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말이 중국(中國)과 달라 한자(漢字)로는 서로 통(通)하지 않으니….' 세종대왕이 손수 쓴 훈민정음(訓民正音) 머리말을 현대어로 표기한 것이다. 요즘 국가 지도자라면 아래처럼 쓰지 않을까?
'국어(國語)가 중국(中國)과 상이(相異)해 한자(漢字)로는 소통(疏通)이 불가능(不可能)하니….' 당시보다 한자어가 훨씬 많다. 대왕은 훈민정음 말뜻 그대로 글 모르는 백성을 깨우치고자 했다. 어려운 한자와 한문에서 해방하려 한 것이다. 예문대로라면 오늘날 해방은커녕 옥(獄)에 갇힌 꼴이다. 억지나 과장일까. 신문 기사를 들춰보자.
'고객에 대한 장기적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인과 오랜만에 휴식을 취한 선수는 김예지뿐이 아니었다.'
다시 이렇게 쓰면 어떨까.
'손님에게서 오랜 믿음을 얻는~.' '아는 사람과 오랜만에 쉰~.'
말뜻은 다르지 않다. 어느 쪽이 거북하고 어느 쪽이 매끄러운가. 둘째 보기는 우리말의 자연스러움이 드러나고 다섯 음절(휴식을 취한) 군살 뺀 딱 한 음절(쉰)로 날씬하다.
한자어는 공기(空氣) 같은 모국어의 번듯한 요소다. 때로 짧은 음절(音節)에 많은 뜻을 담는다. 하지만 되레 글을 더 늘어뜨리기도 한다. '간결함'에서도 순우리말이 훨씬 잘났을 때가 많다는 얘기다.
영어식 문장이 한자어를 부추기기도 한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관심과 지도의 필요성은 더욱 강력하게 요구된다.' 이렇게 '강력하게' 써야만 할까. '안전사고를 막을 관심과 지도가 훨씬 더 필요하다' 하면 쉽고 깔끔할 텐데.
쓰임새 자체가 알맞지 않은 것도 있다.
'이 병적 시대에 테스토스테론이 가득 장착된 글을 읽는 건 드문 일이다.' 장착(裝着)은 어떤 장치를 단다는 뜻인데, 비유하거나 말맛(어감·語感)을 세게 하고자 했다기에는 지나쳐 보인다. '가득 담긴' 하면 그만 아닐까.
한글은 인류사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영국 학자 존 맨)이 어디 과찬(過讚)인가. 겨레의 문자 독립이요 혁명이었다. 이 한글로 빚어낸 순우리말, 온 마음으로 아끼고 다듬어도 시원찮을 것이다. 그런데 한글날은 22년(1991 ~2012년)이나 법정 공휴일에서 밀려나 있었다. 훈민정음 발표 570돌, 국경일 된 지는 이제 11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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