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기까지 왔다, 고독은
나를 물의 노예로 만들었다, 또한 나의 東쪽은
기다림이 완성된 후에도 다시 기다림을 계속하고
먼 곳으로 달아난 강은 바람에 숨을 보태온다
불온으로 떠도는 의자들, 대답 없는 것들로 가득한
거리의 桶들! 내리는 눈은 하염없이 沈降하며
모독의 밑동을 파고드는데 머나 먼 지붕으로부터
조용한 문으로부터 추억들은 주름을 늘인 채
바람을 맞는다, 자신의 가르침을 흰눈 위에 기록하는 밤
비틀거리는 생 하나가 나무를 부여잡고
그 가르침을 읽어보는 자정 너머, 자신의 거처를
환하게 지은 불빛이 득의와 유혹을 섞어 뿜으면
바람은 또 다시 눈보라를 일으키며 이마를 살핀다
峽谷에서, 串에서, 아직도 과거의 포로인 廢墟의 주변으로
눈은 그의 法을 얼음에 적어 넣고 수많은 밤의 방언들은
겁먹은 나의 東쪽 앞에 죽음으로도 이기지 못하는
발자국 소리를 낸다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그 무렵 잠에서 나 배웠네
奇蹟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게을렀고 복록을 찾기엔
너무 함부로 살았다는 것을, 잠의 海岸에 배 한 척
슬그머니 풀려나 때때로 부두를 드나들 때에
쓸쓸한 노래들이 한적하게 귀를 적시기도 했었지만
내게 病은 높은 것 때문이 아니라 언제나 낮은 것 때문이었다네
유리창에 나무 그림자가 물들고 노을이 쓰르라미 소리로
삶을 열고자 할 때 물이 붙잡혀 있는 것을 보네
새들이 지저귀어 나무 전체가 소리를 내고
덮거나 씻어내려 하는 것들이 못 본 척 지나갈 때
어느 한 고개에 와 있다는 생각을 하네
나 다시 잠에 드네, 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
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리네
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
폐와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 나가
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을 때까지
夢魂에게
저문 산 너머 바다로 열린 발자취마다에
눈동자는 반짝이고 달은 살아서 백사장을 비춘다
자는 이들이 살아 있음에 꿈에서 먹이를 더듬고
또 죽은 자들은 말의 무덤인 所聞에게로 가서
잔을 높이 치켜든다, 봄밤 푸르러 진저리 봄밤 푸르러
용서할 듯 사람들이 大路 패스트푸드店에 앉아
꽃핀 가지가 흔드는 소란들을 내려다볼 때
밤은 부두도 없이 艶聞들을 받아들인다
한순간 夢魂이여, 불온이 꿈 속에서
새벽 숲에 닿을 때까지, 꽃이란 꽃 천지에 맑아
운명에게서 針을 뽑아낼 때까지
술집은 푸르고 또한 그 경계에 있는 객기도 푸르러서
살아 있음이 죽은 자의 오만보다 절절하도록
저 저문 산 쪽에 별을 박아다오
희미하게 사라진 그 한 쪽에, 잃어버려 헤매는
그 한 쪽에 밤낮 없이 그리워 한 그 흔적으로
눈물 어디쯤에 생생한 눈동자를 반짝여다오
- 물의 긴 今生의 골짜기 -박주택
1. 들어가는 말
전통적으로 서사시가 민족 공동체적 가치나 종족 혹은 국가의 위대한 인물의 행위를 설화체의 이야기시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반해 서정시란 시적 자아의 정서나 내면적 세계를 주관적으로 형상화하는 것으로 일컬어져 왔다. 따라서 서사시가 객관의 세계를 구체화시키며 민족 집단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면 서정시는 객관적 세계를 시적 자아의 내면에 용해시켜 세계를 자아화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서정시(lyric)는 칠현금 현악기인 리라(lyra)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데에서도 나타나듯이 원래 악기에 맞춰 부르는 노래의 가사였다. 이로 인해 서정시는 소리나 리듬, 율조 등의 음악성이 강조되며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내면 정서를 표출하는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또한 개인의 감정을 미감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양식상의 특징으로 인해 기법이나 장치 등과 같은 수사미와 함께 개성이나 독창성 등이 함께 강조되는 특징을 보인다. 서정시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시적 자아가 보편적 체계인 ‘우리’에서 비로서 주체적인 ‘나’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 근대 이후로, 이로부터 장르적 개념은 주제, 표현 기법, 관찰, 기억, 지식, 감정 등이 복잡하면서도 점점 전문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시의 경우, 근대 문학기에 서구의 서정시가 수용된 이래 그 양상이 다양하면서 중층적으로 변모해 왔다. 김소월에서 보이고 있는 한국적 율조와 애상적 정서, 한용운에서 보이고 있는 심원한 철학적 사유와 유장한 가락, 그리고 김수영에게서 보이고 있는 시대적 현실에 대한 조응과 외면 투사 등에 이르기까지 서정시의 갈래만큼 그 모습이 복잡하게 이어져 왔다.
서정시는 서사시, 극시 등과 분류되는 장르적 개념인 동시에 다양한 형태나 내용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부르고 있는 민중시, 도시시, 해체시, 여성시, 생태 환경시 등도 따지고 보면 모두 이 서정시의 범주에 들 수 있다. 80년대 민중시의 경우만 하더라도 비록 시가 정치적 상황이 지닌 금제와 폭압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하더라도 시인이 세계에 대해 욕망이나 정서 등을 현실과 대립시켜 세계와 주관적 정서를 교환하고 있다는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의 본질과 깊은 연관을 맺는다. 도시시 역시 도시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나 진보의 허구를 지적하며 현실 세계에 대해 시인의 해석적 관점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서정시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수많은 담론을 포괄하면서 시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이 서정시는 60년대의 시대적 현실에 대한 불안 의식의 노정과 근대 시민 사회로의 희원 의지의 시, 70년대의 문화 재편성에 따른 가치 혼란과 산업화로 인한 농촌 공동체 해체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시 그리고 80년대 정치적 금제와 폭압에 항거했던 민중시 등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거대 서사 담론의 붕괴와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육체, 여성, 생태 등을 노래한 시가 중심 담론를 이루고 있다.
서정시는 인간 내면에 일고 있는 섬세한 성정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욕망의 동맹 관계를 형성한다. 비록 시대나 작품 생산자에 따라서 시적 내용이 다양할 수는 있지만 길이가 비교적 짧은데다 인간의 내면과 미적 형식을 깊이 있게 강조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정서적 가치를 제공한다.
이상의 논의를 염두에 두고 필자는 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했었고 앞으로도 그 문학적 성과를 뚜렷하게 거둘 것으로 기대되는 몇몇 시인을 대상으로 그들의 시에 나타난 정서의 특징과 그들의 시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관을 개괄적으로 살펴 보도록 하겠다. 다만 서정시의 갈래만큼 그 시적 개성이 서로 상이하고 특이한 만큼 논의의 폭을 좁혀 시인의 작품론을 중심으로, 세계관이 비슷하다고 여겨지는 시인들을 묶어 그 특징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다.
2. 근대 공간의 체험과 자연 서정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에서 오늘날의 서정은 그 미학적 존재를 드러내고 이를 재생산하기 위하여 이제까지의 담론들과 부단히 저항하면서 그것을 다시 포괄해야 하는 실천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서정은 인간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솟구치는 욕망을 제어하며 인간이 지니고 있을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해야 하는 윤리적 책무를 지고 있으며 날로 정보화되고 기술화되고 있는 사회에 삶의 방식들을 적응하도록 해야 하는 조정 기능의 부담도 안고 있다. 이미, 진보만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환상은 깨어진 지 오래다. 탈근대에 접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행복에 대한 불안과 불만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근대에 대한 미적 체험은 자연이 지니고 영성(靈性)과 유기체적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해 주었다. 생명의 귀중함을 일깨우고 훼손되고 있는 ‘주체’를 복원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이 미적 체험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 의미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떠올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공동체적 연대감을 형성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오늘의 서정시는 이같은 흐름에 기대어 있으면서 80년대 거대 서사의 붕괴 이후 그 공백을 농밀하게 메우며 현실의 여러 문제를 맥락화시킨다. 김용택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산업화로 인한 농촌 공동체의 해체를 걸걸하면서도 섬세하게 묘파한 적이 있는 그는 남도의 구성진 가락을 바탕으로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섬진강’이라는 구체적 현실 공간을 아름답고 맑은 서정으로 그려낸다. 그는 해맑은 감성으로 무구(無垢)의 세계를 노래하며 사유의 건강함 속에 자연에 대한 사랑과 삶의 예지를 유장한 어조로 시 속에 아로새겨 놓는다.
섬진강 끝
하동에 가 보라
돌멩이들이 얼마나 많이 굴러야
저렇게 작은 모래들처럼
끝끝내 꺼지지 않고
빛나는 작은 몸들을 갖게 되는지
겨울 하동에 가 보라
물은 또 얼마나 흐르고 모여야
저렇게 말없는 물이 되어
마침내 제 몸 안에 지울 수 없는
청청한 산 그림자를 그려내는지
-김용택「강끝의 노래」부분
김용택 서정의 특징은 사물과 자연에 대해 따뜻한 마음을 지닌다는 데 있다. 그의 시는 우리를 따뜻하면서도 풍요로운 감성의 세계로 인도한다. 시적 체계를 이루는 공간이자 근대 공간인 ‘섬진강’을 주로 노래해 ‘섬진강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그에게 자연은 삶의 원천이며 근원의 공간이다. 그의 대지적 상상력은 자연의 오염이나 황폐를 노래한 문명 비판류의 시와는 다르다. 그는자연이 본래 지니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온기를 꾸밈없이 그려낸다. 우리가 잃어 버리고 있던 마음의 고향을 섬세하게 복원시켜 놓는 그는 산벚꽃이 희게 핀 모습에서 고독을 발견하기도 하며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들판에서 가슴을 적시는 애틋한 서러움을 발견한다. 돌멩이가 수억 겁의 세월을 구른 뒤 작은 모래로 빛나는 것, 혹은 수없는 물이 모여 제 몸 안에 청청한 산그림자를 그려내는 것을 발견해내는 그의 서정은 건강하고 맑디 맑은 이데아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에 비해, 작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그윽한 사유를 이끌어 내고 있는 안도현은 시의 서사성을 중심축으로 하여 선명한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의 시는 어렵거나 애써 무거운 주제를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산문적인 형식을 띠면서도 함축적인 여운을 주는 주제를 선택해 장면적이면서도 정확한 의미 전달을 지향한다.「가을의 전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시는 재미성이 표징을 이룬다. 저수지 물가에 배 한 척이 매어 있어 단풍놀이를 즐겨볼까 싶은 심산으로 주인집을 찾아 갔더니 고추를 매만지던 주인 아낙이 “대낮에 일도 없이 뭔 배를 탈라고 헌다요?” 하는 말에 그만 아내가 부끄러워 불이 붙은 단풍나무가 되었다는 이 시는 언어 유희적 요소가 시의 곳곳에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어 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재미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타는 배와 사람의 배, 매운 고추와 사람의 고추 그리고 “대낮에 일도 없이 뭔 배를 탈라요?”에 함의된 해학적 의미 등은 시적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시를 읽는 재미가 무엇인지를 제공한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 안도현「겨울 강가에서」부분
강물이 세차게 뒤척이는 까닭을 ‘어린 눈발이 사그러져지게 되는 것이 안타까워서’라는 그의 시각은 독특하다. ‘어린 눈발’을 의인화시켜 우리에게 연민을 이끌어 내며 무형의 존재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그의 시적 방법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사소하게 흘러만 가는 강물에서 따스하고도 넉넉한 모성성을 이끌어내는 그의 서정은 그윽한 사유에서 나오는 통찰력이 아니면 만나지 못하는 삶의 예지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오늘날의 시에서 쉽고 평이한 언어로 독자의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그의 시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답하고 있는 시에 다름 아닐 것이다.
김용택과 안도현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주변을 맑고 결고운 서정으로 따뜻한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면 오늘의 시의 한 징후를 보여주고 있는 이윤학의 시는 근대 체험과 과거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자신 안에 숨어 있는 황폐의 감정을 현동화(acturlization)시킨다. 시적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투사시키는 그의 언어적 인식은 대상에 자신의 입김을 불어 넣어 대상과 자신이 구별하기 힘들게 만든다. 자아와 대상이 서로 교호하며 삼투하여 동일화를 이루는 그의 시는 사물이나 풍경을 막연히 그려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통해 대상의 뒤에 숨은 의미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알레고리의 시학’을 보여주는 그의 시는 상징과 지시 대상이 중층화되며 입체성을 이룬다. 이를 통해 그의 시는 소읍과 변두리 도시 공간을 주 배경으로 삼고 이와 연계하여 음울한 자아의 모습을 흐린 흑백 필름처럼 아련하게 보여 준다.
잠을 이룰 수 없는, 겨울,
낮은 키의 울타리를 넘어오는 사람.
이불을 둘둘 말아 가슴속에 구겨넣고
먼 곳으로 보내는 편지를 써야 했다.
밤새, 우리의 죄는 먼 곳에 있고······
뼈 속으로 스미는 빗물에
그 무엇도 지울 수가 없었다.
입술의 푸른 멍이 몸 구석구석으로
녹아들고 부르튼 열매들이 붉은
꽃을 피워냈다. 시퍼렇게
도는 피를 닮은 잎들, 문신들,
-이윤학「사철나무」부분
시적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전이시켜 문맥화시키는 그의 시는 주관적 감정과 체험이 강조되는 특징을 보인다. 추억이 주는 통점과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를 조직화된 감수성으로 농밀하게 그려내는 그는 공허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내면의 공간에서 발화하고 발효된 이미지들을 하나씩 불러내 어두운 영혼의 그림자를 시의 전면에 유포시킨다. 그의 시는 김용택과 안도현의 시와 구별된다. 김용택과 안도현의 시가 세계와 동화하며 조화와 균형을 노래하고 있다면 이윤학의 시는 세계와 대응하며 세계에 끊임없이 위협받는 자아의 불안과 불화를 노래한다.
이윤학과 같은 시적 공간에 잇대어 있으면서 구수한 충청도 방언과 위트 넘치는 입담으로 어둡게 보일 수도 있는 삶을 밝고 명랑하게 그려내는 특징을 보이고 있는 이정록은 가늘지만 질긴 생명력을 사물에 불어 넣는다. 믿음직스럽고 신뢰할 수 있는 그의 목소리가 시의 곳곳에 포진하면서 완성미를 갖추고 있는 그의 시에는 밝은 사랑과 진솔한 삶이 묻어 있다.
큰애야 이따 돌아갈 때에는
네 아비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수덕여관엘 가봤으면 좋겠다
가슴 속 빨랫방망이를 꺼내어 눈물 찍으신다
피서 와서까지 그러시냐고 투덜거리자
나는 여기와서도 피가 서는구나 하신다
앞산이 갑자기 캄캄해지더니
도토리만한 소나기를 훑고 지나간다
한바탕 빨래를 마친 하늘에 된장잠자리들 가득하다
저것이 다 먼저 간 것들이여 한참을 올려다보신다
광목 홑청처럼 하늘이 팽팽하다
- 이정록「피서」부분
할머니가 영면하시 전 ‘가곡’라는 곳으로 피서를 가서 건너편 산의 도토리는 누가 따갈까 걱정하시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군더더기 없이 기술하고 있는 이 시는 부풀리거나 축소시키는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를 그려냄으로써 시적 호기심을 유도해 낸다. 슬픔을 슬픔으로 그리지 않고 슬픔 속에 깃들어 있는 강한 페이소스를 드러내 보이는 그의 시는 시적 주제에 압도당하지 않는 그의 감성적 여과력을 보여준다. 시적 대상을 통어하며 서정의 건강함을 드러내고 있는 그의 시는 시인의 체험과 음성이 짙게 배어 있다는 점에서 시는 곧 그 사람이라는 텍스트적 의미를 지닌다.
김용택, 안도현, 이윤학, 이정록의 시는 각각 산, 강, 농촌, 도시 변두리와 같은 근대 공간을 배경으로 자신의 서정을 표현한다. 그들의 시는 서로의 개성에도 불구하고 늘상 부딪치는 현실의 체험을 어려운 수사를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시에서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서정의 세계를 미감 있게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가 잃어 버렸거나 혹은 잊어 버리고 있던 자연의 아름다운 서정과 원체험적 인식들이 진실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들에게서 발견되는 이러한 미의식이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전자 정보화되어 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일깨워 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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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녘 ―김남조(1927∼)
사람아
아무러면 어때
땅 위에
그림자 눕듯이
그림자 위에 바람 엎디듯이
바람 위에 검은 강
밤이면 어때
안보이면 어때
바다 밑 더 파이고
물이 한참 불어난들
하늘 위 그 하늘에
기러기떼 끼럭끼럭 날아가거나
혹여는 날아옴이
안 보이면 어때
이별이면 어때
해와 달이 따로 가면 어때
못 만나면 어때
한가지
서녘으로
서녘으로
감기는 걸
2015년 10월 21일 클래식 음악 채널들은 하나같이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떤 연주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유튜브에 가면 실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연주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마음을 흔들 정도로 웅장하고 애상적인 작품이다. 사실 웅장이라는 특징과 애상이라는 성격이 공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웅장이란 거대한 것이고, 애상이란 미묘함의 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웅장과 애상이 제대로 만나면 우리의 마음을 아주 먼 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마치 상냥한 거인처럼, 아주 센 힘으로 우리의 영혼을 들어 우주적인 차원으로 쏘아 올린다.
조성진의 쇼팽 연주를 들을 때 떠오르는 우리 시 역시 웅장하고 애상적인, 상냥한 거인의 것이다. 김남조 시인은 많은 시인들에게 정신적 지주와 같은 시인이어서 상냥한 거인이라고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다. 그가 10번째 시집에 수록한 ‘서녘’이라는 작품은 사람의 만남과 이별, 삶과 사랑과 죽음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아우르고 있다. 이 시는 ‘아무거나 뭐 어때’같이, 무심한 어조로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시에서의 ‘어때’ 부분은 꾹꾹 참아가면서 읽어야 한다. 어둠과 아픔을 ‘어때’로 표현한다는 것은 고통에 무감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언젠가는 함께할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의 아픔에 이 시만큼 위로가 될 시도 없다. 이 시는 말하고 있다. 힘든 어둠의 터널은 언젠가 끝이 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웃는 너와 손을 맞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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