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을 말하다
한 세 준
한개 민족의 민족적특징은 언어외에도 복장문화, 음식문화, 주거문화에서 뚜렷이 체현된다. 그러나 모든것이 변한다는 절대법칙아래 잃어지고 바뀐것이 너무 많다. 우선 우리 민족의 자랑이던 한복의 운명은 풍전등화로 되였다. 남자들의 한복은 거의 절멸상태에 이르러 환갑상을 받을때나 잔치같은 민족행사때나 혹간 그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그 우아한 전통미로 하여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있는 녀자들의 치마저고리도 무슨 행사때나 형식으로 입을뿐이여서 날따라 그 빛이 바래고있다.
한복이 현대복장문화의 뒤켠에 밀려난것은 입는 과정이 복잡하기때문일가? 아니면 생활화되여있는 사람이 적어졌기때문일가? 일반옷보다 더 비싸기때문일가? 다른 리유들을 더 들수도 있겠다. 례컨대 과학기술이 발전하였기때문, 편한 옷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기때문, 새롭고 멋진 벼라별 패션의 옷이 새록새록 개발되였기때문이라는 등등…전 통복장문화의 이화를 민족전통의식의 이화로 해석하면 어페인가?
다음 주거문화의 변이도 사색을 불러온다. 비좁은 생존공간에서 인구가 팽창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공간에서 오글거리며 살자면 양계장의 닭장처럼 아빠트라는 층집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서양식거주형태가 편리할지 몰라도 인간의 생명본질에 따르면 생명의 근원인 흙과 멀리하게 된것은 이률배반적으로 바람직하지는 않다. 허공에 매달려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살아가는 생태이므로 정신상, 육체상에서 건강 이 해를 입고있다. 그래서 한 선인은 흙을 멀리하면 병원과 가까워진다고 하였거늘…
이와는 조금 달리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문화만은 그 변화가 완만하여서 민족고유의 전통을 용케도 보전하고 있는데 불행중 다행이라 생각한다. 옷이나 집은 우리 몸 밖의 필수품이지만 음식은 내몸속에 들어가는것이여서 쉽사리 변화하지 않는지 모르 겠다. 단군족의 주식인 밥 그리고 김치, 된장, 고추장 등 고유음식은 체질적으로 멀 리하고는 살수 없기때문일수도 있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말해주기도 하는 떡국, 송편, 만두국, 오곡밥, 동지날 팥죽, 백설기, 찰떡, 랭면… 등 다종다양한 전통음식은 그 맛도 독특하거니와 민족문화의식 을 오롯이 담고있어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왔고 또 부단히 개발하고있는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선호도가 조금도 내려가지 않는 음식이 있는데 바로 개고기료리이다.그런데 개고기문화는 한국땅에서 두번이나 죽었다가 소생한 파란많은 운명을 겪어오면서도 지금껏 국민의 사랑을 받고있으며 호칭도 듣그럽게 변하여 “보신탕”으로 되였는데 이에는 웃지도 울지도 못할 사연이 담겨져 있다.
단군족의 개고기문화에 처음 일격을 가한 녀자는 푸른 눈을 가진 프란체스카라는 녀자였다. 그녀는 한국초대대통령인 리승만의 령부인으로서 그녀가 한국땅에 들어서 면서 개고기문화가 비운의 서막을 올렸다. 당시 그 어떤 국책이든 합리화라는 과정이 생략되고 대소사가 대통령의 일언지하에 진행, 처리되였다. 그러다보니 여러장관들과의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상황에서 령부인이 많은 일을 주관하게 되였다.
그녀는 어머니로 되여보지 못하였고 인간됨됨이가 별로 출중한데가 없이 경직된 성격이였다. 그러나 자기 남편ㅡ일국 대통령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막강하였다. 하긴 베개머리송사에 넘어가지 않은 위인은 아직 지구촌에 태여나지 않았으니 그녀가 주 단한 일이 성사되지 않을때가 없었다.
1946년 봄, 한국땅에 들어선 그녀는 개장집이 지천으로 널리였고 한국인들이 제일 즐겨먹는다는 사실에 기절초풍할지경이였다고 한다.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애지 중지하는 개를 한국인들이 잔인하게 잡아먹는다는 사실은 유럽의식으로는 도저히 리 해되지 않았고 용납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리하여 경무대(청와대의 옛호칭)가 발칵 뒤집히는 소동이 일어났고 즉시 개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엄명이 내려졌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적차원의 명령이라도 수천년을 내려온 전통습관을 일거에 해소시킬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개고기음식금지법을 당장 내올수는 없었고 경찰을 동 원하여 개장국집을 봉쇄할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건국초창기라 국민이 헐벗고 가난했던 그 당시 개고기는 주요한 육류원천이였다. 경찰들 가운데도 개고기를 잘 먹는자들이 많은데 그 신성한 사명을 그들이 떠맡게 되였으니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었다.
국민을 설득할 방법이 묘연하던지 경찰국간부회의에서 한 사람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는데 바로 개장국호칭을 바꾸자는것이였다. 대통령부인이 개장국이라는 간판을 보고 제기된 문제이니만큼 약은 그 약이더라도 약탕관만 바꾸면 알게 뭐냐고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모았다. 그렇게 새로 명명된것이“보신탕”이였다고 한다. 기발하다고 할수도 있겠으나 결국 잔머리를 굴린셈이다.
개고기는 그냥 개고기로되, 몸을 보신하는 음식이라는 뜻이여서 원래의 개장국에 비하면 거부감을 제거해주는 아주 화려한 이름이였다. 대통령영부인의 덕분에 창씨 개명한 견공들이 성은이 망극하다고 하였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곰곰히 따지고 보 면 일종 현념비슷한 의미도 들어있다. 말하자면 그냥 그 국물에 그밥이지만 공연히 보약을 먹는듯한 환각을 형성하여 개고기 선호도를 높이였다.
결국 원래 개장국에 별로 흥미없던 사람들도 인삼록용이나 먹는듯한 기분으로 보신탕을 잡수어보신다고 너도나도 접어드는 바람에 개고기를 먹는 풍조가 일파만파 로 번져나가게 되였다. 그래서 농촌에도“늙은이 개장국에 접어들듯이” 라는 말이 생겨났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프란체스카부인의 영명한 시책으로 더많은 견공들이 인간의 보신탕의 원천으로 비장한 최후를 마치게 된것은 사실이다. 환언한다면 역으로 개고기문화가 확산일로를 걸어 인끼만점의 기묘한 음식으로 되고만것이다.
그후 “보신탕”은 사람들이 사랑을 받으면서 40여년 세월을 승승장구했다. 그러 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이 있게 되면서 다시 한번 통렬한 견책을 받게 되였다. 거국적인 축제의 분위속에 들떠있는 한국의 모든것이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개고기음식 문화가 거론되였던것이다. 원래 동양문화권에서 개고기음식문화가 공개된 비밀이였지만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세계범동물애호자들이 이번 기회에 한국의 개고기문화에 확실하게 일격을 가하려고 작심한 판국이라 소위 보신탕집을 일일이 찾아 현지확인을 하고 대대적으로 여론을 조성하였다.
이런 국제적인 공세에 직면한 한국보건사회부는 역시 잔머리를 굴리여 개고기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비브리오균이 있다고 대서특필하여 여론을 조성하려 하였으나 눈감고“야옹”하는 작법과 같아서 아무효과도 보지 못했다. 정부로서는 진 퇴량난에 처했는데 엎친데 덮치는격으로 한국의 보신탕집이 유럽과 미국대중매체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게 되였으며 만민이 저주를 퍼부을 “야만적?”인 개잡는 모습이 유럽의 텔레비죤화면에 적라라하게 떠오른 최악의 불상사까지 맞게 되였다.
전통적인 개잡이는 확실히 잔인 그 자체였다. 잡히울 개를 나무에 달아매고 그밑에 불을 지피고 몽둥이로 늘씬하게 두둘겨패서 죽이는데 단번에 죽이지 않고 몽둥이 찜질로 천천히 죽여야 고기가 연하고 맛이 좋다는 천하에 몹쓸 도살법이였다. 이것은 만물의 령장이 할수 있는 행태이지만 인성의 일면이 표현된다.
이런 장면이 곧이곧대로 텔레비죤화면에 올라 유럽인들의 가가호호 안방에까지 전파되였으니 개고기를 먹는 그 습관보다도 우선은 개를 죽이는 그 야만성이 천인공 노할 일이 되여 세계인들을 경악의 도가니속에 몰아넣은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 르러 국제적으로 서울올림픽에 대한 거부반응까지 거세여져서 아주 긴박하게 되였다.
하여 외무부는 외교대책에 나섰고 내무부역시 경찰당국에 명령하여 모든 보신탕집의 영업을 정지시키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 하였다. 서울올림픽의 성패를 건 국가 적대사인데 간이 배밖에 나온 놈이라도 거역할 일이 아니였다. 보신탕이 제2차 역풍 을 맞은것이다. 그런데 전번과는 달리 영업집들에서 시교의 뒤골목이나 은밀한 곳에 잠적해서 간판도 걸지 않고 영업하였거나 업주들이 제나름대로 호칭을 바꾸어 간판을 거는 기특한 발상까지 내왔다. 그 양상이 기기묘묘하였는데 이를테면 사철탕, 영양탕, 자연탕이 있는가 하면 멍멍탕, 보양탕 등 하여간 인간의 상상력이 최대로 발양되다 보니 그 호칭이 류류별별에 형형색색이였다고 한다.
그렇게 “보신탕”이 2차역풍을 맞게 되여 각이하게 변신하면서 국내외의 압력과 견제를 수용하는척 하면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으니 습관이란 과시 제2천성이란말이 과언은 아니다. 인성도 모질고 그 심상도 악착해서 전통의 기치아래 그냥 자행되고있 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는 국제동물가협회의 끈질긴 압력을 겸허하게 받아 들어야 할것은 두말할것 없다.
허나 다음으로 생각할것은 개고기음식문화 자체를 비인도적이고 야마적이라며 국 제정치적압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리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인간이 문화는 정신과 물질의 지속적인 교체과정을 통해 독자적으로 생명력을 가지고 형성되는것이며 따라서 각민족에게는 고유의 음식문화가 있다.
그럼에도 우리 민족의 개고기음식을 먹는것이 유럽사람들과 다르다고 야만적이라 몰아부치는것 역시 진리성적이 아니다. 우리는 프랑스인이 개구리나 달팽이를 먹고 타 이인이 원숭이 골수를 먹으며 몽골족이 말이나 양고기를 즐기고 일본인이 말고기와 물고기를 날것채로 먹고 중국인들이 오리알고 오리고기를 좋아한다는것을 야 만적이라 하지 않는다. 그만큼 상술한것들은 그 민족들의 음식문화일뿐이다.
보신탕이 외세의 문화침략에 맞서서 싸워 살아남은 개고기음식의 혈투는 가상스러운 쾌거라 할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의 정치사에서 외세의 정치적압력으로부터 어떻게 민족문화를 지켜내야 할것인가를 단적으로 시사하고있다. 국제정치는 분명하 게 말한다. 정치적패배도 군사적패배도 만회가 가능하지만 문화적으로 패배하면 스스로의 모든것을 잃는다는것을 확실하게 증언하고있다. 지나간 력사의 흐름을 되돌아 볼 때, 우리 민족을 뿌리채 훼멸시키려던 문화제국주의의 침략이 크게 보아도 몇번 있었지만 우리는 용케도 이겨내였다. 우리는 항상 의연한 자세로 민족문화의 정체 성을 확립하였다.
기실 인류가 진화하면서 동물에 대하여 너무나 몹쓸짓을 수없이 해왔다. 지구촌에서 공존해야 할 온갖 동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짐승이라 명명하고 임의로 학대하고 심지어 자그마한 리익을 위해 잔인하게 가두고 죽이고 위속에 처넣는 걸어다는 료리감으로 치부하며 수천년을 내려왔다. 이것이 인류문명의 발달사의 한페지이다.
다른 야생동물은 잠시 제쳐두고, 개는 확실히 우리 인류와 함께 생활해온 가장 친근한 가축이다. 견공들처럼 거짓을 모르고 충성하며 배신을 모르는 귀여운 동물은 없다. 주인이 가난해도 나무리지 않고 한지에서 자고먹으면서도 불평을 모르며 주인 을 따르는 충견이다.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속담이 있지만 문명의 이 시대에는 개들 의 운명이 너무나 처참하다.
만약 동물들이 말할줄 안다면“이 세상에서 조물주가 만든 최고의 실패작은 인간이며 18층지옥보다 더한 곳으로 가야할 인간들이 온갖 교활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극락이나 천당으로 가려한다”고 성토하며 저주를 퍼부을것이다. 스위스 등 나라에서는 헌법으로 모든 동물을 마취시켜 도살해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우리도 동물에 대한 행동을 많이 고쳐야 할것이다.
2013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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