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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이 죽었구나, 멋쟁이가 갔구나"...
2016년 12월 31일 00시 17분  조회:2041  추천:1  작성자: 죽림
 

詩를 그린 추상화가
푸른 점에 마음을 실은 추상회화의 선구자

입체파·구성파 등 앞선 미술 운동 적극 수용
추상적 바탕 위에 우리 고유의 정서 담아 내...




“멋이 죽었구나, 멋쟁이가 갔구나.” 

1974년 미국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수화 김환기(1913~74)가 끝내 숨을 거뒀다는 비보가 전해지자, 그의 절친한 벗 최순우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전해진다. 

 30년대 일본 유학 중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김환기는 유영국씨 등과 더불어 모더니즘 제1세대로 불려왔다. 하지만 50년대 그의 활동은 본격적인 모더니즘이라고 볼 수 없는 점이 많다. 산과 달, 매화, 사슴 등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를 단순하고 소박하게 표현하는 데 머물렀기 때문이다. <산월>, <나무와 달>(갤러리현대), <달과 학>(원화랑) 등의 반구상작품은 그시절 김환기의 낭만성이 감당할 수 있는 모더니즘의 최대치였다. <매화와 항아리>(환기미술관) 등에서 볼 수 있듯, 백자의 그윽한 아름다움에 반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하지만 김환기는 이에 멈추지 않았다. 1963년 작가로 참여했던 상파울로비엔날레는 그에게 `세계미술이란 이런 것'이라는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눈이 번쩍 뜨인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다. 60년대 후반부터 그는 무수히 많은 색점만으로 화폭을 채워나간다. `색점 추상'이라는 자신의 화법을 개척한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절정이라 할 이 색점 추상화들은 수화가 직접 그림의 속틀을 짜고 아교칠을 한 뒤 고국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수를 놓듯 그린 것들이다. 점 하나하나마다 정성과 그리움을 담은 까닭에 그의 추상화는 어떤 구체적인 형상이 줄 수 있는 감동보다 더 큰 울림을 지닌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하늘과 땅>(갤러리현대) <공기와 소리>(원화랑) 등의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절제된 사랑의 노래라 할 수 있다. 

 수화는 이중섭처럼 드라마틱한 삶을 살지도 않았고, 이응노처럼 정치적 시련을 겪지도 않았다. 삶에는 예민했고 인간에는 정다웠으며 그림에는 성실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에서는 따뜻한 우아함이 배어나온다. 파란많은 한국사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느낌이다. 진정 수화는 `베토벤같은' 격정의 시대를 `모짜르트처럼' 천진하게 살아간 화가인지도 모른다. 

 



작가 노트

전위미술인 이상회화는 어디까지나 아름다워야 하고 그 아름다운 법이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워야 한다. 현대미술의 한계에서만 전위회화가 존재한 게 아니라 일직이 그 시대에 있어 이미 전위적 회화가 있었고, 그러지 때문에 전위미술은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또 내일로 전진한다. 인간의 진정한 창조란 그 시대의 전위가 될 것이고 진보란 전위적인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미술사는 항상 새로운 백지 위에 새로운 기록을 작성해 간다. 

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 정신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가 감격한 노래가 있구려.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가 무엇이었다는 것을 나는 여기 와서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 같소. 밝은 태양을 파리에 와서는 알아진 셈. 

창조의 일은 언제나 새로운 발견이다. 새로운 것이라 생각하고 해놓고 보면, 누군가가 이미 한 일일 때 무의미하게 되고 만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 지금까지 없었던 일을 찾아내고자 하는 데서 오늘의 예술의 다양성이 이루어지고, 또 따라서 이해부득의 불가사의한 일들이 속출하는 오늘의 창조계의 현상인 듯 싶다. 불가사의한 일들이 진실로 좋은 일, 다시 말하면 그 일에 예술성이 더해졌을 때 비로소 인정을 받을 수 있되 불가사의하고 기괴한 일로서 끝나버릴 때는 하나의 조류에 불과하게 된다. 
- 1960. 작가의 노트 중에서 



작품세계...

1974년 에이역땅뉴욕에서작고한김환기 우리는그를 '현대미술 의 선구자' 라 서슴없이 내세운다. 그의 추상화가하루? 에 탄생된 것은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추상화를그리게 되었을까,그속에 무엇 을담은것일까.


'도대체 뭘 그린 거예요? '왜 이렇게 한 건가요? 나-원‥‥나도그리겠네.' 라며 추상화에 대해서 반투정,반불신의 바늘가시를세우고공격하는 이들도김환기의 그림 앞에서만큼은 저마다 이렇게 내뱉는다. '나는 이 그림이 좋아요. 참 색이 좋아 요.느낌이 좋아요." 정말 희한한 일이다. 그러나사람들은느낀다. 말보다가슴을 빼앗기는 것이다. 어쩌면 그의 그림은사람들에게 감상하는법까지 가르쳐 주고 있 다는생각이 든다.


그의 초기작부터 거슬러 보는 것은 좀더 심도 있게 그의 추상세계를 읽어낼 수 있 는 계기를마련해 준다. 한화가의 초기작부터 감상해 보는 것. 이건 일반적으로그 림감상의 좋은 방법 이기도하다. 함축적으로 표현된 추상화일 경우엔 더욱그렇 다. 풀어낼 수 있는 열쇠들을 과거 작품들속에서 속속 발견할수 있기 때문이다. 


추상미술의 원천이 된 도자기와 블루(blue)


색과 점만 남은 추상세계의 김환기 작품은 주로 산,달,학,매화,조선시대 백자등 과같은 한국적인 소재로 그린그림부터 짚어볼수 있다. 물론구상적인 소재들로 그림을그리던 당시에도그의 그림은 꽤 단순하게 소재들을그려내는 일면을보이 고 있었다. 게다가 빼놓을수 없는푸른색. 환기푸른색이라불릴 정도로 신비로우 면서도 깊이가느껴지는그윽한푸른색에는당연그의 이름을붙이고 싶을 정도로 생명과개성이 느껴진다.


화가로서 김환기의 인생은 193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일본대학 예술학원에서 그 림공부를한그는서구의 새로운 경향을받아들이며 앞선 미술을하던 일본화가 친 구들이 있었고,그러한 영향으로그는우리 나라추상회화의 선구자가 될수 있었다. 1737년 귀국한 그는 40년까지 일본으로 작품을보내 출품하기도 했지만 전쟁의 어두운그림자속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처 럼 거의 작품활동을하지 못했다. 해방 이 후에야 김환기는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추상미술' 이라는,당시로서는상당 히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미술을 펼치던 그는 민족의 아픔을 겪으며 결국 '우리 것, 우리 모습' 을그려야한다는자각을하기 에 이르렀고그리하여 그의 그림 속에 한 국적 인 소재들이 등장하게 된다. 특히 그가좋아했던 조선백자는 빼놓을수 없는 주소재이다. 실내에 놓여 있는 정물로표현되기도하지만 이후 실내의 도자기와 창밖에 보이는달이 복합되기도하며 그의 그림 속의 주요한모태로곳곳에 자리하 게 된다 

'조형을,미를,민족을 나는우리 도자기에서 배웠다. 지금도 내 교과서는바로우 리 도자기일는지 모른다. 그러니까내가그리는그것이 여인이든산이든달이든새 든간에 그것들은 모두가 도자기에서 온 것들이요, 빛깔 또한 그러하다. " 

그러한 작업은 1956년 그가 파리로가면서 더욱 심화되는데, 「bluet-새와 항아 리」처럼 자신이 그리고싶은사물들을핵심적인 형태로단순화하고요약하면서 화 면속에 자유로우면서도조화롭게 배 열한다. 또파리에서의 김환기의 색채는정물 화뿐만아니라풍경화에서도거의 대부분푸른색으로 일관되어 화면에 가득찬다. 너무나파래서 약간의 붉은색은 더욱도드라진다. 언뜻한눈에 태양인가 싶으면 서 어쨌든 그중심의 붉은색은 근원이 되어 준다. 게다가 붉은 빛을 머금고 있는 새, 화폭 밖으로돌진하는그 새에게 힘찬 미 래에 대한소원까지 싣게 된다. 매화가지 를 벌려 뻗은수평선이 수직으로 분할된 화면과대칭되어 화면을 정돈하고 질서를 담아준다


1959년 파리에서 귀국한 김환기는홍익대에서 후학양성에 매진하다 1963년 10 월 상파울로 비 엔날레 커미셔너 자격으로참석한후우리 나라로돌아오지 않고뉴 욕으로가 11년에 걸친 뉴욕생활의 첫발을내디딘다. 


점과선에흐르는내면의 열정


단순화된 한폭의 풍경임을 알수 있는 1960년에 그려진 「blue2-무제」 . 제목이 없어 도 우리는한눈에 풍경을담은 것임을 알수 있다. 굳이 제목을붙인다면 '푸른 산 천 은 어떨까. 푸른색엔아름다움과 평화가배어 있고단순한선과점 ,덩어리에 연 못,논밭,집,산,구름,별이 모두담겨 있다. 이와같은 양상은 1767∼1968년경부터 그나마 형태도서서 히 해체되기 시작하고 70년에 와서는 [blue3-anwp17]처럼 점 들로가득 채운그림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간의 모든 것들은 이제 한낱점으로남게 된 것이다. 조국의 강산,조국에 두고온 모든 그리운사람과 물건을 연상하며 찔 어 나갔다는 그의 말처 럼 끝내 돌아오지 못한 조국을 점과 아름다운 색채로 형 상 화한 것이다. 따라서 김환기의 뉴욕시대 추상작품 들은 이 깊은내면을이해하지 않고는안될 것이다. 점에 실려 있는그의 마음의 실타래를풀듯그의 그림을바라보자 유화재료로그렸지만수채화처 럼 번지는그 점들은비록 원색의 화려한옷을 입었 어도그 번짐이 마음에 가 닿아눈물로젖어드는 것 만 같다 예쁘고화려한 여인일지라도 결국 그사 랑이 지속되는 것은 내 면의 매 력 이라지 않았던 가‥‥ 그의 그림이 한눈에 담기면서도 질리지 않고 더욱그속에 빨려드는 것은그의 절절한마음이 보 는 이들의 마음을 흡입해 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1974년 뉴욕에서 안타깜게 생을마감한그의 영 혼이 지금쯤한국에서 많은 이들의 영혼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 추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서양화가 樹話(수화) 金煥基(김환기·1913 ~1974)는 초기에는 나무, 달, 조선백자 등과 같은 민족적 소재를 이용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발표하다가, 1963년 渡美 이후에는 화면에 무수한 점과 선을 배열하는 독특한 회화세계를 개척하였다. 

그의 點描(점묘)시리즈 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은 1970년 「제1회 한국미술 대상전」에서 대상을 탔다. 이 작품은 김광섭의 詩를 읽고 그린 것으로 국내에 소개되었을 때 사람들은 金煥基의 변모된 작품세계에 대해 놀라움과 찬사를 보냈다. 

金煥基는 1913년 전남 신안군 기좌도(現 안좌도)에서 태어났다. 1931년 일본에 건너간 그는 1936년 니혼(日本) 대학 미술부 연구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 연수부(대학원격)를 수료하였다. 

金煥基는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일본 추상회화의 선구자들인 도고 세이지(東鄕靑兒), 야마구치 다케오(山口正男) 등과 「白蠻會(백만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1937년에는 도쿄 아마기(天城)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광복 후 그는 국내 화단이 활기를 찾자 1948년부터 「新사실파」라는 그룹을 결성하여 국내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하였다. 

金煥基의 작품은 도쿄시대와 서울시대, 파리시대, 뉴욕시대로 나눌 수 있다. 도쿄시대는 주로 習作(습작) 시기에 해당한다. 그는 대학 재학중이던 1935년 제22회 二科展(이과전)에 「종달새 노래할 때」란 작품을 출품하여 첫 입선하였다. 이 작품은 평화로운 섬을 배경으로 소녀가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자연을 서정적으로 표현한, 이후의 金煥基의 작품과도 일맥상통한다. 

파리시대(1956~1959)의 金煥基 작품에는 여전히 달과 구름, 산과 나무, 새와 항아리가 등장하지만 색채는 푸른색이 바탕을 이루고, 구도는 이전보다 더 단순화되었으며, 서정적 느낌이 많이 억제된 특징을 나타낸다. 

1963년 미국에 건너간 金煥基는 1974년 뇌출혈로 뉴욕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 點描 그림에 몰두하던 金煥基는 말년에 이르러는 동양적 수묵화에 가까운 추상화에 도달한다. 金煥基가 평생을 동양적(한국적)인 서정을 표현해 온 화가라는 것을 볼 때, 晩年의 점과 선으로 된 그림도 이전의 그의 작품과 동일한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김환기(1913-1974)....그는 누구인가?

김환기는 1913년 2월 전남 신안군의 기좌도에서 출생했다. 부친 김상현 씨는 거의 천 석 가까운 수확을 하는 지주였다. 가야금 연주가 수준급이었으며 엽총 사냥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고향 국민학교를 졸업한 김환기는 곧장 서울의 중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유배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지닌 남서해의 한 섬에서 서울로 유학 가는 길이 그다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상상에도 불구하고 김환기가 그 유학에 어떤 어려움을 느꼈다는 기록들은 보이지 않는다. 당시가 일제 치하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경제적 여유가 김환기의 성격에 유형 무형의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 또한 어렵지 않다.  

산, 달, 매화, 사슴, 여인, 새, 항아리…. 확실히 그가 즐겨 그린 소재들은 한국적이며, 본질적으로는 동양적이다. 그 중에서도 그가 특히 애착을 가진 것은 이조백자라고 알려져 있다. 이조백자에 대한 그의 열정은 거의 광적이어서 일제 말인 1944년부터 육이오가 나기 직전까지 거의 매일 한 점씩의 도자기를 구입해 들였다 한다. 이를테면 이조백자를 그에게 있어 '꽃이 존재하기 전의 꽃의 모습' 같은 것이었다.

"조형의 미를, 민족을 나는 도자기에서 배웠다. 지금도 교과서는 바로 우리 도자기일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그리는 것이 여인이든 산이든 새든 간에 그것들은 모두 도자기에서 오는 것들이요, 빛깔 또한 그러하다."

이조백자에 대한 그의 생각이 어떠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환기의 데뷔작은 '이과회'에서 응모하여 입선한 <종달새 노래할 때>(1953)로 알려져 있다. 1938년에 김환기는 동경 자유미술가협회전에 <론도>라는 작품을 출품하게 된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전이되는 과도기의 작품으로 해석되는 이 작품은 한국 현대 추상회화의 한 원조로 기억되며, 유럽화가들의 기계적이며 기하학적인 추상 기법에 비하여 훨씬 동양정신에 근접해 있다는 후대 평론가들의 후한 평판을 얻게 된다. 

1941년부터 1945년까지 김환기의 작품은 어느 도록에도 실려 있지 않다. 아니, 세계의 어는 전장 속에서도 추상 미술이 꽃을 피웠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전쟁은 실존이었으며 그 극한이었다. 이 기간 중 김환기가 이뤄낸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혼과 재혼이었다. 42년 그는 첫부인과 이혼을 하며, 44년 수필가 김향안 씨(한때 이상의 부인)와 재혼을 하게 된다.

김환기에게 해방 공간은 행운의 시점으로 다가온다. 옛주둔군의 수도에 유학한 이력들이 이제 빛나는 훈장으로 빛을 발하겓 되는 것이다. 그는 국립 서울대학의 미술학부의 강의를 맡게도 되고, 국전 심사 위원과 서울시 문화 위원 일을 보게도 된다. 이즈음 그는 유영국, 장욱진들과 함께 '신사실파'를 조직, 그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김환기의 고향에 있는 안좌 초등학교 1회 졸업생인 김병무 옹은 2회 졸업생인 김환기에 대한 몇 개의 또렷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팔망미인이었지. 그림, 글씨, 음악 다 좋아했어. 한번은 방학 때 서울에서 내려와 함께 연극공연을 했던 적도 있지. 장풍(長風)이란 제목이었는데 내용은 오래 돼 까먹었어. 환기가 중심이었지."

같은 학교 3회 졸업생인 김진구 옹은 김환기의 사촌 조카인데 당시 김환기와 함께 서울과 동경 유학을 했다. 명치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인텔리인 그의 김환기에 대한 기억은구체적이었으며 상당히 전문적이었다.

"중학 다닐 적에 한방을 둘이 같이 썼지. 바이올린을 늘상 켰는데 키가 육척이라 운동, 특히 농구를 잘 했어. 그림은 일본 유학가서 본격적으로 공부했는데 도고세이지와 후지다스쿠지의 영향을 받았지. 이 사람들 그림은 내가 보아도 뭔가 조금 통하는 게 있었는데 당시 김환기의 그림은 뭐가 뭔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림이었지. 아이들 장난 같은 그림이었는데 이중섭이와는 좀 달랐어. 중섭의 그림은 처음 본 사람도 친근감이 있거든.

불란서 갔다 온 뒤에 전시회에 갔더니 그림이 참 좋아졌드만. 그때 하나 주라 했더니 안 주었어. 그 사람 그림 가진 사람 우리 주위에 한 사람도 없어. 주질 않았지. 돈 주고 사라고 해. 친척도 소용없었지. 그림은 그 당시도 비싸게 팔아 묵었어. 아주 독하게 비쌌지. 해방됙 전에 금강산 스케치 여행을 다녀온 적도 있었지. 미도파에서 전시회를 하고 내 방에 그 그림들을 쌓아 놓았는데 어떻게 해서 그 그림들이 다 없어지게 되었지. 지금도 숙모(김향안)가 찾으려 애를 쓴다는데 행방을 알 수 없어. 술을 잘 마셨지. 돈만 생기면 술을 마셔 버려. 남의 술은 절대 안 얻어 먹으려 했어. 자기가 다 내려 했지. 여자들에게는 참 인기가 좋았어. 소위 예술계 계통 여학생들은 모두 다 그를 좋아했어. 그림, 글, 인물, 음악, 다 뛰어나니 어디 좋아하지 않고 견디겠어? 예술회장 했던 조경희도 김환기를 썩 좋아했지."

평론가들은 김환기의 작품에 고향 바다가 나타나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그것은 고향의 부재, 정신의 부재라고 비판한 친구들도 있었다. 지주 계층으로 일찍이 일본 유학의 혜택을 입은 김환기에게 어차피 고향이란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는 보다 더 자유루온 예술의 세계를 꿈꾸었고, 파리와 뉴욕에서의 생활은 그 꿈의 현재적 실존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곽재구 기행 산문집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에서 발췌 인용했습니다.

그의 점묘(點描)시리즈 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은 1970년 「제1회 한국미술 대상전」에서 대상을 탔다. 이 작품은 김광섭의 시 [저녁에]를 읽고 그린 것으로 국내에서 호평을 받았다. 

1963년 미국에 건너간 金煥基는 1974년 뇌출혈로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그림 ‘무제’(1972년 작)는 국내 경매에서 3억9000만원에 낙찰됐다. 근현대미술작품의 국내 경매 사상 최고 액수였다. 한편 외국 경매에서는 박수근의 작품들이 3억∼4억원대에 팔리며 국내 작가 중 최고가를 형성해왔다. 박수근의 ‘절구질’은 1997년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38만7500달러(약 4억3000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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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세상을 꿰뚫어 보려는 화가의 시선(視線)이다. 그 시선이 남다르게 신선하다면

성공한 예술가로 평가받고도 남는다. 바로 김환기 화백이 그런 화가 아닌가 싶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들을 흔히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민족적인 것의 내면보다는 외형에 안이하게 집착하면서 그것을 가장 민족적인 것, 나아가서는

가장 세계적인 것으로 잘못 이해하며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미 있는 민족적인 것이나 세계적인 것에 오히려 집착하지 말고 거기서

보다 더 자유롭게 떠나서 자신의 것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김환기는 그처럼 자유롭게

떠나서 새로운 도전을 해냈다는 의미에서 가장 민족적이며 가장 세계적인 두드러진 일을 한

현대의 화가였던 것이다.

10만개의 점 1973

 

무제 1963

 

날으는 새 두마리 1964

 

녹샘점

 

달 두개

 

달과 배 1959

 

달밤의 화실 1957

 

론도 1938

 

무제 1960

 

산 1955

 

여인과 매화와 항아리 1956

 

영원의 노래 1957

 

정원

 

피난 열차 1951

 

항아리와 날으는 새 1958

 

항아리와 매화가지

 

 

김환기(1913~ 1974)

 

수화 김환기 선생님은 한국 추상미술의 제1세대로서 세련되고 승화된 조형언어로

한국적 서정주의를 바탕으로 한 고유의 예술 세계를 정립하여 한국을 비롯,

현대 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와 뉴욕으로까지 그 이름을 알리신 분입니다.
그는 1930년대 후반 경부터 가장 전위적인 활동의 하나였던 추상미술을 시도,

한국의 모더니즘을 리드하였으며 현대적이고 절제된 조형언어를 바탕으로 이룩한

그의 정서세계는 50년대에 이르러 산, 강, 달 등 자연을 주 소재로 더욱 밀도 높고

풍요로운 표현으로 한국적 정서를 아름답게 조형화 하였습니다.

그의 예술은 56년부터 59년까지 약 3년 간의 파리시대와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수상한 해인 63년부터 작고한 74년에 이르는 뉴욕시대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줍니다.
파리시대와 서울시대를 포함한 50년대까지 그의 예술은 엄격하고 절제된 조형성 속에

한국의 고유한 서정의 세계를 구현하였으며, 60년대 후반 뉴욕시대에는 점, 선, 면 등

순수한 조형적 요소로 보다 보편적이고 내밀한 서정의 세계를 심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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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선입견으로 인하여 하고싶은것을 하기가 두렵습니다... 2017-01-07 0 1749
273 표현주의미술의 상륙을 재음미해보기... 2017-01-07 0 1846
272 천재의 화가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보다... 2017-01-07 0 1390
271 력사, 대도시, 벽촌 그리고 등호의 세계 2017-01-04 0 1998
270 천재화가와 "그 총은 누구의 것, 그 총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2017-01-02 0 3865
269 아시아 미술 수집계 "큰손"으로 미술시장 눈 뜨다... 2017-01-01 0 1942
268 이탈리아 누드 초상 화가 - 모딜리아니 2017-01-01 0 5919
267 프랑스 초현실주의 화가 - 앙드레 마송 2017-01-01 0 5903
266 "멋이 죽었구나, 멋쟁이가 갔구나"... 2016-12-31 1 2041
265 [쉼터] - 유명한 시상식과 "격식있는 차림새" 2016-12-30 0 1216
264 전 세계, 전 미술계, 전 시대적, "위작문제" 2016-12-29 0 1791
263 천재적 화가 남편과 "사랑헌신주의" 화가 안해 2016-12-29 0 4039
262 세계에서 제일 비싼 그림 1~20 2016-12-29 0 1904
261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1~10 2016-12-29 0 2314
260 세계 가장 유명한 그림 7매 2016-12-29 0 1531
259 미국 추상표현주의 운동 기수 - 잭슨 폴락 2016-12-29 0 2873
258 [그것이 알고싶다] - 별천지 하늘을 사진으로 어떻게 찍을까? 2016-12-27 0 1782
257 글쓰고 책만들기는 힘들지만 근드리로 책페물하기는 쉽다... 2016-12-26 0 1366
256 [문학예술계소사전] - "팝 아트"란? "팝 아티스트"란? "아트테이너"란? "고스트라이터"란? 2016-12-23 0 2377
255 미국 젊은 사진작가 - 벤 장크 2016-12-19 0 3850
254 희귀한 사진, 신비한 자연, 그리고 록색보호평화주의者 2016-12-19 0 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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