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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조기천
2016년 11월 01일 00시 23분  조회:4369  추천:0  작성자: 죽림

장편 서사시

 

백두산

           / 조기천

 

 

머리시

 

삼천만이여!

오늘은 나도 말하련다!

<백호> 소리없는 웃음에도

격파 솟아 구름을 삼킨다는

천지의 푸른 물줄기로

 땅을 파몰아치던 살풍에

마르고  한가슴을 추기고

천년이끼오른 바위를 벼루돌 삼아

곰팡이 어렸던  붓끝을

육박의 창끝인듯 고루며

 땅의 이름없는 시인도

해방의 오늘 말하련다!

 

첩첩 층암이 창공을 치뚫으고

절벽에 눈뿌리 아득해지는 이곳

선녀들이 무지개 타고 내린다는 천지

안개도 오르기 주저하는  절정!

세월의 류수에

추억의  거슬러올리라-

어느해 어느때에

 나라 빨지산들이 이곳에 올라

천심을 떠닫으며

의분에 불질러

해방전의 마지막 봉화 일으켰느냐?

 

이제 항일에 의로운 전사들이

사선에 올랐던  나라에

재생의 백광 가져왔으니

해방사의 혁혁한 대로

두만강 물결을 넘어왔고

백두의 주름주름 바로 꿰여

민주조선에 줄곧 뻗치노니

 장백의 곡곡에 얼룩진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력력하노니

 오늘 맘놓고 여기에 올라

삼천리를 손금같이 굽어보노라!

 

오오 조상의 땅이여!

오천년 흐르던 그대의 혈통이

일제의 칼에 맞아 끊어졌을 

떨어져나간  토막토막

얼마나 원한의 선혈로 딩굴었더냐?

조선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몇만의 지사 밤길 더듬어

백두의 밀림 찾았더냐?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웠고

사지를 문턱인듯 넘나든이  뉘냐?

산아 조종의 산아 말하라-

해방된 이땅에서

뉘가 인민을 위해 싸우느냐?

뉘가 민전의 첫머리에 섰느냐?

 

!

바위우에 호랑이 나섰다

백두산 호랑이 나섰다

앞발을 거세게 내여뻗치고

남쪽하늘 노려보다가

<--> 산골을 깨친다

 무엇 쳐부시련듯 톱을 들어

<-->

그리곤 휘파람속에 감추인다

바위 호을로 솟아

이끼에 바람만 스치여도

호랑이는  바위에 서고있는듯

 정신 가다듬어 듣노라-

다시금 휘파람소리 들릴지

산천을 뒤집어떨치는

 노호소리 다시금 들릴지!

 

바위바위!

 알리 없어라!

정녕코  바위일수도 있다

빨지산초병이 원쑤를 노렸고

애국렬사 맹세의  높이 들였던  바위                                          

 땅에 해방의 기호치던

장백에 솟은 이름모를  바위

  가슴속에도 뿌리박고 솟았거니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더듬으며

가난한 시상을 모으고 엮어

백두의 주인공 삼가 그리며

삼천만이여그대에게

높아도 낮아도  목소리로

가슴 헤쳐 마음대로 말하련다!

 
 


[조기천] 
[백두산]그 진행형 테마 

1.「백두산」과 조기천 

<백두산>은 조기천이 북한 정권 수립 이전인 1947년에 쓴 장편 서사시이다. 
이 작품은 조기천의 대표작일뿐 아니라 해방공간에 북쪽에서 씌어진 항일무장투쟁 서사시로서 발군의 위치에 놓이는 것으로 회자돼 왔다. 
이 작품은 1930년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항일무장투쟁을 기초로 하였으면서도 뚜렷한 날짜나 지명들을 사용치 않음으로써 일반화되고 전형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른바 보천모전투(1937.6.4)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드라마타이즈되어 있는 것이다. 
조기천은 소위「평화적 건설시기」(1945.8~1950.6)에 북쪽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이다. 그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빈농인 그의 가정은 일제 강점하의 수탈에 쫓겨 시베리아로 망명, 유이민의 길을 떠난다. 그는 옴스크에 있는 고리끼사범대학을 마치고는 중앙아시아의 조선사범대학에서 2년간 교원생활을 했다. 이 무렵부터 조금씩 시창작을 하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 북한의 《조선신문》 문예부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전개한다. 1946년에는 두만강의 흐름을 역사에 견주어 쓴 서정시 <두만강>을 발표하고, 이어서 1947년에 이 <백두산>을 창작한 것이다. 오오 조상의 땅이여! 오천년 흐르던 그대의 혈통이 일제의 칼에 맞아 끊어졌을 때 떨어져나간 그 토막토막 얼마나 원한의 선혈로 딩굴었더냐? 조선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때 몇 만의 지사 밤길 더듬어 백두의 밀림 찾았더냐?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웠고 사지를 문턱인 듯 넘나든 이 그 뉘냐? 산아 조종의 산아 말하라- 해방된 이 땅에서 뉘가 인민을 위해 싸우느냐? 뉘가 민전의 첫머리에 섰느냐? -<머리시>에서 이 시에서 직접 다루고 있는 것은 일제 강점기에 전개된 항일 무장투쟁이다. 그렇지만 이 시는 일제하의 항일투쟁 정신을 이어받아 해방조국 건설의 추진력으로 삼고자하는 창작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서사시 <백두산>은 지난 날 일제강점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연관되면서도 당대 현실에 암유적 대응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실제적 의도로서 씌어졌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백두산>은 남쪽에서 작품 공개는 물론 그에 대한 비평적 고찰 또한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차 ‘88년의 7?19 해금조치에 힘입어 《실천문학》 ’88년 겨울호에 「북한문학걸작선」으로 작품이 수록되고, 다시 ‘89년 1월에 실천문학의 시집으로 《백두산》이 간행됨으로써 일반에게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한 논의로는 시집 해설인 임헌영의 <민중적 영웅주의의 구현>이 발견될 뿐 아직 본격적인 작업이 없는 형편이다. 2. 「백두산」의 서사시적 요건 <백두산>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 시가 서사시적 요건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백두산>은 「장편서사시」라고 명기되어 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서사시란 무엇인가? 연전에 필자는 우리의 근대서사시를 살펴본 결과 서사시가 ① 서사적 구조를 지니고 있을 것, ② 역사적 사실과 연관?대응될 것, ③ 사회적 기능을 지니고 있을 것, ④ 집단의시을 바탕으로 할 것, ⑤ 창작된 당대현실과 암유적 관계를 지닐 것, ⑥ 노래체의 율문으로 짜여질 것, ⑦ 길이가 비교적 길어야 할 것 등을 그 범주로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비춰볼 때 <백두산>은 모든 항목에서 대체로 부합됨을 알 수 있다. 즉 <백두산>은 서사로서의 기본 요건인 일정한 성격을 지닌 인물과, 일정한 질서를 지닌 사건을 갖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① 서사적 구조를 지니고 있을 것」에 부합한다. 또한 <백두산>은 일제 강점하 민족의 수난사와 민족운동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② 역사적 사실과 연관 대응될 것」이라는 조건에도 부합한다. 또한 <백두산>은 일제 강점하의 항일무장투쟁사를 직접 형상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③④의 항목과 관련되며, 광복 후의 현실상황에서 새조국건설에 박차를 가하자고 하는 의도에서 집필됐다는 점에서는 「⑤ 당대현실과 암유적 관계를 지닐 것」과도 밀접히 대응된다. 아울러 노래체의 율문형식으로 씌어진 1,500여 행의 장시라는 점에서는 ⑥⑦과 연관된다. 따라서 <백두산>은 서사시로서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최대 수난기에 처해서 그러한 민족적 위난을 타개하고 조국광복과 독립을 전취해 나아가려는 일제하의 무쟁투장과정의 한 모습이 서사시적 구성으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짐으로써 민족?민중서사시의 한 전형성을 확보한데서 이 작품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하겠다. 3. 「백두산」의 구성과 내용 <백두산>은 머리시와 본시 및 맺음시로 구성돼 있다. 본시는 모두 7장으로 짜여졌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시 46절로 나뉘어져 있다. 전체시는 모두 약 1,564행 정도의 행 전개를 보여주는 바, 길이 면에서는 장편서사시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백두산>의 내용을 사건 전개 순서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머리시 발 단 : 1장(1~7절) 전 개 : (1) 2장(1~7절), 3장(1~8절) (2) 4장(1~6절), 5장(1~5절) 절 정 : 6장(1~7절) 대단원 : 7장(1~6절) 맺음시 따라서 이 시는 서사적 플롯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극적인 사건의 전개로 인해 긴박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도 일단 장편 서사시로서 자리잡힌 면모가 발견된다. 먼저 「머리시」에서는 「천지(天池)」와 「호랑이」로서 백두산의 신비스럽고 위엄있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첩첩 층암이 창공을 치뚫으고 절벽에 눈뿌리 아득해지는 이 곳 선녀들이 무지개 타고 내린다는 천지 안개도 오르기 주저하는 이 절정! 세월의 유수에 추억의 배 거슬러 올리라― 어느 해 어느 때에 이 나라 빨찌산들이 이 속에 올라 천심을 본받으며 의분에 불질러 해방전의 마지막 봉화 일으켰느냐? (중략) 쉬―위― 바우 위에 호랑이 나섰다 백두산 호랑이 나섰다 앞발을 거세게 내여뻗치고 남쪽 하늘 노려보다가 「따―웅―」산골을 깨친다. 그 무엇 쳐부시련 듯 톱을 들어 「따―웅―」 그리곤 휘파람 속에 감추인다 (중략) 지난날의 싸움의 자취 더듬으며 가난한 시상을 모으고 엮어 백두의 주인공 삼가 그리며 삼천만이여, 그대에게 높아도 낮아도 제 목소리로 가슴헤쳐 마음대로 말하련다! 천지와 백두산 호랑이는 오랜 이 땅의 역사 속에서 신성한 민족의 성소 또는 영물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녀왔다. 특히 백두산은 한 민족의 뿌리이자 영산으로서 민족혼과 민족정기의 표상성을 지닌다. 이 점에서 이 시가 백두산을 제재로 한 것부터가 의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백두산은 「조선의 운명이 칠성판에 올랐을 때/ 몇만의 지사 밤길 더듬어/ 백두의 밀림 찾았더냐/ 가랑잎에 쪽잠도 그리웠고/ 사지를 문턱인 듯 넘나든 이 그 뉘냐? 」처럼 항일민족투사들의 피어린 자취와 연결됨으로써 민족의 성소이면서 삶의 역사적 현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해방된 오늘」로서 현재화함으로써 이 서사시가 지난 시기의 항일무장투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형상화하는 데만 목표를 두고 있는 게 아니라 창작된 시기 당대의 민족의 삶과 역사적 방향성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는 점을 포괄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의 발달부분은 제 1장인데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서사구조에서처럼 배경제시와 등장인물 제시 및 사건의 실마리가 열리게 된다. ① 고개 뒤에 또 고개― 몇몇이나 있으련고? 넘어넘어 또 넘어도 기다린 듯 다가만 서라! 한 골짜기 지나면 또 다른 골짜기― 이깔로 백화로 뒤엉켜 앞길 막노니 목도군이 고역에 노그라지듯 골짜기는 으슥히 휘늘어져 있어라! 울림으로 빽빽하여 몇 백리 백설로 아득하여 몇 천리 ② 그 다음…… 그담엔 홍산골이 터졌다― 총소리, 작탄소리, 기관총소리, 놈들의 아우성소리! 그담엔 절벽이 무너졌다. 다닥치며 뛰치며 부서지며 바위돌이 골짜기를 쳐부신다, 「만세!」「만세!」 ―골안을 떨치며 산비탈에 숨었던 흰 두루마기들 나는 듯이 달려 내렸다. (중략) 「한 놈도 남기지 말라!」 그이는 부르짖었다. 바른손 싸창을 바위 아래로 번쩍이자 마지막 발악쓰던 원쑤 두 놈이 미끄러지듯 허적여 뒤여진다― 「한 놈도 남기지 말라!」 그이는 재쳐 부르짖었다 이는 이름만 들어도 삼도 일제가 치떠는 조선의 빨찌산 김대장! (중략) 이날 밤 대장이 든 천막엔 새벽까지 등불이 가물가물…… 하더니 아침엔 눈보라치는데 정치공작원 철호 먼길 떠났다 (하략) 그러고 보면 이 시의 배경은 한 겨울 눈보라 몰아치는 백두산 밀림 속임을 알 수 있다. 그곳은 수많은 고개와 골짜기로 이어진 첩첩 산중 밀림 속이며, 「칼바람?눈보라?서리발」날리는 백두산의 밀영지 홍산골인 것이다. 여기에 일제 토벌대의 기습이 있게 되고, 육박전이 벌어지면서 수많은 항일무장투쟁전사들이 등장하고, 용맹한 빨치산 김대장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 시는 「흰옷 입은 무리」로서 항일유격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민중서사시적 성격을 지니며, 「새별」로서 빨치산 김대장의 활약이 돋보인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영웅서사시의 범주를 지닌다고 하겠다. 실제로 여기에 [절벽 사이 칼바람이 쌓인 눈 위에/ 뚜렷이 그려진 이 발자국/ 어디론지 북으로 북으로 가버린/가없이 외로운 이 발자국/어느 뉘의 자취인가?/어느 뉜지 북으로 웨 갔느뇨?/지난 밤 흰 두루마기 사람들/설피 신고 이곳 꿰여 북으로 갔으니/사람은 몇 백이나 되어도/발자욱은 하나만 남겨두고]처럼 유이민(流移民)들의 쫓기어 간 모습이 한숨과 눈물로 제시되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민중서사시적인 측면을 강하게 지닌다. 여기에 철호라고 하는 젊은 정치공작원이 등장하여 밀명이 띄고 압록강을 건너 조국땅으로 잠입하는 데서 발단으로서의 제1장이 마무리된다. 전개 부분은 다시 2ㆍ3장과 4ㆍ5장으로 구분되는데, 그 주된 내용은 일제강점기 이땅 민중들의 비참한 생활상과 항일빨치산들의 고난에 찬 삶의 역정을 묘파하는데 초점이 놓여진다. 김때장과 더불어 <백두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철호와 꽃분이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사건이 구체적인 윤곽을 잡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2ㆍ3장에서는 새로운 배경으로 조선땅 화전마을인 솔개골이 제시된다. 그러면서 꽃분이가 등장한다. [에그! 벌써 저무는데-] 칡뿌리 캐는 꽃분이 말소리 저물어도 캐야만 될 그 칡뿌리 저녁가마에 맨 물이 소품치려는, 쌀독에 거미줄 친지도 벌써 그 며칠 손꼽아 헤여서는 무엇하리! [에그! 벌써 저무는데!] 그래도 캐야만될 꽃분이 신세 (중략) 솔밭도 어둑어둑 맘 속도 무시무시 이때 그림자인 듯 언듯- 솔밭에서 사나이 나온다 [에구? 웬 사람인가?] 어느덧 꺼멓게 길막는다 귀신이냐? 사람이냐? (중략) [나는 박철호라 부르우, 얼마나 괴로우시우] 길막던 사나이의 첫말, 솔밭은 어둑해저도 꽃분의 뺨엔 붉은 노을- [아이고! 철호동무!] 가늘게 속삭일 뿐 처녀는 면목도 모르며 한 해나 그의 지도 받았다- 삐라도 찍어보내고 피복도 홍산으로 보내고. 중년은 되리라 한 그- 그는 새파란 청년, 강직하고도 인자스런 모습 호협한 정열에 끊는 눈- (스물넷이나 되었을까?) 머리 숙이는 처녀의 생각 (하략) 그렇게 보면 여기에는 철호와 꽃분이 사이에 일종의 연정관계가 복선으로서 암시됨을 알 수 있다. 간접적으로는 서로 전부터 선이 닿아 있었으면서도 직접적으로는 처음 만나게 된 이들 사이에는 애틋한 연정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러한 연정의 모습은 그것이 3장에서 볼 수 있듯이 [마지막 선포문]을 비밀리에 찍는 행위를 통해서 강한 동지애로 결집된다. 따라서 이들 두 남녀의 관계를 설정한 것은 이 작품 속에 일종의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불어넣기 위한 방법적 장치임을 알 수 있다. 3장에선 김윤칠, 즉 꽃분이 아버지로 초점이 옮겨진다. 그는 백두산 포수의 아들로서 의병에도 참여했던 항일투사이지만, [피투성의 <3ㆍ1>을 다시 맞는 해 봄/안해도 뭇매에 맞아 죽고]와 같이 왜적에게 아내를 읽고는 품팔이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이 솔개골에 의식화된 화전민으로 들어온 사람이다. 이 3장에는 또한 「백두산 속엔 크나큰 굴/해도 달도 있고 별도 반짝이는/넓으나 넓은 굴 있는데/그 속에선 용사 수만이 장검을 간다고//령만 내리면 석문이 쫘악 열리고/용사들이 벼락같이 쓸어 나오고/이 땅에 해방전이 일어난다고」하는 전설이 삽입가요 형식으로 제시되어 있다. 또한 [백두산! 백두산!/너 세기의 증견자야!/칭키스한의 들띄우는 말발굽도/도요도미히데요시의 피묻은 칼도/너의 가슴에 잊히지 않은 상처를 남겼고/오백년 왕업도/사신의 두 어깨에 치욕의 짐이 되어//인민만은 자유의 홰불을 쳐들고/홍경래의 창기를 뒤따랐고/갑오의 싸움을 펼쳤다//피를 들고 <3?1>이 일어났다]와 같이 이 땅 역사에 대한 비판과 증언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여기에 꽃분이 일가의 비참한 생활상과 투쟁정신을 접합시킴으로써 이 시에 민족서사시, 민중서사시의 맥박을 강하게 불어넣게 되는 효과를 유발한다. [꿈 속에라도 잠꼬대 피하려고/혀 물어끊어 벙어리 되고/고문대에 매인 채 소리없이 죽어간/그 이름모를 청년]이나 [빨찌산 남편을 천정에 감추고/놈들의 창에 찔려 죽으면서도/남편이 알면 뛰어내릴까/한마디 신음도 안낸 그 마을 아낙네―<아, 나도 그래리라!>/남몰래 꽃분이 맹세했다!]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민중들의 피어린 항일투쟁정신을 크게 강조하면서 꽃분이에게 그러한 투쟁정신을 접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꽃분이가 항일무장투쟁대열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된다. 비밀리에 철호와 <선포문>을 등사하다가 순사에게 발각될 찰나에, 처녀로서 젖가슴을 드러낼 정도로 용기와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대담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3장에서는 피압박 민족으로서의 수난과 함께 민중적인 고난의 과정 및 역사에의 동참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하겠다. 전개부분 4?5장에서는 항일유격대의 생활상과 정치군사활동이 주로 묘파되는 가운데 김대장의 용맹과 인자함으로서 그 인간성이 미화돼서 나타난다. 특히 이 부분에서 유격대의 근간이 바로 민중들이라는 점이 크게 강조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① 우둥불이 밤을 태운다― 무쇠같이 장백을 내려 누르는 캄캄한 밀림의 밤을! 끝없이 몰아 죄여드는 모진 어둠 머리 속에도 흑막이 드리운 듯― 허나 불길은 솟고 불꽃은 튀고 (중략) 빨찌산 우둥불 그것은 집이였고 밥이였다 그것은 달콤한 잠자리였고 그것은 레일의 투쟁― 하물며 [토벌]의 철망을 헤치고 사지를 육박으로 지났으니 그것은 승리의 상징 야반의 노도속 반 짝이는 구원의 등대 (중략) 깊은 잠 안식의 잠 그런데 한 분만이 잠 못들고 우둥불 옆에 비스듬히 앉아 밤 가는 줄 모르네― 이런 밤엔 그이는 책을 보았다― (중략) 불안의 구름장이 가슴가에 낮게 떠돌고 어느 구석에선가 절망이 머리 들 때도 그이는 책을 보았다― 그러면 새 힘을 얻고 목적을 보았다― ② 그렇게 기다리던 식량부대 아침에야 돌아왔다 얻은 것이란 소 두 마리 뿐, (중략) 동전을 단 굴레, 수놓은 굴레......아낙네 솜씨, 독특한 코뚜레―민족의 이색― 어김없이 일본소는 아니다 [동무들! 우리 빨찌산들이 어느때부터 마적이 되었는가? 어느때부터 평민의 재산을 로략했는가? 이 소는 조선 농민의 소다 저 소는 중국 농민의 소다 이렇게 김대장이 말했다. 이것은 소를 돌려 보내라는 명령 (중략) [뉘가 소를 죽였는가?] 대장이 낮게 묻는다. (중략) [제가 죽였습니다......] 한걸음 나서며 말하는 청년 빨찌산 최석준, (중략) [그렇다면......] 찰칵―총재우는 소리 자, 나는 죽어 마땅하니 석준이 총박죽을 내민다, [기척!]―대장의 호령소리 (중략) 민중과의 분리― 이것은 우리의 멸망, 이것은 일제들이 꾀한다 우리 이것을 모르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인용한 구절들에는 항일 빨치산들의 생활상이 잘 제시되어 있다. 그것은 목숨을 건 참담한 고행과 투쟁의 연속이며, 굶주림으로 이어지는 참담한 삶의 과정이다. 그러면서도 [우동불]처럼 남성적인 건강미, 북국적이고 야성적인 아름다움이 빛나는 것이기도 하다. 시 ①부분에서는 풍찬노숙하는 항일 유격대의 고달픈 삶의 모습과 함께 끊임없이 탐구하고 노력하는 혁명투사로서 김대장의 모습이 미화되어 나타난다. 일컬어 앞에서 지적한 바 대로 [민중적 영웅주의]의 한 구현이라고 하겠다. 시 ②부분에는 궁핍과 기아 속에서도 규율을 생명처럼 알아야 한다는 유격대의 생활규범이 제시되어 있다. 식량부대가 조달해 온 소 두 마리가 조선농민의 소로 밝혀지면서 추장같은 김대장의 질타가 가해진다. 여기에 굶주림에 못이겨 청년빨치산 석준이 소를 도살하자 그를 총살하라고 하면서도, 끝내는 [소값을 물어주라]고 함으로써 그를 용서하는 김대장의 엄격하면서도 포용할 줄 아는 인간미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 항일 빨치산이 민중들을 기반으로 성립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중과의 혈연적 유대성을 강조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한편 5장에서는 압록강을 건너려다가 일본수비대의 총에 맞아 죽는 소년 빨치산, 즉 철호의 연락원인 영남을 콩해서 무명전사들의 고난에 찬 삶과 죽음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끝까지 싸우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꺾어진 나래를 퍼덕이며/스르르 모으로 쓰러진다/입술로 두 줄기 피흘러서/풀잎에 맺힌 밤이슬에 섞인다.../눈동자에 구름장이 얼른.../바람이 우수수―/소나무를 흔든다]처럼 어둠 속에 사라져 간 이름 없는 소년전사 영남의 죽음을 통해서 이 땅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펼치다가 사라져간 무명 전사들의 비장한 삶과 투쟁과정을 묘파한 것이다. 따라서 5장은 항일무장투쟁이 이러한 민중성에 기초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화 함으로써 제 6장의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영남의 죽음에 촉발되어 철호도 H시로 떠나고, 이어서 꽃분이도 그를 따라 무장투쟁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절정인 제 6장은 항일빨치산들의 국내침공작전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그 날짜나 장소가 구체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백두산>이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나 미화 그 자체에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항일무장투쟁이라고 하는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사실들을 예술화함으로써 시대적 전형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 6장의 내용은 이들 항일유격대가 압록강을 넘어 전개한 H시 야습이 성공하는 모습에 초점이 놓여진다. 철호가 오랫동안 잠행하여 준비하던 일이 바로 이 H시 야습공작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① 이 나라 북변의 장강― 칠백리 압록강 푸른 물에 저녁해 비꼈는데 황혼을 담아 싣고 떼목이 내린다 떼목이 내린다 뉘의 눈물겨운 이야기 떼목우의 초막에 깃들었느냐? (중략) 강건너 바위 밑에서 휘-익 휘파람소리 나더니 떼목에서도 모닥불이 번뜩번뜩 (중략) 삽시간에 이어진 떼목다리 (중략) 군인들이 달아 나온다 달아 나와선 떼목으로 압록강을 건너온다- 빨찌산부대 압록강을 건너온다 (중략) 빨찌산들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일제가 짓밟은 이땅에 살아서 살 곳 없고 죽어서 누울 곳 없고 모두 다 잃고 빼앗겼으니 ② 바로 곁에서 신호의 총성 잠든 시가를 깨뜨린다. 그담 련이어 나는 총소리 총소리 우편국에서도 총소리 은행에서도 영림창에서도 어지러운 점선을 그으는 따-따-따-따-기관총소리 쿵-쾅-폭탄 치는 소리 적은 반항도 못하고 죽고 도망치고 (중략) 눌리우고 짓밟힌 이 거리에 반항의 함성 뒤울리거니 암담한 이 거리에 투쟁의 불길 세차거니 흰 옷 입은 무리 쓸어 나온다- (중략) [동포들이여! 저 불길을 보느냐? 조선은 죽지 않았다! 조선의 정신은 살았다! 조선의 심장도 살았다! 불을 지르라-] 이처럼 민족의 피눈물로 얼룩진 압록강을 넘어서 국내로 진공하여 일제 주구들을 쳐부수고 승리를 전취하는 항일 유격대의 활약상을 묘파한 것이다. 결국 유격대의 H시 야습전투는 [조선의 정신이 살아있다]라고 하는 항일 무장투쟁의 현장성을 제시함으로써 민족혼이 불멸하다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이 부분에서 항일 무장투쟁으로서 구체적 현장성과 민족운동의 실천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점은 중요한 일로 판단된다. 항일 독립투쟁이 민중적 기반 위에서 전개돼야 한다는 인식이 구체적 현장 묘사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7장 대단원에서는 항일 유격대가 H시 습에 성공하고 귀환하다가 퇴로에 역습을 당하고, 이때 영웅적인 전투를 전개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철호와 석준의 모습을 통해서 항일 무장투쟁의 고난으로 가득찬 역정과 그 비장미를 심화하고 있다. 허다가 철호 그만 우뚝 선다― 불의의 유탄이 전사의 심장을 꿰었다… [아하!] 우뚝 섰다가 앞으로 거꾸러져… 창―처절썩― 물결이 두 전사를 감춘다 압록강 찬 물결이… (중략) 강변에서 여자의 부르는 소리 [철-호-철-호-] 분명히 김대장의 목소리 허나…대답은 없었다 (중략) 사격― 례총소리 산하를 떨친다 [조선아! 조선아!] 너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사격 사격―] 례총소리 산하를 떨친다! 삼천리를 떨친다! 따라서 이 대단원은 끝내 사랑도 맺어보지 못하고 조국 광복도 보지 못한 채 고난과 형극으로 이어진 항일무장투쟁 끝에 장렬하게 죽어간 철호의 모습을 통해서 민족의 가슴에 새롭게 투쟁의 불길을 정화하는 것으로 대미를 이루고 있다. 아울러 맺음시에서는 백두산과 시인의 말을 통해서 이 땅에 새 조국 건설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맺음한다. 백두는 웨친다― [너, 세계야 들으라! 이 땅에 내 나라를 세우리라! 내 천만년 깎아 세운 절벽의 의지로 내 세세로 모은 힘 가다듬어 온갖 불의를 족쳐부시고 내 나라를, 민주의 나라를 세우리라! 내 뿌리와 같이 깊으게 내 바위와 같이 튼튼케 내 절정과 같이 높으게 내 천지와 같이 빛나게 세우리라― 자유의 나라! 독립의 나라! 인민의 나라! 백두산은 이렇게 웨친다! 백성은 이렇게 웨친다! 이렇게 본다면 이 작품의 함의가 쉽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이 작품은 항일 무장투쟁의 전형화를 통해서 이 땅에서 민족의 해방이 얼마나 어렵게 전취된 것인가를 강조하는 동시에 민주와 자유에 기초한 새 조국 건설을 강력히 외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백두산은 결론적으로 민족의 표상이며, 민중의 상징이라는 점이 제시된다. 따라서 이 시는 보천보전투라는 사실에만 연관지어서 살펴본다면 작품의 의미가 크게 절하되기 쉽다. 그러한 역사적 사건은 이 작품을 구성하는 하나의 잘 알려진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시인은 처음부터 어떤 구체적인 사건의 예술적 형상화를 추구한 것이라기보다도 항일 무장투쟁의 수많은 에피소드들 가운데 무장투쟁의 성격을 일반화할 수 있는 소재들을 작가의 구상을 쫓아 임의로 구사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작품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투쟁을 미화하거나 찬양하려는 것이 주된 목표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작품의 기본 전개는 [철호-꽃분]으로 표상되는 민중성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민중서사시적 성격을 더 지닌다고 하겠다. 특히 민족의 고난에 찬 운명과 역사적 진로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민족서사시의 성격을 강하게 띄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4.[백두산]의 주제 한편 서사시 [백두산]은 주제면에서 몇 가지 특성을 지닌다. 앞에서 우리는 [백두산]이 일제 강점기의 많은 저항적인 작품들과 같이 민족해방 의식과 민중해방의식이라는 두 가치축을 핵심적인 내용으로 해서 전개되고 있음을 살펴본 바 있다. 이러한 두 가치축은 사상적인 면에서 민족주체사상과 민중적 세계관이라는 방향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백두산]의 큰 사상적 뼈대는 민족적 주체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반외세 민족해방 의식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로 항일 투쟁을 통한 민족적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데 그 핵심이 놓여진다. ① 아아 칡뿌리! 칡뿌리! 이 나라의 산기슭에서 봄이면 봄마다 어김도 없이 꽃은 피고 나비는 넘나들어도 터질 듯이 팅팅 부은 두 다리 끄을며 바구니 든 아낙네들이 왜 헤맸느뇨? 백성이 한평생 칡넝쿨에 얽히였거니 이 나라에 칡뿌리 맣은 죄이드뇨? 음식내 치워 사람은 쓰러져도 크나큰 창고, 널따란 역장과 항구엔 산더미 같이 쌀이 쌓여 현해탄을 바라고 있었으니 실어간 놈 뉘며 먹은 놈 그 뉘냐? ② 갑오의 싸움을 펼쳤다 허다가 반만년 다듬기운 이 땅이 일제의 독아에 을크러질 제 백두야, 너도 가슴막히여 숙연히 머리 숙이였지! 그러나 인민은 봉화르르 일으켜 칼을 들고 의병이 일어났고 피를 들고 [3?1]이 일어났다. ③ 정의의 검이 침략의 목우에 내려지리라! 불의를 소탕하리라! 우리 애국의 기개를 살려 해방투쟁의 불길을 높이리라! (중략) [조선아! 조선아! 너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너의 민주 행복을 위하여 사격 사격―] 예를 들어본 이 세 부분에는 각기 민족해방을 통한 민족주체성의 확립을 강조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시 ①에는 일제 강점하 이 땅의 궁핍상이 제시되는 가운데 수탈자로서 일제에 대한 울분과 적개심이 분출되고 있다. [크나큰 창고, 널따란 역장과 항구엔/산더미 같이 쌀이 쌓여/현해탄을 바라고 있었으니]와 같이 일제의 식량 수탈이 무자비하게 전개되기 시작함으로써 이 땅의 궁핍화를 더욱 부채질한 역사적 사실이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1차 대전 후 농업 생산력이 크게 떨어지고 대규모 쌀폭동이 일어남으로써 식민지 조선에서 식량 증산을 강행하여 식량의 안정된 공급을 이루어야 할 절박한 사정에 빠졌던 실정이다. 그럐서 조선 땅은 일본의 식량생산기지로 전락하였으며 조선민중들은 더욱 궁핍하여 인용시에서 보듯이 칡뿌리 등으로 연명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②부분에는 일제의 이 땅 강점과정과 그에 대한 전민족적인 저항으로 3?1운동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③부분에는 일제의 침탈이라는 근원적인 모순과 불의를 쳐부수고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쟁취하려는 혁명적 열정이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시 [백두산]은 민족해방투쟁을 통해서 이 땅에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민족 주체사상이 그 뼈대를 이루고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이 시집의 결구가 [너, 세계여 들으라!/이 땅에 내 나라를 세우리라/내 나라를/민주의 나라를 세우리라!]라는 절규로서 마무리 된다는 사실 자체가 민족주체사상을 웅변해 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한편 [백두산]에는 민족의 주체로서 민중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민중적 세계관이 강력히 표출되어 있다. ① 일제가 짓밟은 이 땅에 살아서 살 곳 없고 죽어서 죽을 곳 없고 모두가 잃고 빼앗겼으니 물어보자 동포여! 가슴 꺼지는 한숨으로 이 강 건너 이방의 거친 땅에 거지의 서러운 첫걸음 옮기던 그 날― 그 날부터 몇몇해 지났느뇨? (중략) 빈민굴 어느 구석에선가 떼목에 치여 죽었다는 사나이를 거적에 싸서 방구석에 놓고 온 저녁 목놓아 울던 녀인의 사설도 끊치고 오뉴월 북어인양 벌거숭이 애들 뼈만 남은 젊은이들 꼬부라진 늙은이들― ② 장백의 높고 낮은 고개고개에 이 무덤이 첫 무덤이 아닌 줄이야 우리 어찌 모르랴! 침략의 피 서린 밤이 이 나라에 칭칭 걸치었으니 새 날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 헤여보라 몇 만이나 되는고? 어느 고개 어느 골짜기에 어느 나무 어느 돌 밑에 이름도 없이 그들이 묻히였노? ③ [가마 속의 물은 끓다가도 없어진다― 원천이 없거니― 허나 내물은 대하를 이룬다. 동무들! 우리는 대하가 되련다 바다가 되련다 우리의 근간도 민중 속에, 우리의 힘도 민중 속에 있다! 민중과 혈연을 한 가지 한 빨치산임을 우리 잊었는가? 우리 이것을 잊고 어찌 대사를 이루랴! 민중과의 분리― 이것은 우리의 멸망 이거을 일제들이 꾀한다 인용한 이 세 부분에는 [백두산]의 민중적 세계관이 잘 집약되어 있다. 먼저 ①에는 당대 민중들의 궁핍한 참상이 날카롭게 제시돼 있다.[살아서 살 곳 없고/죽어서 죽을 곳 없고/ 모두가 잃고 빼앗겼으니]라거나 [가슴 꺼지는 한숨으로/이 강 건너 이방의 거친 땅에/거지의 서러운 첫걸음 옮기던 그 날]과 같이 일제의 무자비한 식민지 수탈정책으로 인해 생존권이 박탈된 채 신음하거나, 그나마도 이 땅에서 살지 못하고 시베리아 등으로 유이민길 떠난 민중들의 궁핍상이 제시된 것이다. 이러한 민중생존권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작품의 도처에서 예리하게 표출된 점에서 민중적 세계관이 엿보인다고 하겠다. 시 ②부분에서는 항일민족투쟁의 주체에 대한 의식이 드러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새 날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헤여보라 몇 만이나 되는고?]라는 구절에서 보듯이 이 땅의 이름없는 민중들인 것이다. [눌리우고 짓밟힌 이 거리에/반항의 함성 뒤울리거니/암담한 이 거리에 투쟁의 불길 세차거니/흰 옷 입은 무리 쓸어 나온다―/머리벗은 로인도 발벗은 여인도/벌거숭이 애들도](6장 6절)와 같이 남녀노소할 것 없이 이 땅의 온 민중들은 하나가 되어 항일 투쟁의 대열에 열렬히 참가한 것이다. 특히 ③부분은 이러한 민중적 세계관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항일투쟁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모든 역사 전개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점을 만해준다.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의 역사라고 하는 민중적인 세계관 또는 민중사관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이다. 실상 여기에서 민중적 세계관은 민족주체사상과 유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민중과의 분리―/이것은 우리의 멸망/이것을 일제들이 꾀한다]라는 구절 속에는 바로 민족해방의 길이 민중해방의 길로 연결되는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민족주체사상은 바로 민중적 세계관에 기초해야만 한다는 역사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하겠다. 실상 이 작품에 빨치산 투쟁의 고난상이 강조되고 김대장의 영웅주의가 부각되는 것도 이러한 민족주체사상과 민중적 세계관의 매개고리를 확보하기 위한 방법적, 의도적 장치라고 풀이할 수 잇으리라. 따라서 서사시 [백두산]은 민족주체사상과 민중적 세계관이 만주의 항일 빨치산 유격 활동이라는 서사적 사건전개를 통해서 형상화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일제 강점기의 문학이 프로문학적인 빈궁문학과 항일혁명문학에 중심축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과 밀접히 조응된다고 하겠다. [백두산〓민족〓민중]이라는 등가 인식을 통해서 민족주체성을 확인하고 민중적 세계관을 확립하려는 중심 의도가 작품 자체의 예술성과 결합되어 민족문학의 한 성과를 거둔 데서 서사시 [백두산]의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다. 5. [백두산]이 지닌 결함 이렇게 본다면 서사시 [백두산]은 우리 문학사에서 흔치 않은 항일 무장투쟁사를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특히 남쪽의 문학사에서 이러한 항일 무장투쟁 과정을 시로써 형상화한 작품이 거의 다루어져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주목을 환기하는 것이 분명하다. 항일무장투쟁이 우리 민족운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할진대 그것을 형상화한 작품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백두산]은 북한정권이 수립되기 이전의 전환기에 씌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제 강점기와 오늘날 분단 시대를 이어주는 한 매개고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백두산]이 오늘날 북한문학의 한 원형이 되어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백두산]은 오늘날 북한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사회주의 이념의 경직성이나 김일성 찬양 일변도의 우매성과는 달리 어느 정도 예술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항일민족의식과 민중의식을 두 가치축으로 하면서 전형성?예술성을 견지하려 노력하였으며, 또 그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에서 [백두산]은 작품 자체를 통해서 남?북한이 하나의 민족 공동체이며 운명 공동체라는 점을 당위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예술적 형식 또는 감성적 체험의 차원에서 확인 시켜 준 노작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백두산]은 부분적인 면에서 서정성과 낭만성이 돋보이고 문체와 표현이 정제되어 예술성이 뛰어난 일면을 지니고 있다. 또한 부분부분 설화적 요소를 도입하거나 삽입 가요를 활용하는 등 민족문학적 양식화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인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꽃분이 일가의 삶이나 압록강?두만강?백두산 등 민중적 삶의 구체적 현장성을 확보한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무엇보다도 작품 전체의 구성이 비교적 짜임새를 지니고 있는 것과 사건 전개가 극적 긴박감을 지님으로써 시적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이 작품을 성공시키는 데 중요한 힘으로서 작용한다. 사상성과 예술성에 있어 어느 정도 성공한 한 예라는 점에서 해방 공간에서의 한 시적 성과라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백두산]은 주제의 형상화나 인물 형성에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발견된다. 아마도 이것은 주제를 지나치게 앞세운 데서 빚어진 무리의 결과라고 본다. 항일무장투쟁의 당위성이나 민중의식의 제고를 강조하려니가 자연히 목적의식이 작중인물을 압도하여 작품이 지녀야 할 내면성의 깊이를 결여하게 된 형국이다. 특히 이러한 결점은 인물의 성격에서 쉽게 드러난다. 김대장의 경우에는 옛날 이야기식의 신의성과 용맹성이 강조되어 오히려 희극적인 요소를 내포하게 된다. 축지법을 쓴다는 식의 허황성을 은근히 내비치면서 민중과의 연대감을 강조하기 위해 잡아온 소값을 물어주라든지, 밤새워 혼자 책을 읽는다든지 하는 등 인간미와 비범성을 함께 뒤섞는데서 오는 불일치가 엿보이는 것이다. 영웅성 과장에 따른 허황성과 인간성 강조에 다른 진실미 사이에 간극과 모순이 발생하여 아이러니의 희극성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일종의 의도의 오류를 빚고 있다고 하겠다. 민중적 삶의 고동스런 모습 속에서 성장하고 투쟁 속에서 성숙해가는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라 천부적인 초인으로서 <조작된 영웅주의>의 일단이 의도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드러난다. 오히려 이 작품이 주는 감동이나 생동력은 철호나 꽃분이의 민중적인 생활 감각이나 투쟁성에서 비롯되는 요인이 크다. 이들의 고난에 찬 삶과 투쟁과정이 민중적인 전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단점이 드러난다. 이들의 용맹성이나 애국주의, 동지애, 희생정신 등이 돋보이는 것은 사실이만 이들에게서 <살아있는> 인간미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 암시된 연정이 좀 더 성숙된 면모로서 혁명적 로맨티시즘을 형성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됐더라면 작품의 비장미가 더욱 고조됐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오직 투쟁만을 위해 일직선으로 달려감으로써, 이념에 의해 조작되는 <자동 인간형>으로 처리되고 마는 데서 아쉬움이 놓여진다는 말이다. 그것은 전형적인 투사의 모습으로서는 성공적인 면이 있다고 하겠지만, 인간적 따뜻함과 진솔함에서 우러나는 살아 있는 인간형 창조라는 점에서는 실패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인간의 완성적인 모습도 실상은 실존적 인간의 구체성과 진실미, 그리고 생동감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상 오늘날 북한문학이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의거한 당성?인민성?노동 계급성의 원칙에 비추어 보더라도 이러한 [백두산]의 주제와 인물 설정은 부족한 것이라는 점이 자명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두산]은 민족의 수난과정과 그에 대한 적극적인 투쟁과정을 비교적 큰 스케일로 다룸으로써 해방공간의 전환기에 충격을 가헸다는 점에서 의미가 놓여진다. 표면적으로 영웅담을 취급하고 있는 듯하지만, 내면적으로 민족적 수난과 고통의 극복 및 새 조국 건설을 향해 민중의 역동화가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백두산]은 다분히 오늘날 북한 문학의 한 원형성을 지니고 있으며, 주제의 작위성이나 인물의 상투성을 지니고 있다는 문제점 또는 한계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백두산]은 분단의 장벽이 공고화되고 민족의 이질화가 심화돼 가는 이 땅의 비극 속에서 남북문학의 진정한 만남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한 봉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점에서 [백두산]은 우리 문학사에서 현재 진행 중이며 미래완료형의 테마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의 그 날, 온 민족이 함께 해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그날까지 이 땅에서 계속적으로 탐구되고 다양하게 씌어질 상징적인 한 테마인 것이다. 고은(高銀)의 진행 중인 서사시 [백두산]도 그 한 예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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