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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열다
곽영화(창녕 대지초)
5년 전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는 것처럼 맡은 아이들 모두가 나름의 사랑스러운 점을 가지고 있겠지만 처음부터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아이가 있다. ○○이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 선생님들 말을 들어보니 엄마가 아빠 때문에 집을 나갔단다. ○○이는 어려운 환경 탓인지 또래들보다 성숙한 면이 있었다.그런데 자주 감정조절을 못해 화를 터뜨리기도 했고 반항도 했다. 나는 불러다가 학교에서라도 엄마가 되어주고 싶으니 잘 지내보자고 타일렀다. 나는 그 아이가 걱정되어 다른 아이들보다 자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는 엄마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생각도 하기 싫다.’라는 표정이 아니라 ‘정말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물론 그 아이의 말은 진심이 아니고 아직 나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는 영리한 아이였다. 한 달 정도 시를 공부하고 나니 시가 뭔지 감을 잡는 눈치였다. 아님 나의 의도를 눈치 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가 엄마 얘기를 꺼내길 바라면서 슬펐던 이야기를 주제로 시를 써보게 했다. ‘팔려가는 소’를 공부하고 시를 쓸 때 옆에 가서 살짝 엄마 이야기를 써도 된다고 힌트까지 줬다. 그런데 ○○이는 자기 집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게다가 시에 담긴 아이의 마음이 솔직한 마음인지도 궁금했다. ○○이가 아버지를 훌륭하다고 느낄 만한 환경 속에 살고 있지는 않았기에 조금 의아했고 보여준 시와 비슷하게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중에 자세히 읽어보니 엄마에 대한 마음이 엿보였지만 아이 자신은 그냥 강아지 이야기를 쓴 거다.그 다음 쓴 시도 그냥 자신이 최근 경험한 이야기를 썼다.
팔려간 강아지
저번에 아빠가 통닭을 사와서 먹고 내가 뼈다귀를 예삐한테 줬다. 그런데 그 날 예삐가 강아지를 낳았다.
7개월 후, 내가 밥을 주고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새끼를 살라고 왔다. 강아지를 갖고 갈라고 “우리 예쁜 새끼!” 그러면서 잡았다. 그 때! 예삐가 물었다. 새끼보고 가지말라고 물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이 망할년!” 하며 몽둥이로 때렸다. 아빠가 “아이고, 진짜 그만 하이소.”라고 했다. 나는 아빠가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2009.4.13)
개구리 두 마리
물을 뜨러 갈 때 뭐를 밟은 것 같았다. 미끌미끌했다. “뭐지?” 발을 들었는데 개구리였다. 개구리 두 마리 폴짝 간다.
고양이가 장애물을 뛰어 넘는 것 같다. (2009.5.29) ‘이 아이는 정말 엄마가 그렇게 그립지는 않은 걸까? 이 아이에게 별 문제 아닌 것을 내가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있는 꼴은 아닐까?’ 생각할 즈음 ○○이는 드디어 조금씩 속내를 드러냈다. 우산을 쓰고 밖에 나갔다 온 뒤 시를 썼는데 생각도 못한 엄마 이야기를 시로 쓴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신나게 놀다 들어와 밖에서 보았던 것을 썼다. 이 시를 읽으니 그동안 ○○이가 ‘엄마 생각 안 한다.’는 말이 다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아이는 엄마가 무척 그리웠던 것이다. 그 이후로 ○○이는 내게 엄마 이야기도 하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억지로 숨기지는 않았다.
비는 어머니 눈물이다
우산은 비를 맞는다.
우산을 내리니 어머니 생각이 난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나를 버리고 가려고 하셨다. 그 때 어머니는 내 머리 위에 눈물을 쏟았다. 내가 “엄마, 왜 울어?”하니 “아니야.”라고 하셨다.
지금 비는 그 때 내 머리 위 눈물이다. (2009.06.22)
너구리
찻길 옆에 너구리가 죽어있었다. 어젯밤에 차에 박은 것 같다. 죽기 전에는 행복했을 텐데. 부모님이랑 행복하게 살면 좋았을 텐데. (2009.09.22)
2학기 말이 되자 ○○이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자신을 드러냈다. 그만큼 나를 편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기도 하니 기뻤지만 또 한편으론 그 아이의 진짜 마음을 알고 나니 참 안쓰러웠다. 최근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걸 시로 써 보자 했는데 ‘공개수업’이란 시를 썼다. 얼마나 속에서 터져 나왔으면 망설임 없이 줄줄 쓰더니 마지막 말은 그동안 어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정곡을 찌른다.
공개수업
금요일에 공개수업을 한다. 조회시간에 교장 선생님께서 “내가 산에 있는 감나무 밭에 감보다 못하냐고 하루 농사 쉬고 오시라고 말씀드려라.”하셨다. 나는 그 말이 싫었다. 아빠에게 “아빠, 금요일에 오셔야 해요.”하니까 아빠가 “금요일에 못 가는데.” 그래서 내가 “안 오셔도 되요…….” 라고 했다. 근데 마음속으론 ‘이래서 엄마가 꼭 있었음 좋겠고 다른 친구들이 그저 부럽기만 하다.’ (2009.11.24)
지금 돌아보면 그 때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 아이의 진짜 마음을 1년이라는 시간동안은 절대 열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시를 쓰려면 돌아보지 않던 자신의 마음을 열어서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시를 쓸 수 없다. 그렇게 열린 마음은 내게만 열리는 게 아니라 그렇게 쓴 시를 읽는 사람에게도 열린다. 1년 쯤 뒤 ○○이는 내가 더 이상 담임이 아닌 내게 선물을 하나 주었다. “그냥 선생님 가지세요.” 다른 말은 없었지만 그 어떤 말보다 많은 말들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그 아이의 시를 볼 때 그 아이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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