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어빙스톤-최승자 옮김-까치
p-20 고통이 그를 괴상하게 만들어놓았다. 자신의 고통을 통해 그는 타인의 고통에도 민감해졌다. 자신의 고통으로 인해 그는 주위의 값싸고 보잘것없는 것, 그리고 떠들썩한 속세의 성공을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그가 진실성과 깊은 감정을 발견할 수 있는 그림은, 그것을 그린 그 예술가의 거통이 표현된 그림밖에 없었다.
p-22 “훌륭한 행동을 하려면,” 그는 읽었다. “인간은 반드시 자기 내부에서 정신적으로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이승에서 존재함은 행복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그저 정직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인간이 이승에서 존재함은, 인류를 위한 위대한 행동을 실현하여 고귀함을 얻고 거의 모든 개개인의 삶이 질질 끌려가고 있는 비속함을 뛰어넘기 위해서이다.”
p-28 우르술라는 그 사내의 두 팔에 단단히 끌어 안긴 채 입술을 그의 입술에 꼭 포갰다. 마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무언가 가느다란 것이 그의 내부에서 툭 끊어졌다. 산뜻하고 깨끗하게 끊어졌다. 마술은 풀렸다. 그토록 쉬울 줄은 몰랐었다.
그는 종횡으로 휘갈기는 빗줄기 속에 타박타박 아일워드로 되돌아와 짐을 챙기고서 영원히 영국을 떠났다.
p-81 그는 목이 타는 듯 열에 들뜬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침묵의 공간을 가득 채웠다. 굶주림과 좌절감으로 야위고 쇠약하게 무참히 꺾여버린 광부들은 마치 신을 바라보듯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신을 그들에게서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p-86 그는 신을 잃었고 자신을 잃었다.
한 죽은 혼이 왜 자신이 아직도 여기 있는가 의아해 하면서 아무도 없는 버림받은 세계 속을 헤매고 있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었다. 얼마 안 되는 초목이 시들어죽으면서부터 무엇인가 그이 내부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그자신의 인생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고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의 삶으로 눈을 돌렸다. 그는 다시 독서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독서는 언제나 가장 큰, 그리고 변함없는 즐거움이었는데 이제 다시 다른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 괴로움과 기쁨의 이야기를 통해 늘상 머릿속에 출몰하는 자신의 대실패라는 유령으로부터 그는 도피할 수 있었다.
p-92 그는 야수 같은 마음의 고통을 눌렀고, 이젠 더 이상 자신의 불행을 생각지 않았으므로 행복함을 느꼈다. 아버지와 동생의 돈을 계속 받기만 하고 조금치도 자립할 노력을 하지 않는 자신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그리 중대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고 그는 그저 그림만 계속 그릴 뿐이었다.
p-97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저 여잔 얼굴도 없어. 딱히 정해진 어떤 사람도 아니야. 어쩌면 저 여잔 그저 보리나쥬에 사는 광부의 아내들 모두가 한 데로 합쳐진 거야. 뭐랄까 자네가 포착해 놓은 그것은, 광부 아내의 영혼이야. 그리고 그거야말로 정확하게 그려진 그 어느 그림보다도 천 배나 귀중한 것일세. 그래 난 자네가 그린 저 여인이 좋네. 내게 무엇인가를 직접 말해주고 있거든.”
p-207 “불평 없이 고통을 견디는 법을 배워라. 그것이 위대한 앎이요, 깨우쳐야할 교훈이며, 인생 문제의 해결법이다.”
그는 새로운 기운을 얻었고 또한 아이러니칼하게도, 갖가지 타격 중에서 가장 혹독한 타격을 안겨주었던 사람이 바로, 그 타격을 체념으로써 참는 법을 가르쳐준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즐거웠다.
p-208 “고통이 크면 클수록 자넨 그 고통에 대해 더욱 감사해야 돼. 바로 그런 것들로부터 일급의 화가들이 만들어지는 걸세. 텅빈 뱃속이 꽈 찬 뱃속보다 낫고, 상심하는 가슴이 행복보다 훌륭한 걸세. 반 고흐, 그 점을 절대로 잊지 말라구.”
p-209 “ 자네가 고금을 통해 가장 위대한 화가라고 생각된다 할지라도 난 도와주지 않겠네. 굶주림과 고통에 의해 죽음을 당할 만한 인간이라면 애초에 구해줄 가치도 없겠지.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화가들이란 오직,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다 마칠 때까지는 신도 귀신도 죽일 수 없는 사람들뿐일걸세.”
p-211 “그림을 판다는 게? 나는 화가란 언제나 무엇인가를 찾으면서도 끝끝내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을 뜻한다고 생각했었죠. 나는 그건 알고 있다, 나는 찾아냈다 와는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화가이다라고 말할 때, 그건 단지 나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고 노력하고 있으며 심혈을 기울여 몰두하고 있다는 의미일 따름이죠.”
p-231 인물을 그리든 풍경을 그리든간에 그는 감상적인 우수가 아니라 진지한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작품을 보고 “이 사람은 참 깊은 감정과 예민한 감수성을 갖고 있군”이라고 말하게 되는 높은 경지까지 도달하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면 그릴수록, 그 외의 다른 활동들은 점점 더 그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그런 다른 일들을 제거하면 제거할수록 그의 눈은 점점 더 쉽사리 삶의 회화적 특질을 포착할 수 있었다. 예술은 끈질긴 작업, 그 모든 것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작업, 그리고 끊임없는 관찰을 필요로 하였다.
p-263 “그 여자는 창녀가 아니야. 당신의 아내였어. 그 여자를 구하는데 실패 한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니야, 보리나쥬 사람들을 구하려다 실패한 것과 마찬 가지로, 한 인간이 한 문명 전체에 대항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아무 것도 없으니까.”
p-279 인간이 뭔가 신성한 것을 창조하였다면 그 신성함에 가장 가까운 것이 빈센트에게 있어서는 밀레의 만종이었다. 꾸밈없는 농부의 생활 속에서 그는 진실하고 영원한, 단 하나의 현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는 야외에 나가서 현장 그 자체에서 그리고 싶었다. 거기서 그는 수많은 날벌레들을 처치하고 먼지와 모래와 싸워야 했다. 히드 들판과 히드 울타리를 넘어 몇 시간이나 걸어 돌아올 때면 캔바스가 여기저기 긁히곤 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와서 보면, 자신이 현실을 똑바로 직시했음을, 그리고 그 현실의 근본적인 단순함 속에서 뭔가를 사로잡았음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그린 농부들의 그림 속에서 베이콘과 연기와 감자 찌는 냄새가 풍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건전한 게 아니었다. 마구간은 말똥 냄새를 풍겨야 제격인 것이다. 들판에서 잘 익은 보리나 비료나 거름 냄새가 난다면 그것 또한 좋은 것이다. 더욱이 도시에서 온 사람에게는.
p-283 “나는 결코 고통이 진정되길 원치 않는다. 흔히 바로 그 고통을 통해 예술가는 가장 힘찬 자기표현을 얻을 수 있는 까닭에”
p-289 네덜란드의 옛 대가들에게서 그는 소묘와 색채는 하나이다라는 사실을 배웠었다. 데 그로트 가족은 살아오면서 언제나 변하지 않는 똑같은 위치에서 밥상머리에 둘러앉았다. 빈센트는 등불 아래 감자를 먹고 있는 이 사람들이 접시로 가져가는 바로 그 손으로 대지를 일구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싶었고, 그것을 통해 “손”의 노동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일해서 먹고 살아가는가를 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p-290 “사람들은 내가 상상으로 그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_나는 기억으로 그린다.”
p-290 사라져 가는 것들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브라방트의 농부들은 이제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p-299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나한테 물었지? 내가 말해주지. 형은 인상파들한테서 빛과 색채를 배워야 해. 그것만큼은 그들한테서 빚을 질 수밖에 없어. 그러나 그 이상은 안 돼. 그 사람들을 모방해서는 안 돼. 휩쓸려 처박히지 말아야해. 파리의 아가리에 삼켜지지 않도록 해야 해.
p-319 “ 좋아요, 그렇다면 하 화가가 묘사를 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건 한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의 본질입니다. 화가가 어떤 말 [馬]을 그릴 때, 그 말이 거리에서 알아볼 수 있는 특정한 어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죠. 사진은 카메라가 찍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 화가는 그 이상으로 넘어서야 해요. 우리가 어떤 말을 글릴 때 반드시 포착해야 하는 것은, 반 고흐씨, 플라톤이 말하는 소위 ‘말이라는 것’ 즉 한 말의 외형에 나타난 정신입니다. 또한 한 인간을 그릴 때, 그것은 코끝에 난 사마귀까지 있는 대로 그린 문지기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 즉 모든 인간의 그 정신과 본질이어야 합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p-342 “로트렉 자네의 그림을 부도덕하다고 여기는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말이야. 대중은 예술에 있어서 도덕적 판단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한단 말일세. 예술은 도덕을 초월한 것이거든. 인생도 마찬가지야. 적어도 내게 있어서 외설적인 그림이나 책이란 것은 없네. 단지 보잘것없는 착상으로 보잘것없이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뿐이지. 뚤루즈-로트렉이 그린 창부는, 그가 그 창부의 겉모습 밑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표출했기 때문에 도덕적인 것이 된단 말일세. 그러나 부퀘로가 그린 청순한 시골 처녀는, 감상적으로, 그리고 쳐다보기만 해도 토하고 싶을 만큼 지긋지긋하게 달작지근하게 그렸기 때문에 부도덕한 것일세.”
p-344 “우선, 우리는 모든 진실이란 그 겉모습이 아무리 끔직스러워 보인다 할지라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연의 모든 것을, 아무 것도 거부하지 않고 다 받아들인다. 우리는 아름다운 허위보다 가혹한 현실 속에 더 많은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으며, 파리의 그 모든 살롱보다는 세속스러움에 더 많은 시(時)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고통이야말로 인간 감정 중에서 가장 심원한 것이기에 우리는 고통이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창녀나 뚜장이가 연출한 것이라 할지라도 섹스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추악함보다는 인간성을, 예쁨보다는 고통을, 프랑스의 모든 부보다는 딱딱하고 거친 현실을 상위에 둔다. 우리는 창녀가 공작부인과 똑같이, 문지기가 장군과 똑같이, 농부가 장군과 똑같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들 모두가 자연의 틀에 맞추어 인생이라는 구도에 짜여져 들어가는 것이다.”
p-369 “난 다른 화가들을 보기만 해도 이젠 정말로 구역질이 난다. 그들의 얘기와 그들의 이론과 그들의 넌더리나는 입씨름이 지긋지긋해졌어. 아, 웃을 필요없어. 나도 나 자신이 그런 싸움에 함께 끼어들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게 바로 문제야. 마우베가 자주 하곤 했던 말이 무언 줄 아니? 그림을 그리던가, 아니면 그림에 관한 얘기를 할 수 있지만,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다는 얘기야. 그래, 테오야, 넌 내가 갖가지 생각들을 씨부렁대는 걸 들으려고 칠 년 동안이나 날 먹여살렸단 말이냐?”
“그래, 하지만 우리가 그곳으로 옮겨갈 준비가 다 된 이 순간에 와서 난 내 자신이 그리로 가길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야. 난 거기서 살수도, 그림을 그릴수도 없을 거야. 내 말에 이해가 갈른지 의문이다만......아냐 넌 물론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브랑방트와 헤이그에서 혼자 있었을 때는 난 내 자신을 중요한 인물로 생각했었다. 나라는 인간이 혈혈단신으로 온 세상과 맞서 싸웠었지. 나는 화가, 살아 있는 유일한 화가였다. 내가 그리는 것은 뭐든 가치 있는 것이었어. 내게 위대한 능력이 있는 걸로,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결국엔 ‘빛나는 화가야’라고 말할 걸로 알고 있었다.”
p-482 “내가 이런 그림을 단 한 점만 그렸더라도 난 내 인생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었을 걸세. 난 사람들의 고통을 치료하면서 오랜 세월을 보냈지......하지만 그 사람들은 어째거나 결국엔 죽고 말았거든......그러니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하지만 당신ㅇ의 이 해바라기 그림들은......사람 마음의 고통을 치료해줄 거야......세기가 지나고 또 지나는 동안 ......사람들에게 기쁨을 갖다 줄 걸세. 그 때문에 당신의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그리고 그 때문에 당신은 행복한 인간인 거야.”
p-495 사랑하지 않는 사람,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상처받지 않고 고통 받지 않는다. 아마도 사랑과 고통이라는 기름 없이는 고호의 삶은 위대한 한순간의 불꽃으로 타오르지 못했으리라. 고호, 그는 천재가 아니라 오히려 둔재였으며, 그의 생애는 우뚝 솟은 고상한 정신의 최고 극점이 아니라 가장 낮고 더러운 땅에 입맞춤하며 흐르는 물로서 우리에게 남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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