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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언어가 탄생과정을 거치지 않은 언어는 독자의 마음을 파고들수 없다...
2017년 01월 11일 18시 44분  조회:2915  추천:0  작성자: 죽림

[ 2017년 01월 11일 09시 15분 ]

 

 

이는 1월 9일 촬영한 하남성(河南省) 허창시(许昌市)지역의 상공에 나타난 수평기류안개 경관. 당일, 하남성(河南省) 허창시(许昌市)지역의 상공에 수평기류안개 경관이 나타나 안개속에 숨어진 건축물들이 보일듯 말듯 마치 선경과 같았다.
 
원문 출처:신통도(新通圖)



퇴고(推敲), 퇴고(推敲)를 




사설시조 ‘할미새야, 할미새야'는 당초 ’가을비 한나절' 혹은 ‘햇볕이 계실까요'라는 제목으로 초고(草稿)를 잡은 것이다. 

1997년 우리 사회에 몰아닥친 IMF라는 대형 경제변란(經濟變亂). 경축 국치(庚丑 國恥)라고 불리는 이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외환위기사태에 몰린 우리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조선일보에 몸 담고 있었던 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8년 2월 우대퇴직이라는 이름 아래 20년 동안 청춘을 다 불태웠던 그 직장을 뒤로 한 채 마치 한 마리 노숙(露宿)하는 할미새가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등걸잠 자는 할미새>는 바로 평범한 소시민 윤금초로 읽어도 될 것이고, 서울역 지하도나 광화문 지하도, 서소문 공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름 모를 홈 리스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초고 제목을 <비 젖은 날개 접고 등걸잠 자는 할미새>를 상징하는 ‘가을비 한나절'이나 <애벌구이 해도 덩실 띄워 놓는> ’햇볕이 계실까요'라는 생각에서 사설시조 한 수(首)를 구상한 것이다. 

②에서는 초고 ①보다는 시적(詩的) 화자(話者)를 좀더 객관화시키고 어떻게 하면 보편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게 되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번민 끝에 ①의 초고에 한 수를 더 얹기로 한 것이다. <고향 풀숲에서 반짝이던 결 고운 윤이슬> 역시 시적 자아(自我)로 보아도 좋고, 고향을 벗어나 직장생활을 하는 어느 소시민을 떠올려도 될 것이다. 

③의 제목 ‘햇볕이 계실까요'는 이 작품을 구상할 당시의 시대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햇볕정책'라는 화두(話頭)가 그 무렵 정치적 수사(修辭)의 차원을 뛰어 넘어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이데아로 자리잡아가고 성숙되어가는 분위기였다. '햇볕'은 모든 것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그리하여 비에 젖어 등걸잠 자는 할미새나 <귀동냥 다리품 팔아 남루 한 짐 지고 오는 저 강물>까지도 아우르고 껴안고 오돌오돌 떨고 있는 우리의 영혼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준다는 의미로 ’햇볕이 계실까요'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리고 ③에서는 이미지를 명료하게 부각시키는 데도 신경을 썼다. 가령 <소름 돋도록 차가운 우리네 헛헛한 이 가을비 한나절, 강물빛 한 생각 궁굴리고 또 궁굴리면 허리 가는 산등성이 저 바람결에 가 머물까. 시름도 때론 힘이 되는 모눈종이 한 세상을,>이라는 대목을 통째로 드러냈다. 이 대목을 통째로 드러내도 대세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판단되었다. 

시란 언어를 사용하되 언어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다. 시나 시조 짓기 작업은 군살 빼기 작업과 같은 것이다. 군더더기를 가차없이 걷어내는 것, 필요없는 너스레나 수다스럽게 지껄여 이미지를 산만하게 하는 요설(饒舌)을 삼가하는 것이다. 생략과 압축, 상징과 응축의 미학을 터득하는 것이 시조 짓기 작업의 요체(要諦)가 아니던가. 특히 사설시조에서는 필요 없는 수다나 너스레 때문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것은 물론 '본전'을 못 찾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③에서는 둘째 수 종장 <정동진 불 타는 바다>를→ <물안개 거두어내는>이라고 수정했다. ‘물안개'가 ’정동진'보다는 더 구체적 적시라는 점과 ‘정동진' 하면 해돋이를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겠으나, 정동진의 해돋이 분위기는 이제 이미 낡고 너무 흔해 빠진 정서가 되어버렸고 포괄성을 띠지 못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므로 <물안개 거두어내는>이라는 이미지를 끌어옴으로써 희망의 메시지, 무엇인가 다양한 뉘앙스가 풍기는 결구(結句)를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④에 이르러 제목을 ‘할미새야, 할미새야'로 바꾸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할미새…'는 작자(作者)의 자설적(自說的) 진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 시조다. 누구나 창작행위를 하면서 느끼는 바겠지만, 시나 시조는 작자의 체험 요소가 많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사사로운 체험을 가공(加工)하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보편적 체험으로 확대촵재편했을 때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20년 직장을 하루 아침에 그만 두고 거리로 밀려난 심정을 한번 상상해 보라! 마치 한 마리 노숙하는 할미새가 된 느낌, 그 억장 무너지는 충격적 사건은 <비 젖은 날개 접고 등걸잠 자는 할미새>와 다를 바 있겠는가. 그러므로 제목 '할미새야, 할미새야'는 작자가 체험한 IMF 환란(換亂)의 충격적 사건을 간접 화법(間接 話法)으로 토로한 자기 고백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처럼 사설시조 두 수로 이루어진 ‘할미새야, 할미새야'는 네 차례의 개작(改作) 과정, 달리 말하면 네번의 퇴고 작업을 거쳐 비로소 마무리한 작품이다. ’할미새…'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시간적 개작 순서를 열거하면 ①→②→③→④로 나뉜다. 여러 차례 썼다가 지우고 다시 써서는 또 개칠을 하는 등 퇴고와 퇴고의 되풀이과정 끝에 탄생한 것이다. 

사실 이 작품은 기록상 네 차례의 퇴고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성된 시조'로 태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착상(발상)→플롯 설정→얼개짜기→시어의 취사선택→이미지의 전개→서사(敍事) 구조 얽기→군더더기 제거 작업→시적 화자의 진술 등 작품 창작 배경을 설명하자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퇴고 과정'을 거친 것이다. 

③ 
흙으로, 흙의 무게로, 또아리 틀고 앉은 시간 
고향 풀숲에서 반짝이던 결 고운 윤이슬이여, 어쩌자고 머나 먼 예까지 와 대끼고 부대끼는가. 밤새 벼린 칼끝보다 섬뜩한 그 억새의 세월, 
갈바람 굴피집 울리는 죽비 소리만 남고…. 

등이 허전하여 등 뒤에 야트막한 산을 두른다. 
빚더미 家長처럼 앞 산은 망연자실 누워 있고, 우부룩이 자란 시름 봄 삭정이 되었는가. 새야 새야 할미새야, 둥지 떠난 할미새야, 비 젖은 날개 접고 등걸잠 자는 할미새야. 앞내 뒷내 둘러 봐도 끕끕한 어둠 밀려 오고 밀려 간다. 물을 불러 제 몸 기슭 후비는 강물, 귀동냥 다리품 팔아 남루 한 짐 지고 오는 저 강물아. 핏줄같이 푸르게 푸르게 살아나는 들길 길섶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팝콘 같은 밥풀꽃 꽃등 하나, 눈빛 형형한 꽃등 하나 달아 놓고 
물안개 거두어내는 애벌구이 해도 덩실 띄워 놓고…. 

- ‘햇볕이 계실까요' 

② 
흙으로, 흙의 무게로, 똬리 틀고 앉은 시간 
고향 풀숲에서 반짝이던 결 고운 윤이슬이여. 어쩌자고 머나 먼 예까지 와 대끼고 부대끼는가. 밤새 벼린 칼끝보다 더 섬뜩한 그 억새의 세월, 
갈바람 굴피집 울리는 죽비 소리만 남고…. 

등이 허전하여 등 뒤에 야트막한 산을 두른다. 
앞 산은 빚더미 家長처럼 망연자실 누워 있고, 우부룩이 자란 시름 봄 삭정이 되었는가. 새야 새야 할미새야, 둥지 떠난 할미새야. 비 젖은 날개 접고 등걸잠 자는 할미새야. 앞내 뒷내 다 둘러 봐도 끕끕한 어둠 밀려 오고 밀려 간다. 물을 불러 모아 제 몸 불려가는 강물, 다리품 팔고 귀동냥하고 한 짐 남루를 지고 오는 저 강물아. 소름 돋도록 차가운 우리네 헛헛한 이 가을비 한나절, 강물빛 한 생각 궁굴리고 또 궁굴리면 허리 가는 산등성이 저 바람결에 가 머물까. 시름도 때론 힘이 되는 모눈종이 한 세상을, 핏줄같이 푸르게 푸르게 살아나는 들길 길섶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팝콘 같은 밥풀꽃 꽃등 하나 달아 놓고, 눈빛 형형한 꽃등 하나 달아 놓고 
정동진 불 타는 바다, 애벌구이 해도 덩실 띄워 놓고…. 

- ‘햇볕이 계실까요' 혹은 ’가을비 한나절' 

① 
등이 허전하여 등 뒤에 야트막한 산을 두른다. 

앞 산은 빚더미 家長처럼 망연자실 누워 있고, 우부룩이 자란 시름 봄 삭정이 되었는가. 새야 새야 할미새야, 둥지 떠난 할미새야. 비 젖은 날개 접고 등걸잠 자는 할미새야. 앞내 뒷내 다 둘러봐도 곤곤한 어둠 밀려 오고 밀려 간다. 물을 불러 모아 제 몸 불려가는 강물, 다리품 팔고 귀동냥하고 한 짐 남루를 지고 오는 저 강물아. 소름 돋도록 차가운 우리네 헛헛한 이 가을비 한나절, 강물빛 한 생각 궁굴리고 또 궁굴리면 허리 가는 산등성이 바람결에 가 머물까. 시름도 때론 힘이 되는 모눈종이 한 세상, 핏줄같이 푸르게 푸르게 살아나는 들길 길섶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 팝콘 같은 밥풀꽃 꽃등 하나, 눈빛 형형한 꽃등 하나 달아 놓고, 

정동진 불 타는 바다, 애벌구이 해도 덩실 띄워 놓고…. 

- ‘가을비 한나절' 혹은 ‘햇볕이 계실까요’ 



# 담금질 거듭해야 시우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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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의 말 
―고트프리트 벤(1886∼1956)

한마디의 말, 한 편의 글―. 부호로부터 올라오는
삶의 인식, 의미의 돌출,
태양은 뜨고, 대기는 침묵하네.
모든 것들이 그 한마디에 몰리듯 굴러가네.
한마디의 말―. 한 개의 빛남, 한 번의 비상, 한 개의 불,
불꽃 한 번 튕기고, 흐르는 한 번의 별빛―.
다시 어둠이 오네, 이 세상과 내 둘레의
텅 빈 공간에 무섭게 내리네.


언어에 대한 엄격하고 명철한 정리! 허튼 말 한마디 없이 다이아몬드처럼 영롱한 시구로 제가 정리한 바 그대로를 보여주는 시다. ‘삶의 인식, 의미의 돌출!’ 말 한마디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경건하게 되새기면서, 나도 이렇게 ‘태양은 뜨고, 대기는 침묵하고/모든 것들이 그 한마디에 몰리듯 굴러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해진다. 나는 시인이다. 시인은 언어의 기술자도 아니고 언어의 ‘파티맨’도 아니다. 언어의 경작자이며 파수꾼이며, 연금술사. ‘한 개의 빛남, 한 번의 비상, 한 개의 불’ 같은 언어를 향해 정진해야지!
 

 

대담집 ‘언어 감각 기르기’에서 요네하라 마리는 말한다. ‘아직 말이 되지 않은 상태가 있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말이나 사고나 감정 같은 것이 희미하게나마 형태가 갖추어져, 간신히 그걸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나, 문장 형태, 혹은 표현, 스타일 같은 게 결정돼 소리로 나오는 게 말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말이 있다. 말이 탄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말. 그런 말은 상대방 마음을 파고들 수 없다.’

우선 평소에도 생각 없이 말하지 말자. 말을 귀하게 쓰자. 물 쓰듯 쓰지 말고, 돈 쓰듯 쓰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도 있고. 언어가 없다면 우리 인간이 무엇으로 서로의 존재를, 사물들을, 세상을, 삶을 깨달아 알겠는가? 한마디, 한마디, 소중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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