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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1959년 겨울 ―서정춘(1941∼ )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 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지하철 1호선 서울역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면, 누구든 이 시를 만날 수 있다. 서정춘 시인의 이 작품은 그곳 스크린도어에 적혀 있다. 그런데 누가 서울역에 이 시를 배정했는지 몰라도 그 감각은 정말이지 놀랍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역에서 읽게 되는 시 ‘30년 전’이라니. 기차에서 막 빠져나온, 지친 심신이 읽는 ‘30년 전’이라니. 집에서 편히 앉아 읽을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서울역과 이 시의 조합은 잔잔하던 마음마저 요동치게 만든다.
시인은 1941년에 태어났는데, 이 시의 부제는 ‘1959년 겨울’이라고 되어 있다. 계산해 보면 1959년의 시인은 열아홉 살이다. 그리고 마치 열아홉이란 고향을 떠나기 위한 나이인 것처럼, 고향을 떠나왔겠다. 그는 “어리고, 배고픈 자식”이었고, 아버지는 많은 돈을 쥐여줄 수가 없었다. 돈 대신 걱정을, 돈 대신 마음을, 돈 대신 기원을 줄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배부른 곳이 고향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가난한 고향을 돌아보지 말고, 그리워하지도 말고, 너 배불리 잘살라는 말씀이다. 자식이 어디 가서 배곯지나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버지의 바람이 참 절절하다.
이후 아버지의 말을 입에 물고 시인은 살아 왔다. 얼마나? 이후 30년이나. 시의 제목 ‘30년 전’이 1959년을 의미하니까 이 시가 창작된 시점을 추측하자면 1989년, 시인의 나이 쉰을 바라보고 있을 즈음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당부는 열아홉 살 청년을 중년이 되도록 지탱해 주었다. 그뿐일까. 아마도 칠순을 넘긴 지금에도 시인은 당부하던 아버지의 얼굴, 목소리, 분위기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명절 연휴가 시작되면 서울역은 어느 때보다 붐빌 것이다. 그 붐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저 시가 묻는다. ‘나는 고향이 있는가.’ 귀향기차를 탈 모든 사람에게는 물론 고향이 있다. 그런데 시가 묻는 것은 출신 지역이 아니다. ‘나는 나를 살게 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이 짧은 시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 목소리를 보러 가는 명절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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