기억이 향기로운 돌 주위엔
거울을 보지 않는 작은 꽃들
단정히 서 있다

김정화의 '벚꽃나무 아래를 걷다' 16행 중 5~13행, 물기 흥건한 승그러운 자연의 수채화......, 그것이 흘러간 노래......늘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닌 추억에 밀리어 아무도 오지 않는 길을 걷는 세속으로 ......아하 허긴 이 또한 자연 아니던가.

임보의 '유리를 닦는 사내'에 이르면 그 자연 섭리는 밝은 거울이 되어 우리 앞에 선다. 보다 성실한, 보다 보람된 생을 위한 고뇌라 할 것이다.

사방 둬 뺨도 채 안된
작은 유리문을 닦고 있다
열리지 않는 한 영혼의 문
앞에 온종일 기대서서......

볼이 깊은 젊은 사내
젖은 손수건이 아프다

납골당 위 6월의 하늘
저녁 구름이 붉다

생로병사의 자연 섭리를 알면서도 우리들 세속은 이를 앞질러 고뇌 비감 애통하며 영생 불사를 신앙에 의탁하기도 하거니와, 저 우리들 고뇌의 어떤 성취가 역사 발전의 공헌으로 이어지면 이 또한 견고한 자연 섭리일 터.

하늘과 바다가 한 몸이었다

물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하늘과 바다 가운데로
하얀 돛폭이 지나가다가
그만 삼키어지고 말았다

주체할 수 없는 열망도
그렇게 삼키어지고 말았다

조성심의 '수평선' 전문, 바다의 자연 풍광이 음양 낭만의 색조로 아름답다.
하늘과 바다의 합일인 수평선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주체할 수 없는 열망의 절정 -사랑의 합일을 외치고 있음인데 그 낭만의 색조가 전문 7행 짧은 것으로 넓은 바다를 출렁이게 하고 있음이다.
< 우이시>에 보이는 이 시인의 시 대부분이 잘 정리정돈된 어떤 신혼의 거실처럼 산뜻하고 밝아 두루 아름다웠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저 작고 보잘것없는 흰 꽃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어찌 저것이 밀애를 했나
푸른 고추를 달고
소리 소문도 없이 속에 하얀 씨앗을 가득 담는지
햇빛 쨍한 날
어느새 검붉게 피를 토하며
시뻘건 독을 모아
씨앗들을 노랗게 영글리는지
짤랑짤랑 방울 소리를 내는지
참, 
모를 일일세
허구한 날
하고많은 꽃 다 제쳐두고
오늘 내 네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것은
내 버린 영혼을 네 매운 몸으로
비벼대고 싶어서일까 몰라
(이하 9행 생략)

홍해리의 <고추꽃을 보며> 27행 중 18행, 그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보잘것없는, 꽃이랄 것도 없는 고추꽃을 이토록 간곡히 이토록 황홀히 바라보는 눈빛이 은혜롭다. 자연에 대한 사랑의 일상이 이토록 싱그럽고 감개 깊음이다.
-내 버린 영혼을 네 매운 몸으로 비벼대고 싶어서일까......부근의 전전긍긍은 눈물겹기까지 한 시인의 진실......거듭 아름답다.
받아 준다면 날마다 함께 하고 싶은 싱그러운 자연, 싱그러운 사람들......, 답례 축복이자 한 것이 되려 주옥에 흠집됨이나 아닐까 아수선하다.

시작 에세이 이달의 화제는 *시작 동기- 시는 어떤 때에 만들어지는가로 한다.

감흥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일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다. 이것이 솟아오르기만 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 이 감흥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감흥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바는 동서고금이 두루 같아서 옛적 어떤 부류 시인은 이를 인스피레이션-영감이라 하여 '신의 숨결'로 신성시......, 이 영감이 깃들어 들 때까지 한없이 기다렸다는 얘기조차 있다 하여, 평생토록 영감을 기다리다 덧없이 살다 간 자칭 시인들이 상당수 있었다는 얘기다.
감흥이 솟아 오르지 않으면 시가 쓰여지지 않는다는 말에는 물론 일리가 있다. 누구나 경험한 바일 터이지만, 쓰고자 하는 일이 머리 속에 몽롱하여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좀처럼 쓰여지지 않는 경우라든지, 옳지 써야지... 했다가도 이내 멈춰버리게 되는 경우, 그리고 한참 써 나가다가 문득 그것이 공허한 낙서임을 깨달으며 망연자실하는 따위......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가 이를테면 감흥이 일지 않는, 또는 솟아오르지 않는 경우가 되겠는데, 아닌게 아니라 무엇인가 우리들 마음-내면의 리듬을 환기할 만한 감동이 없으면 사상이건 감정이건 말로 표출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저 감동이라는 것이 다만 그저 하염없이 기다린다고 해서 하늘에서 내려오듯 찾아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영감에 힘입는다고 해서 평소에 생각한 바 없는 시가 절로 생산되어 걸출한 작품이 된다는 사고방식을 우리는 경멸한다. 실상, 예술에 '우연'이란 결단코 없는 것으로, 언뜻 그렇게 보이는 경우에도 평소 부지 불식중 경험에 의한 것이나 심중에 잠재해 있던 것이 어떤 기회를 얻어 문득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시인의 민감성이 표현의 기회를 포착 그 통각력이 표현으로 인도하였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여, 이 기회를 포착하는 일이 감흥을 환기하는 일이 되는 것인데, 이 기회라는 것은 하나의 동기만 있으면 잡을 수 있다. 가령, 한 개 능금을 보는 경우에도 여러가지 연상을 환기하는 바, 능금 밭이 있는 고향에 돌아간 친구라던가, 그 친구와 주고 받은 작별의 밤의 대화라던가, 그때 시에 대하여 무슨 말을 했던가, 그 친구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저번 소식에 가정의 고민을 말했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등등 추억에서, 상상에서, 우정의 문제, 인생 문제까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거기 따라 사상도 감정도 흐르고 움직여서 그것이 마침내 언어가 되고 시가 되는 것이리 터다. 이 하나의 '동기'에서 비롯하는 가지가지 연상작용과 그것이 표현에 이르는 과정-거기에 시인의 활동이 있음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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