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世界 색점선
천재의 화가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집과 식품과 의복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 사람은 필연적으로 즐거움과 행복과 사랑을 필요로 한다. 생의 비참과 절망은 그것들의 고갈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사람이 늙고 아프고 추하고 가난해질수록 사랑과 희망에 대한 목마름은 더 깊어진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그것들은 냉정하게 우리 곁을 떠나버린다. 그 고갈과 결핍 속에서 자기 생에 처절하게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중의 한 사람은 "찬란하고 눈부신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그것에 복수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이다.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라는 화가를 자살한 미치광이 화가 정도로만 기억한다. 그는 정말 미친 것일까 ? 그가 미쳤다면 왜 그렇게 되었을까 ? 한국 사람들은 빈센트 반 고흐를 좋아한다.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고, 비극의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한 순간 허공 속에 불꽃으로 피어올랐다가 숯덩이가 되어버린 고흐의 드라마를 좋아하고, 그러므로 고흐에 대해 쓴 책들을 좋아한다. 고흐에 관한 책들은 많이 나오지만 그 책들은 저마다 고정적인 독자가 있다. 그런데, 『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는 좀 특별하다. 잔혹극의 천재인 앙토냉 아르토가 반란의 분출, 광기의 화염 속에 감싸인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뭔가를 썼다는 것 자체로 범상치 않다. 9년 동안이나 정신병원에 있으면서도 활화산처럼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그러다가 1948년 3월 4일 파리의 한 요양원 침대 밑에서 한 짝의 구두를 손에 쥔 채 세상을 떠난 아르토가 고흐와 만난 것은 1947년 봄이다. 그러니까 불과 죽기 1년 전이다. 파리의 한 미술관에서 열린 '반 고흐전'을 보고 난 뒤 아르토는 열광 상태에서 이 에세이를 썼다. 앙토냉 아르토는 이 글을 이렇게 시작한다 ; "우리는 반 고흐의 건강한 정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그는 평생토록 단 한 번 손을 그을렸고, 남은 인생 동안, 단 한 번 왼쪽 귀를 자른 것밖에는 없다." 아르토가 가장 먼저 반 고흐의 건강한 정신을 언급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르토에 의하면 부패한 사회가 공모하여 우스꽝스러운 정신병리학이라는 것을 고안해낸 뒤 선견지명을 가진 천재들을 죽임으로써 저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것이다. 반 고흐는 미친 것일까 ? 아르토는 반 고흐가 "최고의 명석함"을 가진 사람 중의 하나고, 실재성 저 너머, 위험할 정도로 멀리 내다 볼 수 있는 천재를 가졌다고 말한다. 반 고흐를 광인으로 진단한 정신과 의사는 그런 반 고흐의 천재를 맹렬하게 질투했다는 것이다. 아르토는 단호하게 말한다 ; "반 고흐는 의사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반 고흐는 화가 중의 화가였다. 그가 천착했던 것은 "계시자로서의 광적이고 종말론적인 처절한 화가의 의미"였다. 의학은 과학의 한 분야고, 그것은 광기를 용납하지 못하는 이성의 극단이다. 아르토는 단호한 어조로 "의학은 악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어쩌면 정신병리학이라는 것은 서구가 그 문명의 한 지주로 삼은 이성의 체계의 한 제도적 장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성의 독재는 모든 관례와 인습적 사고를 장악하고 순결한 본능과 창조적 충동조차 억압하고, 그것에 저항하며 존재를 작렬하는 천재들을 표적 삼아 방자를 감행한다. 방자는 남이 못되기를 신에게 빌어 재앙이 내리게 하는 것이다. 특히 대상의 모습을 본뜬 인형을 바늘로 찌르는 것이다. 보들레르, 에드가 포, 제라르 드 네르발, 니체, 키에르케고르, 횔덜린, 로트레아몽 들이 이성의 체계를 광기의 불꽃으로 공격했다는 혐의로 비열한 무리들이 함부로 방자의 대상물을 삼았다. 이성의 체계에 비추어보면 광기란 인류의 수치고, 박멸해야 할 바이러스고, 격리되어야 할 악, 그리고 처벌받아 할 죄의 변종이다. 광기는 악도 아니며 도덕의 부재도 아니다. 그것은 내면에서 솟구쳐 나오는 과잉의 의지, 생성에의 충동이다. "불끈 하고 치받쳐 오르는 폭발과 억눌린 현기증"이다. 반 고흐의 풍경화들이 보여주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 "진홍빛 수풀 더미에 별들이 총총히 선회하는 모습들, 한 그루 주목나무가 우뚝 솟은 골짜기들, 황금빛 밀짚가리 위로 휘도는 보랏빛 태양들". 반 고흐의 풍경화는 땅에서 소용돌이치며 올라오는 힘의 분출을 느끼게 한다. 그것은 "오직 광기 속에서만 찾을 수 있던 천분"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 있을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결단코 반 고흐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 고흐의 회화는 "꺼지지 않는 불길, 핵폭탄"이고, 비천한 무리들이 따르는 "제도라는 순응주의"를 공격한다고 말한다. 모든 정신과 의사들을 향한 아르토의 경멸과 분노는 아무런 여과없이 쏟아져 나온다 : "살아 있는 모든 정신과 의사는 역겹고도 불결한 격세유전을 지녔기에 모든 예술가들, 모든 천재들을 자신 앞에 나타난 하나의 적으로 간주한다." 아르토는 '반 고흐전'이 열리고 있던 그 즈음 정신과 의사인 베르와 르르와가 『반 고흐의 악마성』이란 책을 냈음을 한 주간지 기사를 통해 알게 된다. 그 책은 반 고흐를 미친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의 예술은 "천재성이란 찾아볼 수 없는 불안정한" 정신 착란과 광기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걸 읽고 난 뒤 아르토는 당장에 '반 고흐전'을 보고 돌아와 격앙된 상태에서 이 에세이의 초고를 완성했다. 이 책은 반 고흐의 천재성에 대해, 그를 몰이해 속에 자살로 몰아간 부패한 세상의 악덕에 대해, 그리고 압도적인 천재의 분출인 고흐의 그림에 대한 변호며 예찬이다. "반 고흐가 자연을 다시 모으고, 자연에 다시 땀을 솟게 하여 땀이 흐르게 했고, 또한 자연의 모든 요소를 백년 동안 절차탁마한 것, 생략부호, 빗금, 쉼표, 그리고 횡선 들의 근본적이고 막강한 압력을 온갖 색채의 기념비들처럼 그림 위에 다발로 분출시켰기 때문에 화가라는 점, 그리하여 우리는 반 고흐 이후 다시는 자연의 온갖 모습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믿을 수 없음을 말할 것이다." 반 고흐는 사회가 자살에 이르게 한 사람이다. 왜 ? 비열한 자와 가련한 자들로 이루어진 사회와 함께 "치부의 공범자"가 되기를 거절했으므로, 사회가 결코 밖으로 드러나기를 원치 않은 "넌더리나는 진실들"을 말하는 미치광이라는 이유로. 사회는 미친 사람을 격리하고 감금한다. 그것만으로 창조의 광기에 대한 공격과 집행은 끝나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만장일치의 방자"가 그들의 목을 조른다. 숨통이 끊어졌을 때, 비로소 그 집행은 완성된다. 미친 것은 이 광기에 사로잡혀 있는 이 사회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은 뒤에도 경보를 계속 울린다 ; "그리고 반 고흐 왕(王)은 자신의 건강의 분출을 알려줄 경보를 품에 안은 채 영원히 잠들었다. 경보는 어떻게 울리는가 ? 즉, 좋은 건강이란 닳고닳은 병(病)의 넘쳐남으로, 살려는 엄청난 열정의 넘쳐남으로, 썩은 백 개의 상처로, 또한 어쨌든 살려야 하고, 영원히 살게 해야 된다는 의지로 경보를 울린다."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