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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서는 詩作의 始初에도 못미치는 망동...
2016년 11월 19일 22시 58분  조회:3359  추천:0  작성자: 죽림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낙서(락서)


오 봉 옥

1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바쳐라
……
술 마시고 싶을 때 한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보아라.”

노래를 듣다가 문득 생각한다. 시야말로 목숨을 걸고 써야 한다는 것을. 한편의 시가 죽어가는 이를 살려낸다고 한다. 죽어가는 이를 살려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이 없어서는 안된다. 시는 정말이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초겨울 바람에 부르르 떨고 보니
시 쓰고 싶다
그 옛날 콜레라에 걸린 아이처럼
덕석말이로 마당 한가운데 누워
피가 질질 흐르도록 덕석만 할퀴다가
제 몸 위를 소가 쿵쿵 뛰어다니는 소리에 다시 놀라
까무러치기도 하다가
끝내는 온통 땀에 젖은 작은 몸으로
그 무서운 병을 툴툴 털고 일어나 히히 웃는
마치 그런.

2

서정의 특성은 개성적이라는 데에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도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게 나타난다. 노동자로서 보는 달과 자본가로서 보는 달은 느낌이 다른 법이다. 또한 같은 노동자라 할지라도 내성적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과 외향적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의 특성이 개성적인 것만큼 모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는 것이다.
통일에 관한 시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통일을 생각하는 느낌이 그렇게나 비슷한지. 진달래가 어떻고 백두와 한라가 어떻고 등등. 자신의 생활 속에서 깊이 있게 통일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서정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시를 관성적으로 쓰는 탓이다.

3

흔히 시평을 읽으면 ‘사상성’이라는 개념이 눈에 띈다. 시에서 ‘사상성’이란 무엇일까? 노동자의 생활을 다루면 사상성이 충실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상성이 불투명한 것인가? 사상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문제는 생활 속에 담긴 사상에 있다. 다시 말해 생활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사상을 어떻게 하면 올곧게 끄집어내어 정서적으로 잘 표현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그것의 성공 여부가 ‘사상성’ 운운으로 되어야 한다.

4

시에 있어서 상징어는 생동감을 보장하기 위하여, 비유는 말하고 싶은 바를 가장 적절히 표현해내기 위하여, 그리고 반복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시각․청각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내 독자를 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좋은 시일수록 이러한 시적 장치가 잘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5

시적 정서란 무엇일까?
시인이 생활 속에서 한 계기를 만났다 치자. 그래서 충동을 느꼈다 치자. 외치고 싶은 충동을, 춤이라도 추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치자. 그럼 그 정서적으로 느낀 충동이 시적 정서일까? 맞는 말이다. 반쯤은 맞는 말이다.
반쯤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충동의 삭이는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삭인다는 것은 그 충동을 자기의 것으로 되게 하는 것이며 모두의 것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삭임이 끝난 그 어떤 정서적 표현이어야 비로소 ‘시적 정서’가 아니겠는가.

6

시에서 생활 반영의 진실성은 어떻게 구현될까.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듯이 옮겨놓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시인 자신이 내화시켜낼 수 있어야 그것은 가능하다. 내화시킨 뒤의 정서적 토로라야 생활 반영의 진실성을 보장한다.

7

우리가 흔히 현실을 왜곡시켰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잘못 그렸다는 것만은 아니다. 넓게는 생활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했다거나 생활의 본질이 아닌 이러저러한 현상만을 나열하는 식으로 그린 것은 물론 현실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것까지를 일컫는다. 그러한 것은 모두 사람의 요구와 지향을 묵살하는 데 공통점이 있다. 우리 현실 속에서 자연주의적 경향은 그러한 것이다.
우리가 현실을 폭로하는 데 있어서도 ‘대안없는 폭로’를 우려하는 까닭은 거기에 있다.

8

시의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차적으로 형상화의 높이를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내용과 형식의 대중적 성격을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의 평가는 사상의 관점이나 주제의 방향이 얼마만큼 서정 속에 적절히 녹아들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모두 시 속에서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9

시들을 보면 종종 생각한다. 어떤 시는 절실한 문제를 형상적 비유에 의해 더욱더 선명하고 절실하게 문제를 전해주는 데 반해 또 어떤 시는 절실한 문제를 형상적 비유의 실패로 인해 더욱더 불투명하고 왜곡되게 문제를 전해주고 만다는 점이다. 왜일까?
창작적 사색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사상학습이 부족한 결과로 자신 스스로가 생활과 사상의 연결 끈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한 탓일 터이다.

10

담시와 서사시는 어떻게 다를까.
서사시가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보여준다면 담시는 이야기의 핵심적인 부분만을 잘라내 보여준다는 데 그 차이점이 있다. 또한 서사시보다는 보다 더 서정적 측면을 담시는 가지고 있다. 시인의 정서가 보다 더 직설적으로 관통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뛰어난 담시 하나 보고 싶다.

11

시에서 서정을 느끼는 주체가 독자임은 당연한 사실이겠다. 때문에 독자가 요구하는 정서에 깊이 파고드는가의 문제는 서정시에 있어서 관건이 된다. 독자의 구미를 파고들지 못한 시는 제 아무리 보기 좋은 시라 하더라도 실패작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그럼 독자 즉, 다수 민중의 구미에 맞는 내용이란? 다수 대중의 구미에 맞는 형식이란? 창작자의 고민은 한사코 거기에 있다.

12

시는 생활의 한 단면을 충격적으로 보고 느낄 때 쓰는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세상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은 느낄 그 충동이 시를 쓰게 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언정 종착점까지를 보장해 주진 못한다. 문제는 충동을 주는 그 대상의 구체적인 내면 세계까지를 정서적으로 충분히 공감했을 때 비로소 감동을 주는 시가 쓰여지는 것이다.

13

노래 같은 시들이 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고 싶은 시 말이다. 그것은 일정한 흐름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느껴진 것이다. 깊은 뜻을 아우르고 있으면서도 쉽고 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터이다. 어느 한 시가 박자를 머리 속에 그려지게 만든다면 그 시는 명시가 아닐 수 없다.

14

정서적으로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얼마 전에 가뭄이 극성을 떤 적이 있다. 논바닥이 갈라지고 농부들은 일손을 놓고 한숨만을 내쉬기에 바빴었다. 그런데 비가 왔다. 그때 TV에 비친 농부들은 비를 손바닥에 받으며 “아, 쌀이 옵니다”, “이것이 돈입니다. 지금 수천만 원이 내리고 있어요”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러한 농부들의 표현이야말로 정서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아, 지금 태양의 복사열을 받아 증발된 수증기가 구름을 이루어 떠돌다가 높은 곳에서 찬 기운을 만나 중력의 가속도로 인하여 물방울이 되어 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라고 했다 치자. 물론 농부라면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이 때의 표현은 생활정서로부터 벗어난 논리적 느낌․표현이 된다.
정서적으로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그런 것이다. 논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15

음악을 모르고서 시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시를 모르고서 음악을 안다고도 할 수 없다. 시와 음악은 쌍둥이와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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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 김달진(1907∼1989)

봄이 깊었구나
창밖에 밤비 소리 잦아지고
나는 언제부터선가
잠 못 자는 병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지난밤 목련꽃 세 송이 중
한 송이 떨어졌다.
이 우주 한 모퉁이에
꽃 한 송이 줄었구나.


 
올해 봄은 유난히 아쉽다. 더위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고, 대기가 맑지 못했던 탓에 봄을 즐길 시간도 적었다. 해님 아래 앉아 있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온 세상의 꽃과 새싹이 용기를 주는 계절인데, 이렇게 보내자니 억울하기까지 하다. 아쉬운 탓에 깊은 봄을 읊은 시를 하나 꺼내어 본다. 이 시를 읽는 동안에는 우리 마음에 고운 봄이 돌아오려나.

김달진 시인의 ‘목련꽃’에는 시와 잘 어울리는 몇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 우선 바탕이 되는 계절이 봄이다. 부드럽고 향긋한 느낌이 신선해서 시인의 감각은 더욱 활발해진다. 게다가 밤이다. 밤은 일상의 일이 정리되어 자신의 맨얼굴과 목소리를 확인하기 적절한 시간이다. 봄이고 밤인 것도 시 쓰기에 적절한 조건인데 여기에 비까지 더해져 있다. 봄비가 대지를 두드리는 소리는 마치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린다. 이런 밤에 괜히 싱숭생숭해서 시인지 일기인지 모를 글들을 써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얼굴을 붉히며 지우더라도, 봄과 비가 함께하는 밤은 잠 못 들게 한다.


 
깊은 봄의 유정한 마음이 1연의 주제라면, 2연은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간밤에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그새 아주 큰일이 벌어져 있었다. 겨우 피었던 목련꽃 세 송이 중에서 한 송이가 지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큰일일까. 큰일이라고 말하는 그 마음이 시의 마음이고 고운 마음이다. 언젠가는 떨어질 꽃 한 송이가 생각보다 일찍 진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이 사건은 심지어, 우주적 손실이다. 그러고 보니, 꽃나무가 겨우내 지키고 밀어올린 저 꽃이 보물이 아닐 리 없다. 열심히 피었던 꽃이 일찍 져버렸다는 사실이 애석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이 시를 읽으면 우리가 슬퍼해도 되는 이유를 찾게 된다. 구의역 어린 노동자를 애도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적혀 있다. ‘이 우주 한 모퉁이에, 꽃 한 송이 줄었구나.’ 우주는 그만큼 어두워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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