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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1908∼미상. 시인·문학평론가.
아명은 인손(寅孫). 호는 편석촌(片石村).
함경북도 학성 출생.
1914년임명보통학교(臨溟普通學校)에 입학, 1921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 중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릿쿄중학[立敎中學, 또는 名敎中學이라는 설도 있음]에 편입했다.
1930년니혼대학[日本大學] 전문부 문학예술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조선일보사 사회부 기자로 입사, 뒤에 신설된 학예부 기자로 옮겼다.
1933년김유정(金裕貞)·이태준(李泰俊) 등과 구인회(九人會) 결성에 참가하고, 1936년에 재차 도일, 센다이(仙台)의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영문과에 입학, 1939년에 졸업했다. 졸업논문은 영국의 문예비평가인 리처즈(Richards, I. A.)론이었다. 귀국 후(1939) 조선일보사 기자로 복직, 학예부장을 역임했다.
1940년 『조선일보』의 강제 폐간으로 한때 실직했으며, 1942년 낙향하여 고향 근처의 경성중학교(鏡成中學校)의 영어 교사로 부임했으며, 영어 과목이 폐지되자 수학을 가르쳤으며, 이 때의 제자에 시인 김규동(金奎東)이 있다. 1946년 1월 공산화된 북한에서 월남하였는데, 이 때 많은 서적과 가재를 탈취당해 곤궁한 나날을 보냈다.
1946년 2월 제1회 조선문학자대회 때 ‘우리 시의 방향’에 대하여 연설하였으나, 정부수립 전후에 전향하였다.
월남 후 중앙대학·연희대학 등에 강사로 출강하다가 서울대학교 조교수가 되고, 그가 설립한 신문화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한국전쟁 때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북의 정치보위부에 의해 납북되어 북한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시기는 알 수 없다. 부인과 5남매가 서울에 살고 있다.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재직하면서 시 「가거라 새로운 생활(生活)로」(『조선일보』, 1930.9.6.)·「슈르레알리스트」(조선일보, 1930.9.30.)·「꿈꾸는 진주(眞珠)여 바다로 가자」(『조선일보』, 1931.1.23.)·「전율(戰慄)하는 세기(世紀)」(『학등』 창간호, 1931.10.)·「고대 고대(苦待)」(『신동아』 창간호, 1931.11.) 등을 발표하여 시단에 등단했다.
그리고 주지주의(主知主義)에 관한 단상(斷想)인 「피에로의 독백」(『조선일보』, 1931.1.27.)·「시의 기술·인식·현실 등의 제문제」(『조선일보』, 1931.2.11∼14.) 등을 발표하여 평론계에 등단, 그 뒤 주로 시창작과 비평의 두 분야에서 활동했다.
첫 시집이며 장시인 『기상도(氣象圖)』(창문사, 1936 ; 재판 산호장, 1948)는 엘리어트(Eliot, T. S.)의 장시 「황무지(荒蕪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통일적인 주제의식의 유무에 대한 시비, 민족 현실에 대한 역사의식의 결여 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사상과 감각의 통합을 시도한 주지주의 시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한 것이다.
제2시집 『태양의 풍속』(학예사, 1939)은 몇 편의 이미지즘(imagism) 시를 제외하고는 주지성과 지적 유희성이 두드러진 것이고, 광복 후의 『바다와 나비』(신문화연구소, 1946), 좌경적인 『새노래』(아문각, 1947) 등이 있다. 『바다와 나비』는 삶의 한계의식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투명한 이미지로 처리한 점이 돋보인다.
『새노래』는 모더니즘(modernism)을 극복하여 민족공동체의 발견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암시하나 예술로서의 성숙성이 모자란다. 중편소설 「철도연변」(『조광』, 1935.12∼1936.2.) 등 3편의 소설과 희곡 등이 있으나 주목을 받을 만한 대상은 아닌 듯하다. 평론 및 저서로서 『시론(詩論)』(백양당, 1947)·『시의 이해』(을유문화사, 1950) 등이 있다.
전자는 1930년대에 영미 이미지즘과 주지주의를 도입하여 우리나라의 시사(詩史)를 전환시킨 중요 시론집이며, 후자는 리처즈의 심리학적 이론에 의거한 계몽적인 저서이다. 이밖에 『문학개론(文學槪論)』(신문화연구소, 1946)·『문장론신강(文章論新講)』(민중서관, 1949), 수필집 『바다와 육체』(평범사, 1948) 등이 있다.
그가 우리나라 문학사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주지주의 시의 도입과 그 창작, 과학적 방법에 의거한 시학(詩學)의 정립을 위한 노력, 자연발생적인 시를 거부하고 의식적인 방법에 의한 제작의 강조, 음악이나 감정보다는 이미지와 지성의 강조, 민족 및 사회현실의 수용과 모더니즘의 극복, 그리고 전체시의 주장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다와 나비 (외 8편)
김 기 림
길
나의 소년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태양의 풍속
태양아,
태양아,
태양보다도 이쁘지 못한 시. 태양일 수가 없는 서러운 나의 시를 어두운 병실에 켜 놓고 태양아 네가 오기를 나는 이 밤을 세워 가며 기다린다.
한결 거세어 별이 꺼진 하늘 아래
우리 어깨와 어깨 지탱하여
하도 달면 이리도 피해 달아나리라.
나비의 여행 ㅡ 아가의 방 5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한 장 검은 표지(表紙)를 열고 들어서면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공동묘지
일요일 아침마다 양지 바닥에는
상여는 늘 거리를 돌아다보면서
아무 무덤도 입을 벌리지 않도록 봉해 버렸건만
조수(潮水)가 우는 달밤에는
아롱진 기억의 옛바다를 건너
당신은 압니까. 클레오파트라의 눈동자처럼 정열에 불타는 루비빛의 임금(林檎)이 별처럼 빛나는 잎사귀 드문 가지에 스치는 것은 또한 누구의 옷자락입니까. 지금 가을은 인도의 누나들의 산호빛의 손가락이 짠 나사의 야회복을 발길에 끌고 나의 아롱진 기억의 옛 바다를 건너 옵니다.
나의 입술 가에 닿는 그의 피부의 촉각은 석고와 같이 희고 수정(水晶)과 같이 찹니다. 당신은 나와 함께 순교자의 찢어진 심장과 같이 갈라진 과육(果肉)에서 흐르는 붉은 피와 같은 액체를 빨면서 우리들의 먼 옛날과 잊어버렸던 순교자들을 이야기하며 웃으며 이야기하며 울려 저 덩굴 밑으로 아니 오렵니까.
연륜(年輪)
무너지는 꽃이파리처럼
구름같이 피려던 뜻은 날로 굳어
갈매기처럼 꼬리 덜며
비취빛 하늘 아래 피는 꽃은 맑기도 하리라
초라한 경력을 육지에 막은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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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ㅡ김기림(金起林, 1908~ ?)
* 6.25 때 납북, 1988년 해금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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