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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사자의 울부짖음이다...
2016년 10월 31일 21시 16분  조회:3864  추천:0  작성자: 죽림

좋은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강사/ 최동호 



시를 쓰는 사람은 누구나 좋은 시를 쓰고 싶어한다. 그러나, 누구나 좋은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러할까. 일부 사람들은 말한다. 좋은 시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만이 쓰는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이런 과장된 주장에 반대한다. 좋은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말할 것이다. 그게 그 말이 아니냐, 자신의 잘못을 고친다는 것이 바로 특별하다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시를 쓰려는 사람들 중의 상당수는 어떤 환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경험이다. 다른 사람의 비판이나 지적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들의 마음속에는 자기도 모르는 자기탐닉적 주관성이 완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천재의 시가 있다. 김소월이나 정지용과 같은 경우가 그 예일 것이다. 그러나, 김소월은 물론 정지용의 경우에도 단어 하나 시 한 줄의 첨삭 과정을 살펴보면 그들 또한 누구보다 치밀하게 초고를 가다듬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교단에서 창작 지망생을 많이 접하는 나의 경우 수많은 학생들에게 그들의 장단점을 지적해 주었는데, 그들 중의 어떤 이는 몇 마디 언급을 발판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지적해 주어도 절대로 자기 주장을 고치지 않아 별다른 진척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남들의 모든 지적을 수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적만 듣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제 3자의 지적을 심각하게 음미하여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이를 수정하는 사람이 좋은 시를 쓰게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좋은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에게 두루뭉수리한 지적이나 모호한 칭찬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접적이고 신랄한 지적일수록 도움되는 바 크다. 

2. 모호함과 명료성 

시적 감성이나 표현은 명료해야 한다. 모호함은 금물이다. 물론 감정의 엉킴이 복잡하여 때로는 뿌옇게 복합된 심정 상황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는 명료한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독자들에게 그런 심정을 적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시적 감정을 모호하게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에 인용된 [눈 오는 날은]은 모호한 표현들로 인해 시적 감정이 적절히 정제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눈오는 날은 
내리는 눈발 사이 북녘 
소식 같은 것 섞여서 온다 

새벽녘 
시베리아 바이칼호반쯤 휩쓸던 
기마민족들 말발굽소리 무수히 지나가고 

희뿌옇게 동녘이 처음 열릴 때 
하늘에서 내리는 글발, 희끗희끗 단군 한배님의 
긴 수염 눈발 사이 휘날리고 

환상의 새 한 마리 천년을 거슬러 올라 
송화강 언덕을 치닫고 
고구려의 위업 삭지 않는 
요동벌판 모습 솜처럼 피어오르는 

눈오는 날은 
별 피듯 송곳송곳 지울 수 없는 생각 
한숨에 묻어나는 입김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들 
내리는 눈발 사이 주체할 수 없는 
설움에 떨고 있는 나를 본다 
- [눈오는 날은] 

전체적으로 보아 시의 구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작자의 감각은 살아 있다. 기·승·전·결의 형식을 그 나름으로 갖추어 시상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전개가 판에 박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상의 균형과 안정감을 갖게 한다는 점에 이러한 구성은 커다란 장점이다. 이 시의 전환은 제 4연에 있는데, 여기서 지나치게 무겁고 어색한 느낌을 받는다. 앞의 시행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 1연의 '소식 같은 것', 제 2연 '시베리아 바이칼호반쯤', '말발굽소리 무수히' 등에서 '같은 것', '호반쯤', '무수히' 등이 모호하게 돌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제 3연의 '글발'과 '눈발'도 작자로서는 고심한 결과였을 터이나 제 4연의 시상을 설득력 있게 끌어오기에는 역부족이다. 

물론 이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작자는 '환상의 새'를 날려 올리지만, 그 새가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갈 시적 필연성이 독자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천 년을 거슬러 오르지 못하니 '고구려의 위업'은 더욱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제 4연 마지막 행 '요동벌판 모습 솜처럼 피어오르는'은 이미지를 실감나게 살려 보고자 했다고 판단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 보아도 구체적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마지막 제 5연의 '주체할 수 없는 설움에 떨고 있는 나'에서 화자가 너무 표면에 나서서 설움에 떨고 있다고 판단된다. 설명적이고 불필요하다. 꼭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이라면 더욱 감추거나 다른 이미지를 빌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뒤틀림은 이미 제 5연 제 2행의 '별 피듯 송곳송곳 지울 수 없는 생각'과 제 3행의 '한숨에 묻어나는 입김처럼 지워 버리고 싶은 생각들'의 엇갈림에서 이미 예견된 일이다. 

제 3행의 진술은 그 나름으로 통용될 수 있지만, 제 2행의 경우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송곳송곳'이란 어휘가 이 문맥에서 생경하게 드러남으로 인해 더욱 그러하다. 이 시를 다 읽고 난 독자가 왜 눈 오는 날 이렇게 주체할 수 없는 설움에 떨어야 하는지 선뜻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시의 약점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시적 감정은 강렬한 것이지만, 그 강렬함이 선명한 이미지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끝으로 아쉬운 시행 하나를 더 지적하자면 '기마민족들 말발굽소리 무수히 지나가고'에서 작자는 구체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시를 읽은 사람 쪽에서 보자면 구체적으로 각인된 무엇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무수히'라는 시어가 막연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무수히'는 '고구려의 위업'과 '주체할 수 없는 설움'의 동기가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역사성을 갖게 하는 시적 긴장 없이 평범하고 느슨하게 사용된 까닭에 시가 전체적으로 생명감과 탄력이 느껴지기보다는 모호하고 막연하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3. 명료함과 추상성 

명료한 시는 우리에게 산뜻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군더더기나 잡박함이 제거되었다는 점에서 그 명료함은 일단 호감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명료하게 쓰여진 시에서 삶의 깊이가 발견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시적 사고의 단순성에 실망하기도 한다. 명료성은 복잡한 시적 감정이 여과되고 정련된 결과물일 때 독자들로부터 시적 공감력을 갖는다. 
다음에 인용된 [유리창에 비, 그리고]는 간단하고 명료한 진술로 독자들에게 가깝게 다가온다. 물론 작자가 하고 싶은 시적 전언은 결코 단순한 것은 아니다. 그는 우주의 섭리는 물론 태초의 생명 탄생까지 시적 상상을 확대하고자 한다. 

유리창에 빗줄기가 부딪친다 
잿빛 하늘의 방사다 
무차별 난사되는 수정 알들 
투명한 정자가 되어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물과 흙의 슬픈 정사 

저 어두운 땅속 깊숙이 
끝없이 사라지고 생겨나는 
우주의 섭리가 천둥처럼 울리고 
어둠은 이제 
더 이상 어둠만이 아니다 

태초에 생명은 그렇게 얻어졌느니 
- [유리창에 비, 그리고] 

유리창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성적 이미지를 떠올림은 물론 그 아득한 시원으로까지 상상의 진폭을 확장시켜 보고자 한 것이 이 시에서 작자가 시도한 시적 의도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일상에서 우주의 섭리와 생명의 창조까지 연상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적 발상은 결코 범박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단락이 연결되는 제 2연과 제 4연을 한 행으로 처리했다는 점에서 간결 명료하게 시행을 마무리하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음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아 어딘가 이 시가 추상 관념에 의해 만들어진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수정의 알들이 투명한 정자가 되어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는 시적 전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 1연 4-5행의 진술들이 시적 리얼리티를 제대로 얻고 있는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투명한 정자'가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작자의 시적 상상력의 변증법이 지나치게 도식적이라는 것이다. 빗줄기가 유리창에 떨어져 투명한 정자가 되고 이것이 흙 속으로 떨어져 들어가 물과 흙이 뒤섞이고, 새로운 생명이 탄생된다는 것이 전체적인 구도이다. 그러나 이 구도는 사물에 대한 정밀한 관찰이나 사물의 생명력에 대한 깊은 통찰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미리 설정한 자신의 선입관을 그대로 반영하여 쓴 것이라고 지적할 수 있다. 작자 자신은 우리에게 이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제 3연과 4연의 시적 논리가 어둠은 이제 어둠만이 아니라 생명이다라고 요약되는 것 또한 그러한 진술의 연장선에 있음을 뜻한다. 물과 흙의 뒤섞임이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고 그 어둠이 생명의 탄생을 가능케 한다는 것은 하나의 논리이지 시적 통찰에 의한 구체적 깨달음이 아니기 때문에 위의 시는 크게 공감을 주지 못한다. '우주의 섭리가 천둥처럼 울리고'에서도 산문적, 개념적 진술은 있어도 시적 공감을 유발하는 구체성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꼬집어 말하자면, 제 1연에서 '무차별 난사되는 수정 알들'이란 표현이, 마구 쏟아지는 빗줄기가 유리창에 부딪치는 정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일차적으로 말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야말로 '무차별 난사' 이상의 표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정말 이 시의 작자가 사정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면 '무차별 난사'가 아닌 그 나름의 다른 표현을 찾았을 것이며, '우주의 섭리'가 어둠 속에서 빗방울을 머금어 어떻게 생명으로 탄생되는가를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명료한 진술들은 유리창에 쏟아지는 빗줄기를 방안에서 바라보며 떠올린 이런 저런 상념들의 스케치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봄부터 우는 소쩍새의 울음과 먹구름 속에서 우는 천둥소리가 있고, 무서리가 내리는 가을 새벽이 있는 것이 아닐까. 어둠에서 탄생하는 생명 현상에 동참하는 시적 상상력 없이 사물과 거리를 두면서 현상을 외곽에서 묘사하는 시적 진술은 시적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 손에 흙을 묻히지 않은 깨끗한 손으로 노동의 어려움을 말하는 것과 같은 모순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인의 손은 노동에 짓이겨지지 않았을지라도 시인의 펜촉은 노동으로 뭉그러져 있어야 참된 땀냄새가 밴 시가 쓰여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지적하자면 '우주의 섭리'와 같이 크나큰 뜻을 머금고 있는 어휘들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시적 문맥이 아니라면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커다란 것보다는 사소한 것에서, 관념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에서 우리는 시적 감동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짧은 시에 태초에 이루어졌던 생명의 탄생과 같은 거창한 주제를 범박한 언어로 다루어서는 좋은 시가 탄생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울러 지적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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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유치환(1908∼1967)

하나 모래알에
삼천세계가 잠기어 있고

반짝이는 한 성망(星芒)에
천년의 흥망이 감추였거늘

이 광대 무변한 우주 가운데
오직 비길 수 없이 작은 나의 목숨이여

비길 데 없이 작은 목숨이기에
아아 표표(飄飄)한 이 즐거움이여

 

 


시를 들고 찾아온 한 학생이 물었다. 왜 우리 시에서는 강하고 웅장한 시인이 없나요. 왜 다들 애상적이고 절망적인가요. 짐작건대 이 학생은 지친 자신을 퍼뜩 깨어나게 할 대갈일성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경우에 추천해 줄 시인은 많지 않다. 많지 않지만 그중에 유치환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청마 유치환의 시 스타일은 사자후에 가깝다. 사자의 울부짖음이라는 뜻이다. 어떤 말씀이라든가 호통이 우리의 정신을 깨우고,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는 강력함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즉 유치환의 시는 목소리가 크고, 스케일이 웅장하며, 굵은 진리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목숨’이라는 이 시를 한 번 보자. 첫 연은 땅에서 시작한다. 몹시 작은 모래알에도 몇억 년의 시간이 담겨 있다. 둘째 연은 하늘에서 시작한다. 반짝이는 성망, 즉 별빛은 유구한 역사의 변천을 지켜봤다. 만물이 죽고 살고 태어나고 사라지는 긴 역사의 끄트머리에, 변함없고 광대한 우주 사이에, 작은 내 목숨이 놓여 있다. 시인은 이때 웃는다. 너무나 큰 시간과 공간 사이 모래알처럼 작은 목숨은 허허허 웃는다. 
 

 

이때 ‘작은 목숨’은 초라할까. 아니, 이 시는 몹시 자유롭고 시원해 보인다. 하늘 아래, 땅 위에 태어나 지금 내 목숨이 존재한다는 말은 매우 단단하게 들린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압박당하는 목숨은 초라하지만, 갑과 갑 사이에서 작아지는 을의 모습은 서글프지만, 하늘과 땅 사이에 서 있는 ‘작은 목숨’은 초라한 것이 아니다.

원래, 목숨은, 초라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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