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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난해한 벽을 허물어보기
2016년 10월 26일 20시 11분  조회:4027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6년 10월 26일 09시 31분 ]

 

ㅡ나는요 전쟁은 싫어요...



“유리의 존재” 이것은 영원히 벽이 되고 마는가?

-현대시! 나에게 벽으로만 존재해야 되는가? 

 

온미영(시인)

 

 

 

유리의 존재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

 

유리창에서 손바닥을 떼면서…생각했다.

만질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을 검은 눈동자처럼 맑게 바라본다는 것,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유리에 남은 손자국은 유리의 것이 아니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줘.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를 느낀 것이다.

 

믿을 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

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1. 현대시의 렌즈를 통해 본 진실의 사유

 최근 현대시에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정통 서정성을 찾아보기가 힘든 시들이 쏟아져 나온다. 시선을 왜곡하고 대상을 해체하여 보편적 언어의 순서를 종횡하며 그동안 우리가 지녔던 시적 감수성을 횡단해 버린다. 때로는 몸이 지닌 감각과 대상이 교접하며 언어가 낯선 감각 덩어리로 환원해 버린다. 그래서 현대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잖이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며, 때로는 이해 불가의 한계를 경험하게 하는 가시성을 해체시키는 초현실주의 시를 만나게 된다. 이번 미당문학상을 받은 김행숙의 <유리의 존재>는 ‘유리’ 라는 대상물을 통해 타자와 접속되려는 화자의 인식을 감각적 형상화 기법을 통해 시적 발화를 하고 있어 생소하기도 하고 수차례 깊은 정독을 요구하는 시이다. 그동안 미당 문학상을 받은 서정시와는 사뭇 다르다.

 

 이 시의 전체 분위기는 현실 세계의 벽 앞에서 화자 자신의 억압되고 배제된 고독과 슬픔 외에 타자의 외로움과 슬픔까지 품으려는 합일의 노력으로서 유리에 비친 자신과 타자를 동시에 교차시키면서 하나의 호흡을 시도해 보려는 연민의 정서가 보인다. 

 한 인간이 표현되고 가시화되기 위해서는 그의 잠재된 세계와 가능성의 세계까지 포함하는 실재의 지점까지 다다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김행숙의 그런 지점까지 닿지 않고서는 이 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어 비가시적이나 분명히 존재하는 시인의 마음을 느껴보려 한다. 

 

 내게 “유리의 존재” 라는 시의 제목부터 맑은 투명함 속에 숨겨진 불통의 정서가 작금의 개인주의와 이기성이 빚어낸 보이지 않는 벽들의 파열음 그리고 아무리 애를 써도 통과하기 어려운 유리천장 또는 윈도우스트라이크의 이미지가 연상 된다. 그리고 겉보기에는 모두에게 투명한 유리는 공공의 선처럼 공익적이나 동시에 권력의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은유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시를 읽고 이해하려할 때 나는 상징질서에 포획되어 살면서 내 의식으로 포착하지 못했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고요히 가라앉아 있던 먼지 같은 모음과 자음들이 엉켜 붙는 느낌으로 다층적인 이해를 시작했다.

 

 갈수록 공동체의 행복 보다는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이 중심을 차지하는 사회에서는 유리처럼 반짝이면서 투명하나 조금만 근접하고자 하였을 때, 결국 느끼게 되는 공감부재, 소통의 불구화와 더불어 오는 공허와 허무 아니겠는가. 시인은 ‘유리’를 시의 재료로서 진실을 향해 다가갈 수 없는 소통의 제한성과 폭력성을 감각적 언술을 통해 슬픔과 연민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2. 본문 이해하기

 

 이 시의 흐름은 유리의 존재를 처음 경험하는 화자가 그 유리의 실체에 부딪히고 부상당하며 종국에는 씁쓸하게 유리의 존재 앞에 서서 그 벽의 한계를 드러내는 화자의 내면을 산출한 형상물로 되어 있다. 더불어 시적 공간 내에서 유리는 사물로서가 아니라 불통과 폭력성의 내면을 은유하며 우리와 만나고 있다.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을 만지면서…/ 비로소 나는 꿈을 깰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이었던 것이다’ 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햇살은 통과되어 내 얼굴을 밝게 비추이는데 나의 몸은 그 유리의 벽면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고, 환하게 보이는 세상이 오히려 꿈에서나 가능한 세상이어서 차가운 유리벽에 손을 대고서야 비로소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절망과 처음부터 어떤 계략이 숨어있는 속임수의 세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모든 환상은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넘어지면 깨졌던 것이다./ 그래서 너를 안으면 피가 났던 것이다.’를 보면 투명하고 빛이 통하는 유리를 믿고 뛰어 들었다가 파면에 찔려 피를 흘리는 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이것은 우리의 존재가 찌그러지고 부수어지는 제삼의 속임수가 분명 존재하는데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운 위험한 그 무엇이 삶을 소진시키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유리는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다.’ 이 문장은 참으로 무섭고 두렵기 까지 하다. 어떤 경우에도 표정을 짓지 않는 다는 말은 “싸이코 패스 [Psycho-Pass]’로 치닫는 공감과 배려의 부재와 더불어 불의와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침잠된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곧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의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은 연약하고 뼈대가 없으며 주체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미완의 형태를 이루는 자아와 외부를 향하는 내부의 소리가 효력 없음으로 화자로 하여금 자포자기로 이끌게 하는 대목이다. 또한 나 자신과 타자 또는 사회, 국가를 향하여 미약하나 깊은 날숨으로 진실을 토해낸 것들이 어김없이 사라져 진실이 묻혀버리는 안타까운 현상들이 이 문장을 통해 표현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일어난 규명이 절대 필요한 사건들도 유리에 남은 흐릿한 입김처럼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진실규명을 원하는 목소리를 입김으로 은유된다고 보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슬프고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가 말이다.

 ‘제발 내게 돌을 던져줘’라고 절규에 가까운 화자의 말은 스스로 자학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한 것이다, 공리주의의 위선과 쾌락주의로 움직이는 현 사회에서 차라리 스스로 돌을 맞는 것이 편하다는 시인의 시선은 죽음처럼 어둡고 부동적인 현실 앞에 무기력함의 고백이자 화자 자신이라도 사죄하고자 하는 정의롭고 나다운 세계로의 나아감을 강하게 표현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안 그러면 내가 돌을 던지고 말 거야./ 나는 곧, 곧,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야 말 것 같다.’이 문장은 급기야 폭발할 지도 모르는 화자의 정의감이자 분노로서 존재의 제한성을 가두는 법과 규범과 규칙을 향하여 경고장을 날리는 선택을 하면서 혼돈속의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비로소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의 존재’의 문장에서는 인간이 서로 통하지 못하고 고립되면 결국 죽음과도 같은 생명 없는 시간 속에 존재 할 뿐이라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유난히 새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는 일이 많다. 특히 투명유리 방음벽이 설치된 곳에는 새들의 시체들이 처참히 쓰러져 있다. 이 현상을 “윈도우 스트라이크”라고 한다.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보고 날개를 힘차게 움직이다가 그만 유리에 머리를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인 우리도 권력과 돈의 장벽 앞에서 여러 형태로 사회적 약자와 배제자 들을 만드는 윈도우 스트라이크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믿을 수 없이, 유리를 통과하여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창밖에 네가 서 있었다./그러나 네가 햇빛처럼 비치면 언제나 창밖에 내가 서 있는 것이다.’ 이 마지막 연에서는  우리의 현실은 다시 날이 밝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유리를 통해 따뜻한 햇살이 비친다. 화자는 믿기 어려울 만큼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이 이상하다. 그리고 유리창 밖에는 누군가 서있고, 안에는 화자가 있으나 여전히 투명하고 자연의 빛은 통과하는데, 우리는 벽을 사이에 두고 불통과 거짓이 반복되는 것을 슬퍼하며 이 시는 끝을 맺고 있다. 

 

3. 시의 기표가 주는 자유

 

 인간은 창조적 주체로서 지속적으로 자유자로서 미래로 나아가며 그 세계의 주체로서 사고하고자 하는 욕망의 주체이다. 문학은 규정성을 저항하며 인식의 무한한 확장에서 출발한다. 특히 시라는 장르는 보이는 세계보다는 그 세계 안에 숨겨진 찌그러짐과 공백(空白)으로 존재하는 것을 현실질서 위에 배치시켜 우리의 존재의 차원을 심도 있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 의미의 연속선에서 보면 김행숙의 <유리의 존재>는 언표 하나하나에 틈을 내어 시각과 촉각을 삽입하여 의미들을 생성하고 있으며 내가 써오던 서정성의 언술이 아니어서 낯설음의 다른 정서로 나에게 다가왔다. 이 시는 우리가 지닌 기표 속에 표상되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진실을 뚜렷한 형상으로 환원시키며 공리나 쾌락, 이기성을 너머서는 세계, 타자와의 트인 관계의 열망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관계의 단절에 대한 슬픔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유리의 존재>를 애써 이해하려는 나에게 있어서 현대시가 유리의 존재로만 여겨지는 불통의 존재는 아니었는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짧은 시간으로는 시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아직 그 길은 묘령의 골목이다. 그러나 시의 유리천장 또는 유리벽도 껴안고 피 흘릴 각오로 시의 무한한 공간에 서있음 자체가 내게는 벅찬 감동일 수밖에 없다.  현대시의 진정한 의미는 시도 사람도 늙지 않는 것이다. 나만의 시를 더 젊고 탄력 있게 가꾸어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들에 대하여 공부하고 흐름을 놓지 않고 계속 시를 쓰는 것이다. 무엇보다 시 자체가 대중과 사이에서 유리의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며, 삶의 진실이 배치되는 시를 위해 모든 시인들은 치열함을 놓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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