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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20세기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앉아있는 여인'(Femme Assise·1909년)이 예상가를 훌쩍 넘는 금액에 낙찰됐다고 CNN방송이 2016년 6월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피카소의 초기 입체파 시대 작품으로 분류되는 이 그림은 이날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4천320만 파운드(약 733억원)에 낙찰됐다.
소더비는 "이 작품이 수십 년간 시장에 나온 입체파 회화 중에 최고작"이라고 평가했다.
입체파는 대상을 기하학적 도형으로 분해해 추상적으로 재결합하는 기법으로 현대 미술에서 가장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화풍은 20세기 초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때로 현대 추상화의 효시로 인식되기도 한다.
'앉아있는 여성'의 애초 예상가가 3천만 파운드(약 510억원)에 그친 까닭에 경매장에서는 낙찰 때 탄성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 피카소의 연인이자 자주 모델이 된 페르낭드 올리비에라고 설명했다.
CNN은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은 뉴욕, 런던 등지의 주요 국제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데 이번에 중요한 작품이 경매에 나왔다고 소개했다.
앞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은 작년 5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7천936만5천 달러(당시 1천968억1천721만원)에 낙찰돼 기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바 있다.
이날 소더비 경매에서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가 그린 아내의 초상화 '잔 에뷔테른'도 3천850만 파운드(약 654억원)에 주인을 만났다.
이 작품도 예상 낙찰가인 2천800만 파운드(약 475억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경매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23일 국민투표에 일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딜러와 경매업체 임원들은 경제적 혼란을 부를 브렉시트 우려 때문에 작품을 경매에 내놓지 않는 위탁자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미술품은 금처럼 경제 상황에 영향을 덜 받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간주돼 위기가 예견될 때 수요자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소더비의 인상파, 현대작품 담당자인 헬레나 뉴먼은 "브렉시트 투표가 위탁자들을 움직이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경매에 나오는 작품이 줄었으나 오늘 같은 낙찰 사례 덕분에 앞으로 경매 위탁자들이 시장에 대한 신뢰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 덤으로 더 보기...@@...
레오나르도다빈치 - 담비를 안은 여인의 초상
고갱 - 바이네 노 테 치아레
르느와르 작 - 이레느깡 단베르양의 초상
모딜리아니 - 잔 에뷔테른의 초상
피카소-앉아 있는 여인(마리 테레사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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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포함해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마리-테레즈 월터의 초상화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 모두 여섯 점이나 들어 있다. 그런데 대부분 그녀의 흉상을 그리거나, 추상화에 가깝게 단순화해서 그리거나, 아니면 누워 있는 모습을 정물화 속에 포함되도록 그리는 등 간접적으로 그린 것이다. 마리-테레즈 월터를 직접 그렸을 뿐 아니라, 그녀의 전신이 캔버스를 꽉 채우도록 그린 그림은 〈창가에 앉아 있는 여인〉과 2위에 올라 있는 〈꿈〉뿐이다.
특히 이 그림은 마리-테레즈 월터의 얼굴과 몸에만 초점을 두고 측면에서 그린 것이라 풍만한 그녀의 몸매가 아주 도드라진다. 이 그림의 선에서 볼 수 있듯이 마리-테레즈 월터는 몸매와 얼굴의 선이 굵고 뚜렷해서 마치 조각 같은 외모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화가인 피카소가 그녀에게서 더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유명한 미술사학자인 패트릭 매코이는 이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은 극찬을 남겼다.
‘마리-테레즈 월터가 창가에 조용히 광채가 나게 앉아 있는 이 초상화는 그녀를 그린 시리즈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애인, 모델, 여신의 세 가지 역할을 다 해내는 마리-테레즈 월터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피카소는 쉰한 살이었다. 그런데 그림에 사용된 붉은색, 연두색, 하늘색, 노란색 같은 색깔을 보면 중년의 피카소가 스물여덟 살 연하 애인과 밀애를 하면서 얼마나 꿈같은 시간을 보냈는지가 솔직하게 드러난다.
피카소의 외손녀이자 미술사학자인 디아나 위드마이어 피카소는 소더비가 이 경매를 앞두고 제작한 비디오에 출연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인 피카소와 마리-테레즈 월터가 인생에서 가장 열정을 가지고 만났을 때 제작된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다. 디아나 위드마이어 피카소는 피카소와 마리-테레즈 월터 사이에서 태어난 딸 마야의 딸이다.
이 그림은 1997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750만 달러(79억 원)에 팔린 것인데 15년여 만에 다시 시장에 나와 엄청나게 오른 가격인 4428만 달러(464억 6000만 원)에 낙찰됐다. 2010년 5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누드와 푸른 잎사귀와 흉상〉이 1억 650만 달러(1117억 2000만 원)에 팔리며 당시 미술품 경매 역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운 뒤 마리-테레즈 월터의 초상화 인기가 계속 치솟은 덕이다.
이후 2011년에 〈책 읽는 여인〉이 2524만 파운드(426억 8000만 원)에 팔렸고, 2012년에는 〈튤립이 있는 정물화〉가 4152만 달러(435억 6000만 원)에 팔렸다. 그리고 2013년에 이 그림이 2860만 파운드(464억 6000만 원)에 팔렸으니, 마리-테레즈 월터를 모델로 한 피카소의 1932년도 그림이 1년에 한 점꼴로 초고가에 경매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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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999년 11월 소더비에서 열린 ‘자이덴버그 부부 컬렉션’에 나온 작품이다. 유명 컬렉터의 경우 이렇게 개인 컬렉션을 가지고 이름을 앞세워 따로 경매를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대니얼 자이덴버그와 엘리너 자이덴버그 부부가 세운 자이덴버그 갤러리는 1955년부터 파블로 피카소가 죽을 때까지 미국의 공식 피카소 갤러리였다. 대니얼 자이덴버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난 첼리스트이자 지휘자 출신이다. 결혼 후 뉴욕에서 살기 시작한 그는 1943년부터 유럽 근대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미술 컬렉팅을 시작했다. 자이덴버그 부부가 미술품을 사 모으던 시기는 제1차·제2차 세계 대전을 계기로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 특히 뉴욕으로 넘어가면서 미술 시장이 아주 뜨겁던 때다. 이들은 1950년에 뉴욕 맨해튼의 부촌인 어퍼 이스트(Upper East)에 ‘자이덴버그 갤러리’를 냈다. 갤러리 문을 연 지 5년째인 1955년 미국 내 피카소 공식 화랑이 되면서 유명해졌다. 피카소의 유럽 딜러인 칸바일러가 자이덴버그 갤러리를 미국에서 피카소 작품을 다루는 공식 갤러리로 지목한 것이다.
피카소가 도라 마르를 만난 것은 그 전 애인인 마리-테레즈 월터가 자신의 딸을 낳은 1935년이다. 이 그림은 도라 마르를 만난 지 3년쯤 되었을 때 그린 것이다. 1941년에 그린 〈고양이와 있는 도라 마르〉보다 3년 앞서 그린 작품이다. 두 그림 모두 모델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억세고 강인한 느낌의 이 여성이 한 사람, 즉 도라 마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입체파 특유의 스타일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입체파 그림은 여러 시점에서 본 사물을 한 평면에 그려 넣어 사물의 형태가 여러 개의 도형으로 쪼개진 듯 보인다. 정원에 있는 도라 마르를 그린 것이라 뒷배경에 갖가지 식물 형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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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거래에서는 최초로 구입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후 누구를 거쳐 어떻게 현재 소장자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소장 기록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팔짱을 끼고 있는 여인〉은 무엇보다 소장 기록부터 살펴봐야 한다. 그 어떤 그림보다 화려한 소장 기록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이 그림을 처음 파블로 피카소에게서 산 컬렉터는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유명한 여성 컬렉터인 거트루드 스타인이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를 만든 컬렉터’일 뿐만 아니라, 20세기 초반 서양 예술의 황금기를 연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살롱에서 매주 토요일 모임을 열어 위대한 예술가들의 교류를 주선했다. 게다가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즈라 파운드, 스콧 피츠제럴드 같은 문인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20세기 서양 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세상에 대한 환멸과 상실감으로 가득 찬 세대를 뜻하는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도 그녀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미 그림의 가치가 훌쩍 뛰어오른다. 미술의 역사는 화가뿐만 아니라 컬렉터와 딜러에 의해 만들어진다. 20세기 서양 미술의 흐름을 바꾼 중요한 컬렉터 집안을 꼽을 때 스타인 집안은 반드시 포함된다. 거트루드 스타인과 두 오빠 리오 스타인, 마이클 스타인, 그리고 마이클 스타인의 아내 새라 스타인이 그 주인공들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인 이들은 1900년대 초 파리에 거주하면서 당시 젊은 화가들인 피카소와 마티스 등의 작품을 구입해 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후원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전시 기회가 없던 피카소와 마티스를 위해 자신들의 스튜디오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전시도 열어 주고, 이 화가들에 대한 글도 써 주었다. 피카소는 1912년에 딜러 칸바일러를 만나기 전까지 거의 거트루드 스타인과 리오 스타인 남매 덕분에 경제적으로 버틸 수 있었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파리에서 처음에 오빠 리오 스타인과 함께 살았다. 놀랍게도 이들은 부자가 아니었다.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빌려 살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이자 컬렉션을 모아 놓는 스튜디오가 바로 옆에 붙어 있었는데 면적이 고작 43제곱미터(약 13평)에 불과했다. 당시 이 스튜디오를 찍은 사진을 보면 그림을 바닥에서 천장까지 빼곡하게 걸어 놓았다. 사실 이들이 피카소와 마티스 작품을 사기 시작한 이유도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이미 유명해진 인상파 화가들 작품은 비싸서 살 수 없어 피카소와 마티스처럼 값이 저렴한 젊은 작가의 그림을 산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새 미술’을 알아보는 눈은 얼마나 탁월했는가. 거트루드 스타인은 피카소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그에 대한 글을 많이 썼는데 지금까지도 피카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하는 텍스트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 남매의 컬렉션은 유럽과 미국 미술관, 개인 컬렉터들에 흩어져 있다. 2012년에는 이 컬렉션 중 이백 점을 모아 ‘스타인 컬렉션(The Steins Collection:Matisse, Picasso, and the Parisian Avant-Garde)’이라는 전시를 샌프란시스코, 파리,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연달아 열기도 했다. 그만큼 이들은 중요한 컬렉터다.
이만하면 이 그림이 거트루드 스타인에게서 나왔다는 소장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설명이 됐을 것이다. 이 작품은 거트루드 스타인 이후 컬렉터 몇 명을 거쳐 1936년에 미국 시카고의 사업가 집안인 매코믹 가족의 손에 들어갔다. 이 그림이 2000년 다시 시장에 나왔을 때 크리스티는 이 그림의 첫 소장자가 거트루드 스타인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그림은 피카소의 중요한 시기인 청색 시대의 특징을 아주 잘 보여 주고 있다(파블로 피카소, 〈비둘기를 안고 있는 아이〉 항목 참조). 앞에 나온 〈비둘기를 안고 있는 아이〉보다 더 청색 시대 분위기가 짙다. 피카소가 청색 시대에 그린 그림의 모델들은 대체로 깡마른 몸에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다. 한마디로 불행해 보인다. 초점 없는 눈으로 팔짱을 끼고 몸을 약간 앞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 이 여인은 영락없는 청색 시대 모델이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모두 청색의 모노톤이라는 점 외에도 가난하고 외롭고 병들고 우울한 사람들 모습을 그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는 그의 친구 카사게마스가 죽었을 때부터 시작된다. 카사게마스는 피카소의 친한 친구였는데, 1901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한 카페에서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서 자살한다. 이후 피카소는 20대 초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된다. 피카소는 훗날 자신이 청색 시대에 그런 우울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카사게마스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바짝 마른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눈먼 사람, 표정 잃은 소년 등이 청색 시대의 단골 주제였다. 피카소는 1900년대 초에 프랑스 생라자르 병원을 자주 갔는데, 거기에서 마주치는 환자들을 모델로 그리기도 했다. 이 그림의 모델도 그 병원의 환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카소는 90여 년을 살았고, 7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했다. 그동안 어떤 한 스타일에 머물지 않고 계속 변화를 추구한 작가였다. 특히 자신이 살던 20세기 초반 유럽 사회와 자신의 삶의 변화를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했다. 1901년 청색 시대는 70여 년 동안 다이내믹했던 피카소 예술 인생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피카소에게 1901년은 매우 중요한 해이고, 1901년 작품들도 그런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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