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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초현실주의 화가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신화를 통해 인간의 조건에 대한 기본적인 통찰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고전 신화들은 부친 살해, 영아 살해, 근친상간 등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욕망이 저지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죠.
프로이트는 이런 이야기를 분석하면서 신화가 실제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오이디푸스나 엘렉트라 등의 이야기를 연구해 자신이 규명한 정신분석학인 ’콤플렉스’ 증세에 이들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프로이트는 문학과 미술 작품을 연구해 작가의 잠재의식이 작품에 드러난 것으로 보고 그 의미를 분석하고자 했습니다.
초현실주의란 프로이트의 이런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꿈과 무의식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 문학, 예술 사고를 말합니다. 초현실주의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1921년 빈을 여행하던 중에 프로이트를 만났습니다.
1924년 브르통의 <제 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기점으로 결성된 초현실주의는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촉발된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 운동이었습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함으로써 이성에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들은 의식적인 정신을 개입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손을 놀려 그림을 그렸습니다.
초현실주의는 이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합니다. 초현실주의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화가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죠. 벨기에의 초현실주의자인 르네 마그리트는 큰 바위덩어리를 공중에 띄워놓는다든지, 낮이 밤으로 변해 있는 등의 정신의 전위(데페이즈망)를 보여 줍니다.
그는 과거 유럽의 정치•문화를 이끌어온 합리주의와 자연주의에 반대하며 자신만의 차별화된 작품 스타일을 구축했습니다. 당시의 ‘문학예술운동’은 기존질서와 가치를 거부하고 비합리적 인식과 잠재의식의 세계를 탐구하여 기성미학과 도덕에 관계없이 표현의 혁신을 꾀한 운동이죠.
오늘은 전에 여러 번 포스팅을 했던 르네 마그리트나 살바도르 달리를 제외한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당시 르네 마그리트와 함께 ’초현실주의’를 형성했던 화가들, 사실 그들이 작품은 매우 다양하여 초현실주의적 양식으로 범주화해서 요약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각자 나름대로 자지탐구의 수단을 모색했다고 할 수 있죠. 이들은 ‘자동기술법’을 사용해 거의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제작하거나 꿈의 세계에 대해 편집증적 탐구를 했습니다. 이제 의식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무의식의 세계를 즉흥적으로 표현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을 만나볼까요?
폴 델보 Paul Delvaux 1897~1994
폴 델보(Paul Delvaux 1897~1994) 는 벨기에의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화가입니다. 그는 신비로운 시간과 공간 속에 못박혀 있는 듯한 여인들의 모습을 그렸는데요, 마치 꿈 속에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델보는 처음에는 건축을 공부하였으나 1920년 브뤼셀의 미술학교에 입학 화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이탈리아의 조르조 데 키리코, 그리고 나중에는 같은 벨기에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에게 감명을 받아 1935년 초현실주의 대열에 합류했죠.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데 키리코처럼 고대 건축물에서 영향을 받았고, 형태와 공간을 자유롭게 다룬 16C 초의 마니에리슴 양식에서도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근대 미술 작품의 대가였던 델보의 세계는 ‘마술 같은 리얼리즘’이었습니다. 데보는 신화만 바꾸면서, 계속해서 같은 장면만을 그렸는데요, 이는 달빛 속에서 엄숙하면서도 에로틱한 분위기의 벌거벗은 여자가 창백한 얼굴에 무관심한 표정으로 있는 모습입니다.
고전적인 스타일을 활용하여 하얀 달빛이 쏟아지는 황량한 풍경 속을 몽유병 환자처럼 방황하는 여인들, 폴 델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입니다. 배경에는 그리스 신전이 자주 쓰이지만, 이것은 순결 그대로의 나부(裸婦)와 마찬가지로 정신의 증표이죠.
어두컴컴한 밤하늘, 여인의 피부에 와 닿은 하얀 달빛, 푸르스름한 밤의 공기, 어딘지 모르게 밤이라는 시간적 배경은 죽음과 맞닿아 있는 느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폴 델보의 그림은 한없이 스산하고 섬뜩한, 아찔한 냉기를 뿜어냅니다.
이브 탕기 Yves Tanguy 1900~1955
이브 탕기(Yves Tanguy 1900~1955) 역시 초현실주의의 발전에 크게 기여를 한 화가입니다. 젊은 시절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24세 무렵 파리의 한 화랑에서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아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는데요, 1925년 초현실주의자들과 알게 되어 그들의 그룹에 참여하게 되죠. 이브 탕기는 그 후 주요 초현실주의 전시회에 모두 참가하며 의욕적인 활동을 했습니다. 1927년 파리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열어 크게 주목을 받기도 했고요.
이브 탕기는 정식으로 미술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1927년경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개발합니다. 그 해 파리에서 최초로 개인전을 열어 크게 주목을 받기도 했고요. 그의 작품은 무척추 해양동물이나 조각 같은 바위 형태의 신비하고 기이한 물체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호한 형태들은 부드럽고 매우 자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그 배경에는 끝없는 수평선과 시간을 초월한 몽상적 요소가 있는 황폐하고도 밝게 빛나는 풍경이 보입니다. 미국에 정착한 뒤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은 더욱 금속적인 성질을 띠었습니다. 탕기는 기괴하고 비논리적인 그림으로 초현실주의 원칙을 가장 충실하게 따른 미술가가 되었죠.
앙드레 마송 Andre´Masson 1896~1987
앙드레 마송(Andre´Masson 1896~1987)이 회화에서 의도한 것은 앙드레 브르통의 자동기술과 같이 무의식 상태에서 그려지는 자동묘사 그림입니다. 마송은 주로 드로잉적 회화 물감과 모래를 혼합한 모래 그림 작업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앙드레 마송은 헤라클레이토스, 니체, 랭보, 로트레아몽 등의 저작으로부터 자신의 예술형성의 원천을 얻어냈습니다. 1912년 파리에 건너가 옛 거장들의 주요 미술장르에 속하는 프레스코 벽화를 공부한 마송은 1922년 입체주의의 영향을 받았고 그 후 초현실주의자들과 합류하여 자동기술에 의한 데생을 시도합니다. 마송은 강렬한 제스트로 젊은 세대의 미국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죠. 앙드레 브르통과 알게 된 직후인 1924년에 마송은 재빠른 선묘에 의한 드로잉 작품을 통해 세상과 우주에 대한 자신의 감성을 격정적으로 나타냅니다. 그의 드로잉에는 기이한 동물, 신화적 이미지가 자주 등장합니다.
1947년 프랑스의 엑상 프로방스에 정착한 이후로는 격렬한 운동감을 버리고 일본의 영향을 받은 유연한 조형언어를 구사, 초현실주의와의 연관은 사라지게 되었죠. 그 후 마송은 소묘와 판화가로서의 주요 작품과 더불어 많은 무대장치와 의상, 삽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삶은 세상의 ‘상식’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었습니다. 인간의 내부에 잠재하고 있는 신비하고 매혹적인 환상의 세계를 표현한 화가들, 이들의 그림은 난해하기 짝이 없고 언뜻 보아서는 비정상적으로도 보입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물과 공간 사이에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관계를 끊어 버렸습니다. ’조금만 다르게 보아도 현실은 신비롭게 다가올 수 있다’ 는 르네 마그리트의 말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상식에 도전하고 고정관념을 뒤집는 독특한 초현실주의 화가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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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적 인식과 잠재의식의 세계를 탐구하여 기성 미학과 도덕에 관계없이 표현의 혁신을 추구한 1920년 중반에 일어난 예술 운동. 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전위적 문예 운동으로 문학, 회화, 영화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합리성을 고의적으로 무시한 반예술 운동인 다다이즘에 기원을 두고 있으나 초현실주의는 적극적 표현과 창조적 태도, 내적 충동의 표현을 강조하여 다다이즘과 구별된다. 1924년과 1929년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은 자신이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예술에 대한 일체의 선입견과 논리와 도덕을 초월한 정신으로 예술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초현실주의는 순수 정신의 자동성 또는 잠재의식을 표면으로 떠오르게 하는 자유 연상을 말하며 이성이나 미적·도덕적 선입견에 의한 통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행해지는 내적 사상의 표현이다.
초현실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이다. 무의식 이론과 꿈에 대한 몰두, 성적 상징체계를 강조하는 프로이트 사상은 당시 영화감독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들은 인간의 외적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무의식의 원천에 들어감으로써 좀 더 진실된 현실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초현실주의 영화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의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 1929)이다. 이 영화는 면도칼을 든 두 남자가 한 여인의 눈을 베어내는 클로즈업, 피아노 위에 죽은 채 엎어져 부패하고 있는 당나귀와 피아노를 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한 남자의 손바닥에 나 있는 구멍으로 무리를 지어 나오는 개미 떼, 이유 없는 살인이나 신체 절단, 상징적인 변태 행위 등 충격적인 자극을 통해 관객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일련의 격렬한 반항심을 끌어내기 위한 초현실주의 영화의 전형이다. 부뉴엘은 꿈과 리얼리티가 그 어떤 속박도 없이 자유로운 제스처가 뒤섞인 극렬한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다. 영화에서 장면을 구성하는 논리는 제시되지 않으며 그것의 정당성도 모호하다. 관객은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장면에 직면하여 그 이유를 스스로 규명해야 한다.
초현실주의 영화감독으로 또 다른 중요한 인물로는 장 콕도(Jean Cocteau)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오르페의 유언〉(Le Testament d'Orphée, 1960)을 통해 문자와 그림, 스틸 사진과 슬로 모션, 이중 노출, 몽타주, 역모션 등 많은 특수 효과를 사용하는 한편 스스로 카메라를 향해 말하고 기묘한 형상의 인체 인형을 등장시키는 등 진기한 형상들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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