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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를 쓸 때 "죽은 비유"는 절대 금물!...
2016년 12월 07일 20시 32분  조회:2807  추천:0  작성자: 죽림

동시의 지도와 감상  

시인 박목월 


동시를 어떻게 지도하느냐? 

시도 우리의 생활을 밝히는 불빛이다. 그리고 시의 지도는 그들이 자기들의 초롱에 불을 켜 
게 하는 일이다. 이것은 어린 아동들에게도 다를 바가 없다. 어린 아동들은 그들대로의 생활 
이 있다. 그들의 위축되고, 시들고, 막히고, 답답한 생활의 구석구석마다 싱싱한 생명감과 풍 
성한 삶의 의미와 높고 넉넉한 감정세계를 베풀어 자기들의 초롱에 불을 밝히게 하라. 

새들은 노래하고 
나비는 춤추고 
꽃은 방긋방긋 웃는다. 

이런 허황한 세계로 몰아 넣어서는 안 된다. 이 근거 없이 아름다운 낙원은 이미 오늘날의 
그들의 생활과는 먼, 시들어 버린 낙원이다. 혹은 무늬가 낡아 버린 치사스럽게 화려한 옷감 
이다. 동심이라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티없이 맑은 눈은 결코 허황한 아름다움 
(그것도 아무런 실감이 없는 겉치레에 불과한)을 꿈꾸기 위하여 환하게 밝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천진난만하고 맑은 눈은 사물의 본질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강철같은 투시 
력을 가졌으며, 어른들의 통속적인 지각으로 가려진 모든 존재의 참된 모습을 보게 하는 것 
이다. 

시는 그것을 갈구하는 절실한 정신이 빚어 놓은 꿈의 세계다. 
또는 구속에서 해방을, 절망에서 구원을 희구하는 간절한 소망이 빚어 놓은 기도다. 
외로운 자의 혼자서 지껄이는 <대화>다. 
요는 <절실감>이 깃들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는 우리의 생활의 구석구석마다 막힌 것을 뚫는 착공기이다. 그 강철도 뚫어내는 의지. 날 
카로운 비명, 튀는 불꽃,―그 치열한 노력. 
삶에 대한 끝없는 성의와 인내력, 그것이 터지는 폭발력, 그 횡폭한 감정의 울림. 
시는 달콤한 것이 아니다. 
시는 무기력한 것이 아니다. 

붓을 잡아, 어린이들을 외치게 하라. 
붓을 잡아, 어린이들의 절실한 소망을 노래하게 하라. 
붓을 잡아, 신비스러운 어린이의 체험을 떠올리게 하라. 
붓을 잡아, 생각하게 하라. 
붓을 잡아, 절실한 것만 쓰게 하라. 
붓을 잡아, 절실한 문제을 꿈꾸게 하라. 
시로써 그들의 생활에 불을 밝히게 하라. 

무엇을 쓰게 할까? 
무엇을 노래하게 할까? 
그것은 밑도 끝도 없는 수작이다. 어린 그들의 의식 아래 잠재한 체험 세계의 신비로운 심 
연을, 또한 시시각각으로 모습을 달리하는 그들의 염원을, 출렁이는 감정세계는 옆 사람이 
어떻게 헤아려 알 수 있느냐. 
다만 그가 잡은 붓에 적절한 것만이 깃들게 하라. 
길은 그들이 스스로 찾아서 열게 될 것이다. 

말에 대하여 

말은 어린 그들이 꿈을 짜올리는 유일한 재료다. 
말은 어린 그들이 자기의 감정을 나타내는 유일한 길이다. 
말은 어린 그들의 약동하는 생명의 모습니다. 
말은 어린 그들이 자기들의 생각을 자아올릴 수 있는 밧줄이다. 

말소리가 수그러지면 그들의 감정도 수그러진다. 
말소리가 거칠면 그들의 감정도 거칠다. 
말소리가 잔잔하면 그들의 감정도 잔잔하다. 
꿈꾸는 말은 부드럽고, 
기쁨에 우쭐거리는 말은 신나고, 
슬픔에 젖은 말은 무겁다. 
감정이 설레이면 말도 설렌다. 

아, 버, 지와 아버지가 다르다. 
< 콤마>를 마디마디 단 아버지는 대목대목 생각하는 <아, 버, 지>요, <아버지>는 생각 없 
이 부르는 <아버지>다. 
아 
버 
지 
와 한 줄로 흐르는 <아버지>는, 공간을 넓게 차지한 화면 속에 오뚝하게 선 한 그루의 포 
플러와 온통 화면을 다 차지한 한 그루 포플러는 다 같은 포플러이지만 그 인상이 다르지 
않느냐. 

< 흰꽃>과 <빨강꽃>은 다 같이 <꽃>이라는 말이 들어 있다. 그러나 , <흰꽃>의 <꽃>이라 
는 말과 <빨강꽃>의 <꽃>이라는 말은 서로 다른 말이다. <흰꽃> 속에 들어있는 <꽃>은 
흰<꽃>의 <꽃>이요, <빨강꽃>의 <꽃>은 빨강<꽃>이다. <꽃>이라는 한 개의 낱말은 하 
나의 문맥 속에 짜여지면 그것은 구체화되고, 이미 낱말 하나로 따로 있을 때와는 다른 것 
이 된다. 
그러므로 <꽃>이라는 낱말은 우리가 우리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할 때마다 다른 것이 
된다. 
① 교실 앞에 피어 있는 노란 채송화는 아름답다. 
② 쨍쨍하게 햇볕이 쬐는 교실 앞에 피어 있는 노란 채송화는 아름답다. 
③ 구름 한 점 없다. 호수같이 맑은 하늘, 쨍쨍하게 햇볕이 쬐는 교실 앞에 피어 있는 노란 
채송화는 아름답다. 
이 세 대목의 문장에 <노란 채송화는 아름답다>는 말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 다른 
느낌을 주고, 아름다움을 달리한다. 이 세 대목의 문장이 표현한 <노란 채송화>를 머릿속에 
그려 보라. 
① 막연하게 교실 앞에 피어 있는 채송화와, 
② <쨍쨍한 햇볕이 쬐는 뜰>을 배경한 채송화는 
③ <구름 한 점 없는 호수 같은 하늘>의 배경이 깃든 <쨍쨍한 햇볕이 쬐는 교실 앞 채송 
화>는 각각 그 인상을 달리하는 것이다. 인상이 다른 것이 같은 사물일 수 없다.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말은 뜻을 전하지만 시에서의 말은 사물(존재) 그것을 전하다. 시의 말 
과 일상생활의 말은 같은 말이지만 그 구실이 다르다. 

시는 말이 유일한 재료다. 
말이 없으면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말의 아름다움은 시의 아름다움이요, 말의 생명이 시의 생명이다. 
어린 그들에게 말을 주라.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그 어둡고 답답한 감정에 말을 주어 하 
나하나 밝히고, 선명하게 하라. 
친구와 의사를 나누고, 사무적인 용무를 치르는 말 외에 참된 그들의 감정을 나타내고, 꿈을 
<그려 올리는> ―그런 말을 주라. 

비유에 대하여 

우리 선생님은 무엇처럼 아름답다. 
우리 교실은 무엇처럼 넓다. 
봄바람은 무엇처럼 따뜻하다. 
가을바람은 무엇처럼 선선하다. 
가령, 이런 글에 <무엇처럼>을 한 가지씩 비유로 채워 보라. 열 사람에게 물어서, 열 사람 
이 꼭 같은 대답이 나오면 그것은 죽은 비유다. 싱싱한 생명을 못 가진 비유라는 뜻이다. 이 
것들은 전혀 가치가 없는 낡아빠진 것들이다. 그러나, 열 사람에게 물어서, 열 사람이 전부 
다른 것이라면, 또 그 다른 것이 특수하고 도저히 우리가 상상 못할 것이라면 그럴수록 좋 
은 비유다. 열 사람이 똑같은 대답이 나올 수 있음은 누구나 쉽게 머리에 떠오르는 유형적 
인 것이다. 따스하다면 봄바람, 차다면, 얼음, 뜨겁다면 불 등등, 이런 비유에는 그 사람만의 
생생한 체험이 실려 있지 않는 것이다. 
비유야말로 그 작자마다의 참되고 특수한 체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길이다. 
선생님은 여치처럼 엉거주춤 앉아 계신다. ―라는 비유는 새롭다. 풀 냄새가 풍기는 비유다. 
풀밭에서 여치를 가지고 놀게 된 경험이 없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도저히 떠오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멀끔하게 대머리가 된, 이마가 길다란 여치의 모습은 그것대로 이미 유머 
러스한 것이지만, 얼굴이 길고 대머리가 진 선생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 마름 속살처럼 하얀> ―이라는 구절도 그 작자만의 체험이 뒤받이해 주는 비유다. 흔히 
희다면 눈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러나 <마름 속살처럼 희다>면, 이미 검은 마름의 새하얀 
속살에 특수한 감동을 느낀 경험이 살아나는 것이다. 
< 고사리 같은 아기 손>은 속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비유면, 누구나 알기 때문에 새로운 감동을 자아낼 수 없다. 
어린 그들에게 자기의 의식 아래 접혀 있는 그들만의 체험 세계를 표현하게 하라. 그들은 
도저히 우리가 상상도 못할,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유뿐만 아니다. 
그들의 놀랍고도 싱싱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들의 꿈을 피어 올리게 하는 것은 자기마다 
특수한 체험세계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꿈은 이성적인 제약이 약하고 미약하기 때문에 더욱 자유롭고도 신비롭게 뻗 
을 수 있다. 
다만 어린 그들이 자기들의 꿈꾸는 세계에 대한 신뢰감을 획득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낄 수만 있으면 그들은 무한량의 시를 빚어 놓을 것이다. 
이들이 빚어 놓는 작품을 어른들이 그 빈약한 평가와 몇 푼 되지 않는 지식으로 우열을 속 
단하고 어설픈 교시를 베풀기 때문에 그들의 세계를 오히려 협소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어린 그들에게 자신을 신뢰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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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양애경(1956∼ )

둘이 같이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문득 정신 차려 보니
혼자 걷고 있습니다

어느 골목에서 다시 만나지겠지
앞으로 더 걷다가
갈증이 나서
목을 축일만한 가게라도 만나지겠지
앞으로 더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참 많이도 왔습니다

인연은 끝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온 길을 되짚어 걸어가야 합니다

 

 

많이 왔을수록
혼자 돌아가는 길이 멉니다.



 

 

 이 시의 제목은 ‘사랑’이지만 본문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도 시를 읽으면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사랑에 대한 시가 맞다. 

 시인이 말하기를 사랑이란 둘이 함께 걸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와는 반대로, 둘이 걷다가 어느새 혼자 걸어가게 되는 것을 일러 우리는 ‘이별’이라고 부른다. 사랑과 이별을 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의 일로 바꾸니 그 뜻이 참으로 잔잔하다. 잔잔함 속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별 또한 사랑의 일부라는 이 시의 메시지에 있다. 헤어진다고 해서, 이 길을 혼자 걷는다고 해서 사랑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 시의 화자는 혼자 걷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지 몰라서 사랑의 길을 쉽게 이탈할 수 없었다. 이렇게 사랑의 여운을 혼자 걷는 것도 ‘사랑’이다. 또한 다시 만날 수 없대도 사랑은 쉽게 끝나지지 않는다. 사랑하면서 걸었던 길을 왔던 만큼 되짚어 가야만 사랑은 비로소 끝이 날 수 있다. 그러니까 외롭게 돌아가는 마음의 복귀까지도 ‘사랑’이다. 

 세상에는 이별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만 성급해지지 말 것을, 이 시는 당부한다. 헤어지면 둘이 같이 만든 길을 혼자서 지워야 하니까 당연히 힘이 든다. 힘이 들면 원망이 생겨 난폭해지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까지 사랑의 일부라고, 이 시는 이야기한다. 사랑은 소중한 것, 그렇다면 예의를 갖추어 가는 길까지 정중하게 배웅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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