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와 짝퉁과 그리고 종말과...
1917년 뒤샹은 리처드 머트(Richard Mutt)라는 가명으로 〈샘〉을 ‘독립미술가협회(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전에 출품했는데, ‘전시위원회 위원들’은 〈샘〉을 전시 보이코트했다. 따라서 1917년 뒤샹의 〈샘〉은 ‘작품’이 아니었다. 흥미롭게도 당시 뒤샹의 〈샘〉은 분실되었고, 흥미롭게도 워홀이 〈브릴로 박스〉를 제작한 1964년 복제(?)되었다.
뒤샹의 〈샘〉은 1917년 독립미술가협회전에서 보이코트 당한 이후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가 1960년대 적잖은 작가들로부터 넘어야 할 산으로 간주되었다. 1960년대 미술계에 등장한 프랑스의 BMPT와 쉬포르/쉬르파스(supports/surfaces), 이태리의 누보레알리즘(nouveau realisme)과 아르테포베라(arte pobera), 독일의 (요셉 보이스를 주축으로 한) 사회조각, 미국의 미니멀 아트(minimal art)와 개념미술(conceptual art), 일본의 모노파 등은 넓은 의미로 보자면 뒤샹을 넘어서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이를테면 그들에게 뒤샹의 〈샘〉은 질투의 대상이었다고 말이다.
단토가 사례로 들었던 워홀의 〈브릴로 박스〉도 뒤샹의 〈샘〉에 대한 질투의 반응으로 읽을 수 있다. (물론 혹자는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1960년에 발랜틴 맥주 캔을 브론즈로 만들어 채색한 재스퍼 존스 Jasper Johns의 〈채색된 청동 Painted Bronze〉과 문맥을 이루는 것으로 읽기도 한다.) 만약 워홀이 상점의 브릴로 박스를 자신이 직접 손으로 만들지 않고 그 자체를 전시장으로 그대로 옮겨놓았다면? 십중십 워홀은 뒤샹의 스딸을 흉내낸 ‘뒤샹의 아류’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물론 뒤샹의 〈샘〉은 동시대의 작가들에게도 질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제프 쿤스(Jeff Koons)의 〈뉴 쉘턴 웨트/드라이 더블 데커(New Shelton Wet/Dry Double Decker)〉(1981)나 하임 스타인바흐(Haim Steinbach)의 〈관계와 차이(Related and Different)〉(1985) 그리고 기욤(Guillaume Bijl)의 〈새로운 슈퍼마켓(Neuer Supermarket)〉(1990) 또한 실비 플러리(Sylvie Fleury)의 쇼핑카트 작품인 〈Easy, Breezy, Beautiful〉 (2000) 등을 들 수 있겠다.
(뒤샹의 〈샘〉을 가장 극단적으로 몰고 간 작가들로 대뽀는 피에로 만조니Piero Manzoni의 〈살아있는 조각 sculpture vivante〉(1961)과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바네사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의 ‘퍼포먼스’ 그리고 스펜스 튜닉Spencer Tunick의 ‘인간 인스톨레이션’을 든다. 와이? 그들은 뒤샹처럼 ‘상품’을 넘어 아예 ‘인간’을 ‘작품’으로 전이시켰으니까.)
버뜨(but), 뒤샹의 〈샘〉을 복제(?)한 작가의 작품도 있다. 무엇보다 뒤샹의 〈샘〉을 복제(?)한 작가는 뒤샹이다.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구요?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뒤샹은 1964년 〈샘〉을 복제(?)했다. 뒤샹은 1917년 제작(?)한 〈샘〉과 동일한 소변기를 찾았을 것이다. 허나 1964년에는 1917년 생산된 소변기가 생산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 뒤샹은 오리지널(?)과 유사한 소변기를 찾았다고 한다.
Fountain, 1917. Marcel Duchamp(photographed in 1917 by Alfred Stieglitz)
Fountain, 1917/1964. Marcel Duchamp
Fountain(After Marcel Duchamp 1), 1991. Sherrie Levien
Fountain(After Marcel Duchamp 5), 1997. Sherrie Levien
오늘날 우리가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뒤샹의 〈샘〉은 바로 1917년 오리지널(?)이 아닌 1964년에 복제(?)한 소변기이다. 그럼 뒤샹의 〈샘〉(1964)은 〈샘〉(1917)의 ‘짝퉁’이 아닌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셰리 레빈(Sherrie Levien)의 〈샘(뒤샹의 모작 1) Fountain(After Marcel Duchamp 1)〉(1991)은 이미 제목에서 읽어 볼 수 있듯이 뒤샹의 〈샘〉을 모작한 작품이다. 물론 레빈의 ‘샘’은 도자기로 제작된 뒤샹의 ‘샘’과는 달리 청동으로 제작한 짝퉁이다.
근데 흥미로운 점은 레빈의 ‘샘’도 이후 다시 복제(?)되었다는 점이다. 레빈의 〈샘(뒤샹의 모작 5)〉(1997)는 1917년 ‘샘’을 1964년 복제한 뒤샹의 〈샘〉처럼 1991년 제작한 레빈의 ‘샘’을 1997년 약간 다른 형태로 제작한 것이다. 물론 뒤샹의 1917년판 ‘샘’은 분실되어 1964년 복제(?)되었지만, 레빈의 1991년판 ‘샘’은 분실되지 않은 상태에서 1997년 복제(?)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의도적인 것인지 단토가 ‘예술의 종말’ 사례로 들었던 워홀의 〈브릴로 박스〉에서도 뒤샹의 〈샘〉에서 볼 수 있는 ‘짝퉁’ 놀이(?)를 볼 수 있다.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진짜 ‘브릴로 박스’를 모델로 삼아 제작했다는 점에서 ‘짝퉁’이다. 근데 워홀의 브릴로 박스‘들’ 중에도 짝퉁이 있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워홀의 〈브릴로 박스〉는 1964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단토는 단지 1964년판 〈브릴로 박스〉에만 주목했다.) 허나 워홀은 ‘브릴로 박스’를 1964년만 아니라 1968년에도 제작했다. 열분들이 1964년판과 1968년판을 옆으로 나란히 위치시켜 보면 그들 사이의 차이를 담방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워홀의 〈브릴로 박스〉(1964/1968)는 워홀의 〈브릴로 박스〉(1964)의‘짝퉁’이 되는 셈이다.
Brillo Box, 1964. Andy Warhol
Brillo Box, 19641968. Andy Warho
Not Warhol(Brillo Boxes, 1964), 1991. Mike Bidlo
오잉? 워홀의 〈브릴로 박스〉를 복제(?)한 또 다른 작품이 있잖은가. 마크 비들로(Mike Bidlo)의 〈워홀이 아니다(브릴로 박스들, 1964) Not Warhol(Brillo Boxes, 1964)〉(1991)는 워홀의 1968년판이 아닌 1964년 ‘브릴로 박스’를 모델로 삼아 복제(?)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뒤샹의 〈샘〉을 복제한 레빈의 ‘짝퉁 샘’이 비들로의 ‘짝퉁 브릴로 박스’와 마찬가지로 1991년에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거, 우연의 일치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혹 그건 뒤샹의 〈샘〉에 대한 질투 때문이 아닐까? 그럼 질투는 작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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