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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성산 ㅡ 백두산
2016년 11월 01일 00시 00분  조회:5549  추천:0  작성자: 죽림

 백두산 (白頭山)

 

 

백두산

 

고려시대 이전의 백두산 기행문은 찾아볼 수 없고, 1764년(영조 40)에 함경도의 실학파 선비인 박종(朴琮)이 직접 백두산을 탐승하여 순한문 기행으로 남긴 <백두산유록(白頭山遊錄)>이 처음이 될 것이다. 이 유록은 그의 유저(遺著)인 《당주집(鐺洲集)》속에 실려 있다. 그 내용이 사실적으로 매우 소상하게 기록되어, 200여년 전의 백두산의 실황을 살피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1764년(영조 40) 여름, 5월 14일 경성군(鏡城郡)에 살던 박종이 자기 집을 떠나, 부령(富寧) · 무산(茂山) · 임강대(臨江臺) · 풍파(豊坡) · 천평(天坪) · 천동(泉洞)을 거쳐 23일에 최고봉에 오른 뒤 하산하여 6월 2일에 집에 돌아왔다.

 

18일이 걸렸고 비록 말을 이용하였으나, 왕복 1,322리를 다녀서 백두산을 탐승하였으니,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모험이었다. <백두산유록>의 내용에 의하면, 박종에 앞서 2년 전인 1762년 조영순(趙榮順)이라는 사람이 백두산을 등정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여행기를 찾아볼 수 없음은 애석한 일이다. 또한 이 유록 중에, 홍계희(洪啓禧)가 이미 1742년에 어명을 받들어 갑산 · 무산으로 들어오면서 백두산을 편람한 기록이 있다고 하였다. 이밖에 영조 때 서명응(徐命膺)의 《보만재집(保晩齋集)》속에도 <유백두산기(遊白頭山記)>가 있다.

 



근래의 자료로는1927년에 간행된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白頭山覲參記)》가 있고, 1931년에 간행된 안재홍(安在鴻)의 <백두산등척기(白頭山登陟記)》가 있다. 두 저자가 모두 백두산을 직접 등반하면서 백두산의 실경을 매우 소상하게 적었을 뿐만 아니라, 백두산에 얽힌 전설과 역사적인 사실들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여 민족 정기를 고취하고자 노력하였다. 백두산에 대한 기행문학으로서는 최남선의 《백두산근참기》가 처음이 될 것이다.

 

근래 외국인의 백두산에 대한 탐사기록으로는 우선 1900년에 러시아에서 간행된 《한국지(韓國誌)》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지리> 속에 인용된 스트렐비츠키의 백두산 등정기에서는 "6일 동안 우리는 빽빽한 타이가를 통과하였다. 드디어 탄바이에서 60㎞ 떨어진 부르토파라고 불리는 자연경계선 뒤에서부터 숲은 듬성듬성해지기 시작하였고, 점차 그 도를 더하여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우리 앞에는 8~10㎞ 정도 떨어진 곳에 백두산의 거대한 모습이 드러났다.

 

화산은 넓은 기저 위에 홀로 우뚝 솟아 있었다. 그 기저는 커다란 그러나 완만히 상승되는 지반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산기슭에는 몇 개의 작은 둥그런 언덕들이 있었는데 그 언덕들은 주봉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백두산과 비교하여 볼 때 크기가 매우 작기 때문에, 더욱 더 선명하게 백두산의 높이를 부각시켜 주었다. 

우리들이 그곳에서 보기에 백두산은 바위가 많고 외떨어져 있는 산이었다. 백두산 기슭에서 약2,000피트 솟아 있었으며 평평한 책상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윗 부분이 약간 잘려져 있었다. 우리가 있었던 지점에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분명 화구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힘들지 않았다. 대체로 산의 빛깔은 회색빛이 나는 희뿌연 색이었으나 햇빛이 미치지 않은 깊은 골짜기에는 벌써 눈이 쌓여 있어서 멀리서 보기에는 옆면의 경사를 따라 가늘고 밝은 하얀 산들이 미끄러져 내리는 것 같았다."고 하여 백두산의 정경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또 일본의 백두산 탐구등행대 대장인 시로야마(城山正三)의 《비경백두산천지(祕境白頭山天池)》라는 탐행기록이 1970년 6월, 동경에서 발행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실제로 백두산을 등반한 것은 제1차 탐행이 1942년 여름이었고, 제2차 탐행이 1943년 여름이었다. 제1차에는 총 75명의 대원으로 혜산(惠山)에서 출발하였고, 제2차에는 총 85명의 대원으로 주대(主隊)는 무산에서 출발하고, 지대(支隊)는 혜산에서 출발하여 신무성(神武城)에서 합류하여 백두산에 등반하였다.

 

이 책의 제1부는 해설과 탐행기록, 제2부는 사진, 부록에는 대만 · 천도(千島: 쿠릴열도) · 캄차카의 산들로 나누어 편찬되어 있다. 비록 일본제국주의 참략자들이 영토확장의 목적으로 탐행한 기록이지만, 광복 전에 백두산을 탐사하여 상세하게 기록하여 놓았기 때문에 백두산 연구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산의 높이, 폭포의 높이 등 부정확한 기록이 발견되며, 기행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 1982년 북경에서 간행한 정흥왕(丁興旺)의 《백두산천지》는 백두산에 대하여 가장 과학적으로 조사, 연구한 기록으로서 백두산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백두산에 대한 특이한 기행문으로는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 기자였던 이관구(李寬求)가 비행기로 관찰한 백두산의 비경을 <백두산탐험비행기(白頭山探險飛行記)>라는 제목으로 《조선중앙일보》에 1935년 10월 11일부터 그해 11월 10일까지 연재하였다. 비록 필자의 표현대로 주마간산도 아닌 비행간산(飛行看山)이지만, 필자의 유려한 필치로 과거 어떤 백두산 기행보다도 기행문학으로서 손꼽을 만한 작품이다.

 

역시 시 속에 나타난 백두산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으나 몇 작품만 보면 고려시대 이색(字穡)의 '송동북면한만호득월자(送東北面韓萬戶得月字)' 라는 시제 속에 "솟아오른 장백산과 험준한 철령관이 수천리에 가로놓여 있으니 하늘이 만든 험한 땅이라 가히 넘나들 수 없다…(長白山穹窿鐵嶺關峰山岏橫亘幾千里天險不可越‥‥‥"라는 한시가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시조로는 김종서의 "장백산에 기 곳고 두만강에  싯겨 서근 져션뵈야 우리 아니 나희냐 엇덧타 인각화상(燐閣畫像)을 누고 몬져 리오."가 있다. 또 남이(南恰)의 시로 "장검을 혀들고 백두산에 올라보니 대명천지에 성진(腥塵)이 겨셰라. 언제나 남북풍진을 헤처볼고 노라."라고 무인의 기개를 읊은 시조가 있다. 현대시로 백두산을 읊은 시는 최남선의 <조선유람가>와 <귀명가>를 비롯하여 많이 있지만, 그 중에도 참전시인 장호강(張虎崗)의 <내가 쓰러지거든>을 보면 "끝내 바라던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 채/이름도 없는 싸움터 산마루에 내가 쓰러지거든/(중략)/정녕 그 어느날이고/바스러진 해골 가루가루 싸락눈처럼 휘날리어/천고에 깊은 천지 속으로 영원히 잠들 것이리라."로 되어 있는데, 같은 민족으로서 분단된 국토에서 동족상잔의 아픔과 한이 여실히 표현된 작품이다.

 

 진태하(陳泰夏)는 1984년 7월, 국토분단 이후 한국 국적으로서는 최초로 민족의 성역 백두산을 등정한 감격을 '백두산' 이라는 시로써 토로했다. "민족도/국토도/분단된 슬픈 역사속에/통일의 그 날을 기다려/하마 하마 사십년/세월의 기만(欺瞞)에/분노는 열화처럼/이역(異域)길 돌아 돌아/아득한 신비의 빛을 따라/신들린 걸음으로/민족의 성지(聖地), 국토의 시원(始原)/백두산을 찾아/장강(長江)을 넘고 황하(黃河)를 건너/잃어버린 우리의 땅/만주(滿洲)벌 수만리(하략)."


최근 백두산에 대한 장편시로서는 1987년 발행한 고은(高銀)의 《백두산》이 있다. 이 시는 전체 4부로서 8권을 출간할 예정인데, 현재 1부 2권이 발간되었다. 저자가 머리말에서 "그런데 시의 시발인 백두산은 정작 자료와 상상의 세계로서 체험할 수밖에 없었다." 라고 말한 것처럼 백두산을 등반해보지 못하고 작자의 상상과 동경 속에서 백두산을 묘사하였다. 이 시의 서시를 보면 "장군봉 망천후 사이 억겁 광풍이여/그 누구도 다스리지 못하는 광풍이여/조선 만리 무궁한 자손이 이것이다/보아라 우렁찬 천지 열여섯 봉우리마다/내 목숨 찢어 걸고 욕된 오늘 싸워 이 땅의 푸르른 날 찾아오리라."라고 쓰여 있다. 북한에서도 <백두산>이라는 장편 서사시가 발표된바 있으나 백두산을 무대로 한 김일성의 행적을 미화한 것으로, 문학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근래 백두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도 적지 않게 나와 있지만,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안수길(安壽吉)의 <북간도(北間島)>를 들 수 있다. 1959년 4월 《사상계(恩想界)》에 제1부가 발표되면서 시작하여 1967년에 제5부로서 완료되었다. 문학평론가 백철(白鐵)은 이 소설에 대하여 "해방 뒤 10여년 내의 우리 문학사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 <북간도>가 아니던가 느껴진다. 그만큼 <북간도>는 근래의 우리 문학사를 대표한 작품인 줄 안다."라고 평하였다.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북간도가 배경으로 되어있으나, 백두산일대의 묘사와 그에 얽힌 전설도 많이 삽입되어있다. 이 소설 전체에 흐르는 삶의 강인한 정신력이 등장인물 중 한복이를 통하여 나타나는데, 한복이는 백두산의 혼을 닮아있다. 이외에 이미륵(李彌勤)도 그의 저서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백두산 주변을 잘 묘사하고 있다.

백두산은 민족 발상의 성지로서 이에 대한 전설도 적지 않다. 백두산에 대한 전설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탓이겠지만, 특히 만주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 많이 전래하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사는 우리 동포들에게서 수집하여 발간한 전설고사집 속에 백두산에 관한 전설로 <백두산의 목동과 선녀> · <백두산의 사냥군과 호랑이> · <오늘날 왜 호랑이가 보기드문가? > · <백두산의 화마> 등이 있다. 이중에서도 <백두산의 목동과 선녀>는 우리 민족의 발상과 재미있게 연관을 시켰으며, 우리 민족이 백두산을 마치 신앙처럼 숭상하고 좋아하는 이유를 잘 말해주고 있다.

 

백두산은 단군의 개국신화 외에도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탄생설화와 관계가 있다. 이 설화의 줄거리는 왕건의 육대조 호경이 백두산 기슭에 살고 있었는데, 당시 유명한 승려 도선(道詵)을 만나 성자를 낳을 집터를 얻음으로써 왕건을 낳고, 그 성자가 자라서 고려의 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백두산 근처에 단군의 자손인 우리 민족을 수시로 괴롭히던 이민족의 집단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모래비가 내리어 그 지역을 덮어 버렸다.

 

 그리하여 지금도 백두산 밑 무산땅 최가령 동쪽에 표면은 흙이지만, 파보면 5~6척이나 모래가 덮여 있고 그 속에는 또 흙이 있다는 설화도 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뿐 아니라, 북방의 여러 민족의 발상설화도 얽혀 있다. 청나라에서는 자기들의 조상인 애친각라(愛親覺羅)의 발상지라 하여 숭상하여, 1677년에는 대신 각라식목눌(覺羅式穆訥)을 파견하여 백두산을 탐사하였으며, 1684년에는 장백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옹정제(雍正帝) 이후는 길림장군(吉林將軍)의 관리하에 춘추로 중월(仲月)에 제사를 지냈다. 《개국방략(開國方略)》이라는 책에 청제(淸帝)의 탄생설화가 있다.

 

곧 백두산에 포륵호리지(布勒湖哩池)라는 천지가 있는데, 선녀 세 자매가 이곳에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을 때 신작(神鵲)이 붉은 열매를 물고 와서 셋째 선녀의 우의(羽衣)위에 놓았다. 셋째 선녀는 이 열매를 먹고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았다. 이 아이의 이름을 포고리옹순(布庫哩雍順), 성을 애친각라라 하였으니, 곧 청제실(淸帝室)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형태로, 두만강변에 지암이라는 바위근처에 이좌수가 살았는데, 지암 물가에 사는 수달의 일종인 노라치라는 짐승이 좌수의 딸과 관계를 하여 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가 커서 청나라 태조인 누르하치(奴兒哈赤)가 되었다는 설화도 있다.

 

 백두산은 높이 2,155m의 고원에, 곧 이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바다처럼 깊고도 넓은 호수로서 천지를 가지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거듭 폭발한 화산의 분화구로 만들어진 산세 또한 기승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 발상의 성지이기 때문에 그 실경 자체가 미술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대의 많은 화가들이 백두산의 신비를 화폭에 담았다.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서는 동양화가 김기창(金基昶) · 민경찬(閔庚燦) 등의 대작이 있다. 사진작품으로서는 진태하가 1985년 3월에 《조선일보》에 보도하면서 전국에 백두산의 천연색사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백두산에 대한 음악은 우리의 애국가(愛國歌)로부터 적지않은 노래가 있다. 이 가운데 <조선유람가>는 1947년에 최남선이 작사하고 김영환이 작곡한 것으로 당시 학생들뿐만 아니라, 일반에서도 애창하였던 노래다. "대지의 거룩한 힘 기둥이 되어/한울을 버틔고선 백두의 성산/맹호의 수파람이 울리는 거기/성인이 나셨고나 영웅 길럿네/…." 박영만이 작사하고, 한유한이 작곡한 <압록강 행진곡>은 제목과는 달리 주로 백두산을 노래하였다. 또한 1985년 진태하가 작사하고 황문평이 작곡한 <아! 백두산>이라는 노래가 있다. "흥익인간 터잡은 백두산 이지구의 정수리/단군왕검 태나신 천지연 오색으로 넘치고/바위마다 새겨진 배달의 민족역사 드높다/아 아 민족의 성역 백두산에 모여서/남북의 아들딸아 민족의 정기를 높이자/…."

이처럼 우리나라에 있어서 백두산은 단순한 산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 배달겨레의 가슴마다 깊숙히 아로새겨 존재하는 민족의 영산이요, 국토의 성역(聖域)이요, 통일된 신앙이다. 단군왕검으로 줄잇는 민족의 생명이 이곳에서 시원하고, 바다멀리 제주도 · 울릉도까지도 국토의 맥이 이곳으로 줄닿고, 민족 역사의 뿌리가 이곳에 터잡고 있음을 믿어왔기 때문에, 반만년 애환의 역사 속에서도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 면면히 동경의 성산(聖山)으로 숭상하여 온 것이다. 우리의 개국신화로부터 시작하여, 전설 · 설화 · 시 · 소설 · 수필 등 우리민족의 전통문학과 관련지어지지 않은 작품이 없을 만큼 유구한 역사의 맥을 잇기 때문에 우리 한민족을 '백두산족'이라고 자처할 정도로 우리 민족이면 누구나의 가슴속에 백두산의 혼이 잠재되어 있다.


최남선은 <조선의 산수>에서 "비유컨대 조선 사람이 백두산 속에 있음을 잊어버린 것은 물속에 고기가 물을 잊어버린 것 같다 할까요." 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한민족이 세계 도처에 퍼져 살면서, 때로는 이미 국적을 달리하고 있으면서도 '백두산' 이라는 말만 들어도 고국을 생각하게 되고, 향수에 젖어 눈물을 글썽이게 되는 것이다. 나라의 주권을 강탈당하였던 민족항일기에도 백두산은 곧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서의 구실을 하였다. 곧 V0A(미국의 소리) 우리말 방송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방송될 때, 그 방송의 시작을 백두산 호랑이의 포효 소리를 세번 낸 다음 아나운서가 "백두산 호랑이" 하면서 "여기는 자유의 소리 우리말 방송입니다……. 조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라고 방송하였다. 일제침략하에 방송도 마음대로 못 듣던 시절, 백두산 호랑이의 포효 소리로 시작되는 이 방송은 우리 동포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을 뿐만 아니라, 은연중 독립심을 고취하였던 것이다. 이 방송에서 '백두산' 이라는 말이 빠져 있었다면 그처럼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부르고 있는 국가(國歌)의 가사는 아직도 확실한 작사자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민족이 고난에 처하여 있을 때 누군가의 입에서 볼리어진 것이 지금까지 불려지고 있는 것이다. 곧 민족이 수난을 당하던 때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닿도록….'이라고 가사를 지은 것은 단순히 조국의 영원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우리의 민족혼을 잃지 말자고 피를 토하듯 외친 것이다. 백두산은 일찍이 그 명칭이 '불함(不咸)' 곧 신(神)의 산으로 일컬어온 것처럼 한결같이 우리 민족 누구에게나 신성시되어있는 점이 세계 어떤 산과도 다른 점이다.

 

 그 실증으로 《북사》와 《봉천통지(奉天通志)》에 예로부터 백두산에 오르는 사람은 신성한 백두산을 더럽힐 수 없다 하여 자신이 배설한 일체의 오물을 준비해간 그릇에 담아온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처럼 외경(畏敬)한 산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또한 당나라 때 편찬된 《괄지지(括地志)》에는 백두산의 조수초목(鳥獸草木)은 모두 백색이라고 기록할 만큼 상서로운 산으로 추앙하였다. 또한 예로부터 백두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산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목욕재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백두산 신령께 제사를 지냈다.


서명응의 《유백두산기》에 실려 있는 제문을 보면 "높다란 백두산은 우리나라의 진산으로 온 백성들이 우러러봅니다. 진작부터 전모를 근참하려고 벼르다가 이제야 왔으니, 이는 실로 하늘이 준 기회입니다. 찬 바람 찬 이슬 맞으며 갖은 고초를 겪고 왔습니다. 산신령께서는 이런 정성을 살피셔서 구름과 안개를 거두시어 마음대로 근참하게 하소서. 하늘에는 해와 별이 환하여 감추는게 없사온데, 산만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하늘의 뜻을 어기면야 되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백두산을 등정해 본 사람은 누구나 이 제문에 공감할 것이다. 백두산 일대에는 천변만화로 삽시간에 변모하는 가공할 날씨에 누구나 인간의 나약함을 긍정하고, 하늘에 의지하여 빌 수밖에 없음을 체험하게 된다. 한마디로 백두산은 우리 민족역사와 더불어 존재하였고, 우리 민족에게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불굴의 정신을 잃지 않도록 민족혼을 고취하였고, 언제나 백두산을 중심으로 화합 단결하고, 미래의 밝음으로 지향하는 우리 한민족의 내일을 있게 하였으며. 하늘과 조상을 받들어 모시는 신앙심을 낳게 하였다.


 

 
 


백두산천지
 


 

 

 
 

장편 서사시

             백두산

/ 조기천

 

 

 

 

 

머리시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하련다!

<백호> 소리없는 웃음에도

격파 솟아 구름을 삼킨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로

 땅을 파몰아치던 살풍에

마르고  한가슴을 추기고

천년이끼오른 바위를 벼루돌 삼아

곰팡이 어렸던  붓끝을

육박의 창끝인듯 고루며

 땅의 이름없는 시인도

해방의 오늘 말하련다!

 

첩첩 층암이 창공을 치뚫으고

절벽에 눈뿌리 아득해지는 이곳

선녀들이 무지개 타고 내린다는 천지

안개도 오르기 주저하는  절정!

세월의 류수에

추억의  거슬러올리라-

어느해 어느때에

 나라 빨지산들이 이곳에 올라

천심을 떠닫으며

의분에 불질러

해방전의 마지막 봉화 일으켰느냐?

 

이제 항일에 의로운 전사들이

사선에 올랐던  나라에

재생의 백광 가져왔으니

해방사의 혁혁한 대로

두만강 물결을 넘어왔고

백두의 주름주름 바로 꿰여

민주조선에 줄곧 뻗치노니

 장백의 곡곡에 얼룩진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력력하노니

 오늘 맘놓고 여기에 올라

삼천리를 손금같이 굽어보노라!

 

오오 조상의 땅이여!

오천년 흐르던 그대의 혈통이

일제의 칼에 맞아 끊어졌을 

떨어져나간  토막토막

얼마나 원한의 선혈로 딩굴었더냐?

조선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몇만의 지사 밤길 더듬어

백두의 밀림 찾았더냐?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웠고

사지를 문턱인듯 넘나든이  뉘냐?

산아 조종의 산아 말하라-

해방된 이땅에서

뉘가 인민을 위해 싸우느냐?

뉘가 민전의 첫머리에 섰느냐?

 

!

바위우에 호랑이 나섰다

백두산 호랑이 나섰다

앞발을 거세게 내여뻗치고

남쪽하늘 노려보다가

<--> 산골을 깨친다

 무엇 쳐부시련듯 톱을 들어

<-->

그리곤 휘파람속에 감추인다

바위 호을로 솟아

이끼에 바람만 스치여도

호랑이는  바위에 서고있는듯

 정신 가다듬어 듣노라-

다시금 휘파람소리 들릴지

산천을 뒤집어떨치는

 노호소리 다시금 들릴지!

 

바위바위!

 알리 없어라!

정녕코  바위일수도 있다

빨지산초병이 원쑤를 노렸고

애국렬사 맹세의  높이 들였던  바위                                          

 땅에 해방의 기호치던

장백에 솟은 이름모를  바위

  가슴속에도 뿌리박고 솟았거니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더듬으며

가난한 시상을 모으고 엮어

백두의 주인공 삼가 그리며

삼천만이여그대에게

높아도 낮아도  목소리로

가슴 헤쳐 마음대로 말하련다!

 
 




제6장

1
이 나라 북변의 장강-
칠백 리 압록강 푸른 물에
저녁해 비꼈는데
황혼을 담아 싣고
떼목이 내린다 떼목이 내린다.
뉘의 눈물겨운 이야기
떼목 우의 초막에 깃들었느냐?
뉘의 한많은 평생 모닥불에 타서
한줄기 연기로 없어지느냐?
≪물피리 불며 울며 구을러 갈 제
강 건너 천리길을 이미 떠난 몸
재 넘어 천리길을 이미 떠난 몸
재 넘어 구름 따라 끝없이 간다
에헹 에헤요 끝없이 가요≫
웨 저노래 저다지 슬프단 말가,
이 땅의 청청 밀림 찍어내리거니
그 노래 어이 슬프지 않으랴!
이 나라의 집집은
대들보 터지고 기둥이 썩어져도
그 미끈한 만년대목으로는
놈들이 향락의 향연 베플거니
그 노래 어이 슬프지 않으리!

2
황혼도 깊어지고
물결도 차지고
서늘한 밤바람
강가에 감돌아돌 무렵
강 건너 바위 밑에서 휘-익
휘파람소리 나더니
떼목에서도 모닥불이 번뜩번뜩
내려가던 떼목이 돌아간다 돌아간다
머리는 저편 강가에
꼬리는 이편 강가에-
삽시간에 이루어진 떼목자리,
초막에서 나온 두 사람
나는 듯 이편으로 달아온다
한 사람은 떼목군
다른 사람은 철호,
그담 강 저편 바위 밑에서
군인들이 달아나온다
달아나와선 떼목으로
압록강을 건너온다-
빨찌산부대 압록강을 건너온다.
산밑에 그들이 숨었을 때
그 때목다리도 간데 없고
출렁-처절썩-
찬 물결만 강가에 깨여지는데
멀리선-
≪띄우리라 띄우리라
배를 무어 띄우리라
떼를 무어 띄우리라!≫

3
빨찌산들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일제가 짓밟은 이 땅에
살아서 살 곳 없고
죽어서 누울 곳 없고
모두 다 잃고 빼앗겼으니
물어보자 동포여!
가슴 꺼지는 한숨으로
이 강 건너 이방의 거친 땅에
거지의 서러운 첫걸음 옮기던 그날-
그날부터 몇몇 해 지났느뇨?
강 우에 밤안개 젖은 안개 떠돈다-
이 강 넘은 백성의 한숨이나 아닌가
물줄기는 솟아서 부서지고
또 부수지고-
이 강 넘은 백성의 눈물이나 아닌가
오오- 압록강! 압록강!
허나 오늘밤엔 그대 날뛰라
격랑을 일으켜
쾅-쾅 강산을 울리라.
이 나라의 빨찌산들이
해방전의 불길을 뿌리려
그대를 넘어왔다-
애국의 심장을 태워 앞길 밝히며
의지를 갈아 창검으로 높이 들고
이 나라의 렬사들이조국땅에 넘어섰다.
압록강! 압록강!
격랑을 치여들고
쾅-쾅- 강산을 울리라!
거창한 가슴을 한 것 들먹이며
와-와- 격전을 부르짖으라!

4
골짜기에 끼여우는 H시에
밤 열한 시…
고로에 먼지 찬 하루나절 지났다고
시민들도 잠자리에 들고
서로 다투고 서로 속이던
가가들도 문 걷어닫고
늦도록 료리집에서 야지러지던
매춘부의 웃음도 끊어지고
소경의 곯아빠진 눈자위같이
그 창문도 어둑해지고
거리를 휩슬며
≪구사쯔요이또꼬≫부르던 놈도
이층집 문을 차며
≪요보야로!≫욕하다 들어가버리고…
밤 열한 시…
영림창 뒤통
빈민굴 어느 구석에선가
떼목에 치여 죽었다는 사나이를
거적에 싸서 방구석에 놓고
온 저녁 목놓아 울던 녀인의 사설도 끊치고
오뉴월 북어인 양 벌거숭이 애들
뼈만 남은 젊은이들
꼬부라진 늙은이들-
모두 다 웅크리고 노그라져
쿨-쿨- 잠들어버린
밤 열한 시…

5
밤 열한 시…
거리엔 인적이 끊치고
전등만 누렇게 흐르고-
주재소 교번순사도
꺼덕꺼덕 조을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남녀 두 사람
주재소 문간에 나타났다-
녀인은 사나이를 끌고
사나이는 녀인에게 끌리우고.
≪이연석 들어가자!≫
녀인의 짜증내는 소리
≪하…어…찌…라…고…≫
사나이의 혀 까부라진 소리
≪웬일이야!≫
순사 골낸다
들어선 남녀를 흘기며
≪나리님 저놈이 술값을…≫
≪허… 내 우스워서…
허허허… 나리님두 우습지?≫
≪이놈 어딘 줄 알고 웃어?
내 앞에서 감히 웃어?≫
순사 단걸음에 다가서며주먹을 쳐들자
그놈의 가슴에 총부리 대인다.
소리도 못치고 두 눈 뒤집고
순사 방구석에 까무러질 제
녀인은(그는 솔개골 꽃분이)
전신줄을 끊고
사나이는(그는 정치공작원 철호)
문 열고 손짓한다
문 열고 손짓하자-
바로 곁에서 신호의 총성
잠든 시가를 깨뜨린다
그담 련이어 나는 총소리 총소리…
우편국에서도 총소리,
은행에서도 영림창에서도
어지러운 점선을 그으는
따-따-따-따- 기관총소리
쾅-쾅- 폭탄 치는 소리!

6
적은 반향도 못하고
죽고 도망치고-
류치장 지붕에선
삼단 같은 불길이 일어난다,
이곳저곳 관사에서도
놈들 집에서도
반역자들 집에서도
불길이 일어난다,
캄캄한 하늘을 산산이 윽물어 찢어
쪼박쪼박 태워버리며 불길이 일더니
만세소리 터진다
첨에는 몇 곳에서
다음에는 여기저기서-
눌리우고 짓밟힌 이 거리에
반항의 함성 뒤울리거니
암담한 이 거리에 투쟁의 불길 세차거니
흰옷 입은 무리 쓸어나온다-
머리벗은 로인도 발벗은 녀인도
벌거숭이 애들도.
절망이 잦아든 이 거리에
별천지의 화원인 양 화해에
불꽃이 나붓기고
재생의 열망을 휘끗어올리며
화광이 춤추는데
밤바다같이 웅실거리는 군중
높이 올라서 칼 짚고 웨치는
절세의 영웅 김일성장군!
≪동포들이여!저 불길을 보느냐?
조선은 죽지 않았다!
조선의 정신은 살았다!
조선의 심장도 살았다!
불을 지르라-
원쑤의 머리에 불을 지르라!≫
만세소리 집도 거리도 떨치고
화염을 따라 오르고 올라
이 나라의 컴컴한 야공을
뒤흔든다 뒤울린다!

7
휘황한 불빛이 온 거리에 차 흐르는데
떨어지는 불꽃을 밟으며
혁명가 드높이 부르며
빨찌산부대 거리를 떠난다.
그들을 전송하는 이 고장 사람들-
기막힌 이 거리에
한줄기 생의 빛 가져왔으니
≪잘 가라 영웅들이여
어느 때나 승리하라≫
그러나 그들이 떠나면
또 검은 거리, 눈물의 거리,
그러기에 울음으로 전송하누나-
≪잘 가라 영웅들이여
언제나 다시 만나리≫
뺨에서 흐르는 눈물
불빛에 피방울인 듯,
허지만 빨찌산들의 부르짖음-
≪잘 있으라 동포여,
싸우라 동포여!
우리 다시 만나자
해방연에 독립연에 다시 만나자!≫
휘황한 불빛에 쌔워
빨찌산들이 어둠을 직차며 뚫으며
처억처억 앞으로 나간다,
싸움의 길로-
처억-처억-처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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