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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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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는 최상의 이미지로 어린이들에게 각인시켜주는것이다...
2016년 12월 08일 21시 17분  조회:2832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6년 12월 08일 09시 29분 ]

 

 

감숙(甘肃)성 어느 한 농가에서...



감상에 대하여 

작품을 감상할 때, 부질없는 선입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아니 된다. 더구나 그것에 무슨 뜻을 
캐려 하거나, 작품을 해석하려고 들면, 시가 지니는, 가장 소중한 생명을 손상하게 된다. 
다만 그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게 하라. 작품에서 빚어 놓은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읽는 자의 내면에 그것을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작품(시)의 완전한 이해가 
가능한 것이다. 

비비새가 혼자서 
앉아 있었다. 
마을에서도 
숲에서도 
멀리 떨어진, 
논 벌로 지나간 
전선줄 위에, 

혼자서 동그마니 
앉아 있었다. 
한참을 걸어오다 
되돌아 봐도, 
그 때까지 혼자서 
앉아 있었다. 
< 돌아오는 길·박두진> 

이것은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박두진 씨의 작품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는 가장 옳 
은 방법은 <전선줄에 오뚝하게 앉아 있는 비비새>의 모양을 독자가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일이다. 그리고, 비비새를 뒤돌아보며 길을 가는 소년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일이다. 
시에서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은 이 이미지에서 받게 되는 감동이다. 
요는 시작품뿐만 아니라, 문학이라는 것이 작자가 인생 체험 속에서 발견된 그들의 절실하 
고 진실한 것을 이미지를 통하여, 형상화시켜 놓은 세계이다. 물론 말이 매개체가 되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이와 같이 그들의 진실을 이미지로서 형상화한다는 것이 그 
작자의 상상력이며 또한 문학작품이 창조물인 이유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작품을 올바르게 감상시키려면 작품 속에 빚어 놓는 이미지를 어린 그들의 머 
릿속에 보다 선명하게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박두진 씨의 <비비새>가 어떤 내용을 가진 것인가. 그것은 감상을 지도하는 자가 미리 설 
명할 것이 못 된다. 오히려 설명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이 작품의 참된 아름다움이나 가치 
가 사라져 버리게 된다. 
만일 어린 그들의 머릿속에 <전선줄에 오뚝이 앉은 비비새>의 영상이 선명하게 떠오르면 
그들은 
―참 쓸쓸하다. 
―외롭다. 
―외롭고 쓸쓸하고도 서럽다. 
라는 감탄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 
작품을 감상한다는 행위는, 직접 경험의 세계다. 말하자면 직관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잘 자는 우리 아기 
꼭 감은 눈에 
엄마가 사알짝 
입맞춰 주고. 

잘 자는 우리 아기 
꼭 감은 눈에 
달빛이 살며시 
입맞춰 주고. 

잘 자는 우리 아기 
꼭 감은 눈에 
포도넝쿨 그늘이 
입맞춰 주고. 

필자가 어릴 때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달빛이 새어드는 밤에 두 눈을 꼭 
감고 잠드는 아기 ―그 아기의 평화스러운 얼굴에 포도넝쿨 그늘이 아른거리고,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아기의 볼에 입을 맞추는 <하나의 장면>이 꿈에서처럼, 독자의 머릿속에 떠오 
를 때 비로소 넉넉한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공감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 동시 감상의 구체적인 방법 > 

교실 안에서 작품(동시)을 감상하는 가장 좋은,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시를 감상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는 것이 일정해 있을 리가 만무하다. 다만 교실의 분위기를 보아서 지 
도자가 그 방법을 택할 도리밖에 없다. 혹은 시의 성질에 따라 그 방법도 달라질 수 있다. 
위에서 동시를 감상하는 최상의 길은 이미지를 어린 그들의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는 일이라 
했다. 그러므로 작품에서 빚어놓은 이미지를 쉽사리 떠올리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그것은 얼마든지 방법을 달리할 수 있다. 
만일, 낭송하여 더욱 효과적인 작품이라면, 낭송을 시킬 것이며, 묵독하여 효과적인 작품은 
묵독하게 할 것이다. 묵독을 시킬 때, <눈으로만 읽게 하는 것>은 졸렬한 방법이다. <말의 
울림>이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말에서 울림이 죽어지면, 그것은 감정이 죽은 말이다. 비록 
소리를 내지 않는다더라도, 입안에서 읽게 되면, 그 울림이 <소리없이 살아난다.> 이것은 
시를 읽을 때,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이것이 언어의 뉘앙스를 베풀고, 감정을 움직이게 한 
다. 
또, 정확하게 읽힐 것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시에서 한 줄 한 줄은 호흡을 조절하고, 쉼표 
는 감정의 굴절을 표시한다. 
아아, 
우리집을 
그려보자. 
라는 시귀가 있다면, <아아> 다음에 잠시 쉬게하고, <우리집을 그려보자> 라고 읽혀야 할 
것이다. 그것은 <아아 우리집을 그려보자>처럼 한줄로 줄줄 흘려 버리는 감정이 아니기 때 
문이다. 
또 되도록, 나직하게 읽혀야 한다. 목청을 돋구어 버리면,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이미지를 머 
릿속에 그릴 겨를이 없다. 

―읽히는 문제에만 치우친 것 같다. 그러나, 마음속에 스미도록 읽히는 방법이 시를 올바르 
게 감상시키는 최상의 길이며, 그 이외 다른 방법은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정, 작품이 복 
잡한 것이라면 지도자가 그 시의 이미지를 미리 설명해 주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해서 설명이 지나쳐 버리면, 그 작품에서 빚어 놓은 것과는 엉뚱한 것이 되어 버릴 
우려가 있다. 

====================================================================

 

 

시월에 ― 문태준(1970∼ )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무더기 헤죽, 헤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 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돈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10월이 되면 이 시가 꼭 첫머리로 떠오른다. 10월과 문태준 시인의 조합은 지극히 옳은 만남이라고 생각된다. 시인은 비어 있음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비어 있으면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시인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알려준다. 말이 좀 어렵지만 진짜 그렇다. 비어 있음 안에는 비어 있음의 쓸쓸함과 풍경과 느낌들이 들어 있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런 비어 있음과 채워져 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다. 좋은 만큼 지극히 쓸쓸한 것은 그의 시를 읽을 때 함께 담아야 하는 덤이다. 

 10월은 텅 비어가는 시절의 첫머리에 해당한다. 우리는 덜어내고, 비워내고, 털어내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본다. 그러기에 풍성함은 더욱 감사하고, 사그라드는 것은 더욱 애잔하다. 그것을 이 시인은 어쩜 이렇게 딱 그려냈을까. 시인은 시든 오이나 꽃빛처럼, 10월의 운명에 처한 상실의 대상들을 잘 포착하고 있다. 

 뭔가 다 사라지고 있구나, 이런 상실을 너무나 잘 깨닫는 이유는 이미 상실을 너무나 잘 경험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집에 와서 혼자서 찬밥을 물에 말아 먹었다고 썼다. 반찬 없는 것도 속상한데 온기도, 식구도, 사랑도 없다. 아무리 ‘혼밥’ ‘혼술’이 대세라지만 시월은 원래가 쓸쓸한 계절이기 때문에 이 시기의 혼자는 더 쓸쓸하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아마도 10월은 역시 사람의 온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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