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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완결물이 아니라 미완물이다...
2016년 11월 01일 00시 18분  조회:5041  추천:0  작성자: 죽림

서사시 [백두산(고은)]의 민족문학적 의의

李 東 洵 
 

1. 서사시 [백두산] 완간의 배경과 집필과정 

고은 시인이 드디어 3부작 전7권의 방대한 서사시 [백두산]을 완간했다. 이는 지난 1947년 북의 시인 조기천(趙基天)이 같은 제목의 서사시 작품을 발표한 이래로 분단시대의 우리 문단에서 가장 크고 두드러진 문학사적 사건중의 하나이다. 지난 1980년 겨울, 옥중에서 이 작품은 처음으로 구상되었다. 그로부터 5년후 작품이 발표되기 시작하여 오늘의 완간에 이르러 지난 경과를 헤아려볼 때 구상으로부터 완간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무려 14년(첫작품 집필로부터는 9년, 제1부의 전작시집 발간으로부터는 7년)이나 걸린 셈이다. 작품의 질이나 규모의 여하를 떠나서 한 작품을 두고 거기에 장구한 세월을 중단없이 매어달려 완간에까지 이른다는 것은 실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내용은 1900년대1940년대까지의 기나긴 싸움의 도정으로 일제침략기의 의병전쟁에서부터 독립전쟁 시기를 거쳐 일제말까지 펼쳐지는 반제 투쟁의 경과를 담고 있다. 작품의 1,2부가 발표되던 1985년, 작가는 '의병운동 관계자료를 보면서 이런 기록이 단지 지난 과거역사로서가 아닌 현재화된 움직임으로 형상화시켜야겠다는 강한 의무감 같은 것을 느껴'(동아일보, 1985년 11월7일자) 이 작품을 쓰게 되었노라고 창작동기를 밝힌다. 작가가 시집의 권두 머리말에서 밝힌 '무표정의 실무', 또는 '반드시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비원(悲願)'이란 표현은 이러한 민족문학적 의무감이 수반된 창작태도를 일러주는 말로 해석된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소외된 계층의 한 인물인 바우가 커다란 역사운동의 흐름 속에 참여하는 과정을 써나갈 계획'이라면서, 거대한 민족민중운동 자체가 다름아닌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전작서사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발표 또한 활발하게 나타나던 것이 당시 문단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그것은 시인들의 관심대상이 분단상황을 비롯한 사회 역사 쪽으로 확대 심화되어감에 따라 단형서정시의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의지와도 관련된다. 또한 상상의 힘이 가능한 서사시의 형식을 통해 리얼리티의 제약을 받는 소설적 담화의 한계까지도 거침없이 극복할 수 있다는 열망과 기대에서 발단된 것이었다. 서사시 [백두산]만 하더라도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던 해에 감옥안에서 구상된 것이었으므로 이 작품의 심적 배경에는 반역사성이라든가 반민족성 따위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분노와 증오, 고뇌가 자리잡고 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민족의 공동선과 이익을 저해하는 그 모든 것에 대한 극복의 열망에서 충동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작품은 거의 동시에 집필된 [만인보]와 함께 민족사의 내부에 깊이 동참하며 이를 실천하려는 작가적 신념의 표현이다. 이 두 작품의 동시집필로 시인 고은은 그 험난한 1980년대를 굳건히 버티어 갔으니,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이 두 작품에는 작가 자신만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있을 터인즉 독자들이 바로 그 점에 착안하면서 작품을 읽어간다면 감동은 더욱 배가될 것이다. 무릇 서사시라는 것이 민족의 삶에 어떤 형태를 제공하는 기틀이라 할 때에 작품 [백두산]은 시인의 가열찬 노력에 의해 분명히 확정된 어떤 형태와 가치를 민족 앞에 흔쾌히 헌납하고 있으므로 서사시의 기본요건을 매우 훌륭하게 충족시킨다. 더구나 서사시의 전통이 그다지 풍부하지 않은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백두산] 완간의 의미는 참으로 큰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민족문학전사를 통틀어 이처럼 방대한 구성과 규모를 지닌 장편대하서사시는 전혀 초유의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는 진정한 가치가 담겨진 큰 정신으로서의 서사시가 출현하여 가치의 혼란과 가치부재로 고통받고 있는 시대의 대중들에게 용기와 격려, 충고와 각성을 주는 서사시는 재능있고 관심있는 시인들에 의해 계속 산출되어져야할 중요한 분야 중의 하나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점을 감안하면서 우리 시대의 민족적 요청에 충실히 부응하고자 하는 서사시 [백두산]의 전모를 낱낱이 알아볼 필요가 있다. 

2. 서사시 [백두산]의 주제의식 

서사시 [백두산]의 서두는 지배계급의 딸 조화연과 그의 집에 고용된 피지배계급의 신분인 머슴 추만길과의 허용되지 않는 사랑으로 시작된다. 양반집 규수와 상놈 출신간의 사랑, 그리고 사랑을 위한 도피행각은 봉건적 관습이 철벽처럼 유지되던 왕조말기의 사회에서는 그리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다. 매우 특수하다고 할 수 있는 이 둘의 관계는 어떤 측면에서 그토록 엄격하던 봉건적 질서의 와해과정을 반영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둘 사이의 사랑의 발단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그 어느 날 뜻밖에도 머슴과 말탄 꿈꾼 다음 날

백년 묵은 팽나무 밑에서

팽나무 이파리 사이

햇빛 어지러이 빛나고 있는데

거기에 나온 아씨더러

두엄 지고 논에 나가다 쉬는 머슴

불쑥 말 한마디

아씨께서는 수박등 같으셔요 환하셔요 하던

그 난데없는 말 한마디 들은

그 머슴과 눈맞아

천리길 도망쳐 온 아씨

------[백두산] 1권17면

(이하 모든 인용작품의 표시는 '1-17'식으로 한다.) 

매우 아름다운 이 고전적 사랑의 장면에서 작품속의 주인공인 두 사람이 선택하는 결단은 결코 보편성이 반영된 것은 아니다. 양반집 가문에서 그 집안의 유가적 엄격성과 봉건적인 가풍에 의해 성장하였을 아씨가 자기집 하층배인 일개 머슴이 보내는 '아씨께서는 수박등 같으셔요 환하셔요'라는 단 한번의 추파에 곧장 마음을 주어버리는 것도 어찌보면 비현실적일 수 있다. 또한 두엄을 지고 논에 나가다 잠시 쉬면서 주인집 아씨에게 수작을 거는 것 역시 목숨을 건만큼이나 대단히 위험한 행동임에 틀림없다. 상궤를 벗어났기에 그들은 천리밖으로 달아나야 했고,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곧 그들 두 사람의 비범한 용기를 말해준다. 도저히 해서는 아니될 것, 할 수도 없는 것, 즉 구시대의 낡은 관습과 규범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결행한 것이다. 지배계급도 자기신분을 스스로 허물고 피지배계급도 더이상 노예상태의 굴종에 억눌려 있어서는 아니된다는 작가 자신의 민중해방적 의지가 적극적으로 반영된 부분이다. 그리하여 이 대목은 각성된 자아와 자아가 만나 상호협력과 인격의 통합을 이루어야 한다는 작가의 관점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작품 초반부의 이 관점은 대단원까지 줄곧 유지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관점들이 반영된 표현체계로 말미암아 서사시 [백두산]의 정신적 지향과 기초는 일단 강력한 민중성 쪽으로 열려있다. 아무튼 양반의 혈통으로서 각성된 의식을 가진 조화연과 역시 자기 신분의 농노적 굴레를 일거에 깨뜨린 추만길이 부부가 되어 아들 바우와 딸 옥단을 낳고, 성장한 두 남매와 함께 구한말에서 일제강점시기까지를 반제 반봉건 투쟁으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온갖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전편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추만길 일가의 가족사적 연대기(年代記)의 방식으로 전개 서술되고 있지만 기실 작가는 한 가족의 삶의 궤적을 통하여 민족의 집단적 운명을 그리고 있는 것이니, 일제 강점하에서의 우리 민족의 삶이란 유망민적 삶과 무엇이 달랐으랴. 추만길 일가가 고국땅에서 밀려나 백두산 자락으로 혹은 만주의 동북지역으로 혹은 쏘만국경인 밀산으로 더욱 멀리는 러시아땅까지 흘러서 떠도는 삶이란 고절 참담한 극한적 경험의 연속 바로 그것이었다. 등장인물의 유망민적 삶의 경과는 바로 서사시 [백두산]의 공간배경이며, 동시에 민족적 삶 그 자체이다. 그 어디에도 한군데 안착해서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운명! 작가는 추만길 일가의 비극적 삶을 통하여 인간이란 존재의 허망함을 일깨우고 나아가서는 그 허망함에 대한 의식까지도 깨어부수고자 하는 종교적 인식으로까지 이끌어가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 작품의 전반적인 빛깔을 다소간 어둡고 우울한 수묵화의 색조로 보이게 하는데, 주인공들의 생애를 대개 비극적인 결말로 처리하고 있는것도 이러한 인식과 관련이 있는듯이 보인다. 서사시 [백두산]의 전편을 총괄하고 있는 시대정신은 다름아닌 민족주체사상, 자주독립사상이다. 그러므로 작품이 풍미하고 있는 사관은 자연스럽게 민중에 의해 현실이 개혁되고 개조되어야 한다는 민중중심적 관점이 대종을 이룬다. 그 과정에서 민족적 사회주의의 이념도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시대정신과 사관이 이러하므로 작품의 창작방법도 따라서 현실의 위기를 강력히 의식하고 거기에 내포된 모순과 부조리를 직시하여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족문학 이념과 그 방법을 절대적으로 중시한다. 작가가 이미 밝힌 바 있는 '순한글 원칙'이란 것도 서사시 [백두산]에서 줄곧 실천하고자 하는 모국어정신이자 창작방법론으로서 작가의 민족문학적 신념 중의 하나이다. 가장 소외된 계층의 인물을 중점적으로 다루어 가려는 자세도 그러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작가가 이 작품에서 실현하고 있는 주제, 제재, 문체, 율격, 작품의 주체적인 정서, 사상 등등 그 어느 것 하나에 이르기까지 민족문학적 신념과 실천에 관련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작가는 이 신념이 '민족해방을 위한 순결성에 보내는 고도의 지지'라고 밝힌다.<전작시집 3부의 머리말>) 이러한 자세의 견지가 작품의 구성과 전개를 매우 강건하게 만드는 장점도 있는 한편 너무 결연한 도덕성과 고집스러운 신념 자체가 유연성을 잃어버리는 결과도 발생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어떤 완고함 같은 분위기로 답답함을 줄 때가 간혹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작중 인물들의 거개가 봉건적인 윤리에 저항하고 새로운 시대의 윤리 창조에 강한 의지를 가진 성격들인만큼 작가가 그러한 분위기를 일관되게 이끌고가야 한다는 심적 부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3. 서사시 [백두산]의 구성과 전개과정 

우리가 여기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서사시 [백두산]의 서술구조와 작품의 표현 형태, 결구(結構)의 방식 등 전체 서술구조와 관련된 모든 것이다. 서사시 [백두산]에서의 사건의 전개는 과연 얼마나 인과관계에 의한 정확성을 지니고 있으며, 작가의 태도는 이 점에서 어떻게 분명한가. 우선 이 작품은 제국주의에 반대해서 싸우는 추만길 일가의 의병투쟁 활동이라는 일관된 구성방식을 견지함으로써 테마의 명확성을 시종일관 확보하고 있다. 이 점이 서사시 [백두산]의 가장 큰 특장이라 할 수 있다. 전개과정과 표현방식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고 균제미를 갖추고 있어서 전체의 통일성에 상당한 몫의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의 현실묘사 방법에서는 아주 뛰어난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화전민 촌에서의 화전장면 묘사(2-115)라든가, 밤바위말 주민 민지환 영감이 일본군에게 피살되는 장면(5-110), 일본군에 의해 만주지역 동포들이 대량학살된 '경신년대참변'(일본측 자료에는 '간도출병' 혹은 '간도사변' 등의 용어로 나타나 있다)에 관한 묘사(5-162,164) (6-13 ,17) 등은 참으로 비감한 격동을 주며 장엄미마저 느끼게 한다. 일제강점하 식민지 조선의 문단에서 경신년대학살을 소재로 다룬 작품은 필자가 알기로는 단 한 편도 없다. 다만 1920년 12월8일자 상해판 [독립신문]에 실린 춘원의 시 [간도동포의 참상]과 [삼천의 원혼]이 고작이다. 그러나 춘원은 이 작품에서 동포가 무참히 학살된 소식을 듣고도 단지 '번히 보고도 도와줄 힘이 업는 몸/ 속절업시 가슴만 아프다'([간도동포의 참상])라고 예의 그 나약하고 소극적인 패배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너희게 무슨 죄 잇스랴

망국백성으로 태여난 죄 

못난 조상네의 끼친 얼 받아

원통코 참혹한 이 꼴이고나

-----춘원의 [삼천의 원혼](1920)의 부분 

역시 간도대학살을 작품소재로 다루고 있으면서도 춘원은 학살된 동포들의 불행이 첫째로는 망국백성으로 태어난 죄, 둘째로는 못난 조상 탓으로 돌린다. 결국 이런 논리는 동포들의 '원통코 참혹한 꼴'이 피할 수 없는 자신들의 필연적인 죄값일 뿐만 아니라 이미 마련된 숙명이라는 관점으로 [민족개조론]의 망령이 여기서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삶을 해석하는 관점의 기본이 비뚤어져 있을 때 나타나는 결과가 얼마나 흉하고 가공할만한 것인가를 춘원의 작품은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점에서 고은의 서사시 [백두산]은 춘원의 식민주의적 의식을 극복하는 동시에 왜곡된 역사속에서 거의 잊혀진 비극적 사건인 '경신년대참변'의 진실을 문학적으로 재구(再構,reconstruction)해내고 있는 소중한 민족문학 작품이다. 

①용아!

부디 개가 되어서라도…… 살아라……

살아…… 네 자손…… 이어가거라……

부디……

-------5-110 

②마을 가구마다

다 뒤져내어

남녀노소 5백 명 붙잡아다

그 가운데 젊은 사람

몸 성한 사람 1백 명은

바로 웅덩이 파

거기에 밀어넣어 죽이고

그 웅덩이 흙으로 덮는 일을

한 마을 노인들을 시키니

제 아들

제 손자의 송장 묻는 비통함이여

-------6-17 

또한 각종 잡가와 민요 등의 구비문학 자료를 적절히 삽입 활용하므로써 장면의 극적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는 점은 탁월하다. 대체로 어떤 노래들이 활용되고 있는가. 일반 민요, 토속요, 가요, 군가, 교가, 만주지역의 민요들이 그것이다. 

달이 산 위에 높이 떠오를 때

누나는 작대기로 앵두를 따는데

사람의 키는 작고 나무는 높아

꽃신을 벗고 나무 오를 때

지나가는 도련님 웃지 마세요

우리 집 아이가

큰 앵두 먹겠다 하니

어찌합니까 어찌합니까

-----만주노래 [앵두따기](4-17,18) 

만주땅 너른 벌판

쌀이 자라네

밀이 자라네

옥수수 자라나네

우리가 가는 곳에 보리가 있고

보리가 자라는 곳에

우리가 있네

우리 자손이 있네

우리가 가진 것이 그 무엇이러뇨

호미와 바가지 밖에 그 무엇이더뇨

쇠스랑 찍어내어

새 흙을 내네

만주땅 거친 벌판 씨앗 뿌리어

우리네 새 살림을 이루어보세

-----만주정착민의 노래(3-240) 

앞의 노래는 주로 만주지역의 민요나 가요를 활용한 것으로써 이밖에도 시집간 여자가 결코 친정나들이를 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는 노래(4 -190)라든가 옥단이가 부르는 '말리화가(茉莉花歌)'(5-41), 시베리아 지역 유격대원들이 부르는 여름노래 '자쥔까'(5-140) 등이 있다. 기타 기민투쟁가, 토벌가, 피바다가, 조선의용군의 노래, 신흥학교 교가, 용진가, 독립군가 등의 자료들도 작품의 요소요소에서 제각기 빛을 발하고 있다. 그리고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가 바늘 끝으로 머리 가리마를 긁으며 아들이 올 때를 점치는 모습의 묘사는 사라진 옛 민간습속의 아름다운 장면을 다시 떠올리는 매우 감동적인 대목이다.(4- 60) 서사시 [백두산]의 극적 효과를 상승시키기 위하여 작가가 얼마나 희귀자료의 수집과 정리 등에 세심한 준비와 공력을 기울였는지를 우리는 이 대목들에서 여실히 느껴볼 수 있다.

작품의 문체에서 풍겨지는 호흡과 율격에서도 시인 고은 특유의 거의 청산유수에 가까운 달변으로 서술 자체가 힘차고 격정적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이미 작가는 독자들의 가슴을 격동 고무시키는 민중적 문체를 완전히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달변 끝에 오는 공허함도 아울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친 동어반복이 주는 따분함이라든가 공연히 과장된 강조에 열을 올리는 부분들이 바로 그러하다. 한 예를 들면 

여기 사무쳐 대흥안령산맥 밖의 만주리

어쩌다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느냐

어쩌다가

여기까지 와

모진 목숨

갖가지 위난 무릅쓰고 살아 있느냐

여기는 만주리

더이상 갈 데 없이

여기는 만주리

어쩌다가

어쩌다가

여기는 만주리

후룬뻬이얼맹

------5-11 

조국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떨어진 타관 객지로 쫓기다시피 밀려오게된 낭패감 당혹감 좌절감을 넋두리조로 탄식하고 있는 대목이긴 하지만 공허한 동어반복이 도리어 따분한 느낌을 자아낸다. 또한 우리는 이 작품의 도처에서 불필요한 부분이 돌출되고, 꼭 필요한 부분은 오히려 누락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작 힘을 한껏 발휘해야할 대목에서 어이없이 맥이 빠져 있거나, 반대로 힘을 그리 쓰지 않아도 될 부분에서 도리어 무리한 힘을 쓰는 경우도 더러 보인다.플롯의 전개에 작가 스스로 너무 압도된 나머지 미리 계획된 경로를 일방적으로 따라만 가다가 보니까 창작의 자연발생성이 결여된 느낌을 주는 부분도 많다. 서술형태의 호흡에서 일정한 휴지(休止)를 전혀 주지 않고 끊임없는 장광설로 펼쳐지는 대목들에서 대부분의 독자는 작가의 의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쉬 피로감을 느끼거나 읽기를 포기해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서사시와 소설의 변별성이 바로 이런 점에서도 확정되는바 작가는 항상 자신이 먼저 심적 흥분상태에 빠져서 독자를 돌보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냉철한 이성적 자세와 명확한 판단으로 주제를 장악하면서 때로는 독자들의 편의를 위한 배려의 장치를 작품속에 설치해 두어야 한다. 또 어떤 경우는 전자와는 상반되는 현상으로 작중인물간의 대화체로 계속 서술되는 대목에서 행간을 너무 자주 끊고 토막을 숨가쁘게 지어놓으므로써 오히려 경박한 느낌이 들게 되는 경우도 발견되는데 이런 현상들도 재고되어야 할 부분이다.(5-136) 우리는 고은의 민족서사시 [백두산]의 완간을 결코 작품 자체의 완성으로 보지 않는다. 착상으로부터 14년, 첫 집필로부터 9년이나 걸린 이 작품이 이제 완간되었으니 완간이란 실제로 보다 정제되고 확정된 완성을 위한 예비단계인 것이다. 서사시 [백두산]은 시인 개인에 의해 산출된 것이지만 이제 이 작품은 시인 개인의 소유물이라는 차원을 떠나 민족 전체의 문화적 자산으로 이미 전환되었다. 완간의 의미도 바로 이런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작가 자신의 지속적인 노력은 물론이요 문단의 비평가 학자들은 이 작품의 진정한 완성을 위해 작품의 최종적인 책임을 떠맡고 있는 작가에게 고견과 충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 누구보다도 시인 자신은 이 작품의 완성을 필생의 대사업으로 여기고 이제부터 찬찬한 여유로써 작품을 숙독하며 이 과정을 통하여 세부적인 손질과 광채내기를 계속해가야만 할 것이다. 이런 판단에서 우리는 작가에게 대단히 외람되지만 서사시 [백두산]에 대한 몇 가지의 애정어린 충고와 제의를 덧붙이고자 한다. 편의상 작품의 전개과정에 따라 소상히 살펴보겠다.

먼저 작품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삼지연 의병부대 결성 및 준비과정에서 자금조달의 경과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에 관한 아무런 서술도 없으니 자연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듯한 신화적 느낌이 부각되고 생동감이 떨어진다. 다음으로는 김투만의 14살짜리 어린 아들 바우의 활약상이 너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①바우는 일본군 동정도 살피거니와

이런 못된 장사치도 적발해두었다가

한꺼번에 그물 쳐 붙잡을 작정이었다

그는 신가파장 객주점에

금점업으로 떵떵대는 사금장이들과

한 봉놋방 쓰며

장바닥 저자부터 훑어 보았다

(중략)

바우가 돌격전 중심의 강원윤 부대에서

첩보 척후에 이골이 난 차도선 부대로 전출되어

싸움의 지략을 넓히다가

신가파진으로 파견되니

열네 살 신병이나 놀랍게 활약하였다

------2-211 

②총을 어깨에 걸고

두터운 옷에 탄띠 무겁게 둘러

과연 산중 노포수 꼴이 되어

젊은 얼굴에 수염발 거칠었다

싸움 치르고 난 소년 바우

------2-237 

인용된 부분은 아무래도 실감이 덜하다. 어린 소년의 몸으로 의병부대에 종군하게 된 것까진 납득이 가나 위에 묘사된 부분은 지나친 과장으로 흐르고 있다. 민중중심적 가치관으로 일관하려는 작품정서에서 이런 서술들은 자칫 영웅주의적 사고로 떨어질 위험성마저 있다. 또한 의병 경포수 윤종남이 왜적과의 교전에서 적의 포탄에 맞아 두 다리가 완전히 절단되었는데도 불과 몇달 뒤 천행으로 치유되어 신체불구의 몸으로 두 사람의 화전꾼 의병이 드는 담가를 타고 다니며 신출귀몰한 포격술을 구사한다는 장면이 있다. 여기에서 지체불구자 윤종남의 활동이 너무도 민첩하고 기민하게 묘사된 것이 도리어 어색한 느낌을 준다.(2- 136) 다음으로는 연도의 혼란이다. '1911년 10월 싸락눈이 변하여/ 큰 눈으로 퍼붓던 날'(3-179) 김투만 일가는 내둔촌을 떠난다. 그런데 동경성, 영안, 액하를 거쳐 목단강에 이미 도착했는데도 작가는 '1911년 새해가 왔다'(3-264)라고 착오를 보인다. 순서대로라면 1912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앞에서부터 틀려오니 계속 잇달아 혼란이 발생한다. 이미 투만 일가는 밀산 한흥동에 가서 정착해 살고 있는데 '돌석이와 바우가/ 1912년 음력 5월 단오날 대기 위하여/ 나흘 전에 밀산을 떠났다'(3-319)라고 되어 있다. 이 또한 1913년이 되어야 맞는데 이렇게 되면 뒤로 가면서 줄곧 연도의 혼란이 계속되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 속의 연도와 시간, 나이의 경과를 합리적 순차에 맞도록 전반적인 재조정을 주도면밀하게 해야만 할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들을 평면적으로 서술하기보다는 등장인물들의 활동과 적절히 배합하고 극화를 시켰더라면 그 효과가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도 있었고, 또 때로는 작가의 개입이 너무 지나치게 잦은 느낌이 드는 경우도 있었다.

돌석이가 밀산 일대에 정착한 후 청국인 지주 왕뱁새의 양자가 되고 왕뱁새의 사후 그의 땅을 물려받아 지주노릇을 하며 원성을 듣는 대목도 너무 느닷없다는 생각이 든다.(3-297) 청국인 왕뱁새가 돌석을 아무리 자신의 목숨 구해준 은인이라 간주하나 만난지 얼마되지 않는 조선 청년에게 그의 모든 재산을 물려준다는 사실이 적절하지 않고, 또 그 다부진 투쟁정신의 소유자인 돌쇠가 재물로 말미암아 갑작스럽게 신념의 파탄을 일으킨다는 표현도 어딘지 실감이 떨어진다. 또 김투만이 과거 왕뱁새의 땅을 인수받는 과정도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4권 77면에서 79면까지의 서술은 바우와 구슬봉이가 혼례를 올린 첫날밤 이젠 낭군이 된 바우에게 이르는 말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말의 어투나 내용이 아내가 낭군에게 하는 말투로는 어딘지 부적절하고 너무 강론적이라는 느낌이 있다. 4권 83면의 왕청현 덕화사가 86면과 132면에는 화룡현 덕화사로 되어 있는데 확실한 소재로 통일되어야 할 것이다. 완간이 된 초판본에서 아직 군데군데 탈자 오자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는 사실도 지적하고 싶다. 4권 186면에는 추만길(김투만)을 뒤쫓는 개털모자 성권형, 즉 이수동에 관한 서술이 나온다. 이수동은 조화연의 오빠 조방연으로부터 어떻게든 추만길을 몰래 처단하라는 밀명을 받은 자객이다. 그런데 만길이 이수동에게 잡혔다가 풀려나는 과정이 부자연스럽다. 이수동이 조방연에게 20원을 전보송금으로 받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도 어색하다. 일본헌병대의 특보로 있는 자가 만길, 즉 김투만의 항일투쟁 활동을 알면서도 그냥 풀어줄 리가 만무하다. 그냥 풀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투만에게 목욕과 이발을 시키고, 호화스런 요리에 간천엽까지 먹이질 않는가? 이 장면은 후대의 이유도 설명되어 있지 않고 그래서 실감도 현저히 떨어진다. 일반적인 진행대로라면 이수동이 돈은 돈대로 챙기고 또 김투만을 검거하여 일본군 헌병대로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처리방식이 아닐까. 그런데도 자신을 풀어주고 후대해준 이수동을 독립군 투만(김광수)은 나중에 밀산으로 이동한 후 몽고인 마을로 정찰을 나갔다가 인파속에서 다시 그를 만나 체포하여 처형하게 된다. 이때 이수동을 대하는 김광수의 자세가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다. 이수동을 똥통으로 끌고가서 죽인 다음 살인행위에 대한 괴로움을 느껴서 '나는 살인자다'라고 외치는데 이는 여러 격전지에서 왜적들과 무수한 전투경력을 가진 역전의 노장이 보이는 의연한 자세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죽은 이수동의 시체가 빠져들어간 똥웅덩이의 얼음구멍에서 똥수달 한 쌍이 물고기를 물고 나타났다가 사라졌다는 장면은 어색한 정도를 이미 훨씬 넘어섰다.(7-62) 수달이라는 동물의 생리는 깨끗한 물이 아니면 결코 살 수 없다. 강물의 오염 때문에 미시시피강 상류의 수달 서식지가 심각한 생존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는데 엄동설한, 그것도 똥웅덩이 속의 똥수달은 웬 넌센스인가. 작가는 아주 사소한 생태학적 지식조차 확인해 보지 않고 다만 충동적인 추측과 상상만으로 서술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 이런 넌센스는 5권 24면에서도 계속된다. '시베리아호랑이 숫놈이/ 낙엽에 배깔고 앉아 있으니/ 바위 하나로 위장하고/ 지나가는 사슴을 노리는 것'(5-22)이라고 했다. 차철수가 그 호랑이를 잡아서 먼저 간을 꺼내어 소금에 찍어 먹고 드디어 호랑이의 배를 갈랐는데 어떤 광경이 나타나는가. 

그놈의 피엉긴 밥통을 둘로 갈랐다

아 거기에 삼켜진 사람 가슴팍 있다

흰 종아리 한토막 있다

이놈이 사람 하나 잡아 먹고 오는 길이었다

-------5-24 

이른바 식인호에 관한 이야기이다. 식사후의 호랑이는 결코 먹이를 노리지 않는다는 것이 사냥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배가 부른 호랑이는 포만감과 소화를 위하여 우거진 밀림속으로 몸을 숨기고 대체로 깊은 잠을 잔다고 한다.(이상오, {세계명포수열전} {수렵비화}(한국야생동물기), 박우사, 1971 참조) 그런데 금방 사람을 통볁로 삼키고 오는 호랑이가 다시 사슴사냥을 위해 공격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동물학적 상식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거의 넌센스에 가까운 이런 표현들은 웃음꺼리가 될 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고 그 경박성이 작품의 순조로운 이해를 차단하는 해로운 걸림돌이 된다. 돌석이와 투만이 왕뱁새의 논을 부친다 했는데 작품의 뒤에 가서는 바우네가 아직 쌀농사를 안짓고 사냥질로 일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두 사실의 설명도 앞뒤가 맞지 않다.(4-224) 밀산 생활 끝에 다시 독립군으로 복귀하려는 투만 부자를 보내는 조화연과 구슬봉이의 태도가 너무도 의연한 것이 도리어 부자연스럽다.(4-253, 256) 화연은 떠나려는 남편 투만에게 "그러시지요"라고 말하고 며느리 구슬봉이는 바우에게 "가 장부노릇 하오."라고 말한다. 나중에 바우(김부영)가 서울에서 만주로 떠나기 위해 아내 구슬봉이와 헤어지는 장면도 어색하다. 바우는 가장으로서 가솔들을 데불고 머나먼 부여땅까지 왔다가 다시 서울로 이주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남편이 '나 떠날 터이요.'라고 말했을 때 구슬봉이의 반응은 의외에도 담담할 뿐 아니라 전혀 놀라는 기색조차 없다.(9-42) 혁명가의 아내는 꼭 이런 자세를 보여야만 하는가. 왜 이들이라고 남편을 떠나보내는 인간적인 애달픔이나 처연함이 없었을까. 그러한 묘사가 오히려 더욱 실감나는 표현이 아닐까. 작가는 모든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일관되게 모범적이고 영웅적인 행동으로만 이끌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홍범도 의병장에 의해 주도된 왜적과의 전투에서 크나큰 전과를 올리고 민족의 가슴을 격동 고무시켰던 봉오동 대격전의 장면묘사가 너무 단조롭고 평면적 서술로 처리된 느낌이 없지 않다.(4-266) 방탕한 술집 여자 출신으로 중광단에 들어가 항일유격대의 여장부가 되고 두만강 압록강 일대에서 한충여장군으로 이름을 떨치던 앵순이에 관한 성격묘사가 도합 세군데(4-34, 38, 5-104,108, 5-157)에서 펼쳐지는데 이 묘사들에서 다소간 과도한 비약이 느껴지고 상호충돌하는 점이 있다. 5권 157면에서 김광수(추만길, 김투만과 같은 인물)가 번개작전이라는 특공대 선봉작전을 펼치며 신출귀몰한 전략전술가로 변신 발전하고 있는 과정이 너무 돌연한 느낌이 없지 않다. 한편 김광수와 아들 바우가 모두 떠난 밀산의 집안 살림을 허총이라는 인물이 모든 살림을 도맡아 꾸려가고 있는데 김광수의 아내와 며느리가 집에 남아 있는데도 이런 역할을 맡아 있는 허총의 신분과 역할, 생존의 방식이 불분명하다. 심지어는 허총이 농사와 가사, 집안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도맡아 꾸려가고 또 이것이 김광수의 아내 조화연에 대한 사랑때문인 것처럼 표현하는데 이는 역할의 필연성이 결여된 대목이다. 허총이라는 인물의 성격이 단지 가장이 없는 밀산 한흥동의 집에 부녀자들만 남아있는 것을 우려하는 작가 자신의 의도에 충실히 복무시키기 위해 설정된 역할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허총은 가래에 핏덩이가 섞여나오는 심한 폐결핵 환자로서 그 엄동설한에 북국의 여러 지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목적이 불분명한 정보수집을 하기도 한다.(6-69,70) 독립군의 밀산 이동에 따라 집에 돌아온 김광수는 아내의 무덤을 찾아가는데 이 부분의 묘사가 너무 담담하고 처절성이 부족하다. 양반집 규수의 몸으로 모든 것 다 파탈하고 험하디 험한 만주와 시베리아 벌판까지 따라와 독립군의 아내가 되어 온갖 고통과 고독을 감수하다가 죽은 조화연. 김광수가 이런 아내의 죽음을 접하는 대목이 너무 냉담하기까지 하다. 아들 바우도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알고서도 어떤 내색조차 보이지 않고 무턱대고 첩자제거작전에 나선다고 했는데, 전혀 처절한 실감이 들지 않는다. 독립군들은 모두 이렇게 피도 눈물도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까지도 억제해야만 하는 존재인가.(7-54,56) 밀산에 주둔하던 독립군들이 러시아로 이동할 때에 아버지 광수는 떠나면서 아들 바우를 밀산에 잔류시킨다. 그 잔류의 이유는 다음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 

바우야

너는 여기를 지켜라

네가 여기를 지켜야

내가 돌아올 곳이 있게 된다

이제 이곳은 타향이 아니다

내 고향

네 고향이다

네 때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간도동포 7천명이 죽어갔다

그 원수 갚으려거든

네 어미 한을 풀어주려거든

네가 장승이 되어

여기를 지켜라

반드시 내가 돌아오리라

------7-65

 

'네가 이곳을 지켜야 내가 돌아올 곳이 있게 된다'는 진술과 그 이후의 서술부분에서 인과관계가 부드럽지 않다. 또한 아버지의 이 말에 바우가 '단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랐다'는 대목도 어딘지 허전하고 어색하다. 바우는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감정을 전혀 내비치지 않던 성격이 아니던가.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서 사소한 문제들까지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표현의 합리성 여부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8-41,42) 김광수가 러시아의 자유시에 머물면서 니콜라이 장, 알렉산드라 김 따위의 러시아식 이름을 들을 때마다 세계가 넓어진 것을 새삼 깨닫는다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이제 조선은 조선만이 아니라

온 세상 어디에도 나아가

조선의 세계

그리고 세계의 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런 것을 깨쳤다

그는 이곳 시베리아에 와서

밀산의 바우 옥단도

그의 동지들도 떠올리지 않았다

------8-48 

주인공 김광수가 맑시즘을 경험하면서 한 사람의 세계주의자가 되어간다는 정황의 묘사이다. 마음 속에 최소한의 갈등조차 없이 새 세상, 새로운 시대, 새로운 혁명에 온힘을 기울인다는 변화가 느닷없고 어색하기까지 하다. 김광수로 말할 것 같으면 백전노장의 경력을 지닌 다부진 신념형 성격의 소유자이다. 밀산을 떠날 때도 아들 바우를 잔류시켜 놓고 자기가 돌아올 것을 암시하고 있는데 맑시즘이라는 신사조와 접하게 되면서 아들과 딸 등 가족 모두를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이 대목에서 김광수의 성격은 도리어 불분명해져 버렸다. 이렇게 변모한 김광수를 작가는 너무 돌연하게 흑하사변의 와중에서 의미없는 죽음으로 몰아가 버리고 만다.

부모를 모두 잃은 바우가 이명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후 허총도 죽게 되니 혼자 남은 외로움 속에서 바우는 밀산을 떠나 문득 어머니의 고향인 충남 부여로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데 이 대목이 느닷없고 어색하다.(8-81) 철령 낭떠러지 끝 바위굴에서 도망중이던 부모의 첫아들로 태어난 바우는 그후 줄곧 삼지연 등 북방지역으로만 떠돌며 성장해왔다. 바우는 철령 이남 지역은 가본 적도 없고, 전혀 고국의 형편을 모른다.(바우에게 고향의식이 있다면 아마도 그가 소년시절을 보낸 삼지연 부근에 더욱 귀소의 정을 가졌을 것이다) 아무리 외가 고향이라 하지만 전혀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외국처럼 생소하게 느껴지는 부여땅을 돌연히 가겠다는 발상 자체가 다분히 충동적인 느낌이 있다. 그의 부여행은 드디어 굳은 결심으로 이어지고 또 '무엇보다 옥단이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고국으로 가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귀국의 명분을 밝히는데 이 서술에는 아무래도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다. 앞에서 보아온 바우의 성격은 결코 순간적인 감정에 좌우되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우와 옥단이 원산, 서울, 천안을 거쳐 부여까지 가는 길이 첫길인데도 너무도 거침없이 찾아가는 모습이 부자연스럽다. 바우, 구슬봉이, 옥단 일행이 부여가는 도중 서울에서 숙박할 때 남대문 옆 술청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집의 주인 노파가 뜻밖에도 부여 조감사댁 침모의 딸로 조감사댁 안주인을 시봉했던 처녀였다는 장면이 나온다. 이 대목은 우연이라도 너무 심한 우연으로 고소설적 우연성의 남발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우연성은 이후에도 빈번히 구사되는데 그것이 도리어 작품의 실감이나 생동감을 떨어뜨리는 장치가 된다. 나중에 바우가 만주에 가서 지낼 때 해란강대혈안을 겪게 되고 곧 서울로 오게 되는데 이때 중로에서 꼭 들어가지 않아도 될 금강산을 굳이 들어간다. 내금강 장안사에서 우연히 만난 한 승려가 또 님웨일즈의 {아리랑}의 중심인물인 혁명승 운암스님, 곧 김충창(김성숙)의 상좌 방건곤이었다는 것이다.(9-109) 바우의 금강산 유람이 꼭 김충창의 이미지와 인연을 지으려고 미리 계획된 것처럼 작위가 느껴지는데 이 장면은 몹시 어색하다. 서울 마포에 와서 살던 바우의 가족을 성북정으로 이사시키는 것도 작가의 욕심이다. 마치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과 관련된 서술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것인듯 여겨진다. (10-16) 집필과정에서 우연성은 가급적 축소시키고 필연성을 더욱 확대 보강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작품의 실감과 자연스러운 표현을 위하여 보탬이 되는 조치라 할 수 있다. 우연성의 남발은 서사시의 진실성을 급격히 감소시키는 작용을 하게 되므로 그것의 사용에는 신중한 주의가 필요하다. 바우 일가가 외삼촌 조방연이 남긴 폐가로 와서 부여살림을 시작하는 과정이 비현실적이다. 조화연의 소식이 끊긴지 오래 되어 그녀의 소생이 있는지 없는지 존재조차 모르던 외삼촌 조방연의 집에 얼굴도 모르는 생질이 먼 북방에서 찾아왔으니 주변 마을에선 대단한 화제거리였을 것이다. 식민지의 관청에서 신분조사도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바우일가는 하등의 장애없이 편안히 정착한다. 원수처럼 생각하던 여동생의 아들에 대해 외삼촌 조방연이 과연 그처럼 호의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8-95,96) 조방연의 성격에 관한 작가의 서술도 대체로 혼란스럽다. 조방연은 원래 총독부의 측근에 기생하는 타락한 친일적 관변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생질 바우와 구슬봉이의 시봉을 받아서 폐병이 완쾌되고 야학당 선생이 된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8-99) 더구나 1929년 전국노동자총파업 소식을 생질에게 전해주는 장면, 질녀 옥단을 데리고 서울로 가서 신간회, 근우회, 흑풍회 등 진보적 운동단체들과 관련을 맺게 해주는 장면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물론 조방연이 회개를 하게 된 배경으로 머슴 만길과 누이 화연의 후일담을 듣고 무한한 감동에 빠진다든지 동경정치학교 졸업생인 친구 원종구의 영향으로 퇴폐적인 생활을 정리한다는 장면(10-11)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먼저 작가가 조방연을 개과천선시키려는 욕심이 너무 조급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폐결핵과 아편장이에다가 금치산자 선고까지 받았던 조방연의 집앞에 방연의 아기를 갖다버린다는 서술도 비현실적이다.(8-98) 그는 당시 아무런 항산(恒産)이 없는 거지와 다름 없는데다가 신체마저 거의 죽음 직전에 다다랐는데 어떤 여인이 방연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의 아기를 낳아줄 수가 있었을 것인가. 방연은 이미 극도의 심신쇠약에다 무일푼으로 전혀 외도를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바우는 밭농사와 논농사를 익혀

옛날 아버지 일을 이어 받았다

------8-98 

바우가 부여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익히는 것처럼 서술되어 있는데, 이건 작가의 착오이다. 바우는 밀산 한흥동 시절부터 이미 부친 밑에서 농사일을 도운 경험이 있다. 게다가 부친이 시베리아로 떠난 후 밀산에서 잔류 가족과 더불어 집을 지키며 살 때 부친이 짓던 농사를 도맡아 지었다. 바우가 밀산을 아주 떠날 때도 가옥(농가)과 축사에 대한 미련을 갖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도 논농사 밭농사를 새로 익힌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 더우기 옥단을 서울로 보내놓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올 사람 하나가

여기 왔다

김옥단

장차 가시밭길 헤쳐나갈

조선여성의 별

김옥단

그가 여기 와 섰다

-----8-112 

서사시 [백두산]에서 김투만과 아들 바우는 의병에서 독립군까지 영웅적 투쟁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나 투만의 아내 조화연과 딸 옥단까지도 모두 영웅화시키는듯한 표현은 경직되다 못해 답답하다. 왜 그들은 반드시 영웅이 되어야만 하고 또 영웅적 인간상에 걸맞는 행동을 해야만 하는가. 어떻게 보면 이런 무리한 관점들이 서사시 [백두산]의 분위기를 자주 획일적 폐쇄적 분위기로 고착시키고 민중적 관점의 확대와 상승을 일정하게 억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이런 대목도 있다. 바우 일가가 부여에서 서울로 이사한 뒤 비로소 민적을 취득한다고 하는데, 이전까지 살던 부여는 서울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 시골인데도 어찌 민적도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일까. 앞서도 언급했지만 조방연의 생질로 인근에 소문도 무성했을텐데 부여경찰서의 감시와 정보망에 과연 무사할 수가 있었을까. 그 뿐만 아니라 그날밤 두 사람은 실로 오랫만에 심신이 일치된 운우의 정을 나눈다. 정사를 끝낸 아내는 남편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만날 날 있겠지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다분히 단순멜로드라마의 차원으로 품격이 현저히 떨어져 있다.

그동안 바우는 늙어 있다가 다시 젊음을 찾아서 몸과 마음이 불덩어리가 된다는 진술이 있으나 이는 석연치 않다. 느닷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가 만주에 온 목적도 불명확하다. 그러므로 해란강대혈안 후에 바우는 또 서울로 되돌아오는데 상경의 동기까지 잇따라 불분명하다. (9-103) 뚜렷한 목적없이 금강산 유람을 하고, 동생 옥단을 찾아가서 기껏 '옥단아 시집갈 생각을 하여라' 라고 맥빠진 권유를 하고 있다. (9-119) 옥단은 거의 철녀(鐵女)라 불리울만큼 냉혹하고 철저한 이지적 성격의 여성혁명가이다. 그런 그녀가 오빠와 상면한 후 돌연 감상적 태도로 바뀌는 모습도 어쩐지 부자연스럽다. 그녀는 자기갈등에 빠져서 술을 마시고 '나는 무엇인가?'라고 탄식하며 눈물까지 짓는다.(9-123) 이는 혁명가의 전형적인 태도에 걸맞는 묘사가 아니다. 옥단이의 가명이 강주룡, 또는 김주룡으로 바뀌는 대목은 어색하다. 강주룡은 평양고무공장 여성노동자 출신 혁명가의 이름으로 옥단이가 지극히 흠모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이미 세상에 너무 노출된 이름이므로 반제투쟁에 종사하는 옥단과 같은 투사가 항시 사용하는 가명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이런 대목 자체가 진짜 강주룡과의 혼동을 일으킬 우려마저 있다.(10-16) 바우가 서울에서 외삼촌의 친구 원종구를 찾아가 그를 설득하여 거액의 공작금을 타낸다. 이때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단지 그의 언설만 듣고 공작금을 흔쾌히 내어준다는 서술에는 필연성이 적다. 마치 연암의 {허생전}에서 허생이 변부자를 찾아가 장사밑천을 얻어내는 대목을 연상시킨다. 바우도 만주에서 서울까지 간 목적이 기껏 원종구의 돈을 받아내기 위한 것이었던가.(10-15) 더우기 바우가 공작금을 챙겨서 만주의 봉천으로 가는데 뚜렷한 공작이나 씀씀이도 없이 장백까지 흘러오게 되고 '한갓 병든 방랑자'(10-36)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바우의 죽음도 너무 어처구니 없다. 작품의 전개과정에서 중심인물 바우의 역할을 너무도 급속히 위축시키고 있는 것이 혹시 작가의 초조감의 작용은 아닌지. 

이제 나이 48세

그 뜨거운 세월 지나가

한쪽 손목 잘려나간 장사꾼으로 누워 있으니

그로서는 지난날이 강하였다

소년의병

청년독립군

그 시절의 싸움 지나

이제 그는 한갓 병든 방랑자

-----10-35 

바우가 공작금으로 아편을 구매하여 동북항일련군의 전비로 헌납할 결심을 하게 되자 그토록 고질적이던 된기침과 각혈조차 멈추어지고 폐결핵이 완쾌되었다는 서술도 필연성이 결핍되고 이치에 맞지 않다. 바우가 비명에 죽고나서 한참 후에 서울에서 바우의 정체가 탄로나고 아내 구슬봉이가 잡혀가는데 어떤 연유로 탄로가 났는지가 밝혀져야만 할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중환자 조대운을 사랑하게 된 김옥단이 중환자 막사의 시체들 옆에서 조대운과 정사를 나누는 장면도 극히 부자연스럽다.(10-113) 

4. 서사시 [백두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설정 

서사시 [백두산]에는 많은 서사적 주인공과 극적 인물들의 이름이 나온다. 작품을 조금만 유의해서 읽어보면 대개 작품공간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중심인물형상이 있고, 그 중심인물을 보조하는 보조인물형상이 있다. 그리고 기타 다수의 인물들은 거의가 방계적 인물형상의 성격을 지닌다. 무릇 서사시 작품의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은 주인공의 형상창조에 관한 문제이다. 주인공의 성격과 형상에 대한 문제를 올바로 풀어가야 서사시의 인간학적 본성을 정확히 구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가가 내세우는 형상적 과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주인공은 작품의 형상체계와 구성조직에 있어서 형상의 초점이 된다.(리동원, {작품의 주인공}, 평양문예출판사, 1990) 한편의 서사시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들은 대개 그 작품 주인공의 형상창조는 어떻게 되어 있는가, 주인공의 형상적 위치는 어떠한가, 주인공의 성격표현 방식과 전형성의 문제는 과연 적절한가라는 항목들이라 하겠다. 그러면 지금부터 중심인물형상의 성격설정characterization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이 작품의 가장 대표되는 중심인물은 바로 추만길이다. 추만길은 주로 조감사댁의 농토를 맡아서 경작하는 머슴의 신분이다. 비록 피지배층에 속하는 일자무식의 하층민이지만 자신의 삶을 개척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적극적인 성격을 가졌다. 때로 가부장적 완고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고집스러움, 억척스러움, 강한 신념, 현실개조형 심성의 소유자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는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면서 현실의 여러 국면에서 그 현실의 상황에 걸맞도록 적절히 이름을 바꾸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추만길의 변성명에는 그의 삶의 전반적 경로가 압축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추만길→심억만(심서방)→김투만→김광수(김동조) 

추만길은 원래의 이름이요, 조감사의 외동딸 한양아씨 화연과 눈이 맞아서 북방으로 달아날 때의 이름은 심억만, 심서방이다. 삼지연 통나무 삼간집에 정착하고 사냥꾼으로 살아갈 때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양아버지 서필노인이 김투만으로 성씨와 이름을 다시 바꾸어준다.(1- 106) 투만은 아마도 두만(豆滿), 혹은 토문(土們, 圖們)의 중국식 음차(音借)로 여겨진다. 이로부터 그는 삼지연창의대, 백두산의병대, 대한독립군 홍범도연대 소속으로 봉오동, 청산리 등 대첩에 참가하여 큰 전공을 세우기도 하고, 국민회에 소속된 독립군으로서 민족주체의식으로 철저히 무장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한때 용정에서 김투만을 뒤쫓는 자객 이수동에게 체포되었다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하고 풀려난 후 김동조라 스스로 개명한다. '동조(東朝)'란 글자 그대로 '동쪽나라 아침'이란 뜻이니 민족해방 염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그는 투만이란 이름 대신

다시 한번 다른 이름 지어야 했다

기구하여라

또 이름 바꿔야 하다니

기구하여라

제 이름 하나 온전히 통할 수 없다

-----4-188 

그러나 이 이름은 곧 아내 화연에 의해서 새로 고쳐진다. 이유는 이름에 뜻(민족주의적인 의미)이 너무 들어간다는 것. 하수상한 세월, 이름에 뜻이 너무 들어가도 감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서 다시 평범한 느낌으로 바꿔주는 이름이 김광수이다. 실제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많은 민족운동가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이 이름을 바꾸거나 익명, 가명, 별호 등을 사용하며 활동한 예는 허다하다. 추만길로 시작된 중심인물의 민족해방을 위한 눈부신 활약은 끝내 김광수라는 이름으로 한 생애가 마무리된다. 시베리아의 자유시까지 밀려가서 한때 맑시스트가 되기도 하고 결국 이국땅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동족상잔인 흑하사변(1921:일명 '자유시참변')까지 경험한다. 통신특무군관으로 근무하던 김광수는 박일리아의 니항군대와 오하묵이 이끄는 자유대대 사이에 나아가 명분없는 동족대립이 곧 파멸임을 비판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8-55,56) 작품 속에서의 그의 삶의 경로는 분명히 개성적 인간이나 실제로 구현되는 그의 삶의 빛깔은 보편적 인간의 성격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형적 인간상의 위상으로까지 상승되지는 않고 있다.

두번째의 중심인물은 조화연이다. 그녀는 왕조말기 지배층의 한 사람인 조감사의 외동딸이다. 화연은 그녀의 본명 대신에 아씨, 한양아씨로 불려진다. 그러나 화연의 운명은 자기 집안의 젊은 머슴 추만길의 존재를 받아들임으로써 완전한 극적 전환을 이룬다. 추만길과 부부가 되고서 그는 더이상 지배층으로서의 자기신분을 포기해버린다. 지배층의 민중화라 할까. 이것을 기대하기란 예나제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이름도 심억만의 부인 심서방댁, 혹은 조백녀(백두산 여자라는 뜻)로 바뀌어졌다. 그녀의 삶의 경로는 다음과 같다. 

조화연(아씨, 한양아씨)→심서방댁→조백녀(조화연) 

이런 삶도 그녀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었므로 조화연도 추만길과 마찬가지로 억척스러운 심성을 가졌으며, 남편에 대해 더없이 순종적이고 주변현실에 대해선 적극적인 성격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조화연이 자기집 머슴과 사랑의 도피행각을 감행한다는 대목은 웬지 현실감이 부족하다. 아주 특수한 경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런지 모르지만 대개 일반적인 경우 지배층이 하층민과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기득권과 신분을 송두리째 포기해버리는 일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조백녀는 남편 김광수를 위해 현실의 모진 고통과 외로움을 인내하며 살아가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장남 바우와 딸 옥단을 낳아 성장시킨다. 독립군으로서의 남편의 마음이 해이해질 때마다 다부지게 남편의 결심에 서슬푸른 긴장을 주기도 하는 매섭고도 현명한 여인. 1911년 초겨울 그들이 삼지연 산채를 불지른 뒤 머나먼 밀산으로 떠나는 도중에서 투만은 격심한 고통을 참지 못해 농사꾼시절을 그리워 하며 돌아갈 계획까지도 한다. 그러나 바우어머니는 그 무서운 세월속에서도 비바람 눈보라를 견디며 살아온 사스래나무에 자신들을 비견하며 남편의 갈등하는 마음을 돌려 세운다.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나서 마침내 남편과 아들을 독립전쟁터로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서 병마와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결국 지켜주는 사람 하나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밀산 한흥동 본구 바우네 집 안채

식구들 들에 나가 일하는데

바우어머니 조씨 혼자 숨거뒀다

말 한마디 남길 데 없이

그 방안 마지막 숨결 흩어지며

여기 한 일생이 다하였다

바람이 인다 말똥가리가 날아갔다

바람에 빗방울 섞여 뿌렸다

그렇게도 사랑하는 지아비와 아들 싸움터 보내고

말 한마디 남길 데 없이

그 이름 조화연

눈감았다

------4-290,291

 

세번째의 중심인물은 김광수 내외의 장남 김바우. 하층민 추만길과 양반집 가문의 외동딸 조화연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의 출생지는 철령 낭떠러지 끝 바위굴, 용납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수색과 정탐에 쫓기던 부모는 신분과 거주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먼 곳으로 도피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 자식아 내 세상아

바위굴 바위 위에서 낳은 놈이니

바우라고 부르리라

만고풍상 다 맞고도

끄떡없는 바위이거라 백성이거라

바우라고 부르리라

------1-33 

아버지는 일자무식이었으나 그들 일가가 터잡은 삼지연 통나무 삼간집에서 유평마을 산골 훈장 출신인 서필노인으로부터 본격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서필노인은 바우를 백두산 천지로 데리고 가서 천지의 차고 맑은 물에 세번 담근다. 일종의 세례의식이랄까. 서필노인은 바우를 천지의 물에 담그기 전, 천지신명께 어린 아기를 헌납하는 기도를 올린다. 이로부터 바우는 건실하고 다부진 의식을 가진 소년기와 청년기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아버지와 함께 삼지연 창의대에 참가하여 왜적과 싸우는 체험을 가진다. 김투만 부자의병의 모델의 근원은 정환직 부자의병의 활동에서 비롯된 듯하다.(2-207) 정환직은 을사조약 후 고종의 밀지를 받아 아들 용기와 함께 영천 등지에서 기병하였다. 바우는 후치령전투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일본군을 죽인다. 이후 14살 소년병으로 중평장전투 등 여러 격전지를 종군하던 중 봉오동대격전에서 한 쪽 손목을 잃고 불구의 몸이 되어 독립군 전사로서의 혁혁한 경험을 쌓아간다. 그야말로 갖은 '비바람'속에서 살아간 풍운아적인 생애이다. 그는 갑오동학군 출신 노인의 손녀딸인 구슬봉이와 혼인을 맺게 되고 밀산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인물이 된다. 황막한 만주벌판을 누비며 거치른 격전지에서 전투경험을 쌓아온 바우는 부모 별세 후에 어머니의 고향 충남 부여로 가족들을 이끌고 떠난다. 부여에서 거주하며 타락자인 외삼촌 조방연과도 좋은 관계를 회복하고 아들(김묵:8-99)을 낳는다. 그후 바우일가는 다시 서울로 이주하게 되고 바우는 서울에서 처음으로 민적을 얻어 식민지 치하 조선사람의 서러움을 의식한다. 그러나 긴장이 아주 풀려버린 서울생활에 갈등하는 바우는 드디어 서울을 떠나 만주로 가서 혼란스런 생활을 한다. 바우는 큰 돈을 벌기도 하고 공산주의자들과도 교유를 가지다가 뚜렷한 목적이 없이 귀국하여 외삼촌의 친구 원종구에게서 거액의 공작금을 받아낸다. 이 돈을 휴대하고 다시 만주로 갔다가 폐결핵을 앓게 된다. 누이 옥단이 만주에 와서 활동한다는 소식을 들은 바우는 누이가 소속된 항일련군으로 활동물자를 보낸다. 그러나 보천보전투의 여파로 바우는 일본군에게 결핵요양소에서 체포되어 모진 고문끝에 총살당하고, 시체는 혜산진 망루밑 벼랑에 유기된다.(10-67) 결국 48세를 일기로 곡절많은 생을 어이없이 마감한 바우의 처참한 주검은 압록강 세찬 물살에 허망하게 떠내려가고 만다. 이름을 통해서본 바우의 삶의 경로는 어떠한가? 

김바우→김부영(김묘향, 김길주) 

바우는 아버지의 잦은 변성명에 비해 이름을 그다지 많이 바꾸지 않았다. 이러한 바우의 삶은 아버지 투만의 삶과 거의 동일한 궤적을 밟아가고 있으나 아버지보다도 훨씬 적극적이며 이지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러나 때때로 발생하는 자신의 충동적인 성격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가 적지 않다.

네번째의 중심인물은 김투만 내외의 외동딸 김옥단이다. 아버지 투만과 오빠 바우가 삼지연창의대에서 첫 의병활동에 종군하고 있을 무렵 삼지연 산채에서 태어난다. 

이 어지러운 세상

한세상 살기 위하여

새 목숨 태어나고

새목숨 낳은 어미 살아났다

다음날 서필노인이

이름 짓기를

옥단이라 하였다

백옥같은 김옥단이라!

백두산 큰 산 아래

옥단이라!

------2-112 

바우와도 나이 터울이 많이 져서 아버지와 오빠가 적극적인 투쟁활동을 펼쳐갈 때에도 옥단은 다만 어린 시절을 보낸다. 작품 속에서 옥단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시기는 외숙 조방연이 질녀를 데리고 서울로 가서 신간회, 근우회 등과 연결시켜주게 되면서부터이다. 부여출신 근우회 회원 김신복에 의해 근우회의 지도자 정종명, 허정숙, 주세죽 등 당대 최고의 혁신여성지도자들 앞에 옥단은 '장차 가시밭길 헤쳐나갈/ 조선여성의 별'(8-111,112)로 데뷔한다. 그후 옥단은 근우회를 중심으로 맹렬한 여성운동을 벌여가다가 새로운 혁신계열 여성단체의 조직업무를 담당한다.(9-29) 이때 옥단은 자신을 찾아온 오빠 바우의 결혼 권유를 일축해버리고 나약한 생활에 빠져있는 오빠를 도리어 힐책한다. 옥단은 드디어 평양고무공장의 여성운동가 강주룡을 찾아가서 노동쟁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후 옥단은 강주룡을 너무도 존경하고 흠모한 나머지 이름마저 주룡으로 바꾸어 행세한다.(10-16) 그러다가 다시 서울 노성회에서 활동하던 중 북방지역인 혜산진 갑산 일대의 여성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로 활동한다. 옥단은 드디어 항일련군 6사에 소속된 유격대원으로 김일성이 지휘하는 보천보전투에도 참가하게 되는데 이때 같은 대원이 일제의 관동군 첩자로서 몰래 숨어든 민족반역자임을 알고 권총대로 찍어서 무자비하게 처치해버린다.(분단 이후의 남한문학에서 김일성의 항일유격대 활동이 남한의 작가에 의해 작품속에 직접 반영된 것은 고은의 이 작품이 처음이다) 같은 유격대원으로 중상을 입은 조대운을 사랑하게 되나 조대운은 곧 숨을 거두어버린다. 항일련군이 궤멸되면서 옥단은 방황하게 되고 허기에 지쳐 뱀과 지렁이까지 날 것으로 먹는다. 계속 쫓기며 숨는 도피생활 중에 무참히 피살되고 만다. 이름을 통해서본 옥단의 삶의 경로는 다음과 같다. 

김옥단→강주룡(김주룡)→김결사(김옥단) 

옥단의 성격은 매우 빈틈없는 과학적 인식의 소유자로서 그의 철저한 사회과학적 신념을 현실속에서 부단히 실현시키려는 갈망을 갖고 있다. 이점에서 오빠 바우의 성격과도 대비된다. 옥단의 싸움은 오직 민족을 위하여, 아니 그 자신이 민족이기 위하여 싸울 수 밖에 없는 '작은 의무'요, '처절한 겸허'였다고 작가는 말한다.(10-136)

서사시 [백두산]에서 대표되는 중심인물 네 사람, 즉 김투만(김광수), 조화연(조백녀), 김바우(김부영), 김옥단 등 일가족은 죽음의 장소를 서로 알지 못한 채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이것은 조국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가족적인 평화란 보장될 수도 없고, 또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인식과 다름아니며 작가는 이것을 넌짓이 보여주고자 한다. 결국 민족과 조국의 제단에 바쳐진 김투만 일가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그 정황이이야말로 가장 민중적인 삶의 실천이며 전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는다.

서사시 [백두산]에 등장하는 전체 설정인물들 가운데 그래도 개성적 인물유형에 가까운 성격은 조방연, 서필노인, 홍범도, 허총, 앵순이, 이수동 등이며, 삼지연창의대 대원이던 화적출신 박도깨비같은 인물의 행동에서 도리어 풍부한 민중적 보편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이 작품의 목표는 애당초 반영웅주의적 지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영웅주의에 슬그머니 기울고만 혐의가 짙다. 서사시 [백두산]에서 주인공의 전형적 성격은 과연 제대로 확보되어 있는가. 핵심적 중심인물인 김투만 일가의 생애는 거의가 영웅적 인간상과 그에 걸맞는 위대한 삶의 행동으로 그려지고 있다. 중심인물의 전형성이 점차 약화되고 있으므로 리얼리즘적 서사시 특유의 인물형상 창정(創定)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말았다. 다만 모든 중심인물들의 최후를 하나같이 비극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작가는 이들이 민중적 보편성을 지닌 성격임을 강하게 환기시키려 한다. 하지만 이런 처리방식이 도리어 이 작품의 결말에 이르러 낙관적 전망을 차단하는 결과를 빚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주인공의 전형성이란 가장 참다운 본보기적 성격이 되어야 하고 또 시대의 거울로서 타인의 모범적 인간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5. 맺는 말 

서사시 [백두산]에서 작가는 전지적 시점을 구사하므로써 등장인물의 외면과 내면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어려운 일에 대체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는 서술자로서의 작가의 위치가 한군데에 고정되지 않고 매우 적극적으로 이동해 왔다는 반증에 다름아니다. 우리는 이 작품의 전편에 가득히 넘쳐흐르는 작가 자신의 사상과 지식, 관념의 배합을 경험한다. 중단강조, 대조강조, 경악강조 등의 다양한 강조법을 유효적절하게 구사하여 결말에 이르게 하는 솜씨도 가히 돋보인다. 더구나 이 방대한 작품의 구성과 전개과정에서 자칫하면 빠져들기 쉬운 산만성을 적절히 다스리면서 총체적 통일성을 이루어가는 복합구성법의 과정과 그 실제도 놀라웁다. 또한 이 작품이 지니는 구성상의 풍부함과 클라이막스가 내뿜고 있는 이른바 '계시의 순간'에서 우리는 서사시 고유의 예술적 전율과 감동을 체험한다.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중요한 중심인물 중의 한 사람인 옥단이 비명에 세상을 떠난 후 작가는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서술을 보여준다. 

마침내 눈 쌓인 세상 하나

그칠줄 모르고

눈 퍼붓는 세상 하나

높은 곳 낮은 곳

다 없어지는 세상 하나

아니 그것이야말로

한 나라가 아니라

온 세상 여러나라의 새로운 시작이므로

------10-135 

'높은 곳 낮은 곳/ 다 없어지는 세상 하나!' 아마도 시인이 서사시 [백두산] 전편을 통하여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세계인지도 모른다. 모든 고통과 차별이 완전히 소멸된 아름다운 탕평의 공간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장 강렬하게 내뿜고 있는 꿈과 갈망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이나 민촌 이기영의 [두만강]을 읽고난 뒤의 그 오래도록 두근거리며 가슴 떨리던 감격과 감동의 파장을 이 작품에서 충족할 수 없었다는 점을 솔직히 고백하고자 한다. 어떤 면에서 위대한 서사시는 당대의 그 어느 소설작품보다도 더 재미있는,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즐거움과 예술적 감동, 유익함 따위를 독자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때의 '재미'란 정서적 감동을 주는 미적 즐거움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대다수 문학의 장르가 그러하겠지만 서사시야말로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한층더 삶의 총체적인 표현이 되어야 하며 인간성의 탐구이며, 더 나아가서는 삶의 진정한 의미랄까, 혹은 살아갈 방향까지도 제시해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드디어 우리는 금세기 말 우리의 민족문학사가 이만한 대작 하나를 소유하게 된 기쁨을 참으로 경하해 마지 않는다. 더불어 우리는 그동안 이 큰 작품을 쓰느라 혼신의 힘을 다 바쳐온 작가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그 노고에 대한 경의와 위로를 드리고자 한다. 얼마나 남모를 난관도 많았으리. 아마 작가는 가슴을 조여오던 고통의 근원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떠나고 싶은 심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작가에게 이 작품의 완간이 바로 완성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싶다.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을 '완결이 아니라 미완'의 성격으로 겸허하게 규정하고 있음을 전작시집의 머리말 말미에서 볼 수 있다. 하나의 위대한 건축물을 그야말로 몇백년에 걸쳐 완전한 완성으로 이끌어가는 교훈을 되새기면서 우리 모두는 민족문학에 대한 긍지와 정성어린 관심을 가지고 줄곧 서사시 [백두산]의 진정한 완성에 동참하며 노력해가야 할 것이다.

이완근 이학준의 희망의 문학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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