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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중국 조선족 문학 30년을 알아보다...
2016년 11월 12일 01시 54분  조회:3947  추천:0  작성자: 죽림

{자료}

중국 조선족문학 30년을 말하다



[편집자의 말]:...
개혁개방 30년을 맞으면서 연변작가협회와 연변인민출판사는 공동으로 연길상우호텔에서《신세기 조선족문학 30년 회고》세미나를 개최했다. 본 문은 그날 발표 된 글과 부분적 발언을 연변일보 최국철 기자가 종합 정리한 것이다.-조글로미디어 편집국



연변작가협회가 걸어온 30년


1. 80년대-전면적인 해동과 일원화에서 다원화에로 

1979년 10월에 소집된 제4차 전국문예사업자대표대회의 축사에서 등소평은 "예술창작에서 부동한 형식과 풍격의 자유로운 발전을 제창하고 문예리론면에서 부동한 관점과 학파의 자유로운 토론을 제창"하며 "행정명령은 반드시 페지"해야 한다는 등 일련의 새로운 문예정책과 새로운 관점을 제기했다. 

이때로부터 그동안 매장되였거나 붓을 꺽고있었던 로일대 문인들이 점차 문단에 복귀했다. 1978년 8월에 연변조선족자치주직속문 화계통에서 정치운동기간 억울하게 루명을 쓴 55명 문인들의 명예회복대 회가 거행되고 "독초", "반동작품"으로 몰렸던 문예작품들도 륙속 명예를 회복했다. 

당시, 10년동안 마비되였던 문단은 기성작가들로는 부족했다. 문단의 후비군을 양성하기 위해 연변작가협회는 1983년 중공연변주위와 주정부의 비준을 거쳐 연변대학에 "연변대학문학반"조, 한문반을 위탁개설했다. 5월에는 청년문 학강습반을 꾸리고 연변대학 교수들을 초청해 125명의 청년과외작자들을 양성했고 6월에는 연변작가협회 기관지인《연변문예》월간사를 통해 문 학통신반을 모집하고 통신생 1200명을 양성했다. "지식청년세대"신인 들은 1984년 12월에 자체로 "문학청년동인회"를 구성해 연변작가협회 사상 첫 민간단체를 탄생시켰다. 그후 1985년에 "연길시청년시회"가, 1989년에 "장백산번역사"가, 1991년에는 "5월시사"가 탄생했다. 

80년대는 쟁명의 단계였다.  비록 개혁개방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페쇄적이고 국외교류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중국 주류문단은 조선족문단의 참조계였다.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국 주류문단과 일정한 거리가 있는 중국조선 족문단은 새시기문학의 락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주류문단과의 교류를 밀접히 했다. 연변작가협회는 1980년에 새시기문학의 앞장에 선 작가 등우매, 류심무, 류소당, 등 18명을 연변에 초청해 800여명 규모의 문학강연회를 조직했다고 1981년에는 300명 규모로 중국작가협회 부비서장 양자민과《세계문학》잡지사 편집 김정의 문학보고를 청취했다. 같은 해에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인 저명한 녀류작가인 정령의 강의를 청취했했다.

개혁개방은 사상해방의 물결을 일으켰고 중, 청년작가들 가운데서는 서방철학과 문학에 대한 학습열조가 일어났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명제와 만나게 되며 "문학청년동인회"를 중심으로 민족사에 대한 보충수업 및 답사, 민족문화의 "뿌리찾기"의 열조가 일어났다. 1983년도에는 "전국우수단편소설상"에 림원춘의 단편소설 "몽당치마"가 당선되면서 연변작가협회 설립이래 이 상의 유일한 수상작가로 기록되며 주류문단에 대한 진출을 고민했던 우리 문단을 크게 고무했다. 1982년 9월에는 김훈이 집필한 "어머니, 안심하세요"가 상영돼 개혁개방과 함께 도래한 영상시대에 중국조선족의 첫 텔레비죤드라마라로 되였다. 1987년 2월에《중국조선족문학사》가 전국철학사회과학계 제7차 5개년계획 국가중점대상에 선정돼 조성일, 권철 등에 의해 편찬을 시작했으며 1990년에 드디어 완성되였다. 

80년대 중반부터 연변작가협회는 대외교류의 문이 열렸다. 1985년에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예술연구소의 초청으로 미국적 한인수필가 리계향과 연변작가협회 작가들의 만남이 있게 되여 이는 개혁개방이후 중국조선족의 자발적인 대외교류의 최초로 기록,《중공조선족시인대표작선집》이 한국에서 발간돼 중국조선족작품의 첫 국외출판의 력사를 기록했다.  


2. 90년대부터 현재-독자적인 길의 모색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인 랭전구조의 소실은 탈랭전시대 다원화국 면을 한층 더 추진했다. 중국의 개혁개방, 산업화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중국조선족사회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중국조선족 작가들은 중국조선족사회가 안고있는 문제들을 의식하게 되였고 자기가 속한 공간을 통해 비교적 다양하게 변하는 인물상들을 접하게 되면서 타민족작가들과는 구분되는 관심점을 가지고 창작하게 되였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시장질서에 적응하려는 적극적인 노력과 문학의 자체조절을 통해 중국조선족문단은 보다 리성화되였다. 특히 작가협회에서 제정한 "수리개"전략은 정품창작을 추진하고 주류문단에 편입하고 나아가 전반 조선족문학창작의 거시적인 방향을 확립했다. 국내외 유명 작가와 연변대학 교수들을 강의진으로 하는 7차 의 문학강습반을 꾸려 학원 206명을 양성했으며 이중 상당수가 문단의 중견으로 되였다. 시장경제시대 정품(精品)창작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해 계획경제시대 산물인 전업작가제를 취소하고 출판비용을 보조하는 방법으로 계약작 가제를 실시하였는데 7차에 걸쳐 계약작가 11명이 장편소설을 창작했다. 

국내외 협찬을 통해 상설문학상인 "연변작가협회문학상", "화림신인문학상", "유스트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김학철문학상"시상식을 진행했다. 중국조선족문학을 집대성한 6권의 "20세기 중국조선족 문학작 품선집"과 "중국조선족문학작품정수"를 출판해 우리문학의 기념비를 세웠으며 2008년도 "중국당대소수민족문학번역작품선"에 각 장르 작품 71편을 선정, 번역해 출판에 교부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국내 인지도를 높였다. 

개혁개방은 연변작가협회에 대외교류의 무한한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한국문예진흥원의 후원과 한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초청으로 연변작가 협회 한국방문단은 총 6회에 걸쳐 30여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6.15민족문인협회 남측협회와 함께 "근대문학과 디아스포라"중한문학세미나를 개최해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민족문학이 담고있는 디아스포라의 정서와 문학적인 특성에 대해 폭넓은 토론을 진행했고 한국소설가협회와 공동주최하여 "소설가 안수길선생'북간도'집필 50주년 기념심포지엄"을 개최했 도문시정부, 한국 동해시와 손잡고 "도문강 제1도시 시가응모" 활동을 조직했다. 산동성작가 협회, 흑룡강성작가협회, 강소성작가협회 등 국내 기타 성의 형제작가협 회를 순방 또는 래방형 식으로 상호교류를 했다. 중국항일전쟁승리 60주 년을 기념하면서 하북 성작가협회, 한국작가회의와 공동주최로 하북성 원씨현에서 중한국제문학 세미나를 개최했고 하북성 원씨현인민정부, 한국 실천문학사와 공동으로 "김학철, 김사량 항일문학비"제막식을 거행했다. 


3. 개혁개방 30년과 총결 

연변작가협회는 현재 회원 657명이며 그중 중국작가협회 회원이 56명,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이 2명이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개혁개방 30년동안 연변작가협회 회원들은 장편소설 90부, 중단편소설집 124부, 시집 251부, 아동문학작품집 195부, 작품집 215부, 리론저서와 문학평론집 126부, 번역집 200여부, 한문작 품집 109부 도합 1310부를 출간했다. 소설창작위원회는 "천지물줄기"소설문필회를 10회, 시가창작위원회는 "'두만강여울소리'시 가탐구회"를 25회, 아동문학창작 위원회는 "아동문학연구탐구회"를 22회, 수필창작위원회와 평론창작위원 회, 번역창작위원회, 한문창작위원회도 다양한 형식으로 활동을 진행하 고있으며 산거지구 창작위원회들도 문학활동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있다. 

30년동안 연변작가협회 회원들이 조직한 민간단체는 연변문학동인회, 청년시회, 연변5월시사, 중국조선족문화연구회, 연변문화발전추진회, 연변단풍수필회, 연변시조시사, 연변녀류문인협회, 연변녀류시회, 연변어 머니수필회, 연변소설가학회, 연변시인협회, 중국조선족문학연구회, 연변 조선족아동문학연구회, 연변아동문학회, 료녕심양시조선족문학회, 흑룡강성 조선족문학회, 북지문학회 그리고 연변내 각 현시의 작가협회, 녕안, 해림, 상지 등지의 작가협회 수십개이다. 이들은 모두 자체로 자금을 마련해 다양한 문학활동을 진행하였으며 우리 문단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연변일보 최국철 기자



아동문학이 동심에 뿌리내린 30년 (아동문학가 한석윤)

개혁개방이후의 30년은 중국조선족아동문학이 본격적인문학으로 자리를 잡은 30년이였고 아동문학이 동심에로 뿌리내린 30년이였으며 아동문학의 내용, 형식, 기교면에서 다양한 성찰과 탐구가 진행되여온 30년이였고 따라서 그 어느 시기에 비길수 없는 풍성한 성과를 올린 30년이였다. 

되돌아보면 가렬처절한 항일전쟁년대에 태동하기 시작했던 우리 조선족아동문학은 그 시초는 물론 건국후에도 계급투쟁, 정치투쟁의 소용돌이속에 휘말리다보니 문학본연으로부터 아동문학을 대하지 못하고 계급투쟁, 정치투쟁의 수요나 교육적요구에 의하여 아동문학을 해왔다. 이런 형편은 10년 대동란에 와서 절정에 이르렀고 아동문학은 문학으로서의 빛을 잃어버리고 정치독물, 교양독물로 전락되고말았다. 10년 대동란의 침통한 교훈과 개혁개방의 위대한 정책은 아동문학에 종사하는 문인들로 하여금 아동문학의 본질에 대하여 근본적으로부터 숙고하고 성찰하게 하였다. 

지난 90년대 초반 동시단에서 울려나왔던 "동시는 우선 시여야 한다"는 구호가 그 일례로 된다. 한국의 동시를 형상동시단계에로 끌어올린 이 구호는 1960년대에 한국 동시단에서 제기되였던것이긴 하지만 당시 우리 아동문단상황으로서는 참신한 거울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한 피타는 성찰과 탐구를 통하여 우리 조선족아동문학은 점차 문학본연에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동시의 시에로의 복귀"와 함께 나타난 새로운 문제가 현대시의 기법을 어떻게 수용하는가 하는 론쟁이였다. 일부 시인들은 동시의 형상성을 높인다는 이름하에 현대시의 각종 수법을 려과없이 동시창작에 도입함으로써 일부 난해성을 조성하였다. 실제상 이 론쟁은 아동문학의 주대상을 소년아동으로 보는가, 아동문학의 본질을 동심으로 보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 근본적인 문제였다. 한국의 동시단과는 달리 우리는 ‘동시는 우선 시여야 한다’는 구호를 제기한 초반부터 이 문제에서 치렬한 성찰을 동시에 진행하였기에 동시발전에서 비교적 바른길에 들어설수 있었다. 

아동문학이 본격문학에 자리잡고 아동문학이 동심에 뿌리내린 이것은 개혁개방이후 우리 조선족아동문학이 이룩한 가장 큰 성과라 아니할수 없다. 이런 옳바른 토대를 마련하였기에 지난 30년래 조선족아동문학은 내용, 형식, 기법 등 그 어느 면에서나 다른 시기에 비할수 없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올수 있었다. 한해에 쏟아져나오는 아동문학작품만도 수백편(수)에 이르고 한해 출간되는 작품집도 십여권이 된다. 작품의 수준도 갈수록 높아가고있으며 동시, 아동소설, 동화, 아동문학평론 등 각 장르에서 자랑할만한 중견작가들을 가지고있다. 

그러나 문제점이 없는것도 아니다. 우선 아동문학이 오늘까지도 조선족문학사에서 소외되면서 진정으로 문학대접을 받지 못하고있는것이다. 그것은 아동문학의 앞길을 가로막는 높은 담벽이 아닐수 없다. 다음으로 조선족아동문학이 소재발굴, 주제발견, 형식과 기교의 탐구에서 아직까지 급변하고있는 디지털시대를 따라서지 못하고있는것이다. 


공명시대로부터 무명시대로(평론가 김관웅)

개혁개방 30년을 크게 1978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개혁개방전기(前期)"와 1990년대 초반로부터 지금까지의 "개혁개방후기(後期)" 이 두 단계로 나누어 볼수 있다. 이 전후 두 시기는 그 문화상태가 달라졌다. "개혁개방전기"는 공명(共名)의 문화상태에 처해 있었고 "개혁개방후기(後期)"는 무명(無名)의 문화상태에로 이행되였다.(생략) 

중국조선족문학은 바로 이 공명(共名)의 문화상태에로부터 무명(無名)의 문화상태에로 이행한 30년 세월속에서 발전하고 변화하여 왔다.(생략) 

총적으로 이 시기 중국조선족문학은 통일적인 시대적 주제를 다루면서 중국 주류문단에서의 문학사조나 주제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발전, 변화하여 왔다. 그러므로 그 속성은 다르지만 개혁개방이전 시기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역시 공명(共名)의 문화상태에서의 문학이라고 할수 있다. 이 시기의 중국조선족문학은 비록 미진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 량과 도달한 예술수준으로 보아서 백년 중국조선족문학사에서 하나의 뚜렷한 고봉을 이루었다. 이 시기는 중국조선족문학의 르네상스였다고 비유할수 있다. 

특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바로 전신시기에 김학철옹이 강렬한 사명감을 지니고 정력적인 문학창작을 진행하여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사 내지는 조선어문학권에서도 중요한 문학사적인 의의를 갖고 있는《격정시 대》같은 기념비적인 작품들과 사회의 비리와 암흑면을 향해 던진 비수와 투창 같은 잡문과 수필들을 다수 창작하여 우리문학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올곧은 문학정신을 심어주고, 중국조선족문학의 위상을 한껏 높여놓았다는 점이다. (생략)

90년대 이후로부터 중국사회는 점차 공명(共名)의 문화상태로부터 무명(無名)의 문화상태에로 이행해갔다. 중국조선족문학도 이런 문화상태 의 변화에 따라 점차 다원적이고 복잡한 양상으로 변모하여 갔다. 그것은 무명상태하에서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점차 개인의 목소리로 변해가고 아울러 다양한 개인의 목소리들이 혼재하여 다원적인 문화경관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혁개방 전기(前期) 중국조선족문학은 공명시대의 문학으로부터 무명시대의 문학에로 이행하는 과정 중에서의 하나의 중요한 과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요지는 개혁개방 이래 중국조선족문학에 대한 거시적 조감(1)이란 론문에서 발취한것임) 


예술의 기치밑에 고가맹진한 30년(평론가 조성일)

개혁개방의 30년은 상전벽해의 30년이요, 경천동지의 30년이다. 이 30년동안 우리 조선족문학도 수많은 변화를 거듭하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안아왔다. 

개혁개방 30년동안에 조선족문학은 이른바 "계급투쟁도구"의 속박에서 벗어나 문학본연에로 회귀하여 예술적기치를 추켜들고 고가맹진하고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조선족문학의 판도를 보면 "삼분천하(三分天下)", 다시 말하면 순문학, 통속문학, 인터넷문학으로 나눌수있다. 지금 조선족문학은 아속병진(雅俗竝擧), 문야잡진(文野雜陣)의 다채로운 문학세계를 이루고있는것이 특징적이다. 

우리 조선족문인들은 개혁개방의 물결을 타고 세계문학의 성과와 정보에 대한 민감도와 접수력을 높혀 자기의 낡은 관념을 갱신하고 세계문명을 가슴깊이 호흡하고 다양한 창작방법과 예술기법으로 창작에 정진함으로써 백화만발의 다원화시대를 열어가고있다. 

개혁개방 30년 세월에 문학광장과 문단의 지역공간이 전례없이 확장되였다. 우리 문인들이《연변문예》지 하나만을 에워싸고 붐비던 력사를 종결짓고 《장백산》, 《도라지》등을 비롯한 문학지들이 속출하여 문학광장의 폭을 넓혔다. 그리고 연변외에 다른 지역에서도 선후로 자기의 문단적기반을 이루어 제마끔 자기의 작가대오와 문학지, 문학단체를 가지고있으며 상호간의 교류와 경쟁속에서 문학발전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개혁개방이후 작가대오가 장대해졌고 창작과 연구, 평론이 병진하는 새로운 국면을 이룩하였다. 30년 동안에 우리 작가와 평론가들은 장편소설 90부, 중단편소설집 124부, 시집 251부, 아동문학작품집 195부, 평론집 126부 등을 창출하였는바 이는 조선족문학발전사상 전례없는 가시적인 성과라 말할수 있다. 

개혁개방시대에 진입하여 조선족문인들은 봉페된 자기흔상의 협소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세계와 교류를 진행하고있으며 조선족문학은 한국, 조선, 일본, 미국 등 나라에도 확산되고있다. 우리의 문학을 세계속의 우리 문학으로 거듭나기위해 신경을 쓰고있는것이 오늘 우리 문단의 풍경이다. 

공자는 "삼십이립"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조선족문학의 30년을 거론함에도 계발이 크다. 실로 조선족문학은 30년 동안에 자기의 주체적체질과 생리를 굳히게 되였고 세계조선어권문학에서 독자적인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있다. 

하지만 현시대에 있어서 자족은 침체요 죽음이다. 우리는 랭철한 현실감각과 미래지향적인 사고에 기대여 조선족문단과 문학이 안고있는 문제점도 직시해야 한다. 이를테면 문인들이 서로 리해하고 포옹하는 "심리마당"의 결여, 문학인구의 격감, 문학지의 재정난, 문학평론지의 생존위기, 문학주장과 가치관의 혼란, 질 높은 작품의 부족, 조직적인 문학교류의 부진 등이 그 사례라 하겠다. 우리는 높은 사명감에 립각하여 상술한 문제점들을 랭철하게 반성하고 그 해결방도를 적극적으로 모색함으로써 시대에 걸맞고 민족특색이 짙고  차원높은 "복합변이문학"을 일궈내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내가 직접 경험한 우리 문단 10년(전임 연변작가협회 주석 김학천)

1996년 4월부터 2006년 3월까지, 나는 옹근 10년을 연변작가협회에서 전직으로 일을 맡아보면서 20세기에서 21세기로 과도하는 시기에 우리 문단을  경험하였다. 한마디로, 이 10년은 중국조선족문학사에 대서특필할만한 10년이였다. 

우선 과세기적인 우리 문학의 장원한 발전전략ㅡ"수리개전략(雄鹰战略)"을 고안하고 제정하였다. 1997년 4월, 연변작가협회지도부에서는 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문단발전을 제약하는 문제점들을 실제적으로 분석하고 정품창작을 주체로하고 문학평론과 문학번역을 량익(两翼)으로 하여 중국조선족문학을 발전시키는 "수리개전략"을 내놓았다. 이로 하여 모어를 특징으로 하는 우리 문학이 장점을 발양하고 단점을 극복하며 중국의 주류문단과 함께 할수 있는 사유와 모식(模式)을 가지게 되였다. 
그간 해마다 100부가량의 작품집 출판에 기초하여 우리는 장편소설의 진흥을 위해 매기 전직작가를 초빙하고 조한문으로 《20세기중국조선족문학작품선》(7권)과 《중국조선족문학작품정수》(6권)를 편집출판하였다. 그리고 민족문학원으로 문학강습반을 조직하고 연변작가협회문학상을 시상하였으며 한해도 빠짐없이 "지용문학제"를 운영하였고 태항산에 김학철항일문학비를 세우는 등 많은 일들을 하였다. 작가대오도 날따라 장대해졌으며 다양한 쟝르의 문학작품이 창작되였다. 김학철, 정판룡을 비롯한 로일대 작가들로 우리 문학의 기틀이 잡혀지고 중청년작가들이 우리 문단의 주류로 자리잡았으며 신진들로 대거 문단에 진출하였다. 소설, 시, 수필, 아동문학, 평론, 번역 등 기성쟝르와 함께 수필문학이 흥기하여 우리 문학에 튼실하게 자리잡았다. 특히 장편소설창작이 상당히 활발해졌는데 이는 그간 우리 창작의 번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특히 강조하고 싶은것은 우리 문단에서 김학철, 정판룡 두분의 인품과 작품이 쌍벽을 이루면서 전반 우리 문단과 전체 작가들에게 기치가 되고 우리 문학창작의 번영과 작가들의 단결, 안정을 지켜주는 기둥역할을 하였다는것이다. 두말할것없이 이는 분명히 시대가 우리 문학과 작가들에 주는 행운이였으며 우리 조선족문학발전의 귀중한 정신재부라고 할수있다.  

우리 나라가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한지도 어언간 30년, 만약 개혁개방의 좋은 정책이 없었더라면 전반 나라의 경제건설부진은 물론이고 우리 문단의 번영과 발전도 없었을것이다. 


우리 소설이 걸어온 30년(소설가 림원춘)

정치라는 갑옷을 입고 타발타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했던 개혁개방전의 30년, 소설가라야 열손가락안에 들었고 장편소설과 소설집은 한둘을 헤아릴 정도로 가냘팠다. 이것이 장장 30여년간 걸어왔던 우리 소설계였다. 그때의 소설은 기실 문학이 아니라 정치였고 문단은 에누리 없는 정치무대였다. 

하지만 개혁개방은 백여명을 헤아리는 소설가들을 배출해 붓끝을 휘날리게 했던 우리 소설계, 해마다 수십편이 아니라 수백편의 소설을 자랑하면서 10여부의 장편소설과 중, 단편소설집을 창작해내고있는 소설가들,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그 실력을 과시하면서 지역탈출과 지구촌문화권으로 매진하고있는 소설가들, 사회주의사실주의로부터 황당파, 미래파, 현대파, 실존주의, 의식의 흐름 등등 새로운 문학의식과 창작방법을 모색하면서 소설의 때벗이를 위해 몸부림쳤고 또 성공을 거둔 소설가들도 많다. 개혁개방이 우리 문단에 준 혜택은 이루다 말할수 없다. 

그러나 피해도 적잖다. 계획경제로부터 시장경제로의 진입으로 하여 일부 중견작가들이 돈벌이로 문단을 떠났고 집거구의 해체와 해외진출, 인구의 마이너스성장으로 독자층이 대폭 감소되고 독서열이 하강선을 그었으며 원고료의 연체 등으로 작가들의 창작열정과 창작의욕이 감퇴되고있으며 정품성보다 상품성에 치우치는 페단이 있다. 

우리의 작가들은 이런 장단점들이 선진국 작가들이 이미 걸었고 후진국 작가들이 반드시 겪어야 할 진통이라는것을 명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사회와 떨어져사는 독특한 인간이 아니라 사회의 한 구성원인 평범한 인간이다. 이것을 알고있기때문에 우리의 소설가들은 통증앞에서 붓을 꺽지 않고있으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면서 열심히 창작활동을 벌리고있다. 

지금 우리 소설대오는 비교적 구전하고 온당하며 활기로 차넘치고있다. 해마다 로, 중, 청 삼위일체(三位一體)가 한자리에 모여 소설탐구거나 작품토론을 하고있으며 싹수가 보이거나 전도가 있다고 생각되는 청년작가들의 창작경향과 작품을 두고 세미나를 조직하기도 한다. 

가장 민족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인것이다. 우리의 탈출구는 바로 민족적인것에 있다. 우리 소설가들이 자기의 민족에 튼튼히 발을 붙이고 우리만이 쓸수 있는 이민살이, 항일투쟁, 출국열 등등 우리만의 아픔과 기쁨을 조선족이라는 색채가 다분하게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前 연변일보 최국철 기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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