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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 모더니즘시 리론작업, 정지용 모더니즘시 실천작업
2016년 11월 06일 22시 07분  조회:4186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6년 11월 07일 09시 08분 ]

 

ㅡ중국 문창(文昌) 발사기지에서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시의 수사학적 연구

 

금 동 철

(서울대학교 강사)

 

 

1. 서 론

한국 현대 시사에서 1930년대 모더니즘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우리 문학의 현대성을 드러내는 한 지표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후 한국 현대 시문학사 상의 중요한 이정표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년대의 낭만주의적인 시와 카프 계열의 리얼리즘시를 넘어 본격적으로 현대화된 시문학의 시대를 연 것이 바로 이 시기의 모더니즘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더니즘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다양한 관점에서 이루어져왔다. 모더니즘시에 대한 기존 논의의 관점 중 하나는 서구 모더니즘과 비교하는 비교문학적 관점1)이며, 또 하나는 문학사적 의의에 대한 연구이다2). 이와 같은 관점에서 모더니즘시는 다분히 부정적인 모습을 지닌 것으로 나타난다. 모더니즘 자체의 이론을 완전히 체계화시키지 못하고 막연한 이국적 정서를 나타나는 여러 단어와 서구 취향, 그리고 도시적 감성의 무분별한 사용 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들 논의는 다분히 기법적인 차원에서 서구 모더니즘과의 비교 분석에 초점을 둠으로써 30년대 한국 모더니즘 시를 서구나 일본의 원전과의 대비에 치우치거나 문학 기법의 혁신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 결과 이들 시가 지닌 내재적 특성에 대한 탐색이 다소 부족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최근에 나타나는 또 다른 한 관점은 모더니즘을 세계관의 차원에서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단순한 기법적 차원에서 모더니즘시를 논의할 경우 이것은 서구의 그것에 형편없이 미달하는 그 무엇이 될 수밖에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그들이 지닌 세계관을 분석하고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다3). 이러한 관점 또한 서구 모더니즘의 세계관과의 비교검토가 필수적인 요소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서구 모더니즘의 세계관을 식민지 지식인이 수용한다고 해서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할 수 없음 또한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 모더니스트들이 보여주는 시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이들 시작품 속에 내재해 있는 본질적인 요소가 무엇인가를 따져내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을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 중의 하나는 이 시기 모더니즘시인들4)이 보여주는 변화의 양상이다. 이들의 초기 모더니즘시가 보여주는 신기성에의 지향은 3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면 상당히 다른 모양으로 바뀌면서도 모더니즘적인 속성들이 그대로 내재되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의 시세계가 바뀌는 이유가 이제까지의 논의와 같이 그들 자신들의 모더니즘적인 시세계가 지닌 부정적인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가 지닌 특징을 규명할 수 있다면 이 시기 모더니즘시의 성격을 해명하는 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위해 본고에서는 수사학적 방법을 동원하고자 한다. 시의 언어적 차원에서 표출되는 수사학적 특성을 검토함으로써 이들 시인들이 지닌 세계관까지 분석할 수 있다면 이러한 과정에서 이들 시인들의 모더니즘 지향이 지닌 의미망을 새롭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의 언어는 기호의 차원에서 두 가지 기본적인 수사학을 상정할 수 있다. 은유와 환유가 바로 그것이다5). 은유는 기호가 기호 체계 너머의 세계나 관념과 같은 지시대상을 지칭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언어관을 지향하는 것이라면, 환유는 하나의 기호가 지칭하는 세계가 또 다른 기호일 뿐이라는 기호 내적인 언어관을 지향한다. 환유에 의해 형성되는 기호는 그러므로 기호 너머의 세계를 지칭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초현실주의로 대표되는 아방가르드나 포스트모더니즘시의 기호관이 대표적인 환유적 기호관이다.

이에 비해 서정시의 기호는 그것 자체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 너머에 존재하는 진리의 세계를 지향한다. 이는 곧 은유적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은유가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에 형성되는 동일성의 세계를 지향한다면 기호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기호와 지시대상 혹은 관념과의 사이에 형성되는 동일성을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시의 언어는 언어 기호의 차원을 넘어 사상이나 관념, 정서 혹은 절대의 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이 된다. 서정시가 근원 혹은 본질을 지향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0년대 모더니즘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이와 같은 언어의 수사학적 특성에 대해 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을 통해 이 시기 모더니즘이 가졌던 상이한 두 흐름 사이의 명확한 구분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들 시인들의 시세계가 어떠한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이미지즘을 통한 근원에의 지향 - 정지용

30년대 모더니즘시의 중심에 서 있는 시인 중의 하나는 정지용이다. 김기림이 이론적인 작업으로 모더니즘시 운동을 일으켰다면, 정지용은 시를 통해 모더니즘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였던 것이다. 그의 초기시에 나타나는 모더니즘적 요소에 대한 논의는 주로 감각적 인식과 선명한 이미지의 창조라는 측면으로 집중되어 왔다6). 「파충류동물」이나 「슬픈 인상화」와 같은 데서 나타나는 형태주의적인 요소 도 모더니즘 기법의 한 종류로 지적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부분은 신기성을 좇는 초기 정지용의 한 편력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그의 시에서 가장 모더니즘적인 측면은 그의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 사용법이라고 하겠다.

그의 시에서 이미지는 이전의 우리 시에서 보기 힘들었던 새로움과 선명함을 함께 볼 수 있다. 「호수」나 「바다」, 「향수」와 같은 시에 나타나는 선명한 이미지는 그의 시에서 모더니즘적인 요소가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게 한다. 이들 시에서 사용된 이미지는 20년대적인 애상의 흔적을 걷어내고 이미지 그 자체를 선명하고 투명하게 제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고래가 이제 橫斷 한뒤

海峽이 天幕처럼 퍼덕이오.

 

……힌물결 피여오르는 아래로 바독돌 자꼬 자꼬 나려가고,

 

銀방울 날리듯 떠오르는 바다종달새……

 

한나잘 노려보오 훔켜잡어 고 빩안살 빼스랴고

 

미억닢새 향기한 바위틈에

진달레꽃빛 노개가 해ㅅ살 쪼이고,

청제비 제날개에 미끄러저 도-네

유리판 같은 하늘에.

바다는 -- 속속 드리 보이오.

청대ㅅ닢 처럼 푸른

바다

-- 정지용, 「바다 6」 중에서

 

 

이 시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은 이미지 사용법은 그의 초기시를 특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정서적인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비유를 통한 선명한 이미지의 창조를 통해 객관적으로 사물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해협의 파도를 ‘천막’에 비유한다거나 바다종달새의 움직임을 은방울 날리는 모양으로 묘사하고, 하늘을 유리판 같은 것으로 비유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창조를 통해 시인은 세계를 선명하게 독자들의 눈 앞에 제시한다. 그만큼 그의 초기시에서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정지용의 시를 평가할 때 두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하게 된다. 하나는 초기 모더니즘적인 시세계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30년대 후기에 주로 나타나는 자연시와 관련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초기 모더니즘시에 대한 평가는 서구적인 이미지즘의 미달형태이며, 그 속에 들어갈 사유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필요한 깊이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후기 자연시는 전통성의 세계를 받아들여 시의 사상성을 달성함으로써 훌륭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이다7). 이러한 입장은 30년대 중반의 정지용이 <카톨릭청년>지에 관계하면서 발표한 다수의 기독교적인 시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연결된다. 이 시기의 시에서 정지용은 초기 모더니즘시의 기교적인 세계에 카톨릭이라는 사상성을 도입하고자 노력했으나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결론짓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30년대 후반에 나타나는 정지용의 자연시에서도 이미지즘적인 요소가 다분히 발견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의 시세계에서 기독교성이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장수산」이나 「옥류동」 같은 작품에서 보면 선명한 이미지를 창조하고자 하는 이미지즘적인 요소의 흔적과 함께 전통적인 세계관만으로는 해명하기 힘든 요소가 함께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가 후기 자연시를 쓰던 3년대 후반에 발표한 여러 시론에서 기독교적인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8). 그렇다면 그의 시세계에는 기독교성이 상당부분 묻어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수사학적 차원에서 볼 때 이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는 지적이다. 정지용이 주장하는 바 시에 있어서 기독교적인 덕목에 대한 강조는 그의 시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인의 말이나 산문을 그대로 시의 해석이 적용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 시기의 정지용의 시에서 이러한 자신의 주장이 입증이 된다면 여기에는 상당한 의의가 부여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의 특징을 일반적인 자연시의 세계관과 비교해 본다면 보다 쉽게 확인할 수 있다. 30년대 후반의 그의 자연시에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분명히 내재해 있는 바, 그것을 이미지 사용법에서 간파할 수가 있다. 그의 자연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는 전통 자연시가 보여주는 풍성하고 완전한 존재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되고 위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같은 문장파 시인인 이병기나 조지훈과는 선명하게 대비되는 자리라고 하겠다9). 최승호는 문장파의 자연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병기와 정지용, 조지훈 세 사람의 자연시가 지닌 특징을 비교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이병기의 자연시가 생명력의 확산적 교감을 보여주고, 조지훈의 자연시가 생명력의 현상유지적 교감을 보여준다면, 정지용의 자연시에는 생명력의 축소적 교감을 보여준다고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왜 정지용의 자연시에만 이러한 축소적 성향이 나타나는가 하는 점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을 세계관의 차이로 보아야 제대로 그 이유를 제대로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지용은 자연이 이상화된 상태에서 낙원의 이미지로 그려지던 전통적인 유가의 세계관과는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가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자연을 전통적인 유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돌에

그늘이 차고

 

따로 몰리는

소소리 바람

 

앞 섰거니 하야

꼬리 치날리여 세우고,

 

죵죵 다리 깟칠한

山새 걸음거리.

 

여울 지여

수척한 흰 물살,

 

갈갈히

손가락 펴고.

 

멎은 듯

새삼 돋는 비ㅅ낯

 

붉은 닢 닢

소란히 밟고 간다.

-- 정지용, 「비」

 

 

여기에도 분명히 이미지즘적인 요소가 존재한다. 그만큼 그의 시에서 모더니즘은 핵심적인 축의 하나라고 하겠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시에 묘사된 자연의 모습이다. 산새의 걸음걸이가 ‘죵죵 다리 깟칠한’ 것으로 묘사된다든가 물살이 ‘수척한 흰’ 것으로 묘사되는 데서 전통적인 자연관과는 다른 그 무엇을 발견한다. 자연 사물들이 삭막한 인간 세상과는 달리 풍성하고 아름다워 언제든지 그곳에 가서 자연과 동화되면 안식을 누리던 세계가 바로 전통적인 유가적 자연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지용의 이 자연시에서는 자연을 매우 중요한 동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그 자연은 이 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척하고 까칠한 모습, 다시 말해 위축되고 축소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생명들도 이러한 위축된 분위기를 함께 지닐 수밖에 없다. 「백록담」에 나타나는 송아지의 모습이나, 「조찬」의 새도 마찬가지이다. 「장수산」의 노승의 이미지와 함께 제시되는 달밤의 이미지 또한 자연 속에 처한 자아의 풍성한 만족감이 아니라 시리도록 아픈 고독감이라는 점도 이러한 위축되고 축소된 자연 이미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연을 묘사하는 이미지 너머에 기독교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자연 이미지가 하나의 기호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당대의 위축되고 소외된 인간들을 그릴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인 세계관까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그의 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수사학적인 차원에서 문제되는 자리는 바로 이 지점이다. 여기서 정지용은 언어 기호를 단순한 기표의 놀이라는 차원에서 사용하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를 담아내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은유적 차원의 언어 사용법이라고 하겠다. 은유에서 말하는 주지와 매체 사이의 동일성의 세계가 여기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연 이미지를 통해 관념적인 세계를 표현해 내고자 하는 정지용 시인의 시적 특징을 여기서 읽을 수 있다.

은유적 세계관은 초기의 모더니즘시가 지닌 언어 기호의 특징에 대한 설명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이미지즘에서 추구하는 바 견고한 이미지를 통한 시의 창조라는 측면을 수사학적 차원에서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견고한 이미지란 낭만적 감성을 배제한 투명한 이미지의 창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의 이미지는 실제 세계에 대한 모사적 측면을 지니게 된다. 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의 관계의 문제로 볼 경우 모사는 이 둘 사이의 동일성을 인정하는 태도임을 알 수 있다. 언어 기호가 외부 세계를 모사하고 재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 속에 깔려 있고, 이것은 곧 기호가 그 지시대상으로서의 세계를 효과적으로 재현해 낼 수 있다는 은유적 상상력의 중요한 한 측면이 되는 것이다. 결국 견고한 이미지의 창조란 은유적 세계관을 토대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엘리어트가 말하는 객관적 상관물의 개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개념 속에는 기호로서의 이미지가 거느리고 있는 의미의 세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수사학적 특징은 흄이나 엘리어트가 카톨리시즘이라는 전통적 세계로의 복귀를 추구한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미지즘이 시에서 사용된 언어 기호를 통해 카톨리시즘이라는 관념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의 이미지가 관념의 세계, 사상의 세계, 정신의 세계를 담아낼 수 있다는 은유적 세계관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이미지즘이 은유적 세계관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10). 이미지즘을 지향한 정지용의 시세계에서도 은유적 세계관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초기의 몇몇 시편에서 발견되는 설익은 신기성에의 지향으로부터 차츰 견고한 이미지 창조로 이행하면서 그의 시가 성숙되어갈 때, 거기에는 은유적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琉璃에 차고 슬픈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양 언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디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寶石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琉璃를 닥는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山ㅅ새처럼 날러 갔구나!

-- 정지용, 「유리창」

 

 

유리창의 차가우면서도 투명한 이미지 속에 자신의 정서를 담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이미지를 통해 다른 그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여기서 이미지들이 재현적 차원의 세계를 담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미지를 통해 시인의 정서를 담아내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사용에서 은유적 관점의 언어관을 읽을 수 있다. 「호수」나 「향수」 등에 나타나는 선명한 이미지 또한 이러한 재현적 관점을 유지함으로써 명확한 은유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정지용의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들은 그 너머에 항상 관념이나 정서의 덩어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는 은유적인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기호와 지시대상 사이의 동일성을 상정하고 기호가 지시대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은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미지즘을 지향한 정지용의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3. 은유적 동일성으로의 회귀 - 김기림

김기림의 시세계에 대한 대부분의 논의는 그의 초기시가 보여주는 문명비판적인 요소에 맞춰진다. 그가 주장하는 모더니즘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러한 문명비판적인 것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논자들이 인정하는 바 중의 하나는 김기림의 자본주의와 근대 문명에 대한 미숙한 이해는 이러한 문명비판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문명비판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면서도 이국적인 정취의 과도한 사용, 이국적인 지명이나 이름, 영어의 잦은 사용이라는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는 것이다.

본고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 이와 같은 김기림이 보여주는 문명비판의 정당성이나 깊이의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서툰 문명비판 의식이 가져오는 수사학적 문제이다. 김기림은 자신이 주장하는 문명비판을 위해 풍자라는 기법을 도입한다11). 그가 가져온 풍자는 수사학적 차원에서 본다면 환유라고 할 수 있다. 서술하고자 하는 대상으로서의 세계와 일정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만 성립될 수 있는 풍자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동일성 파괴와 맞물리는 사유구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시에 과도하게 나타나는 이국적인 이미지와 영어식 표기법12)은 시 자체의 통일성을 방해하는 구성물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는 단순히 김기림 자신의 시정신의 미숙으로만 보기에는 상당한 난점이 있다. 김기림은 첫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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