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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 대표 화가 - 일리야 레핀
2016년 12월 04일 00시 16분  조회:6072  추천:0  작성자: 죽림


 
 
 
자화상.

일리야 레핀(러시아어: Илья́ Ефи́мович Ре́пин1844년 8월 5일 ~ 1930년 10월 29일)은 러시아의 화가이다.

주요 작품[편집]

러시아의 사실주의 화가로서 동시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러시아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바깥 고리[편집]


 

* 레핀의 작품 <쿠르스크 지방의 십자가 행렬>

 

 

 

 

[ 천개의 얼굴, 천개의 영혼, 일리야 레핀(1844~1930) ]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처음 일리야 레핀의 작품을 접했을 때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니다. 숨이 멎을 만큼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을, 책장에서 책을 뽑듯 정확하게 뽑아내어 묘사해낸 그의 능력은 단연 압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리야 레핀은 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로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시초를 연 선구적인 작가입니다. 특히 그는 세밀화, 인상주의, 성화, 역사화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작품들을 관통하는 일련의 공통점은 세밀한 표정의 묘사와, 찰나의 순간을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일리야 레핀은 1844년 우크라이나 추구예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는 15세 때 고향 추구예프의 이콘 화가 부나예프의 견습생으로 일하면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는 종교화와 초상화를 그려 모은 돈으로 19세 되던 1863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하여 예술장려협회의 미술학교에서 데생 교육을 받았습니다.

 

 

* 레핀의 작품 <러시아 혁명>

 

 

 

 

이듬해인 1864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그의 평생의 스승인 이반 크람스코이를 만났습니다. 크람스코이는 이동파를 이끈 지도자이자 시대를 주도하는 예술가로 그는 레핀에게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각인시켰습니다.

 

 

 

* 이동파

 

 

 

‘이동파’란 레핀이 속했던 미술가 단체로 러시아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농민 계몽을 목적으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그 명칭이 이동파로 된 것입니다.

 

 

레핀은 1871년 성서를 주제로 한 <야이로의 딸의 부활>로 아카데미 졸업 작품전에서 금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것으로 일급 공식화가 자격을 취득했고, 우수 연수생으로 6년간 해외 유학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 말년의 레핀

 

 

 

 

레핀은 유학을 떠나기에 앞서 볼가 강에서 배를 끄는 인부들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고, 유학을 미룬 채 이 장면을 그리는 데 매달렸습니다. 3년 뒤에 탄생한 <볼가 강의 배 끄는 인부들(아래에서 소개)>은 각각의 인물 속에 개성 넘치는 성격과 다양한 삶의 흔적, 강인함과 절망, 비극적인 러시아의 상황을 담아낸 수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레핀은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성직자>, <황녀 소피야 알렉세예브나>, <쿠르스크 현의 십자가 행렬>등 러시아적 가치와 전통에 바탕을 둔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1882년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다시 옮긴 레핀은 이동파 화가들의 전시회에 참여했습니다. 이동파는 특정 계층의 사람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여러 도시로 이동해 가며 전시회를 열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 레핀의 작품 <성직자>

 

 

 

 

레핀은 이 시기에 혁명을 주제로 한 역동적인 삶을 주로 그렸는데, 특히 삶 속에 내재된 다양한 심리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아래에서 소개)>는 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유형지에서 고향의 집으로 돌아온 혁명가와 그를 맞이하는 가족들 간의 긴장된 심리 상황이 날카롭게 포착되어 있습니다.레핀은 초상화의 대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880년대부터 수많은 러시아 문화 엘리트들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고골 등을 비롯한 문학가,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의 음악가, 스타소프 같은 예술 비평가, 그밖에 왕족과 귀족, 우아한 상류사회 여성 등 문화계의 거의 모든 유명 인사들이 레핀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 레핀의 작품 <톨스토이>

 

 

 

 

레핀은 모델의 특징적인 포즈와 몸동작, 행동 등을 통해 각각의 인물이 지닌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예리한 사색과 관조에 의거한 인물 내면의 심리 묘사에 탁월했습니다. 레핀은 생애 말년을 핀란드의 쿠오칼라에서 보냈습니다.

 

 

 

 

* 레핀이 마지막을 살다간 레피노의 저택

 

 

 

 

 

그리고 1930년 9월 29일 그곳에서 86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레핀이 거주하던 쿠오칼라 마을은 그의 예술적 업적을 기념하여 1948년 레핀의 이름을 따 ‘레피노’로 개칭되었습니다.

 

 

 

 

[ 대표 작품 감상 ]

 

 

 

 

 

 

 

* 터키 술탄에게 편지를 쓰는 자포로쥐에 코사크들

 

 

 

 

 

 

 

 

이 작품은 코사크크족의 다음과 같은 전설을 소재로 해서 그려졌습니다. 17세기 중엽 터키의 술탄 마호멧 4세가 드네프르 강변에 사는 코사크족에게 자기 밑에 들어와 일하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코사크족은 용맹성과 대담성으로 명성을 날렸고, 뛰어난 전사로 알려져 있었죠. 그래서 터키 술탄에게는 자기 군대에 그러한 병사들이 있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그러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명예를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던 코사크인들은 그 제안을 거절하고 터키 술탄에게 모욕적인 말과 조롱으로 가득 찬 편지를 썼습니다.

 

 

 

레핀은 바로 편지를 쓰고 있는 코사크인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한 가운데 서기가 이 사람 저 사람이 불러 주는 대로 편지를 받아 적고 있고 주위의 코사크인들은 터지는 웃음을 못 이겨 배꼽을 잡고 껄껄대고 있습니다.

 

 

 

 

*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온화한 파스텔톤의 벽과 피아노, 아이들이 둘러앉은 식탁. 화목한 분위기가 흐르는 평범한 가정의 거실에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순간 냉랭한 정적이 흐릅니다. 추레한 외투를 걸치고 피곤에 찌든 얼굴로 어색하게 집으로 들어서는 이는 바로 이 집의 가장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정치범으로 투옥되었다가 오랜 형기를 마치고 지금 막 집으로 돌아왔습니다.19세기 말 러시아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일리야 레핀)은 그림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를 통해 혁명의 시대에 개인들이 겪어야 했던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을 보여줍니다. 혁명가였던 그림 속의 아버지는 사회 개혁을 향한 원대한 포부와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의지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뒤에 남겨진 채 고난을 떠안았던 가족들에게 그는 단지 무책임한 가장일 뿐이었습니다. 힘겹게 되찾은 평온 속에서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던거죠. 마침내 아버지가 돌아왔지만 감격의 드라마는 없었습니다. 어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하고, 오래전에 아버지 얼굴을 잊은 아이들은 오히려 겁에 질린 표정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아버지들 역시 가족들로부터 소외된 그림 속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아버지들은 세파에 시달리느라 정작 가족에겐 무심했고, 남은 가족들은 각자 알아서 그의 빈자리를 메워버렸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겐 퇴근 후 무뚝뚝한 얼굴로 집에 들어서는 아버지가 불편한 존재랍니다. 지금 '혁명'이 필요한 곳은 바깥이 아니라 집안일지도 모릅니다.

 

 

 

 * 볼가강의 배를 끄는 인부들

 

 

 

 

 

 

 

 

 

일리야 레핀 하면 유명한 작품이 <볼가강의 배를 끄는 인부들>입니다. 이 작품을 그린 것이 1870~1973년 사이인데 당시 러시아에는 강에서 밧줄로 배를 끌어 올리는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레핀이 1860년대 말 네바 강변을 산책하다 목격한 것이 ‘더럽고 해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무거운 하역선을 끌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레핀은 큰 충격을 받았고, 1870년 볼가강을 여행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노동자들의 삶을 관찰하고 수많은 스케치를 했다고 하네요. 이 작가가 얼마나 일꾼들의 내적인 세계를 경외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인간의 정신적인 힘이 힘든 노역에 의해서조차 굽혀 질 수 없다는 작가의 신념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체념한 듯 밧줄을 몸에 걸치고만 있는 사람, ‘뭐 구경났소?’하는 눈빛으로 힘을 주고 있는 사람, ‘에이 제기’하며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젊은 사람, 고개를 숙이고 다른 사람들과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떼는 맨 뒷사람, 괴로운 듯 제 머리를 쥐어뜯는 사람 등 여러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레핀이 이들의 내적 세계를 경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죽은 듯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라는 겁니다. 세계는 ‘배와 배 끄는 사람들’이라는 두 부류로 나뉘고, ‘배 끄는 사람들’속의 사람들은 배 끌기 속에 함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마다의 삶의 이야기와 생각과 감정을 지닌 존재로 나타납니다. 

 

 

얼굴 표정이나 상체의 모습뿐만 아니라 다리와 발 모습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이들을 열심히 관찰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놀라울 뿐입니다.

 

 

 

 

* 이반 뇌제, 자신의 아들을 죽이다

 

 

 

 

 

 

이 작품의 역사적인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533년 고작 세 살의 나이에 모스크바 대공국의 대공에 오른 후 러시아 최초의 차르가 되었던 이반 4세는 ‘그로즈니(잔혹한) 이반’, ‘이반 더 테러블’, ‘뇌제’라는 별칭이 함의하듯 거의 정신병자에 가까운 폭군이었습니다.

 

 

 

친위부대 오프리치니키를 조직해 ‘살인면허’를 하사한 후 무자비한 강압정치를 펼친 최악의 군주. 오프리치니가 반대세력을 처형하는 광경을 직접 관람하며 희열을 느끼던 사이코 패스이기도 했고, 황궁 자문관들이 구국의 심정으로 시정을 촉구하자 그들은 물론 가족과 친지, 심지어 마을주민까지 씨를 말려 학살해버린, 전두엽 기형 장애를 앓고 있었던 게 분명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 말종이었습니다.

 

 

 

노브고로드에서만 6만 명에 달하는 사람을 학살했고, 이반 4세는 “아무리 나쁜 놈도 제 세끼한테는 좋은 부모일 수 있다”는 생물학적 질서까지 파괴해버린 패륜 황제이기도 했는데, 사연을 구체적으로 일러주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며느리가 임신을 한 까닭에 세 겹 이상의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황실 전통을 어기고 한 겹의 치마만 입은 것을 목격한 이반 4세. 태자비가 황족의 품위에 먹칠을 했다며 쇠지팡이를 휘둘러 폭행하려 하자, 임신부인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황태자가 나서 이를 만류합니다. 격노한 이반 4세, 휘두르던 쇠지팡이로 아들의 머리를 내리쳤고, 황태자는 즉사합니다.

 

 

 

황제는 뒤집힌 눈을 뒤늦게 다잡은 후 제 세끼를 제 손으로 죽였다는 사실에 절규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휘둘러버린 쇠지팡이, 끊어져버린 숨통일 뿐. 1581년 11월 러시아의 황태자는 그렇게 사망했고, 현장에서 이 충격적인 살육을 목격한 황태자비는 유산하게 됩니다. 

 

 

위의 그림은 바로 이 장면을 묘사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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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들은 극적인 구성과 긴장감의 조화, 표정의 세밀한 묘사가 뛰어나다.

 

 

 

Tsarevna Sophia Alexeevna in the Novodevitchy Convent. 1879

노보제비치 수녀원에 감금된 소피아 알렉세에브나 황녀

 

 

 

티티야나 마몬토바의 초상 (1882) Oil on canvas
창백한 얼굴과 퀭한 눈, 그녀의 우울한 표정 묘사가 뛰어나다.

 

 

숲에서 쉬고있는 톨스토이 (1891) 60x50cm oil on canvas.
이 작품을 통해 레빈이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수있다.

톨스토이

 

Portrait of Modest Musorgsky, 1881
Oil on Canvas, 69 x 57 cm, The State Tretyakov Gallery, Moscow, Russia

 

음악가 무소르그스키의 초상화

 

술에 취했음에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날 유쾌하게 한다.

 

A Fisher-Girl. 1874. Oil on canvas, The Irkutsk Art Museum

소녀의 지친 표정에서 슬픔이 느껴진다.

 

 

 

A Shy Peasant. 1877

 

 

A Peasant with an Evil Eye. 1877.

 

나쁜 눈빛의 남자 1877년 캔버스에 유채 60x49cm

 

 

Refusal from the Confession. 1879-1885.

 

 

 



 

              화가 일리야 레핀 딸 초상화.


 

 

나쟈 레피나

1881  캔버스에 유채 66 x 54cm

 

일리야 레핀의 둘째딸 나제쥬다 레피나의 일곱살때 초상이에요

화가분이 그린 아이들의 초상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생각에 잠긴 귀여운 까만 눈동자,

아버지의 사랑의 시선으로 잡아낸 장면이라서인지 따뜻합니다

 

아이들이 이런 자기만의 골똘한 생각에 잠긴 표정 지을때 퍽 귀여워요

"무슨 생각하니?"

하고 괜히 간질이거나 장난치고 싶은 생각도 들고

귀여운 얼굴 가만히 계속 들여다보고싶은 생각도 들구요 : )

화가분도 아마 그런 마음이셨겠죠

그림 전체에 아버지 품같은 포근함이 감돕니다

 

 

 

베라 레피나의 초상

1874 캔버스에 유채 73 x 60cm

 

화가분의 큰 딸 베라 레피나의 초상입니다

두 살 아기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자신의 첫 아이를 커다란 의자에 앉혀놓은채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분의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어린 아기가 과연 몇분이나 얌전한 자세로 앉아있을 수 있었을까요

사진찍는것도 쉽지 않은데 아기의 초상을 그리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으셨을 거에요  

아기의 두 손이 각각 장난감을 쥐고 있는 것만 봐도 ^^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리면서 몇번이나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을 것 같아요

 

이 사진은 특히 부모님들이

아기들 사진관에 데려가 찍어주던 예전의 우리나라 기념사진들과

그 느낌이 비슷해서 더 정겨워요

최고의 화가를 아버지로 둔 베라 레피나는

 아기때부터 어른이 된 후에도 아버지에 의해 퍽 많이 그려졌답니다  

 

 

 

유리 레핀의 초상

1882 캔버스에 유채 110.4 x 55.5cm

 

유리 레핀은 누나인 베라와 나쟈 다음에 태어난

 일리야 레핀의 세번째 아이로

이 그림을 그렸을 때는 다섯살이었어요

세밀한 직물묘사도 감탄스럽지만 역시 제일 시선을 끄는 것은

다섯살 아이의 귀여운 눈빛 : )

 

 

 

고기잡는 소녀

1874  캔버스에 유채 74x50 cm

 

주로 당시 러시아 최고의 유명인사들의 초상화들을 그리던 일리야 레핀은

( 그가 그린 초상화에는 톨스토이를 비롯 러시아의 유명예술가들의 초상도 많아요) 

자신의 자녀를 제외하고는 

어린이를 모델로 그린 그림이 그리 많지 않은데요

  그 몇 안되는 그림중의 하나입니다

 

가난한 고기잡는 소녀의 모습

헝클어진 머리와 남루한 옷, 지친표정이지만 애틋하게 아름다워요

 

 

 

베라 레피나와 아이들, 화가의 가족 

1879 캔버스에 유채  61,5x48 cm
 

화가의 아내 베라 레피나

그리고 큰 딸 베라

작은 딸 나쟈가 어머니를 앞서 가며 들꽃에 시선을 팔고 있어요

어머니는 허리에 손을 얹고

"  뛰어다니다 넘어질라, 새 옷 더러워질라 " 

어머니들 특유의 애정어린 잔소리를 하시는 듯도 하구요

아직 아기인 유리는 맨 뒤에서 유모의 품에 안겨있는듯하네요

 

 

 

 

화가의 딸 <<잠자리>>

1884  캔버스에 유채 111 x 84.4cm

 

갸름한 눈매가

열두살의 베라 레피나의 초상인듯 해요

 

 

 

 Ilya Yefimovich Repin

1844 -1930

 

 

우크라이나 출신이지만 러시아에서 활동한 일리야 예피모비치 레핀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히는 분이에요

 

그의 작품중에는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듯이 그려내어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것이 많아요

특히 대표작중에는 역사적인 장면을 극적으로 연출한 작품이 많은데요   

화가 나서 자신의 아들을 때려죽이는 이반뇌제라든가

자신의 지지자들이 창밖에 목매달리는 것을 보아야 하는 소피아 황녀같은 지나간 역사부터

 뜻밖에 살아돌아온 유형수를 맞이하는 가족의 놀라움을 담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같은 

현대사를 기록한 대표작들이 그것입니다

그림의 극적인 분위기가 무서울 정도로 사람을 사로잡죠  

 

레핀의 강렬한 그림을 보다보면 

우리나라에도 사도세자라든가, 장희빈을 다룬 드라마는 수없이 만들어지는데

 어째서 그런 장면을 그린 회화작품

혹은 현대사를 다룬 걸작이 없을까 조금 아쉬워지기도 했었는데요

( 그런 소재를 다룬 화가분들이야 계시겠지만, 

레핀처럼 전세계인, 혹은 우리나라국민들만이라도 알정도의 작품은 없으니까요)

 

레핀의 역사를 기록한 박력넘치는 대작들도 근사하지만,

저는 초상화가로서의 일리야 레핀도 좋아합니다

톨스토이의 초상으로 유명한 레핀은 수많은 유명인사의 초상뿐 아니라

여인의 초상도 퍽 많이 그렸는데요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러시아 여인의 초상화들은 무척 사랑스럽답니다

그 작품들은 다음에 소개해드릴게요

  

오늘은 그가 자신의 아이들을 모델로 그린 초상을 중점적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자신의 아이를 향한

아버지의 애정이 담겨있어서 부드럽고 따뜻한 작품들이에요  

 

 

 

 

  

<@NHN@LINEBREAKER@NHN@>

 

 

꽃을 든 소녀

1878년 캔버스에 유채  

 

갸름한 눈매를 보면

역시 화가분의 큰 딸 베라의 모습 같아요

 

 

 

베라 레피나의 초상

1886년 캔버스에 유채  134.5 x 63.5cm

 

아내의 이름과 똑같은 큰 딸 베라의 14살때의 초상이에요

화가분은 아이들이 어릴때뿐만 아니라 어른이 된 후에도, 

베라와 나쟈 레피나의 초상을 즐겨 그려서

귀여운 아기부터 어른이 된 후의 성숙한 부인의 모습까지

딸들의 초상이  퍽 많이 남아있답니다

 

 

 

 

소년의 초상

1867 캔버스에 유채

 

일리야 레핀은  자신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아이의 초상화를 그린 작품이 많지 않은데 이 작품은

스물 세살때 그린 초기의 작품이에요   

일리야 레핀은 러시아 최고의 화가로 꼽히고 있지만 

처음에는 황실 아카데미의 입학을 거절당했었어요

큰 꿈을 안고 고향 우크라이나를 떠나왔건만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한 해 재수해야 했었죠   

 하지만 워낙 그림을 사랑할 뿐 아니라 굉장한 노력파이기도 했던 레핀은

아카데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 해외유학의 기회가 주어지는 금메달을 수상하고  

이십대에 이미 화가로서 성공한답니다

 

 

심리 묘사의 대가 러시아 출신 화가 'Ilya Repin'

(1844 - 1930)

 

 

볼가 강의 배를 끄는 사람들

 

일리야 예피모비치 레핀(Ilya Yefimovich Repin, 1844-1930)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전시되는 순간부터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던 작품인데 지금도 그림을 보고 있으면

러시아다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배를 끌고 있는 사람들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온몸으로 힘을 써야 하는 일을 하기에는 나이 든 사람과 어려 보이는

사람이 뒤섞여 있습니다. 얼굴은 햇빛에 그을렸는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얼굴은 더욱 검어 보입니다. 짙은 체념과 권태 그리고

무기력함이 모두에게서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모두였다면

아마 이 작품은 보여지는 첫 느낌 그대로 머물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우리 옆에 서 있는데

그 생명력의 정체를 도스토예프스키는 그의 <작가일기>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의 배를 끄는 두 사람은 웃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그림 속의 모두는 울지는 않고 있다. 자신들의 사회적인

지위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좌절하지 않는 노동의 신성함을 묘사했다는 평도 있지만 과연 그런가요?

세상에는 여러 개의 세계가 있습니다. 이 작품의 인물들도 한 세계를

이루고 있겠지요. 각자의 세계는 우열을 정할 수도 없고 정해서도 안 됩니다.

 

어쩌면 레핀은 이런 세계가 당신들과 같은 하늘 아래에서 모양은 이렇지만

당당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달밤

 

레핀은 졸업작품으로 금메달과 함께 3년간의 여행경비를 포함한 6

장학금을 받습니다. 이탈리아를 돌아본 후 파리에 머물게 되는데

이 기간 동안 레핀은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봅니다. 많은 화가들이

인상주의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레핀의 작품과 집으로 보낸 편지를 보면

열렬한 인상주의 추종자는 아니었습니다.

 

심지가 굳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달밤>은 인상주의 화풍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기치 않은 방문객

 

레핀이 미술사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작품에

심리적인 묘사가 대단했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레핀의 작품을 제대로

느끼려면 화면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기치 않은 방문객>은 레핀의 심리 묘사가 화폭에

그대로 펼쳐진 작품입니다.

 

마치 영화의 포스터 같습니다. 1883년 알렉산더 3세가 즉위하면서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를 갔던 사람들에 대해 사면령이 내려집니다.

니콜라이 체르니세프스키도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니콜라이를 맞는 식구들의 표정과 시선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긴장감이 다 드러나 있습니다.

 

유형지에서 고생을 한 주인공은 창백하고 야윈 얼굴이지만 눈빛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를 유형지로 몰아넣은 이념이 아직도 그의 눈빛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가족에게

돌아가겠다는 일념이 그를 지켰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문을 열어준 하녀의 표정은 놀람과 황당한 표정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들을 보고 늙은 어머니는 벌떡 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피아노 앞의

아내는 아직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이 안 된 듯한 표정입니다.

 

공부를 하다가 낯선 사람, 그러나 처음 보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어린 딸의 표정은 차라리 공포에 가깝습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밝은 표정의 아들은 아버지가 돌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눈빛입니다.

 

 

파티

 

 

1901년 5월 7일 제국회의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레핀은 역사화에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초상화와 풍경화 등에서 뛰어났는데

그 분야가 좀 묻힌 듯합니다. 이 작품에서 나타난 사실적인 묘사는

컬러사진을 옮겨놓은 듯합니다.

 

 

공포에 질린 이반과 아들 이반

 

이 섬찟한 장면의 주인공은 이반 4세(이반 뇌제라고도 합니다)와 그의 아들

이반 왕자입니다. 이반 4세는 오늘날 러시아의 기틀을 세운 사람으로

처음 차르(황제)라는 호칭을 붙인 사람으로도 역사에 남이 있습니다. 잔인했지만

용맹하고 현명한 황제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권력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의심이 많았습니다.

 

한 번은 이반 4세가 왕자의 집을 저녁에 방문했던 모양입니다. 황제를 맞는

왕자비는 겉옷을 한 벌만 입고 있었습니다. 당시 풍습은 손님을 맞이할 때는

세 벌의 옷을 입어야 했는데 이를 수상히 여긴 황제는 며느리를 폭행합니다.

왕자가 이를 말렸고 황제는 순간적으로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왕자의 머리를 후려쳤습니다.

 

이 장면은 바로 머리를 후려치고 난 그 다음 장면입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깨달은 아버지 이반 4세와 한 팔로는 아버지 어깨를 잡고

한 팔로는 바닥에 팔을 기댄 아들 이반의 비극적인 모습이 펼쳐 있습니다.

실제로 아들 이반은 며칠 후 세상을 떠나고 이반 4세가 죽고 나서

왕조는 바뀝니다. 연극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레핀이 얼마나 많은 장르에서 재능을 보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숲에서 쉬고 있는 톨스토이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작곡가)

 

레핀이 남긴 초상화는 그 숫자가 대단합니다. 그는 당대의 음악가, 문학가,

과학자 등 수많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의 초상화를 두고

평론가들이 하는 말이 있는데 최상의 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결코 얼굴만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자연스러운 상태의 모델,

세상과 교유하는 방법이 나타나 있는 진정한 사람을 그렸다.”

 

 

화가의 딸                                                            화가의 딸

 

화가의 딸                                                                   화가의 딸

 

화가의 딸                                                           화가의 딸

 

레핀의 초상화 작품 중에는 비제-르브룅(Élisabeth Vigée-Lebrun, 1755-1842)처럼

자신의 딸을 그린 초상화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겨놓았습니다.

 

 

베라 라피나 - 화가의 아내                            베라 라피나 - 화가의 아내

 

 

나탈리아 노르망

 

아내 베라 라피나와의 사이에 대해서는 별 기록이 없습니다. 아내를 그린

초상화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나쁜 관계는 아니었겠다 싶은데, 나중에

파리로 가서 그의 삶을 사랑한 나탈리아라는 여자를 만나 살게 되었을 때

아내와는 별거 중인 것으로 나옵니다.

 

레핀과 나탈리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기차로 1시간쯤 떨어진

나탈리아의 집 페나티에서 살면서 당시 러시아의 엘리트들이 가입한

수요모임을 조직합니다. 14년 뒤 나탈리아가 죽으면서 이 집을 아카데미에

기부하지만 레핀은 그 뒤로 16년 동안 이 집을 비워주지 않고 삽니다.

 

말년에 소련 정부는 그를 초청하고자 여러 번 그에게 대표단을 보냈지만

그는 소련으로 돌아가지 않고 핀란드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또 오른손

쇠약이라는 장애를 입어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다시는 예전과 같은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고, 그 때문에 금전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상태로 말년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허무주의에 빠진 학생

 

젊었을 때 한번쯤 지어봤을 표정이 저기에 있습니다. 그의 눈에서

허무라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보이는 듯 합니다.

 

 

푸시킨

 

 

미하일 글린카(작곡가)

 

 

안톤 루빈스타인(작곡가-피아니스트)

 

 

사드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 <사드코>(Sadko)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담은 것 같습니다. 흔히 보는 레핀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르네요.

환상의 세계입니다.

 

 

방랑하는 순례자들

 

남루한 옷차림의 두 여인의 모습이 한 장의 오래된 빛 바랜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묘사와 색채가 놀랍습니다.

‘가난한 민중’ 연작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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