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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은 일상의 삶을 詩처럼 살아야 한다...
2016년 11월 30일 21시 01분  조회:3783  추천:0  작성자: 죽림
 
夕塘/김승기    
 
일상의 삶이 곧 詩다
— 궁핍한 삶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심는 詩들 —


  요즘의 한국시단은 ‘미래파’니 뭐니 하여 너무 관념적이고 난해한 詩들이 넘쳐나고 있다. 매달 받아보는 월간이나 계간의 문예지의 시편들을 살펴보면 서정시는 어쩌다 한두 편이 눈에 띌 뿐 거의가 관념적이고 난해한 詩들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詩 속에 구사하는 시어(詩語)에 있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를 남발하고 있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치 그렇게 써야 좋은 詩이며 그렇지 않으면 詩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각하다. 이 문제는 시인들도 그렇지만 문학평론가들도 한 몫 거들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시편들을 발표하는 시인들의 이력(履歷)을 보면 대개가 대학교 또는 대학원 졸업 출신의 시인들로 대부분 대학교수들이거나 최소한 강사로 대학의 강단에 서고 있는 시인들이다. 문예지에서 어쩌다 발견되는 서정시도 시인의 이력(履歷)을 보면 앞의 시인들과 마찬가지이거나 지명도(知名度)에 있어서 유명세를 타는 시인들이다. 필자와 같은 무명소졸(無名小卒)의 서정시인들은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내로라하는 지면에는 발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정도다.

  詩는 왜 쓰는가? 독자(讀者)가 없는 詩도 詩라 할 수 있는가? 시인들끼리만 서로 나누어 읽는 詩를 뭐하러 쓰는가? 좋은 詩란 무엇인가? 어려운 말로 도무지 무슨 뜻인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詩를 과연 좋은 詩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일반 독자들이 외면하고 마는 詩를 詩라고 할 수 있는가?
  쉬운 말로 쉽게 쓰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詩, 그러면서도 깊이가 있어 독자의 가슴을 찡하니 울릴 수 있는 詩, ‘바로 이거야’ 하며 무릎을 탁 칠 수 있는 시詩, 그런 詩를 좋은 詩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쉬운 말로 깊이 있는 좋은 詩를 쓸 수 있을까. 그것은 詩를 생활화하여 시인의 삶 자체가 詩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일상의 삶이 곧 詩이며, 시인은 일상의 삶을 詩처럼 살아야 한다는 게 필자의 평소 생각이며 지론(持論)이다.

  여기 쉬운 말로 쉽게 쓰면서도 깊이 있는 좋은 서정시를 쓰는 무명소졸(無名小卒)의 시인들이 있다. 거창한 이력(履歷)도 없고 유명세도 타지 못하면서 누가 알아주든 말든 문예지에 실어주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홀로 서정시의 길을 걷고 있는 시인들이 있다. 그들 가운데 몇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늘 껍질을 벗기며
속껍질을 슬쩍 눈감아 준다
벌거벗은 마늘 몸에도 차마 손톱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아
상처 입는 것이 어디 마늘뿐이겠냐고
자신의 시퍼런 상처를 눈물로 쓱 문지른다
꽉 쥐고 펴지 않으려는 주먹 같은 마늘을 쪼개며
치마끈 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열여섯 꽃봉오리
눈보라 속에 파르르 떨고 있는 숫처녀를 본다
첫날 밤, 새 신랑이 풀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이 아니라면
아, 짐승들의 진흙투성이 군홧발로 짓밟히지는 말았어야 했다
군홧발이 바뀔 때마다 대못이
가슴 속 깊이 박혔다
하나, 둘, 셋, 아흔아홉……
휘어진다, 못인들 제대로 박히겠는가
깐 마늘을 절구통에 찧는다
으깨어지면서 튀어나온 마늘이 손등에 닿는다
아리다
그래, 깨어진 마늘도 제 독한 상처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는데
내 몸에서
한(恨)서린 사리(舍利)가 나오거든
대한해협 건너 그들에게 보여서
떠도는 영혼 달래준다면
열여섯 꽃봉오리
다시 한 번 활짝 꽃피워보련만



— 김명림「어느 노파의 독백」(시집『어머니의 실타래』고요아침, 2013)


  김명림 시인은 2011년 60을 바라보는 늦은 나이에 계간《열린시학》으로 등단한 늦깎이 시인이다. 그리고 2013년 11월에 첫 시집『어머니의 실타래』를 상재하여 초판이 나오고 열흘 만에 초판 2쇄를 찍었다. 그러나 시인은 아직도 작품을 발표할 지면의 기회를 얻지 못해 허덕이고 있는 무명소졸(無名小卒)의 신인이다.

  시인은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며, 맏며느리도 아니면서 오랫동안 병석에 누운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는 한편 독거노인, 노숙자, 소년소녀가장,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등 사회 저층(底層)의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왔다. 시집『어머니의 실타래』는 시인이 전업주부로 살아온 삶과 봉사활동을 하면서 겪은 생활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시편들을 묶은 시집이다.
  위의 詩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봉사를 통해 느낀 시인의 감정을 詩로 풀어내고 있다. 쉬운 말로 아주 쉽게 표현하고 있지만 평생을 주부로 살아온 여성의 눈이 아니면 그려낼 수 없는 표현을 통해 가슴 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詩 문장이 평이하면서도 자꾸 되씹고 곱씹어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130여 쪽이나 되는 시집 62편의 詩 한 편 한 편이 평이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시행(詩行)의 한 줄 한 줄 숨은 뜻이 도사리고 있어 쭉 읽고 지나갈 간단한 내용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그날따라 만삭인 달이/제 뒤를 쫓아오며/야릇한 웃음 흘리는 게 아니겠어요/설마 저도 어미가 될 테니/동네방네/고자질이야 하겠어요?”(「공범」), “밥상머리에서, 시댁형님 바짓부리를 잡아당겼는데요(…)고무줄 바지를 위로 잡아당기고 당겨 반바지를 만들고 계시는 게 아니겠어요//(…)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조카, 까르르 아리랑 고개 넘어가는데요 쉿! 조용히 하라고 엉덩이 드는 그 찰나! 바로 그 찰나였는데요 뽀오옹 단풍 물든 얼굴 쥐구멍 찾고 있는 중인데요 녀석, 방귀소리 한번 실하네//시어머님께 드리는 두둑한 흰 봉투가 아깝지 않더라니까요”(「시어머님」), “눈깔사탕이 눈앞에 아른거려 꼬깃꼬깃 지전을 손에 들고 나오다 낮달한테 들켜버렸다 커다란 눈깔사탕 두 개를 사서 낮달의 입을 막았는데 녀석은 단맛도 채 가시지 않아 어머니께 고자질해버렸다”(「어머니의 속곳 주머니」)에서 보듯이 매 시편마다 그 심각하고 의미심장한 사건의 내용들이 무겁고 비장하게 느껴지지 않고 위트와 해학이 넘쳐난다.
  시인의 詩는 따뜻하다. 우리 사회의 맨 밑바닥 저층(底層)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고단하고 슬픈 삶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다. 고달프고 절망적인 삶을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 안으며 위트와 해학이 넘쳐나는 밝은 웃음으로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버림과 비어 있음의 경계선은 어디쯤일까

요즘은 자꾸 등이 가렵다
뒤꿈치 치켜들고 몸을 비틀며
어깨 너머 허리 너머 아무리 손을 뻗어도
뒤틀린 생각만 가려움에 묻어 손끝에 돋아난다

나와 내 몸 사이에도
이렇듯 한 치 아득한 장벽이 있다는 것이
두렵고 신비스럽다

빛과 어둠,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 정수리 어디쯤
죽음에 이르러야 열리는 문이 외롭게 버티고 있는 것 같고
때론 소슬바람에도 쉬 무너질 것 같은 그 무엇이
내 안 어딘가 덜컹거리고 있다

등이 가려울 때마다
등줄기 너머 보이지 않는 길들이 그립다



— 김명기「등이 가렵다」(시집『등이 가렵다』문학의전당, 2013)




  김명기 시인은 필자와 같은 고향 속초 출생으로 필자보다 서너 살 아래의 연배(年輩)다. 필자의 은사(恩師)이신 고(故) 이성선 시인을 모시고 필자와 함께 속초에서 ‘물소리시낭송회’의 운영을 도맡아 했었다. 시인은 1991년 무크지《문학과지역》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1992년《문학세계》로 문단에 나왔다. 불우한 집안의 가난한 살림으로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가방끈이 짧아 생계를 위해서라면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막노동, 주점 종업원, 품팔이, 공공근로, 택시운전, 대리운전 등으로 생계를 꾸릴 수밖에 없었으며 지금도 생계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늘 시인의 곁에는 문학이 있어 주눅 들지 않고 창작에 몰두했으며, 그렇게 써 모아두었던 詩들을 시집 낼 돈도 없어 등단 20년이 넘어서야 2013년 11월에 어찌어찌 도움의 손길을 받아 겨우 첫 시집『등이 가렵다』를 상재하였다. 등단 20년이 넘었지만 시인 역시 작품 한 번 제대로 발표할 지면을 얻지 못하고 있는 무명소졸(無名小卒)의 시인이다.
  시인은 이제 60고개를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생계를 위해서 뭐든지 해야 하는 가난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그 고단한 생애의 그림자를 작품 속에서도 짙게 드리우고 있다. 위의 詩에서도 보듯이 얼마나 가난에 찌들어 있으면 “요즘도 자꾸 등이 가렵”고 “뒤틀린 생각만 가려움 묻어 손끝에 돋아”나는 것이며, “소슬바람에도 쉬 무너질 것 같은 그 무엇이/내 안 어딘가”에서 “덜컹거리고 있”겠는가. 너무나 가난하다 보니 “죽음을 향해 서서히 굳어져 가”(「액자를 짜다가」)는 아픔과 고통이 그칠 날이 없었고, “흩어졌다 다시 쌓이고 지워지는 이 그림자”(「자화상」)를 떨치지 못하고 “철근처럼 빗줄기를 온몸에  꽂고 지나온”(「귀가」) 나날을 여태껏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내 몸 속에 병을 오래 지니고 있으면 병과 친구가 되듯이 아픔을 오래 앓으면 아픔도 친숙해져서 아픔이 멈추면 홀가분할 것 같지만 어느 한 순간 잠시나마 멈춘 그 아픔이 오히려 그리워 “내 몸 사이에” 있는 “아득한 장벽이 있다는 것이/두렵고” “신비스럽”고, “등이 가려울 때마다/등줄기 너머 보이지 않는 길들이 그”리운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렇게도 진절머리가 나는 가난 속에서도 “옹기종기 기다림들이 모여/창가에 불 밝히는 사람들의 마을”과 “낯설지 않은, 그런/환한 사람의 마을”(「길을 가다가」)을 소망하는 소박하고 따뜻한 기대 하나로 버티면서 “가난도 이쯤이면 축복”(「꽃을 심으며」)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희망의 꽃을 심고 있다.



  두 번도 말고 한 번만 믿어보세요. 가진 건 없지만 양심은 있습니다 제 양심을 걸고 파는 거니까 믿어보세요 치과에선 최소한 삼천 원입니다 이 자리에선 단돈 천 원! 큰돈 아니니 속는 셈 치고 인간적으로 사보세요 제가 분당선에서만 삼 년 이걸 팔고 있습니다 분당선에서 저 말고 이 칫솔 파는 사람 없습니다 여기 이 전화번호는 여주 ○○공장 번호고요 그 옆 휴대폰번호는 제 껍니다 사장이 제 친구로 특별히 봐주고 있어요 그러니까 두 번도 말고 세 번도 말고 한 번만 믿어보세요……

  — 나도 누구에겐가 믿어 달라 저처럼 외칠 수 있을까? 유난히 덜컹거리는 이 하오(下午)!



— 박재화「전철에서 외치다」(시집『먼지가 아름답다』인간과문학사, 2014)




  박재화 시인은 직장인의 소시민이다. 시인의 삶 역시 궁핍하다. 농사를 지을 농토가 없어 노동판을 전전하다가 생을 마친 아버지의 죽음을 스무 살에 받아들인 우울한 성장기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는 시인은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어도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졌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어도 삭막한 대도시의 생활은 나아지질 않았다. 생업을 위해 낮에는 직장에 근무했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주경야독으로 성균관대학교 야간대학을 수석 졸업하였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대학 강사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시인은《현대문학》이 3회 추천제에서 2회 추천제로 바뀐 이후인 1984년에 2회 추천 완료로《현대문학》을 통해 늦깎이로 등단하여 문단에 나왔다. 그리고 2014년 6월 제3시집 출간 10년 만에 제4시집『먼지가 아름답다』를 상재했다. 그러나 시인은 여전히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얻지 못해 굶주리고 있는 무명소졸(無名小卒)의 시인이다.
  시인의 詩는 명쾌하다. 그리고 실제적 체험을 중시하며 원칙을 고수한다. ‘우리 말본 지키기’를 주창하며 우리 말 ․ 글 ․ 얼의 ‘지킴이’를 자처하여 바른 글쓰기 운동을 펼쳐 나가는데, 이는 시인의 각 시편(詩篇)들마다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시인은 이성적 탐미주의자다. 규범을 지키면서도 내면의 자유로운 의지를 확산한다. 천진성과 대상에 대한 통찰력을 함께 공유하며 본질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의지를 그만의 언어로 드러내려 한다. 위 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인은 매 시편(詩篇)마다 처음엔 평이한 문장으로 시행(詩行)을 서술해나간다. 그러나 “나도 누구에겐가 믿어 달라 저처럼 외칠 수 있을까? 유난히 덜컹거리는 이 하오(下午)!”처럼 마지막에는 위트와 해학이 넘치는 이미지의 변주로 대반전을 꾀하여 詩의 본질과 원형이 무엇인지를 복원하고 정화해 나가려고 한다.



외딴 숲 속 길
무심으로 혼자 걸어가면서
돌 위에 돌 올려놓고
고요 위에 침묵을 올려놓는다

돌 위에 돌
고요 위에 침묵
이걸 적막강산이라 부르는가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가만가만 고요의 소리 재운다
고요의 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 나석중「고요의 소리」(시집『풀꽃독경』북인, 2014)


  나석중 시인 역시 2005년 67세에 시집『숨소리』를 시작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늦깎이 시인이다. 그러나 詩의 열정은 식을 줄 몰라 2014년 77세 희수(喜壽)를 맞으며 등단 10년 만에 제5시집『풀꽃독경』을 세상에 내놓는다.

  시인은 40년이 넘는 오랜 세월 탐석(探石)을 해온 수석(壽石, 水石) 전문가다. 그래서 시인의 詩에는 돌의 냄새가 배어있다. 직접적으로 돌을 노래하지 않는 詩에서도 돌의 향기가 난다. 그러한 시인은 지금 연립주택의 반지하층에서 홀로 궁핍한 생활을 하며 쓸쓸하고 고독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가야 할 날이 훨씬 적은 노후의 뜨락에서 이승과 저승의 사이를 오가며 꿈을 꾸고 있다. 서서히 죽음 이후의 세상을 맞이할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적막강산” 같은 죽음을 깊디깊은 고요처럼 두려움 없이 조용히 맞이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외딴 숲 속 길”을 “무심으로 혼자 걸어가면서/돌 위에 돌 올려놓고/고요 위에 침묵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가만가만 고요의 소리”까지 “재운다”. 그렇게 저승으로 가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 연습이 만만치가 않다. “적막강산” 같은 죽음은 “악마 같은 적막”(「적멸(寂滅)」)이다. 이승에의 미련이 남아서일까. 애써 고요하게 죽음을 맞으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이제는 서서히 죽음에 다다르고 있다는 설운 슬픔과 결국에는 맞닥뜨리게 될 죽음에 대한 가슴 시린 감정 때문에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린다. “바닥에서도 혼자서/씩씩하게 한 목숨 살려왔건만/이불을 머리꼭대기까지 끌어 덮어도/머릿속 구름 일어 잠 못 드는 밤//창밖에는 겁먹은 바람이 덜컹거리고/어린 고양이는 울음으로 보채고/해소처럼 돌아가는 보일러 소리/불면의 수돗물 똑똑 떨어지는 소리//여보, 죽으면 끝없이 잠만 자겠지만/저것이 다 살아있다고 가까스로/발버둥치는 소리, 오돌오돌 추워서/몸 오그라드는 소리//고스란히 내리는 눈옷 입고/뼈만 남은 어머니 아버지도 생각나서/뼈도 없이 소나무 밑에 심어진 아우도/자꾸 생각나서 잠 못 드는 밤”(「지층」)을 지새운다.

  이상 몇몇 시인의 詩를 살펴보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궁핍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너무도 궁핍하다 보니 시집 한 권 상재할 금전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건 다반사(茶飯事)다. 어찌어찌하여 겨우 시집을 상재하여도 아무리 좋은 詩를 세상에 내놓아도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보다 더 불우한 이웃들을 포근하게 품어 안고 따뜻하게 보듬는다. 비록 생활은 궁핍하지만 몸과 정신은 초라하지도 않고 구차하지도 않다. 오히려 순수하고 고결한 품위를 잃지 않는다. 삶 자체가 진실로 詩답다. 詩다운 삶을 통하여 얻어낸 생활의 체험을 詩로 표현한다.
  또한 이들은 학력도 짧고 지명도(知名度)도 높지 않아 유명세를 타지도 못할뿐더러 문단(文壇)의 이력(履歷)이 길든 짧든 지금도 여전히 작품을 발표할 문예지의 지면(紙面) 하나 제대로 부여받지 못하는 무명소졸(無名小卒)의 시인들이다. 그렇다고 지면(紙面)을 얻어내기 위해 구차하게 구걸하거나 발버둥치지도 않는다. 알아주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좋은 詩 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의 詩는 어렵지 않다. 쉬운 말로 이해하기 쉽게 쓰면서도 깊이가 있다. 읽기 쉬운 문장으로 쉽게 시행(詩行)을 읽어 내려갈 수 있지만 다시 되씹고 곱씹어 보게 만드는 서정시를 쓰고 있다. 詩를 쉬운 말로 쉽게 쓰면, 원로시인이거나 지명도(知名度)가 높아 유명세를 타는 시인의 경우는 ‘아, 연륜과 경륜이 있으니까 이렇게 詩를 쓸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감탄하지만, 신인(新人)이거나 지명도(知名度)가 없는 시인의 경우에는 ‘에이, 이것도 詩라고 썼냐?’ 하고 무시해버리는 게 한국시단의 현 풍토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무시를 당하거나 말거나 아랑곳없이 어떻게 하면 더 쉬운 말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좋은 서정시를 쓸 수 있는가에 매달리고 있는 시인들이다.
  이러한 시인들이 좀 더 많은 지면(紙面)을 부여받아 훌륭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 독자들로 하여금 좋은 詩를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시인들이 제대로 대우받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르고 바람직한 문단(文壇)의 세상이리라.
  이 세 가지 문제에 있어서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끼리끼리 모여 작품을 발표하고 일반 독자도 없이 시인들끼리만 서로 나누어 읽는 난해한 詩가 문예지의 지면(紙面)을 가득 채우는 현재의 한국시단 풍토의 굴레에서는, 궁핍한 삶을 살며 쉬운 말로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깊이가 있는 좋은 서정시를 쓰려고 노력하는 필자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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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우리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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