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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문이란 우리의 생활을 그대로 나타내는 글이다...
2016년 12월 07일 00시 06분  조회:3032  추천:0  작성자: 죽림


왜 동시를 써야 하나? 

아무도 오지 않는 교실 
말끔히 닦은 칠판이 
아침 햇살에 환하다. 
책상도 걸상도 
얌전히들 앉아 있다. 
가방을 풀고 
책에 넣고 
나는 드르륵 
유리창을 열었다. 
바람이 시원스럽다. 
아침교실·김미숙 

서울 종로초등학교 6학년생이 지은 작품이다. 놀랍게 잘 지은 노래다. 아무도 오지 않는 아침 교실은 샛밝은 햇살만 쪽 펴졌는 이상한 신선함과 고요함이 깊은 산골짜기에 들어선 것 같다. 참으로 이 시에는 그 신선함과 고요가 어려서 밝고 맑다. 
이 아침 교실의 신비스러운 고요함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랴. 여러분의 마음이 갈앉고 조용해진다. 
아침교실의 신선하고 고요한 것을 체험한 탓으로 비로소 무엇을 깊이 찬찬히 생각할 힘을 얻고 기르게 된다. 
더구나, 아침 햇살에 환한 칠판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 칠판에 쓰여질 선생님의 말씀이나 글씨가 마음 깊이 스미게 될 것이다. 
또한, "책상도 걸상도 얌전히들 앉아 있다"는 구절에는 "다만 빈 책상과 걸상이 얌전히 앉아 있다"는 뜻만이 아니다. 그 걸상과 책상의 임자들의 모습도 하나하나 머리에 떠 올랐으리라. 이처럼 조용히 친구들을 생각해 보고, 비로소 그 친구를 올바르게 친구로서 깨닫게 되리라. 
이 조용한 교실에서 참된 마음으로 친구를 생각해 보고, 비로소 "가방을 풀고 책을 넣고" 그 날 하루의 일을 시작한다. "가방을 풀어 책을 넣고"가 아니다. "가방을 풀고 책을 넣고"로써 이 학생이 자기의 행동 한 가지 한 가지를 깊이 살피고 생각하는 것을 보라. 
그리고, 유리창을 드르륵 연다. 드르륵 하는 유리창 소리가 얼마나 신선했으랴. 그 날, 자기의 참된 마음의 하루를 향해서 여는 마음의 창문이요, 그 드르륵 소리다. 비로소 여러분은, 이시의 끝을 맺는 "바람이 시원스럽다"라는 말이 얼마나 엄청나게 깊은 느낌에서 울어나는 소리라 함을 알게 되리라. 
왜 동시를 써야 하나, 혹은 우리가 왜 시를 깊이 감상해야 하나? 
그것은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스쳐가는 느낌이나 감동을 종이쪽에 기록함으로써 느낌을 넉넉하게 지닐 수 있고 또한 생각을 바르게, 참되게 기를 수 있다. 
이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을 소홀히 하지 않음은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늘 자기의 마음을 살피고, 느낌과 뜻과 생각을 뚜렷이 헤아려 아는 힘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참된 사람, 참된 생활을 이룰 수 있게 한다. 
이것을 역시 장만영 선생은 좀 어려운 말이나 자기 완성이라 했다. 참된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가을 밤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달빛을 보고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란 처음부터 얘기가 되지 않는다. 
예쁜 꽃을 보고도 그 냄새를 탐낼 줄 모르는, 이런 예외의 사람을 가지고 말할 것은 더욱 아니다. 인생의 희로애락은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것인즉 이만한 정서 감정만 있다면 그 다음은 앞에서 말하였듯이 오직 노력만이 남을 따름이다. 작품의 우열은 별문제로, 우선 시를 쓸 수 있음은 자기 완성에의 노력 여하에 달렸다고 본다. 
왜 자기 완성에의 노력이 필요한가? 모든 시는 그 작가의 올바른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시를 쓸 것이요, 나쁜 사람이라면 나쁜 시를 쓸 것이다. 무서울만치 이것은 진리이다. 그리고, 진리는 영원한 것이기에 아무런 흐림이 없이 좋은 작품에 그대로 빚어 나오는 법이다. 
시작법에서·장만영 

여러분이 자기 마음(생각, 느낌, 뜻)의 움직임을 맑은 눈으로 자세히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이 시를 써야 하는, 시를 씀으로써 얻는 큰 보물이다. 그러나, 이 보물을 얻는 까닭은 우리가 자기의 생활을 좀더 깊고 넉넉하게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생할"이라는 말을 아느냐? 여러분이 아는 말 중에 가장 소중한 말의 하나다. 생활이란 놀고, 친구를 사귀고,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고,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다 생활이라 한다. 더구나, 생각하고 뜻을 지니는 것을 정신 생활이라 한다. 

삐익,빵. 
덜컥덜푹, 덜컥덜푹, 덜컥덜푹. 
새끼차가 골목안을 갑니다. 

새끼차는 엄마 마중 가는 차 
젖 먹고 싶은 사람 모두 타지요. 
새끼차는 아빠 마중 가는 차 
장난감 얻고픈 사람 모두 타지요. 

삐익, 빵. 
덜컥덜푹, 덜컥덜푹, 덜컥덜푹. 
새끼차가 골목안을 갑니다. 
새끼차·박노춘 

골목 안에서 기차놀이한 일이다. 나들이 가신 엄마를 기다리면서 동무끼리 모여, 삐익, 빵. 하고 새끼로 줄을 한 새끼차가 달린다. 여러분의 소망이 가득한 하루가 엿보이는 노래다. 이렇게 뛰고 논 일을, 책상 앞에 마음을 모아 조용히 적어 보라. 얼마나 여러분 머리에 그 때의 놀음놀이가 확실히 떠오르며, 또 놀음놀이하면서 느꼈던 생각들이 새롭게 또록또록한가. 이 마음에 새롭게 느껴지는 생각들을 다시 살펴, 그 날 하루의 자기를 살필 수 있고, 자기와 남 사이에 넉넉한 사랑과 너그러운 마음을 지닐 것이다. 
여러분의 교과서를 엮어주시는 홍웅선 선생은 "작문교실"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작문이란 우리의 생활을 그대로 글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매일 매일의 생활을 그대로 적은 것이 여러분의 작문입니다. 우리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생활의 발전을 위하여, 우리들의 생활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작문교실에서·홍웅선 

햇빛은 쨍쟁 모래알은 반짝 
모래알로 떡해 놓고 
조각돌로 소반지어 
누나 엄마 모셔다가 
맛있게도 나음나음 

햇빛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호미 들고 광이 메고 
뻗어가는 메 캐어서 
엄마 아빠 모셔다가 
맛있게도 나음나음 
햇빛은 쨍쨍·최옥란 


소꼽장난 놀이다. 소꼽놀이할 때 저절로 어린이 여러분의 마음을 울려서 나오는 노래… 얼마나 아름답고 맑고 귀한 것이랴. 그 때 어린이 마음 속에 고이는 생각은 너무나 깨끗하기 때문에 30 년을 두고, 동요만 지으신 윤석중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늙을수록 젊어지는 게 뭐냐?" 
"꼬추!" 
이런 수수께끼가 있다. 
라는 예를 들어, 늙을수록 젊어지는 것은 어린이의 그 귀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라 했다. 그것을 시로써 기르면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다. 윤 선생은 말했다. 
오래오래 살 수 있는 길은 나이를 많이 먹는 것이 아니고, 언제까지든지 어린이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다. 
《어깨동무》에서·윤석중 

자주꽃 핀건 자주 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 감자 

하얀꽃 핀건 하얀 감자, 
파봐나마나 하얀 감자. 
감자·권태응 

자주빛 감자꽃에는 으레 자주빛 감자가 달렸고 하얀꽃이 폈는 감자는 하얀 감자가 열렸다는 뜻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그 뜻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주꽃이 쫑긋이 폈는 긴 감자줄기 아래는 어두운 흙덩이 속에 자주빛 감자 형제들이 조롱조롱 살고, 하얀꽃이 폈는 감자 줄기 아래 흙덩이 속에는 하얀 감자 열 두 형제가 오손도손 산다. 혹은 그 어두운 흙덩이 속에 사는 자주빛 감자 형제들이 줄기 위에 폈는 자주빛 감자 꽃송이를 통해서, 해님과 바람과 이슬과 별과 얘기를 하게 되고, 또한 햐얀 감자 형제들은 땅 위에 하얀 꽃을 피우게 해서, 하얀 감자 형제들끼리의 그 정다운 뜻과 사랑을 나타내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하얀 감자꽃도 땅 속에 사는 하얀 감자 형제들의 막내동생이나 맏형님인지도 모르리라…. 그래서 자주빛 감자꽃은 "파 보나마나" 자주빛 감자라는 것이다. 
이 노래는 자기가 참으로 감자 농사를 지으면서, 못 생겼으나, 어딘지 모르게 귀염성이 있는 감자알 한 개마다, 혹은 감자 형제들이 오롱조롱 달렸는 감자 포기마다 친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감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참으로 자연에 대하여 가슴을 열고, 친하려는 뜻만 지니면 자연도 가슴을 열어젖히고, 그의 오묘한 온갖 모습을 보여주고, 뜻을 나타내 보인다. 
우리가 시를 쓴다는 사실은, 우리를 에워싼 꽃송이와 바람과 돌과 흙덩이와 감자와 콩과 강아지와 당나귀와 쥐와 서로 이야기하고 속삭인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고 그들과 속삭이느냐고. 

새양쥐 새양쥐 
왜 안 자고 나왔나 
화롯불에 묻은 밤 
줄까 하고 나왔지. 

새양쥐 새양쥐 
왜 저렇게 뿌연가 
밤 한 톨이 탁 튀어 
재를 홈빡 뒤썼지. 

새양쥐 새양쥐 
어따 머리 감았나 
부엌으로 들어가 
뜨물에다 감았지. 

새양쥐 새양쥐 
밤새도록 뭐했나 
자는 아기 얼굴로 
살살 기어 다녔지. 

새양쥐 새양쥐 
왜 또 벌써 나왔나 
세수하나 안 하나 
구경하러 나왔지. 
새양쥐·윤석중 

아기가 화롯불에 밤을 묻어두고, 우두커니 앉았으니 구석진 데 새양쥐란 놈이 그 또록한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쪼붓한 얼굴을 쏙 내밀었다. 참으로 쥐란 놈은 언제 보아도 늘 낯설은 얼굴을 하고 있다. 당나귀나 송아지는 언제 보아도 어디서 본 듯하고 친한데, 쥐란 놈하고는 마음을 턱 놓고 친할 수 없는 그런 얼굴이다. 
그래서, 아기가 
"새양쥐 새양쥐 
왜 안 자고 나왔나?" 
물어 보았더니, 새양쥐가 
"화롯불에 묻은 밤 
줄까 하고 나왔지." 
염치도 없는 소리를 한다. 그래서, 아기와 새양쥐는 한참 정답게 얘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아기가 깨어 보니, 또 새양쥐가 얼굴을 쏙 내밀고 나타났다. 
(저게 왜 또 나왔어?) 
아기는 놀라면서 

"새양쥐 새양쥐 
왜 또 벌써 나왔나?" 

하고 물어보았더니 또 염치없는 대답을 한다. 
"세수하나 안 하나 
구경하러 나왔지." 
그래, 아기는 세수를 안 할 도리가 없다. 
이 노래를 보면 알다시피 아기가 새양쥐와 버젓이 얘기를 하고 있다. 이 새양쥐와 말을 할 수 있고,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슴에 지니는 사랑이다. 새양쥐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없다. 
이 말은 우리가 깊은 사랑을 지니면 지닐수록 자연과 동물의 온갖 모습에서 오묘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이 사랑만큼 우리를 참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이루게 하는 것은 없다. 왜 동시를 써야 하고, 감상해야 하는 까닭의 하나는 시를 쓰고 감상함으로써 이 귀한 사랑을 넉넉하게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시·생각하는 시 

아롱다롱 나비야 
아롱다롱 꽃밭에 
아풀나풀 오너라. 
붉은꽃이 웃는다. 
노랑꽃이 웃는다. 
앞뜰위에 홀로핀 
복사꽃이 웃는다. 
너를보고 웃는다. 

아롱다롱 나비야 
아롱다롱 꽃위에 
사쁜사쁜 앉아라. 
송이송이 꽃속에 
고이고이 잠들어 
붉은꿈을 꾸어라. 
노랑꿈을 꾸어라. 
오색꿈을 꾸어라. 
아롱다롱 나비야·목일신 

글자를 4·3씩 꼭꼭 맞추었다. 이것을 4·3조라 한다. 목청을 돋구어 부르기 좋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 나라에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동요가 많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도 "새야새야 파랑새야"도 옛날 동요다. 그것은 글자가 네 개씩, 4·4조다. 그래서, 동요라는 것들에라도 나가서, 즐겁게 뛰며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노래이기 때문에 가락을 고르고, 다듬어야 한다. 그러므로, 글자를 4·3으로 꼭 맞추어 그 가락을 다듬고 골랐다. 
그러나, 동시는 단정하게 가락을 다듬을 필요가 없다. 여러분 가슴에 이는 느낌을 따라, 그윽한 생각의 물결을 속삭이듯 나타내면 된다. 동시는 노래하기보다는 생각하고 조용히 속삭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난 것은 
활짝 펼친 공작의 꼬리 위에 피어난 
한 송이 장미꽃 
불·막스 짜곱·박용혁 옮김 

"불이났네 불이났네" 
하고 노래하지 않았다. 
"불난 것은…" 
하고, 자기의 느낌을 살며시 폈다. 다시 말하면 느낌을 조용히 마음 속에 모아서, 천천히 생각하며, 살피며, 한 가닥씩 풀어 본 것이다. 
그러므로, 동요는 가슴에 설레는 즐겁고, 슬픈 생각들을 노래로 뽑았다. 노래로 뽑았기 때문에 동시처럼 시 속에 담겼는 느낌이나 뜻이나 생각을 깊이 넉넉하게 담으려는 것이기보다 박자의 아름다움을 더욱 중히 여긴다. 
어느 외국 시인은 동요와 동시를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동 요 
동 시 

。 노래한 것 
。 가락을 고르게 뽑아, 노래하기를 주로 한 것. 
。 느낌이나 생각이 밖으로 나타난다. 
。 박자의 아름다움 
。 속삭인 것. 
。 그윽한 감정의 가는 물결을 속삭이듯 나타낸 것. 
。 안으로 생각하는 힘이 세다. 
。 생각의 흐름이 그윽하게 펼쳐짐. 



그러나, 여러분은 동요를 쓸까, 동시를 쓸까 망설일 필요는 없다. 다만, 자기의 느낌이나 생각을 찬찬히 올바르게 기록하려는 뜻에서 붓을 잡아야 한다. 
그러나, 되도록 동요보다 동시를 써야 한다. 왜냐 하면, 동요는 가락이 4·4조, 3·4조, 7·5조로 잡혀 있기 때문에 참된 자기의 생각을 깊이 살펴서 담기보다는 곁으로 흘려 버리기 쉽다. 
더구나, 여러분이 가락을 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노릇이다. 
왜냐 하면, 잡혀진 가락(정형) 속에 새로운 느낌이나 생각을 담기가 가장 힘이 들고, 능란한 솜씨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상 걸상을 죽 뒤로 밀어 놓고 
먼지털이로 구석구석 먼지를 떨고 
비로 박박 마루를 쓸고 
물로 좍좍 걸레질을 하고 

책상 걸상을 제 자리에 나란히 해 놓고 
맑은 물을 길어다가 
교탁과 교단을 다시 닦는다. 

비뚜러 놓인 교탁을 바로 놓다가 
나는 문득 선생님이 되어 보고 싶었다. 
"강웅구, 수고했소. 
오늘 청소는 만점이요. 
인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언제 와 계셨는지 교실 문 앞에 
담임 선생님이 서 계셨다. 
나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다가 
"선생님 청소를 다 했습니다." 

선생님도 빙그레 웃으시며 
"강웅구, 수고했소. 
오늘 청소는 만점이요. 
인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그리고 선생님은 
교사실로 가신다. 

복도를 쓸던 동무들과 
유리를 닦던 동무들이 
한꺼번에 "와아"하고 웃어 버렸다. 

교사실로 가시던 선생님도 
뒤돌아 보시며 
다시 한번 빙그레 웃으시었다.

 


청소를 끝마치고·강소천 

이 시를 읽어 보라. 붓을 잡은 마음이 얼마나 수월하고 겸손하냐. 이런 마음에서 여러분도 붓을 잡고,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살펴서 시를 지어 보라. "청소를 끝마치고"에서는 그처럼 평범하고 수월하면서, 야단을 치시지 않고, 빙그에 웃으시며, 교사실로 가시는 인자하신 선생님의 모습이 우리의 가슴을 울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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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양 ― 마종기(1939∼ )

거친 들판에 흐린 하늘 몇 개만 떠 있었어.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보라고 했지?
그래도 굶주린 콘도르는 칼바람같이
살이 있는 양들의 눈을 빼먹고, 나는
장님이 된 양을 통째로 구워 며칠째 먹었다.

어금니 두 개뿐, 양들은 아예 윗니가 없다.
열 살이 넘으면 아랫니마저 차츰 닳아 없어지고
가시보다 드센 파타고니아 들풀을 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피 흘리다 먹기를 포기하고 죽는 양들.

사랑이 어딘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면, 혹시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하루쯤 환한 몸을 열어줄까?

남미의남쪽변경에서만난양들은계속죽기만해서
나는 아직도 숨겨온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세계 지도에서 파타고니아를 찾아본다. 남아메리카 중에서도 아래, 나라로는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있고 지형으로는 안데스 산맥이 있는 그곳이 파타고니아이다. 예전에 거대한 사람들이 살았다고 전해 오는 곳이며 지금은 빙하와 초원이 펼쳐져 있는 곳. 파타고니아는 우리에게 그다지도 낯선 지명이지만 이미 많은 소설가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곳이라고 한다. 

 짐작건대 그곳은 세상의 정적을 들을 수 있는 장소일 것이다. 휴대전화보다 바람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보다 자연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일 것이다. 그런 곳이라면 내가 아닌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가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바로, 마종기 시인의 시도 그런 가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인은 자기의 세상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파타고니아에 와 있다. 믿었던 가치가 흔들리고 삶에 회의가 들어서 해답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찾기 어려운, 소중한 가치라면 아마도 가장 먼 곳에 숨겨져 있겠지. 그곳에서 시인은 들풀을 먹는 양을 보고, 그 양을 먹는 콘도르를 보고, 죽어가는 양도 보았다. 이 모든 것 사이에서 시인은 아직도 흔들리고 상처받고 있는데, 특히 이 흔들림과 상처가 스산하여 이 시가 더욱 좋아진다. 아마 모든 상처가 회복되었다면 그곳은 쓸쓸해서 소중한 파타고니아일 수 없다. 여행에서 고통이 다 해소되었다면 그 해소는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이 시는 쓸쓸하고, 묵직하게 우리의 심장을 두드린다. 누구의 것도 아닌,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너의 파타고니아를 찾으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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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2 "암울한 시대에 시를 써보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2017-12-16 0 3374
891 치욕의 력사에서 참회의 역사로 바꾸어 놓은 시인 - 윤동주 2017-12-16 0 3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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