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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 그는 가깝고 그리운 한 사람이다...
2016년 10월 29일 20시 39분  조회:3982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의 운율과 음악성 



1. 시의 운율 


운율(韻律)은 이름 그대로 운(韻)과 율(律)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합한 한자어로서 전자를 압운(押韻, rhyme, rime), 후자를 율격(律格, meter)이라고 하는데 포괄적으로 말하면 '운'은 같은 소리 또는 비슷한 소리의 반복을, '율'은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등의 주기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는 다시 여러 하위 범주로 구분되기도 하는데 오늘날 이 말은 좀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사용된다. 즉, 압운과 같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소리의 일정한 규칙적 질서뿐만 아니라 형태로 포착할 수 없는 내재적 리듬을 말할 때도 운율이라는 말을 쓴다. 


(1) 운(韻) 

운(韻)이란 같은 소리 또는 비슷한 소리의 반복을 그 기본 형태로 하는 것을 말한다.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 서정주, '귀촉도'에서 


이 시에서는 자음 'ㅅ'과 'ㅇ'이 반복되어 운(韻)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시에서의 운은 서구시나 한시에서처럼 엄격하거나 다양하지 못하고 단조로우며 발견하기도 어렵다. 대체로 단순한 소리의 반복이거나 동어 반복 정도로 되어 있는 것이 우리시의 운이다. 그것은 우리말이 교착어인 까닭으로 어절이나 단어의 끝 음상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2) 율격(律格) 

율격은 앞에서 말한 대로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을 규칙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생겨난다. 그것은 고저율(tonal), 강약율(dynamic), 장단율(durational)로 세분되지만, 우리시를 논할 때는 거기에 다시 음수율(音數律)이 보태어진다. 그러나 고저율, 강약율, 장단율이 모두 적용되지 않는 한국시의 율격은 음보율(音步律)이 일반화되어 있는 통념이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박목월, '나그네'에서 


이 시는 7.5조의 음수율을 기조로 한 시의 일부이다. 그러나 우리시의 이러한 음수율은 그 음절 배열의 규칙이 엄격하지 않고 느슨해서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음수율보다 음보율을 적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2. 운율의 구성 요소 

시의 운율은 말이 지니고 있는 음성적 요소의 규칙적 배열, 특정한 음보의 반복, 음성 상징어의 구사, 일정한 음절의 규칙적 배열과 반복, 통사 구조 및 행과 연의 규칙적 배열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운율은 또한 의미 구조에도 밀착되어 있어서 시인이 작품 속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 의해서도 이루어지는데, 음악성에 대한 욕구를 시의 내면으로부터 충족시키려고 하는 추세는 현대시의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다. 


3. 운율의 갈래 



(1) 외형률(外形律) 

외형률은 운율이 시의 표면에 드러나 가시적, 물리적으로 따질 수 있는 것으로 객관적 운율이라고도 한다. 


① 음성률(音聲律)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음질 등의 여러 속성들이 한 단위가 되어 규칙성을 띠고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음성률은 주로 서구시나 한시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우리시에서는 잘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말에도 소리의 고저, 장단, 강약 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에서 그것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개발되지도 않았고, 또 창작할 때 그것을 고려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② 음수율(音數律) 

음절의 수를 단위로 하여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것을 계측함으로써 나타나는 율격을 말한다. 주로 1행을 기준으로 그 속에 드러나는 각 음보의 음절수를 헤아려 그 규칙성을 따지게 되는데 이른바 3.4조, 4.4조, 7.5조 등은 이 음수율에 의해 계측된 율격적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한때는 많은 날을 / 당신 생각에 

밤까지 새운 일도 /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 당신 생각에 

축업은 베갯가의 / 꿈은 있지만 

- 김소월, '임에게'에서 


빗금(/)을 중심으로 앞은 7음절, 뒤는 5음절로 되어 있어 전형적인 7.5조의 음수율을 보여 준다. 이렇게 음수율은 시행에 배치된 음절의 수를 따져 그 규칙성을 밝혀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음수율은 우리말의 특성상 매우 불안정한 것으로 지적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말의 어절 구조는 대체로 1∼3음절이 대부분이므로 여기에 조사가 붙으면 2∼5음절의 어휘가 되므로 자연스럽게 3·3, 3·4, 7(3.4, 4.3)·5(2.3, 3.2)조의 음수율을 형성하게 된다. 이와 같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은 운율적 자질로 보기 어려우므로 이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제기하기도 하다. 


③ 음보율(音步律) 

불안정한 운율적 자질을 가진 음수율보다는 호흡의 단위로 측정하려는 것이 음보율인데, 음수율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된 이후 이것은 널리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음보율을 따지는 방법은 서구시에서처럼 몇 개의 음보(音步, foot)가 모여 한 행을 이루고 있는가를 따지는 방법과 음절 및 각 음절이 지니는 장단(長短)의 속성이 실현되면서 이루어지는 시간적 길이가 같은(시간의 등장성, 等長性 equal length) 단위로 따지는 방법으로 사용하므로, 현대시와 같이 한 행을 이루는 음절수가 불규칙한 경우에 적용하기에 알맞다. 

얇은 사(紗) /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 나빌레라. 

파르라니 / 깎은 머리 // 박사(薄紗) 고깔에 / 감추오고, 

두 볼에 /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 서러워라. 

- 조지훈, '승무'에서 


이 시는 음절수로는 운율의 파악이 어렵지만, 호흡 단위인 시간의 등장성(等長性)으로 파악해 보면 2음보의 중첩형인 4음보격의 음보율을 갖춘 시임을 인식할 수 있다. 


④ 음위율(音位律) 

음위율은 동일한 말소리가 일정한 위치에 규칙적으로 반복될 때 형성된다. 음위율에는 두운(頭韻), 요운(腰韻), 각운(脚韻) 등이 있지만, 이것도 우리시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양식이 아니다. 주로 서구시나 한시에서 발달된 것으로, 우리의 경우는 한시의 영향에서 각운의 형태가 더러 사용되는 예를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말은 종결 어미가 거의 한정이 되어 있어 서구시에서와 같이 의도적으로 배치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각운의 형태가 형성되기 때문에 운적(韻的) 자질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음은 각운의 예가 드러난 시이다. 

섬은 날 가두고 · 

회오리바람으로 날 가두고 · 

원산도 앞에는 삽시도 

· 
삽시도 앞에는 녹도 · 

파도가 날 가두고 

피몽둥이 바람으로 날 가두고 

-홍희표, '섬에 누워'에서 


(2) 내재율(內在律) 

시의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시의 내면에 존재하는 주관적, 정서적 운율을 내재율이라고 한다. 즉, 시인이 형상화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에 의해 이루어지는 주관적 운율로서 개개의 시 속에 흐르는 시인의 특유한 맥박과 호흡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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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 윤동주(1917∼1945)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 


 ‘동주’라는 영화가 개봉. 미리 밝히지만 이 글은 영화의 감상평도, 선전 용도도 아니다. 다만 그 사람의 이름을 다시 들으니 반가울 뿐이다. ‘동주’라니 이 얼마나 고운 이름일까. 마치 겨울의 구슬 같기도 하고 먼 지명 같기도 하고 참한 여인네의 이름 같기도 하다. 시인 ‘윤동주’에서 성을 빼고 ‘동주’라고 이름을 다시 불러보자. 이 시인은 신기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겨우 책 속에서 만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해맑은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보고 들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맞다. 그는 가깝고 그리운 한 사람이다. 

제 스스로 맑고 고운 이름의 사람은 다른 맑고 고운 이름들을 사랑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세상의 고운 한 사람을 알아보고, 고운 것들이 주위에 모여 들었다고 해야 옳겠다. 시인의 곁에 찾아든 맑고 고운 이름들을 하나하나 나열해서 만든 작품이 바로 ‘별 헤는 밤’이다. 이것은 별의 시이기 이전에 이름의 시이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총출동하는, 아름다움의 블록버스터급 작품이다.

곱고 아름다운 것들이 잔혹한 세상과 너무 거리가 멀지 않으냐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것들은 이 세상과 가깝지 않기 때문에 곱고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겨우 훔쳐볼 수만 있다. 눈이 부신 것은 잠시 잠깐이어서 가능하다. ‘동주’를 매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를 떠올리는 순간만큼은 마음이 맑아진다. 시도, 고운 이름도, 아름다움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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