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데사리
1970년 미국 화가 존 발데사리는 13년간 자신이 그리거나 애장해온 그림 전부를 불태웠다. ‘화장 프로젝트’로 기록된 이 퍼포먼스를 통해 당시 39세 발데사리는 개념미술의 거장 반열에 올랐다.
...발데사리는 ‘보는 것’과 ‘읽는 것’의 상관 관계에 주목한 그림들로 개념미술의 새 장을 열었다. 대중매체에서 나온 이미지들의 사회 문화적 영향을 직시한 작업들로 명성을 얻었다.
‘맥락없음’이 그의 작품의 맥락이다. 전시되는 ‘스토리보드(Storyboard)’ 시리즈도 그 하나다. 책장 옆 책상, 프로텍터를 한 포수, 칼라 차트, 그리고 ‘사다리를 옮기는 남자’라는 문구 등 서로 관계 없는 네 개의 이미지와 텍스트 조각을 던지며 관객에게 ‘생각하라’고 한다. 그는 미술의 권위도 비틀었다. ‘이중노트(Double Bill)’ 시리즈에서는 마네·샤르댕·고갱 등 대가들의 명작 중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한구석의 이미지를 확대해 출력하고 여기 대중가요 가사 같은 문구를 결합시켰다. 주류 미술과 대중문화 양쪽의 ‘전형’을 결합시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든 경우다.
존 발데사리, 스토리보드(네 부분): 사다리를 옮기는 남자, 캔버스에 잉크젯 프린트, 유화와 아크릴, 191.8×196.9㎝. [사진 PKM갤러리]
1970년 칼아츠(CalArts )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 2007년 UCLA에서 은퇴할 때까지 발데사리는 리처드 프린스, 데이비드 살르, 셰리 레빈 등 미국 현대미술의 주인공들을 양성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평생업적 부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미술 시장과는 거리가 있었던 이 84세 개념미술가는 요즘 대중문화의 조명을 받고 있다.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서 그레이의 집엔 그의 그림이 여러 점 걸려 있었고, 올 초 생로랑의 파리 컬렉션 또한 발데사리에서 영감을 얻은 요소들로 런웨이를 채웠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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