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推敲), 퇴고(推敲)를
다음은 옴니버스시조를 시도한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를 보자.
< 1>
-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섬을 본 사람은 모두가 섬으로 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
- 이청준 소설 ‘이어도'에서
풋풋한 활력으로 살아 튀는, 살아 튀는 아침 바당
고기비늘 황금 알갱이에 노역의 햇살 한 짐 부려놓고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이어…
퉁방울 눈 돌하루방이 부릅뜬 눈 굴리고 굴리는
꽃멀미 부르는 그곳, 그 가멸진 유채꽃 한나절.
하늘과 바당 모래 기슭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살 섞는 곳
빛은 골 깊은 어둠 만들고
어둠은 다시 빛을 드러낸다
캄캄한 침묵의 수렁,
수렁같은 침묵 속에.
바람 불면 바람소리 속에서
바당 울면 바당 울음 속에서
한숨 짓는 것도 같고
웅웅웅 울음 우는 것도 같은
이어도 노랫가락 소리,
그렇게 바닷바람에
실려 오고 실려 오고.
자갈밭 그물코 새로 그 옛날 바닷바람 솨솨 지나가고
천리 남쪽 바당밖에 파도 뚫고 꿈처럼 꿈처럼 하얗게 솟아 있는 피안의 섬,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 내려온 전설의 섬, 본 사람 아무도 없지만 상상의 눈에는 언제나 선 명한 자태 드러내는 수수께끼의 섬, 이승의 고된 삶이 끝나고 나면 거기 가서 저승 복락 누 리게 되는 구원의 섬, 그 섬을 한 번 본 사람은 이내 그 섬으로 가서 영영 다시 이승으로 돌아 오지 않아, 영영 돌아 오지 않아, 그 모습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이는 아직 아무도 없 는 섬, 그런 섬이어라.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이어…
썰물 때만 잠시 잠깐 모습 드러냈다가
밀물 때면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 앉는,
청동색 파도 헤치며 두둥실 뜨는 섬이어라.
쌀쌀한 마파람이 마른 낙엽 몰고 가는 어느 겨울날
눈앞에 떠오른 이어도, 수평선 훌쩍 넘어가버리고
억새풀 산등성이만 하얗게 하얗게 물들이고….
< 2>
< 리드(전문) 생략>
풋풋한 기력으로 살아 튀는, 살아 튀는 아침 바당
고기비늘 황금 알갱이 노역의 햇살 한 짐 부려놓고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이어…
퉁방울눈 돌하루방이 부릅뜬 눈 굴리고 굴리는
꽃 멀미 부르는 그곳, 그 가멸진 유채꽃 한나절.
하늘과 바당 모래 기슭
나직한 목소리로 살 섞는 곳
빛은 골 깊은 어둠 만들고
어둠은 다시 빛을 드러낸다
캄캄한 침묵의 수렁,
수렁같은 침묵 속에.
바람 불면 바람소리 속에서, 바당 울면 바당 울음 속에서
신음 같은, 한숨 같은, 웅웅웅 우는 것도 같은 이어도 노랫가락 소리
아련히 바닷바람에 실려 오고 실려 오고.
자갈밭 그물코 새로 그 옛날 바닷바람 솨솨 지나가고
천리 남쪽 바당밖에 파도 뚫고 꿈처럼 꿈처럼 하얗게 솟아 있는 피안의 섬,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전설의 섬, 본 사람 아무도 없지만 상상의 눈엔 언제나 선명한 자태 드러내는 수수께끼 섬, 이승의 고된 삶이 끝난 후면 거기 가서 저승 복락 누리게 되는 구원의 섬, 그 섬을 한 번 본 사람은 이내 그 섬으로 가서 영영 다시 이승으로 돌아 오지 않아, 영영 돌아 오지 않아, 그 모습 분명하게 증언할 이는 아직 아무도 없는 섬, 그런 섬이어라.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이어…
썰물 때면 건듯 건듯 등 모습 드러냈다가
밀물 때면 수면 아래로 뉘엿이 가라앉는,
청동색 파도 헤치며 두둥실 뜨는 섬이어라.
마른 낙엽 몰고 가는 마파람 쌀쌀한 어느 겨울날
눈앞에 떠오른 이어도, 수평선 훌쩍 넘어가버리고
섬억새 산등성이를 하얗게 하얗게 물들였네.
< 3>
< 전문 생략>
풋풋한 기력으로 살아 튀는, 살아 튀는 아침 바당
고기비늘 황금 알갱이 노역의 등짐 한 짐 부려놓고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이어…
돌하루방 퉁방울눈 부릅뜬 눈빛 저리 삼삼하고
꽃 멀미 질퍽한 그곳, 그 가멸진 유채꽃 한나절.
하늘과 바당 모래 기슭
나직한 목소리 살 섞는 곳
빛은 골 깊은 어둠 만들고
어둠은 다시 빛을 드러낸다
캄캄한 침묵의 수렁,
수렁같은 침묵 속에.
바람 불면 바람소리 속에서, 바당 울면 바당 울음 속에서
신음 같은, 한숨 같은, 웅웅웅 우짖는 것 같은, 이어도 이어도 노랫가락
아련히 바닷바람에 실려 오고 실려 오고.
자갈밭 그물코 새로 그 옛날 바닷바람 솨솨 지나가고
천리 남쪽 바당밖에 꿈처럼 꿈처럼 하얗게 솟아 있는 피안의 섬,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오랜 세월 전설의 섬, 가본 사람 아무도 없이 상상의 눈엔 훤하게 훤하게 자태 드러내는 수수께끼 섬, 고된 이승의 생이 끝난 후면 거기 가서 저승 복락 누리는 섬, 구원의 섬이어라. 한번 보면 이내 거기 가서 영영 다시 돌아 오지 않아, 영영 이승으로 돌아 오지 않아, 그 모습 또렷이 증언할 이 아무도 없는 섬, 섬이어라.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이어…
밀물 들면 수면 아래 뉘엿이 가라앉고
썰물 때면 건듯 솟아 등 모습 드러내는,
청동색 파도 헤치며 두둥실 뜨는 섬이어라.
마른 낙엽 몰고 가는 마파람 쌀쌀한 어느 겨울
꿈길처럼 떠오른 섬, 훌쩍 수평선 넘어가버리고
섬억새 산등성이를 하얗게 하얗게 물들였네.
*이어도 사나 = 제주 민요의 한 구절.
바당 = 바다의 제주도 말.
< 4>
< 전문 생략>
풋풋한 기력으로 살아 튀는, 살아 튀는 아침 바당
고기비늘 황금 알갱이 노역의 등짐 한 짐 부려놓고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이어…
퉁방울눈 돌하루방 눈빛 저리 삼삼하고
꽃 멀미 질퍽한 그곳, 그 가멸진 유채꽃 한나절.
바람 불면 바람소리 속에, 바당 울면 바당 울음 속에
신음 같은, 한숨 같은, 웅웅웅 우짖는 것 같은, 이어도 이어도 노랫가락
아련히 바닷바람에 실려 오고 실려 가고.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다금바리 오분재기
상한 그물 손질하며
물길 급한 물질 하며
캄캄한 침묵의 수렁,
수렁같은 침묵을 넘어.
자갈밭 그물코 새로 그 옛날 바닷바람 솨솨 지나가네.
천리 남쪽 바당밖에 꿈처럼 생시처럼 허옇게 솟아 있는 피안의 섬,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오랜 세월 전설의 섬, 가본 사람 아무도 없이 상상의 눈엔 언제나 언제나 훤하게 자태 드러내는 수수께끼 섬, 고된 이승의 생이 끝난 후면 거기 가서 저승 복락 누리는 섬, 구원의 섬이어라. 한번 보면 이내 거기 가서 돌아 오지 않아, 영영 다시 이승으로 돌아 오지 않아, 그 모습 또렷이 증언할 이 아무도 없는 섬, 동경의 섬이어라.
이어도,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이어 이어…
밀물 들면 수면 아래 뉘엿이 가라앉고
썰물 때면 건듯 솟아 등 모습 드러내는
청동색 파도 헤치며 두둥실 뜨는 섬이어라.
마른 낙엽 몰고 가는 마파람 쌀쌀한 어느 겨울
꿈길처럼 떠오른 섬, 훌쩍 수평선 넘어가버리고
섬억새 산등성이를 하얗게 하얗게 물들였네.
*이어도 사나 = 제주 민요의 한 구절.
바당 = 바다의 제주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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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솔 뜨기
―정영주(1952∼ )
1
가장 깊은 그늘을 꿰매는 거야
깜깜한 무늬와 질감을 찔러
실로 음각을 뜨는 거야
흰 머리카락을 뽑아 바늘에 꿰어
깊은 우물 속, 두레박이 새지 않게 물을 깁는 거야
바느질이 목숨이었던 어머니, 실 떨어지면
명주 올처럼 길고 흰 머리카락을 뽑으셨지
어룽이다 꺼져가는 그늘과
찢어진 가족의 무늬와 식탁을 바늘로 이어 가셨지
2
어머니가 가셨던 길처럼
한 올 한 올 바늘로 쪽빛 모시를 꿰맬 때마다
멀리 떠난, 더는 깁을 것이 없는 어머니를 떠올리지
평생 바늘과 옷감을 놓지 않으신 어머니
그것으로 가족을 기워 둥근 띠를 엮으셨던 어머니
아버지 없는 둥근 밥상에 오글오글 새끼들만 모여
밥상까지 통째로 먹는 허기진 아이들
명주에 들어간 바늘이 실을 끌고 다닐 때
천이 제 몸들을 꼬옥 껴안지 못하면 바늘은
성글게도 허공과 손가락만 꿰매 놓곤 했지
둥근 밥상 앞에서도 새끼들 입에
당신 몫까지 다 내어 주고 등 돌려 바느질만 하시던 어머니,
그 시린 등을 이제사 껴안고 난 쪽빛 모시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
장성한 아들도 없는데 가장인 남자어른이 바깥으로만 떠돌거나 재산 없이 세상을 뜨면, 일가족의 먹고살 길이 막막하던 시절이 있었다. 여자는 집안일이나 해야지 경제활동을 하는 건 흉이 되던 시절, 그래서 딸에게 돈벌이를 할 만한 교육을 애초에 시키지 않던 시절. 시골이라면 농사라도 지을 테지만, 도시에서 여자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처지에 놓이면 속수무책이기 쉽다. 화자의 어머니는 다행히도 바느질 솜씨가 있으셨나 보다. 여자에게 허락된 얌전하고 깨끗한 일감, 바느질. 하지만 ‘밥상까지 통째로 먹는 허기진 아이들’을 먹이기엔 그 삯이 참으로 소소했을 테다. 그래서 어머니는 때로 끼니를 거르고 바느질만 하셨단다. 그렇게 ‘찢어진 가족의 무늬와 식탁을 바늘로 이어가신 어머니’를 화자는 바느질을 할 때마다 떠올리는데, 화자 역시 ‘어머니가 가셨던 길처럼/한 올 한 올 바늘로 쪽빛 모시 꿰매는’ 일을 하니 어머니는 늘 화자의 기억 속에 살아 계실 테다.
‘가장 깊은 그늘을 꿰매는 거야’는 화자의 바느질 철학일 테다. 어머니에게서 화자에게 전해진 것이 바느질 솜씨뿐 아니라 ‘깜깜한 무늬와 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삶인 듯도 해 울컥해진다. 하지만 화자는 어머니의 ‘시린 등을 껴안고 쪽빛 모시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시를 맺는다. 모녀의 삶이 한 쌍 쪽빛 나비로 우화(羽化)하는 듯, 아름다이 시린 바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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