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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주의의 시인들
말라르메와 구도의 여정
말라르메(1842 - 1898)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 살에 아버지의 재혼, 이어 여동생 마리아의 죽음 등 가정적으로 이미 어려서 불행을 체험한 바 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과 메리 로랑과의 관계를 제외하면 이후의 삶은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하여, 시인 스스로가 <자전>에서 '일화가 없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포우를 더 잘 읽기 위해' 런던에 머문 적도 있지만, 평생을 지방에서 나중에는 파리에서 영어 교사로 지냈다. 그 외에는 오직 시작에만 전념하였다. 죽기 2년 전 '시인들의 왕'으로 뽑힌 것, 그리고 파리의 아파트에서 문학모임 <화요회>를 가졌다는 외에는, 가난에 시달리기도 하였지만 정말 랭보식의 일화나 사회적 야망은 거의 없이 평온한 삶을 살다가, 퐁텐느블로 인근 발뱅의 시골집에서 삶을 조용히 마감한다. 그는 보들레르를 읽고 <현대고답파>지에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학적 삶의 결정적 계기를 맞는다. 고답파에서 언어 형태의 완벽성을 배웠고 <악의 꽃>에서는 자신의 내적 갈등과 비극을 확인한다. 그러나 그의 '창천(蒼天)', 즉 이상에 대한 꿈은 보들레르의 이상과 일치되지는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도덕적이라기보다 형이상학적인 것이고, 그의 시학은 본질적이며 관념적인 어떤 실체를 찾기를 향하여 열려있다. "보들레르. 랭보, 베를렌의 시적 경험은 대개 모험이 주는 영감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나 말라르메는 시란 우연스런 '영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다. 삶의 우연과는 무관한 언어행위라고 말한다. 비록 '일화는 없었다.' 하더라도, 시인의 삶은 여러 문학적 시도들로 가득 찼다. 말년의 <주사위 던지기>라는 작품은 그의 모든 언어 실험들의 종합편이자 정수들을 모아놓은 걸작으로,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시언어의 혁명을 촉발시켰다. 사망할 때까지 시인은 절대의 '책(Livre)'을 향하여 매진하였다. 그러나 "1868년과 1898년 사이에 쓴 몇 편의 시는 대단치 않은 것들이며 시인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였다"라는 것이 오랜 동안 말라르메를 보는 시각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시언어의 체계를 정립시킨 자로 추앙받고 있다. 사실 말라르메는 보들레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말라르메의 절대적 상징주의는 본래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유래되어 나왔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말라르메의 절대 언어에 대한 탐구는 그의 문학을 '절대적 상징주의'라고 불리게 하였지만, 그 출발은 자아와 서로 분리된 이원성의 인식에서부터다. 아래에 실은 <바다의 미풍>은 보들레르의 영향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꼽히는 시이다. " 이 세상 밖이라면 어느 곳이라도(any where out of the world!)"를 외쳤던 보들레르처럼, 그도 또한 도망치라고 외친다. 현실이 아닌 이국의 자연이 보들레르에게뿐 아니라 그에게도 계속 '여행 초대'를 하고 있었다.
오! 육체는 슬픈 것,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읽어버렸다. 달아나자! 저기로 달아나자! 새들은 알 수 없는 물거품과 하늘 사이 있음에 취해있음을 나는 느낀다! 아무 것도, 눈에 비치는 낯익은 정원도 바닷물에 젖어가는 이 마음을 붙들지 못하리 오 밤들이여! 백색이 지켜주는 빈 종이 위에 쏟아지는 램프의 고적한 빛도 아이에 젖 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겠다! 기선이여 돛을 흔들며 이국의 자연을 향해 닻을 올려라! 잔인한 희망들에 낙담하고도 '권태'는 손수건 흔드는 최후의 작별을 아직도 믿네! (---)
여기까지 보들레르의 시선과 그의 시선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권태'는 보들레르의'우울(spleen)'과 색깔이 다르다. 이미 백지에 대한 고뇌가 언급되고 있으며, 생략한 시 뒷 부분에 나오는 파선(破船)의 이미지는 말년의 <주사위 던지기>에 중요한 장치로 다시 등장한다. 1864년 그는 이상세계에 대한 꿈 속으로 단순히 도피할 수만은 없음을 깨닫는다. 현실을 대체할 무엇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논리를 갖는 것이야 하겠다. 그리하여 1864년과 1865년 사이에 그는 <에로디아드> <반수신의 오후>를 포함하는, 절대시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게 된다. 이미 그때 시인은 '정신의 도구인 언어'를 생각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말라르메는 보들레르와 구분되는데, <알바트로스>와 다음의 <백조의 소네트>를 비교해보면 두 시인이 얼마나 다르게 각자의 세계를 펼쳐갔는지 알게 된다.
순수하고 경쾌하며 아름다운 오늘은 이루지 못한 비상의 투명한 빙하가 서릿발 아래 서성이는 잊혀진 이 굳은 호수를 취한 날개짓으로 우리에게 찢어줄까!
옛날의 백조는 기억한다 불모의 겨울 권태가 번쩍였을 때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노래하지 못한 까닭에 모습은 찬란하나 벗어나려 하여도 희망 없는 자가 바로 자신임을.
새는 온 목을 빼고 떨쳐버릴 것이다. 공간을 부정하나 공간이 안겨주는 이 하얀 번민을. 그러나 깃털이 묶여있는 땅에 대한 혐오는 떨치지 못한다.
자신의 순수 광휘가 이곳에 부여하는 유령이란 모습, 무용한 유형 중에 자신을 감싸는 모멸어린 차가운 꿈 속에서 굳어져간다. '백조'는.
이 시는 말라르메의 시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의 하나이며, 프랑스 시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시로 조사된 바 있다. 앞의 시에서 '백색이 방어'해주던 원고지는 이 시에서는 '하얀 번민'으로 나타난다. 하얀 번민이란 원고지를 마주하였을 때 시인이 느끼는 창조의 고뇌이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한 번뇌가 아니라. 자아의 위기. 글쓰기의 부정 등으로 이어지는 존재론적 번뇌다. 시인은 글쓰기의 문제를 시의 주제로 꾸준히 내세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번뇌를 시화(詩化)하겠다는 생각은 잃어버린 창조의 의미를 되찾겠다는 욕구에서 나온다. 이 꿈은 낡거나 늙지 않도록 빙하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 꿈에는 절망적 모멸이 어려있다. 그것은 대중의 모멸이며 동시에 불모인 자신에 대한 모멸이다. 또한 현실 공간에 대한 모멸이며 글쓰기에 대한 모멸이다. <알바트로스>에서는 시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 되는 현실, 다시 말해 시인의 현실에서의 무능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백조의 소네트>에서는 '이곳(celieu)'이라는 공간에 과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과 망설임이 지배한다. 공간의 무의미 때문에 번뇌가 이어진다. 공간은 삶의 공간이자 죽음의 공간이며 여기에 글쓰기의 공간이 겹쳐 있다. 그러나 이 시는 긍정적인 반전을 숨기고 있다. 백조는 죽을 때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한다고 한다. 백조의 몸은 호수의 물과 마침내 함께 얼어붙어, 하나의 커다란 거울이 빚어지게 된다. 목숨은 이렇게 아름다운 빙하로만 남아야 한다. 완전한 거울이란 개인이 사라져야 생성되는 것이다. 그때 진정한 언어가 탄생한다. 그리하여 최후의 노래는 최고의 노래가 된다. 시는 백조를 뜻하는 대문자의 'cygne'라는 단어로 끝난다. 백조은 '기호'를 뜻하는 불어 'signe'와 같이, 발음이 모두 /싸인/이다. 이는 의도적인 것으로, 시인 자신이 언어의 존재론에 집착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인간의 기호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아래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로잡힌 날개짓'이다. 그러나 백조의 모습으로 재현된 기호는 상징이자 노래이다. 시인 자신이자 인간의 언어다.
오, 꿈꾸는 여인이여, 다할 길 없는 순수한 환희 속에 내가 빠져들 수 있도록, 나의 날개를 정묘한 거짓으로 그대 손 안에 간직하고 있어주오.
황혼의 서늘함이 부채질할 때마다 그대에게 밀려오고 그 사로잡힌 날개짓은 지평선을 살짝 밀어낸다.
현기증! 이제 공간은 큰 입맞춤처럼 전율한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면서 태어나려 몸부림치나. 공간은 분출하지도 진정되지도 않는다.
당신은 느끼는가 야생의 낙원이 또한 묻혀버린 웃음이 당신 입가에서 나와 전면적인 주름 밑바닥으로 스며들어버리는 것을!
(말라르메양의 다른 부채)
시의 외적 동기는 부채질하는 단순한 움직임을 뿐이다. 이 시에는 신비나 애매한 장치 같은 것은 거의 없다. 부채질이 공간의 전율을 일으킨다는 것은 시인의 관찰이다. 부채질에 따라 지평선이 물러나거나 다가오며 공간이 전율하는 듯하지만, 이는 바람으로 사라질 뿐인 공간, 태어나지 못하고 분출하지도 솟아오르지도 못하는 공간이다. 현상과 내면에 대한 극사실적 형용이다. 부채질이라는 흔한 움직임 속에 지평선을 꿈꾸지만 그것은 곧 매몰되어 없어질 무의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누구도 공간을 소유한 것이 아니며, 사실 공간이 전율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에 대한 헛된 소망이 전율을 일으켰을 뿐이다. 이 모두 '사로잡힌 날개짓'이며 관념의 생성과 소멸의 되풀이다. 2연에서는 지평선을 상상하였다가 3연에서는 이는 현실화될 수 없는 공간임을 확인하다. 그리하여 4연에서는 낙원에 대한 가정을 거두어들였는데. 생략된 5연에서는 비상의 의지는 '하얀 도약'이었으며, 그것은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고 말한다. 움직임은 바람과 숨결의 미세한 움직임이며, 욕망이나 시선의 이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비록 어떤 희망이, 입술 가장자리로 스미듯 사라지는 웃음처럼 사라질지라도 순수한 낙원에 대한 가정은 정당하였다는 것이다. 가정임을 알고 있음으로 처음부터 '정묘한 거짓'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5연에서 다시 부채는 팔찌 옆에 접혀져 놓인다. 집요한 것은 공간 구성에 대한 의지다. 거짓된 희망에서 지평선으로, 빈 공간으로, 다시 일상으로 이어지는 공간 양상 - 여기에 상징의 모두가 들어있다. 공간 자신은 태어나지 못하고 전율하지만 그것은 겉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시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치는 상징의 미학을 묘하게 숨긴다. 숨김으 미학은 상징의 맛이 두드러지게 한다.
말라르메는 이렇게 생각 전부를 드러내지 않고 '언어의 효과'를 통해 그것에 대해 환기시키고자 한다. 언어 외적인 것은 시에서 모두 배제시켜 전적으로 '말들에게 주도권을 양도'하는 것이다. 비인칭 상태 즉 자아를 지워 텅 빈 상태를 미리 마련해놓고 암시의 기법을 그 위에 사용함으로써, 언어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인칭화 혹은 탈인성화란 고전주의에서의 그것이 아니라 글 쓰는 주체의 지우기다. 이것을 그는 "시인의 화술적 사라짐"이라 한다. 앞에서 본 백조의 죽음은 시인의 죽음을 뜻한다. 이러한 죽음, 즉 인성의 사라짐에 의해 언어의 기능이 진정 생성되는 것이다. 탈인성화는 또 한편 내면의 '공(空)'을 만들어내면서, 백지상태 위에 정신 스스로가 펼쳐지게 한다.
나는 끔직한 한 해를 보낸 참이다. 나의 '생각'은 생각 스스로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순수개념'에 도달하였다. 그 결과 이 오랜 번민 중에 나의 존재가 겪었던 모든 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지만, 다행이도 나는 완전히 죽었다.(---) 다시 말해 네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이 비인칭이 되었다는 것, 나는 네가 알던 스테판느가 더 이상 아니며 나였던 것을 통하여 스스로를 보고 스스로 발전해가는, 정신의 '우주'가 지니는 하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카잘리스에게>, 1867.5. 14; Barbier,1977,341)
이상이라는 문제를 마주하였을 때 시인은 먼저 세계 저편에는 "무(無)'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상은 존재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결코 버릴 수 없었으므로 그는 다음의 결론에 이른다. 즉 이상세계는 '허무' 뒤에 있다. '무'안에 무한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긍정적 전환은 불교와 헤겔의 도움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먼저 현실의 모든 '거짓된 외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대상과 자신을, 다시 말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을 자발적으로 비운다. 그 텅 빈 '무' 위에 새로운 긍정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은 나는 완전히 죽어, 몰아상태라고 말한다. 이러한 태도는 고답파의 엄정한 중립주의에 도움을 받은 것이기도 하지만, 고답파의 객관성과도 다른 것이다. 몰아의 '공' 상태에서 정신과 우주는 자연스럽게 다시 펼쳐진다. 나는 그 전개를 바라보는 하나의 보는 '능력' 즉 시선이다. 시선은 매개체일 뿐, 인칭이 없다. 시인이 이 편지를 쓰고 몇 년 후인 1871년, 랭보는 '나는 타자이다'라고 말한다. 두 시인은 모두 주체의 위기에 대해 설파한다. 그런데 이 위기는 '미리 계획된' 것이다. 위기를 전개시키는 방법은 달랐을지라도 상징주의의 이상은 이처럼 의도적 위기와 자아의 정화 후에야만 진정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완전한 상징과 상징체계란 모든 것을 자석처럼 끌어당길 수 있고 끌어안아야 한다. 그것을 위하여 스스로를 비우는 절차는 필수적인 것이다. 자아의 부정은 이처럼 새로운 세계의 구축을 겨냥한다. 그리하여 거미줄처럼 사물들의 관계 요소들이 섬세하게 그물망을 이루도록 관계의 구조물을 구축하는 것, 혹은 레이스처럼 논리의 실이 면면히 이어지는 것 - 이처럼 탄탄한 체계들만이 무한한 확산력을 지닐 수 있다. 보를레르의 <교감>은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무한한 사물들로 퍼져나가는"확산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확산을 위하여 랭보에게는 광기와 착란이 필요하였다. 말라르메는 확산을 위하여 감각을 우선 안으로 응축시킨다. 사물에 대한 말들은 겉으로는 모두 지워진다. 아래의 시에서도 주인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죽었거나 몰아상태일 것이다. 이 시는 1868년에 '자신에 대한 우화적 소네트'라는 제목으로 쓴 것이다. 그러나 계속 수정하다가 20년이 지난 1887년에야 무제로 출판한다. 완전히 상징들로만 이루어졌으며, 상징주의의 난해성을 대표하는 시로서, 가장 다양하고 많은 주석이 가해졌던 시이다.
그의 맑은 손톱들은 자신의 줄마노를 아주 높이 바치고, 이 자정에 고뇌가 횃대를 떠받치고 있다 골호(骨壺)가 받아들이지 않는 '불사조'에 타버린 저녁의 꿈 몇을
빈 방, 제기단 위에는 아무 소라도 없다 소리 울리는 공허의 폐기된 장식품은, ('허무'가 자랑하는 유일한 이 물건을 갖고서 '주인'은 '삼도천'에 눈물 길으러 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텅 빈 북쪽 유리창 가까이 물의 요정과 싸우며 불을 내던지는 아마 일각수 장식을 따라. 금빛이 죽어가고 있다 요정은 벗겨진 채, 죽은 자로 거울 속에 있다 거울 테두리가 감싸고 있는 망각 속에 섬광의 북두칠성이 그렇게 빨리 고정되고 있지만.
(<그의 맑은 손톱들은 자신의 줄마노를 아주 높이 바치고>)
이 시에서도 여전히 공간 창조의 고뇌가 문제되고 있다. 여기서는 빈 방과 선반 하나, 그리고 열린 창문의 덧창밖에 없는, 그야말로 텅 빔의 미학적 풍경 자체다. 주인은 삼도천(三途川)에 눈물 길으러 갔으므로, 실제로 그가 죽었는지 확실치 않다. 거울 테두리에는 금빛이 죽어가고 잇다. 그러니까 빛도 모두 스러져가고 있다. '불사조에 타버린 꿈 몇'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시인이 작품 모두를 불태웠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소라'를 가리키는 "소리 울리는공허의 폐기된 장식품"이란. 악기이자 글 쓰는 도구이다. 삼도천에 이 악기를 가지고 갔다는 부분에서 오르페우스가 그려진다. 서양의 시에서 이처럼 비어있음만을 주제로 삼고 그것으로써 메시지를 전달하려한 작품은 많지 않다. 극도의 텅 빔이 시 전체를 지배하지만,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열린 북쪽의 덧창을 통해 보일 북두칠성에 대한 언급을 통하여 어떤 희망을 시사한다. 그것은 어떤 조화로운 탄생일 것이다. 이 해석하기 어려운 상징시는 말라르메식의 오르페우스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옛날 사람들이 '대작'을 만드는 용광로에 불을 때기 위해 자기 집 가재도구와 지붕의 서까래를 불태웠듯이, 모든 허욕과 모든 만족감을 던져버릴 용의를 가지고 연금술사와도 같은 인내심으로, 언제나 다른 것을 꿈꾸고 시도했습니다. 어떠한 대작일지? 말하기 어렵군요, 간단히 말해 여러 권으로 된 하나의 책, 아무리 경탄스러울지라도 우연히 부딪치는 영감들의 모음집이 아니라, 건축적 구성이며 미리 계획된, 책이랄 수 있는 책 말입니다. 나아가 나는 (대문자로) '책(Livre)'라고 하겠습니다. (---) '대지'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설명, 이야말로 시인의 단 하나의 의무이자 더할 나위 없는 문학 작업입니다. 왜냐면 페이지를 매기는 방법까지도 비인칭적인 동시에 생생할 '책'의 리듬 자체는 이 꿈의 방정식, 혹은 '오드'와 병행하기 때문입니다.
(<자전>, 베를렌에게, 1885년 ; 말라르메, 1974, 662-663)
오르페우스는 말라르메의 꿈이었다. 오르페우스의 업은 노래하는 것이다. 꿈의 방정식은 오드라고 한다. "대지에 대한 오르페우스의 설명'이 꿈의 방정식의 해(解)인 것이다. 대문자 '책(Livre)'이다. '오드'를 통하여 '책'에 도달한다. 그는 "결국 세상은 아름다운 한 권의 책에 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Huret, 1984;80) 말한다. 시인의 꿈은 이토록 소박한 것이었지만 정말 소박한 것은 아니었다. 대지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꿈은 절대의 책을 완성하겠다는 크나큰 야심이다. '책'은 그에게 언어와 정신과 삶이 어우러져 용해된, 인식론적이고 존재적인 어떤 총체, 어떤 '하나'였다. 시인에게 세상의 의미는 그런 것이었다. 보들레르가 교감이라는 사물 인식법으로 새로운 문학을 열어 낭만주의와 고답파를 버리게 하였다면, 말라르메는 그를 계승하면서 언어형식의 또 다른 혁명을 낳는다. 그 결과의 하나가 <주사위던지기>라는 시다. 시인은 절대의 책을 가정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페이지라는 형식을 버린다. 대신에 펼쳐지는 책의 (우좌가 아니라) 좌우 페이지를 합쳐서 한 '장'이라고 한다. 이 하얀 화폭 위에는 오직 하늘과 바다물밖에 그려져 있지 않다. 보들레르가 초대받고 싶어하였던 여행을 그는 거의 마지막 시도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실현시키고 있다. 그것에는 미학과 철학과 음악과 문자가 하나가 되어 있다. 베르나르는 <주사위 던지기>를 '시와 산문의 종합'으로 보고 있다.(Bernard, 1988;311).
(---) <주사위 던지기>는 산문시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시와 산문을 나누는 칸막이를 깨고 '통합' 예술의 시도에 상응하는 총합의 양식을 발견하기 위해 당시 시인들이 시도하였던 언어 탐구들에 대한 의미있는 증언이다.(Bernard, 1988;328).
<자전>에서, "페이지를 매기는 방법까지도 비인칭인 동시에 생생한 '책'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주사위 던지기>가 어쩌면 실험에 그칠지 몰라도, 우선은 절대의 책으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사고의 질서이자 우주의 질서이며 언어의 질서이다. 인간은 말을 통하여 우주적 신비에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자 속의 신비'를 구현하려는 이 다중의 언어 프로젝트를 통하여, 시인은 여러 겹으로 이루어져 두텁게 싸여진 상징체계를 생의 마지막으로 완성한다. 언어를 완성하려는 그의 의지는 언어에 모든 것을 바치고 '일화가 없는' 삶을 선택하게 하였다. 시인의 단 하나 의무란 이 땅에 대한 오르페우스식의 설명일 뿐으로, 삶의 '일화'는 모두 그 속으로 묻히면 되었던 것이다. 발뱅의 시골집에서 후두경련으로 사망하는 시간에까지 그는 아름다움 '책'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았다. 언어에 몸을 맡긴 그의 이 모든 여정은 사제의 삶에 근접하였다. 여기서 '시라는 종교', 그리고 '언어의 사제'라는 말이 나왔다. 그는 "19세기 후반세기의 위대한 시인들 중 가장 진정한 상징주의자"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Peyre,1976;37), 과작의 실패한 시인이라는 평이 1950년대까지도 주류였다. 과작은 그가 나태하거나 황폐하여서가 아니라, 상징의 완전한 체계를 만들기 위한 당연한 한계였다. 얼핏 보아도 동양적 성찰에 많이 닿아있는 말라르메의 공간학은 발레리의 것과 색채와 향기가 유사해 보이지만, 그들의 여정과 가닿는 길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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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복잡한 세월에 옴니암니 따지지 마시고
다같이 미친듯이 공부합시다ㅠ...
이후, 종종 기웃기웃거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