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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시, 그리고 경제...
2016년 11월 27일 22시 29분  조회:3405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인과 경제학자]에즈라 파운드와 클리포드 더글러스-부의 불평등 주목, ‘올바른 경제학’ 주창
 
   
파리 교통공단은 2014년부터 행사를 갖고 있다. 올해에는 8153편의 시를 받았다. 수상작과 후보작들은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과 같이 달리고 있다. 사람, 파리, 지하철, 이 세 조합은 시 한 편을 마음에 불러왔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노래했다. 이 시 ‘지하철 정거장에서’는 그가 파리에서 지내던 1920년대 지하철에서 본 파리지앵의 인상을 그리고 있다. 각자의 행동을 따로 떼어 묘사하기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느낌을 두 행에 담았다. 이미지주의를 대표하는 시인답게 일상어를 가지고, 조각처럼 명징한 ‘언어경제’를 좇았다. 짧음 사이에 긴 여운이 흐른다. 그러면서도 꽃잎에 대비하며 ‘얼굴들’의 삶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에즈라 파운드는 아홉 개 언어를 구사했던 천재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모더니즘을 파운드의 시대로 부를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 교분을 나눈 문학가들로 헤밍웨이, 예이츠, 조이스, 엘리엇을 꼽는다. 그런데 그는 문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경제와 사회 분야에서 몇 권의 책을 쓰기도 했고, 사회운동에도 깊이 참여했다. <경제학 기초(ABC of Economics)>나 <돈은 왜 존재하는가?(What is money for?)> 같은 글이 이를 잘 드러낸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미 활동의 혐의를 받은 바 있을 정도였다.

 
(왼쪽)클리포드 더글러스, 에즈라 파운드 / wikipedia
(왼쪽)클리포드 더글러스, 에즈라 파운드 / wikipedia
 

경제 분야에서 그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영국 경제학자 클리포드 더글러스다. 두 사람은 1918년 런던에서 만났다. 파운드는 그와의 교분을 통해 경제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부와 일반 대중이 돈이 돌아가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세계 경제가 왜곡되었다고 생각했다. 1915년부터 쓰기 시작한 장시(長詩), ‘칸토스’에도 이러한 영향이 드러나 있다. 더글러스의 생각과 닿은 파운드는 사회의 핵심은 경제에 있다고 보았다. 또 ‘올바른’ 경제학은 여러 사회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었다. 

더글러스는 부적절한 분배로 인해 구매력이 모자라서 불황이 초래된다고 주장한 경제학자이다. 이런 사회신용의 논의에 따라, 요즘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을 고안하였다. 파운드와 마찬가지로 19세기 후반 태어나 전쟁을 겪었고, 금융자본의 폭발적 성장을 지켜보았다. 문학계에서 주목받은 파운드와 달리 그는 비주류 경제학자였다. 그러나 케인즈가 그를 인용할 정도였다. 엔지니어로 공장의 회계를 감사하는 일을 맡았고, 노동자들의 생산과 소비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임금총액으로 상품 전체를 구매할 수 없게 된 것을 발견하였고, 기본소득처럼 소득보장을 기초로 한 사회적 분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부(富)가 나누어지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도 논했듯 이들이 조우한 시기는 사실 경제성장률이 비교적 높았다. 다시 말하면 일하던 사람 대부분이 잘 벌었던 때이다. 그럼에도 ‘불평등’에 주목할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닌, 그래서 그들을 이어주었던 섬세함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학은 여전히 철학을 필요로 한다.’ 이 말은 윤리학을 천착하는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지난 6월에 출판한 논문의 제목이다. 경제학은 결국 사람 사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고, 모두 다 잘 살아가기 위한 생각이다. 금융위기로 벌거벗겨진 자본주의 탐욕경제가 여전히 계속되는 지금, 시인의 경제학적 고민과 경제학자의 섬세한 관찰이 고맙게 느껴진다. 

< 김연(시인·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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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경제학>> 

윤기향 지음 / 김영사 / 596쪽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20세기 이후 세계경제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 두 번의 세계대전, 1970년대 경기 불황,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수많은 고비를 넘었다. 때로는 강물에 급류가 굽이치고 비바람에 배가 요동치듯 경제도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는다.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은 마치 이런 상황을 묘사하는 것 같다.

윤기향 미국 플로리다애틀랜틱대 경제학 교수는 《시가 있는 경제학》에서 경제학에 시를 접목해 색다른 프레임으로 경제를 바라본다. 논리의 언어가 아니라 감성의 언어로 설명함으로써 인간 세상을 풀어나가는 경제학의 열정을 되새기게 한다. 28편의 영미시, 한국시, 중국시, 일본시를 소개하며 경제학을 유쾌한 학문으로 만들려 노력한다. 고전학파, 케인스학파, 신자유주의 등 경제사상사의 굵직한 핵심들을 다룬다. 세계 경제의 흐름과 변화, 소득불균형과 복지 문제 등 다양한 경제학의 기초지식을 쉽게 설명한다. 

저자는 “미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이전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인 양적 완화라는 통화정책을 택했고, 이것이 미국 경제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고 진단한다. 이를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가지 않은 길’에서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덜 다닌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고 노래한 것에 비유한다. 새 통화정책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3개의 화살론’도 시를 통해 분석한다. 아베 총리는 일본 경제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무제한 양적 완화, 적극적인 재정 지출, 경제구조 개혁이라는 세 개의 화살을 무기로 꺼내 들었다. 저자는 헨리 롱펠로의 ‘화살과 노래’를 읊조리며 그 효과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공중을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았으나,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화살이 너무 빠르게 날아가서 시선을 따라갈 수 없었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한 참나무에서 화살을 찾았네. 부러지지 않은 채로….”

 
/최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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