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전공 탐색 수업인 '심리학: 인간의 이해'는 학생들 사이에 "어렵지만 도전해볼 만한 수업"으로 알려져 있다. 1학년 대상 수업인데 타과 2~3학년들이 일부러 찾아와 들을 만큼 인기가 높다. 동시에 수강 신청자 절반이 학기 초에 수강을 취소할 만큼 학습량이 많고 어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담당 교수인 심리학과 박주용 교수는 "매 학기 40~50%는 수업을 포기한다"고 말했다.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의 일원인 박 교수는 "대학 교육은 토론과 글쓰기 위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론하에 본인 강의를 그렇게 하고 있다. 박 교수는 매주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다음 주에 토론할 주제를 제시한다. 예컨대 '대입 시험을 지능검사 시험으로 대체하면 어떨까'라는 주제와 함께 '사이언스' 같은 잡지 기사 스크랩 등 관련 읽을거리를 준다.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은 며칠씩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A4용지 한 장 정도로 답안을 작성해 온라인 강의 시스템에 올리면, 다른 학생들이 읽고 평가하는 방식이다.
모든 학생이 각각 임의로 배정된 다른 학생 서너 명의 글에 대해 평가를 남긴다. 박 교수는 "매주 쓰기 과제가 있으니 각 학생은 한 학기에 12~13장 분량의 글을 쓰는 셈"이라며 "암기 위주의 입시 교육만 받아온 우리 학생들에게 쉬운 과제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수업 당일에는 학생들이 3~4명 규모의 소그룹별로 토론을 벌인다. "타고난 지능에 의한 위계질서를 조장할 것"이라거나 "이미 우리 대학 제도가 그런 사회를 만들었다" 같은 갑론을박이 오간다. 박 교수는 학생들이 올린 글 중에 좋은 것 몇 가지를 수업 시간에 소개할 뿐이다. 이따금 학생 사이를 오가며 어떤 토론이 오가는지 귀를 기울이기도 하지만 개입은 최소한만 하고 있다.
창의성 계발에 왜 '쓰기'를 강조할까. 박 교수는 철학자 베이컨의 말을 인용해 "독서는 완전한(full) 사람을, 토론은 준비된(ready) 사람을, 쓰기는 정밀한(exact) 사람을 만든다"며 "독서와 토론과 쓰기는 창의적 사고를 위해 갖춰야 할 기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입시'라는 괴물로 인해 토론과 쓰기 교육이 거의 배제되고 있다"며 "대학에서 늦게라도 토론과 쓰기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효율적인 토론을 위해 생각을 정리하도록 쓰기 과제를 많이 내주는 것이다.
"글을 써봐야 생각이 정리되고 무엇보다 '내가 어디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가'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말로는 안다고 하는 내용도 글로 옮기려면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극명하게 나타나죠. 그제야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때부터 새로운 생각, 즉 창의성이 발현하는 것입니다."
수강을 취소하지 않고 한 학기 내내 완주한 학생들 사이 평가는 매우 좋은 편이다. 수강생 김서연(경제학부)씨는 "통상적인 강의·암기 위주 수업과 다르게 학생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수업이었다"며 "매주 쓰기 연습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학기 강의 평가에서 학생들은 이 수업에 평균 4.2점(5점 만점)을 매겼다. 4.0점 이상이면 선호하는 강의라는 평을 받는다. 학생들은 강의 평가란에 "힘들어요!" "그래도 이런 수업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같은 평을 남겼다. 박 교수는 "현재 대학에서 글쓰기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박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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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교육 프런티어들] =
글 잘쓰는 人材 키우는 美대학들
미국 대학들은 글쓰기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대부분 대학에 '글쓰기 센터(Writing Center)'가 있어 학생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킨다. 그중 하버드대의 글쓰기 교육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글쓰기 수업을 들어야 하고, 대부분 과목에서 글쓰기 숙제를 내준다. 글쓰기 센터에서는 학부, 대학원 학생들을 위해 단계별로 다양한 글쓰기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1대1 첨삭도 철저하게 해준다. 매사추세츠공대(MIT) 역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미국 대학들이 이렇게 글쓰기를 강조하는 것은 글쓰기가 깊이 있게 사고하는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해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버드대 낸시 소머스 교수가 신입생들의 글쓰기 경험을 조사한 연구에서 학생들은 "글쓰기가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했다"고 밝혔다. 이 연구에서 한 학생은 "만약 글을 안 썼다면 그냥 정보만 가득 집어넣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글 쓰면서 생각하고, 남과 다른 내 의견을 말해보는 기회도 가졌다"고 말했다. 1996년 노벨 의학상을 받은 피터 도허티 교수도 "과학을 연구하려면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생각도 명확해 연구를 더 잘한다"고 말했다.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대 로빈 워드 박사가 1977년 이후 하버드를 졸업해 40대에 접어든 졸업생 1600명을 대상으로 '당신의 현재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물었는데, 90% 이상이 '글쓰기'라고 답했다. 그만큼 사회에 나가서도 글쓰기 능력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꾸준히 글쓰기 교육을 하는 천안동성중 한경화 수석교사는 "아이들을 창의성과 인성을 갖춘 인재로 키우려면 반드시 글쓰기를 시켜야 한다"며 "아이들이 글을 통해 생각과 느낌, 가치관, 정서 등 복합적인 것들을 정리하고 표현하면서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고 창의성도 발현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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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 교육 프런티어들]
서평·기행문 중 한편 완성해야…
5년째 진행, 휴대폰·노트북 금지
"긴 글 써보며 비판·철학적 사유"
지난 6일 오후 2시 이화여대 ECC 극장. 학생 100여명이 책상 위에 앉아 하얀 A3 종이 위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트북도, 스마트폰도 없이, 오로지 연필과 지우개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시간이다.
'2017 에크리'라는 이 행사는 이대의 교양교육 전담 기구인 '호크마교양대학'이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력과 인성, 창의성 등을 키워주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진행해온 백일장이다. '에크리(écrire)'는 프랑스어로 '글을 쓰다'라는 의미. 지난해부터 기존의 서평에 기행문 부문을 추가했다. 원하는 학생들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데, 매년 100명 이상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김정선 호크마교양대학장은 "글을 쓴다는 것은 흔히 산고의 고통에 비유되는데, SNS를 이용해 초 단위로 소통하는 데 익숙한 학생들이 '이화 에크리'에서 오랜만에 긴 호흡의 글을 쓰는 기회를 갖는다"며 "비판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평 부문 참가자들은 대학이 제시한 5권의 필독서 중에 한 권을 미리 읽고 서평을 작성했다. 올해 필독서는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 제인 구달의 '인간의 그늘에서' 등이다. 기행문을 선택한 학생들은 국내외 여행 경험을 자유롭게 썼다.
이화여대는 "글 쓰는 행위 자체가 매우 창의적인 노력이기 때문에 학생들 창의성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대회에 참가한 최유진(문헌정보학 4년)씨는 "에크리에 나가 서평을 쓴다는 생각으로 추천 도서를 읽다 보니 더 깊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내 의견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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