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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화가 피카소와 금발머리, 귀족 녀인들
2017년 01월 15일 17시 58분  조회:4196  추천:0  작성자: 죽림

Pablo Picasso  1881~ 1973


피카소는 대중에게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존재이다.
끊임없이 혁신적인 예술을  내보이기 위해 분투했고,
주변 예술가들의 재능과 영감을 흡수했고,
평생토록  여러 여성을 거느렸다.



1881ᆞ스페인   남부  ᆞ말라가에서   출생

Picasso가 사랑한 여인들은 작품의 영감을 주는 존재였으며 ,  삶을 지탱하고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피카소의 생애에서 알려진 연인들은 일곱명 정도지만, 더욱 많은 여인들과 연애를 즐겼다.

  Picasso는 한 여인과 결혼이나 동거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었고, 이러한 그의 고질화된 습벽은 그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여인들에게 괴로움을 주었다.
Picasso
금발머리 여인과  귀족출신의  여성을 
특히 좋아 했다.
귀족  컴플렉스 인가?


*빵으로 표현한 미술가의 손

 ㅡ 피카소식  유우머?





*황소머리  ᆞ1943

 
피카소는  황소를 좋아했고,
자신의 분신쯤으로 여기는 듯 했다.
투우 또한  일생의 테마였다.



*9 살 ᆞ1890
  말을 탄  투우사
 



*12세ᆞ1893
  토르소

 아버지의 붓을 꺾게할  솜씨!

14세에 피카소 가족은 바르셀로나 로 이사를 갔고,
미술수업을 받는다


첫영성체ᆞ15 세
  1896
 

영성체의  주인공은  피카소 누나이며 ,
아버지가 옆에  서 있다







1ᆞ유년기와  청색 시대
   ㅡ카를로 카사헤마스 
         
         
         1901~  04ᆞ파리
    
ㅡ명성도 부도 없는 음울한 시기ㅡ


   피카소는 어릴 때 부터 인물과 사물을 묘사하는  솜씨가 뛰어나서,   비슷한 연배의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릴 수  없을  정도였다.

1901ᆞ20 세
친구 카사헤마스와 함께 파리로 떠난다
 몽 마르트르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카사헤마스가 실연을 당한 후  자살하자 ,
그 뒤로  수년동안 청색을 주조로한 음울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는  작품수가 적어  고가에 거래된다 

 

Carlos Casagemas

  카사헤마스는  제르메인이라는  여성을   짝사랑  하였는데,  세탁소 점원으로 일하며 모델일도  겸하고 있었다.자주  다투었고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한 식당에  친구들을 불러 모았고,피스톨로 제르메인을  쏘고  지신도 자살했다 
피카소는 스페인에 가고 그자리에 없었다
제르메인은  총알이  빗나가 살았고 , 피카소는  이 여인을   정부로 삼았다 .
제르메인은  피카소와  헤어진 뒤  ,  또 다른 피카소의  친구  피쇼와 결혼하였다.
죄책감에서 였을까?
이는 일생 피카소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친구 카사헤마스에 대한  동정,
제르메인을 향한 비난과  처형하고  싶은 공격욕구,
여자에 대한 두려움이 뒤엉켜 있다 .

피카소는  비서나 모델. 아내등
여자들에게 잔인하고 냉정했으며 ,모질게 대했다고 한다
피카소는 마음내키는대로 여자를 골라잡았고,
그의  무의식속에는
여자는 남자를 파괴시키는 위험한 인물이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었는데 ,이는 카사헤마스 자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





초 혼 Evocataon

  1901 ᆞ2
  퐁피두 센
ㅡ카사헤마스 매장 장면
 




죽은 카사헤마스 
   The  death  of  Casagemas
  1901
 ㅡ50 년 후에 공개함

21 세ㅡ궁핍을 못이기고 바르셀로나 가족에게 돌아가다


인생  La  Vie
 1901ᆞ22 세
 미국 오하이오  ᆞCleveland  미술관

ㅡ자신을괴롭힌 과거로 돌아가  그리다
ㅡ이 그림 이 후 과거를 털어내다
 
나이에 비해 제목이 거창하다
생 노병사를 표현했고
서있는 친구가  카사헤마스다




기타를 치는 눈 먼 장님노인
 
   1903
   시카고 미술 연구


1904  파리로 돌아오다
 


 
2ᆞ장밋빛 시대 
      
ㅡ페르낭드 올리비에
     (Fernade Olivier  1881~ 1966)
  
¤ 1905~  1912
페르낭드 올리비에는 비를 피해  '바토 라부아르'에 들어오게 되고  복도에서 피카소와 마주친다.
청년은   올리비에를 방으로 청했고 올리비에는 응하였다.
화실은 난삽했지만  몇 년간 이곳에서 살았다

바토라부아르- ('세탁선'이라 불리는 빈민굴)"
몽마르트르에  피카소가  구입한 집으로 5층에 층마다  여러 세대가 사는 곳이다 
ㅡ시인인  자코브가  명명했다.
ㅡ행복하고 활기찬 시기
ㅡ거투르드 스타인 (미 상속녀) 피카소의 그림을 사들여 생활이 바뀌었으며  초상화를 의뢰했다
사진이 보급되자 고민에 빠진  피카소는  그림의 스타일을 바꾸기로  한다.스페인에  가 가면,등을 본  후 거투르드의 얼굴을 기하학적으로 그린다
거투르드의 집에 마티스등  거장들의 그림과 함께  걸리다


 
페르낭드 올리비에
Picasso 나이 23세, 
파리에서 만난 동갑의 프랑스 여인
피카소가 처음으로 사랑한 여인이다. 
(조각가와의 결혼 생활을 실패한 유부녀)


친구의 자살로 충격에 빠진 피카소의  그림은 음울했지만 
독특한 분위기가 조금씩 인정받았고,

페르낭드 올리비에와 함께 살게되면서 그림의 분위기도 밝아졌다.
이 때 장밋빛을 주조로한 그림을 그렸다.



*서있는  여인  ㅡ누드모델   페르낭드
 1906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몽 마르트르를  잠시떠나 스페인 오지 마을 '고솔'에가서 갔다.조각을 보고 돌아와 거투르드의 초상을 입체적으로 그렸다ᆞ사진등장의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거투르드의 초상ᆞ1906
 

거투르드의 살롱에 걸림







*Family Of Acrobats With Monkey
Pablo Picasso: 
1905
Style: Expressionism
Period: Rose Period

곡예사 가족과 원숭이
피카소와 친구들은 서커스 구경을 자주 갔다.
(자코브ᆞ아폴리네르ᆞ마리 로랑생)

볼라르같은 화상들이 바토 라부아르에  드나들며 피카소의 그림을 사갔다

 




*The Girls Of Avignon
Pablo Picasso
1907
Style: Cubism
Period: Cubist Period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USA

아비뇽의 여인들 1908 ~09
그림의 두여인은 아프리카 가면을 쓰고 있다
트로카데로 뮤지엄에서 아프리카 가면을 본 후 그림이 바뀌다

1906
무렵부터 아프리카 조각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얼굴은  아프리카의  가면을  닮아 보인다.
 완성 후  주변 친구들과 막스 자코브, 아폴리네르,브라크 등에게  보였으나 혹평만 나오자 20 년 후에  공개하였다.
소문을 듣고 온 화상 칸바일러는 이 그림을 사기 원했으나 , 피카소는 거절했다.
 
1908 ᆞ브라크와 함께 큐비즘 시작함
1911 ᆞ스페인 피레마을에서 지내다  '모나리자 도난 사건'이 일어나 돌아옴
 (얼마전 구입한 조각이 루브르 도난품이었음)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는 이  시기에  
'아비뇽의 처녀들'로 큐비즘을 개척했지만  페르낭드에게는 등을  돌린다.

아비뇽ㅡ바르셀로나 창녀촌 
                  피카소가  친구들과 자주 드나들던 곳






  
다니엘 칸바일러의 초상
  1910, 
   캔버스에 유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피카소는  늘  미술의  한계에  도전하고  실험적 작품을 시도하였으나 , 추상화로는  나아가지 않았다.
이 그림에서도  인물의  얼굴  형체가 보이고 있어,
추상화와는 구분된다.


 ※  독일인 화상 ᆞ다니엘 헨리 칸바일러
(Daniel-Henry Kahnweiler)
입체주의의 예술성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주의 화가들을 후원한 인물이다. 
칸바일러는 파리에 갤러리를 열고 그가 구입한 작품을 포함한 입체주의 작품들을 전시하며 입체파 화가들과 교류하였다






 


*기 타 
  1913  
   
 꼴라쥬 기법
 

   꼴라쥬 시도 ㅡ당시에는   획기적이고 신선한 발상이었다.
    
1913  ㅡ아버지 사망






3ᆞ입체주의 시대
             ㅡ에바 구엘 
   
 (  Eva Gouel 1885~ 1915   )ᆞ결핵으로 일찍 사망
   
  ¤1912~15

피카소는 1911년 오랜 연인 올리비에와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산책길에서 우연히 유난히 얼굴이 하얀 한 여인  Eva Gouel을 만나게 된다.


바토 라브아르에서  몽파르나스로  거처 옮김
  ㅡ 1 차대전 중
  ㅡ1914ᆞ입체파화가들이 파리에  모여 전쟁에 쓰일 가짜 배경을 그림
ㅡ1915 ᆞ아폴리네르 입대ᆞ시 -칼리그람(1915)

  



9 년간의   페르낭드 올리비에와의  동거를 끝내고
Eva와  사랑에 빠진다.
피카소가 깊이  사랑했던  에바는  몸이 약했고
1 차  대전중이라  치료도 여의치  않아  1915년 결핵으로 사망한다
  


파리  미술계에서 성공하려면 가장  혁신적인 작품을 내놓아야 했다.
이러한 과제를 위해 피카소는 분투했다.
당시에는' 야수주의'가  막 등장해서 주목을 끌고 있었다.
피카소는 세잔의 방법론을 지적으로 발전시킨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작업하면서   회화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탐구했다.
이 때 브라크와 피카소가   만든 작품들에서 
입체주의가 탄생한다.

입체주의 화가로 잘 알려진 피카소이지만, 피카소의 수많은 작품들은 결코 입체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피카소는 시기에 따라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 화풍을 변화 시키며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은  여인 
1913

에바
 



*Eva Gouel
 








4ᆞ새로운  고전주의 시대
                 ㅡ 올가 코클로바
    (Olga Koklova  1891 ~1955)  
     발레리나
   

¤ 1917 ~1955

러시안  발레리나 

1917년 러시아 발레단 공연 무대장식을 맡은 피카소는 우아하고 고전미 넘치는 코클로바에게 끌렸다. 
1년 연애 끝에 이듬해 결혼했고, 그때부터 ‘고전주의’ 그림을 그렸다. 그와 사이에 첫아들 파울로를 낳았으나 결혼 4년 만에 부부관계가 소원해진다.


 

많은 화가들이 이들을 따라  입체주의를 형성했지만 ,
정작 피카소는 절정에 이른 입체주의에서 발을 빼고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복귀했다.
이 뒤로  피카소는 구상미술과 추상미술 사이를  자유분방하게  오가며 그림을 그렸다.

올가 ᆞ1917

올가 코클로바
처음으로 결혼한 여인

러시아 장교의 딸이자 발레단 일원이었던 여인.
피카소 나이 36살에 25살
1년간의 동거끝에 결혼을 했는데ᆞ피카소에겐
 첫번째 부인이다

올가는 피카소에게  자신을 알아볼 수 있게 그려달라
요청했고,  피카소는 사실주의 화풍으로  그녀의 초상을 그린다 
피카소는  후에  이혼을  원했으나 올가는  이혼해 주지 않았다.
올가는  정신병으로 광란을 자주 부렸다 한다.
 





*만틸라를 쓴 올가ᆞ1917 
 스페인 의상의  올가 ᆞ1917
  
 




 


*의자에 앉은 올가
1918
피카소  미술관



 







5ᆞ초월적인 관능과  환상 
           ㅡ마리 테레즈 발테르
   
     (Marie Threse Walter  1909 ~77)
     
  ¤  1927~ 43
피카소 46 세
마리 테레즈 발테르는  갈르리 라파예트  백화점  앞에서 우연히  만났으며,자신이 피카소라며 말을 걸었다
  
  
 
1927 년  
 .마리 테레즈 발테르의  비현실적인  분위기에서  영감을 얻어 <꿈> 을 제작했다


 피카소가 6개월동안 쫓아다닌 끝에 그림 모델로 세운 여인이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여인이라고 전해지며
피카소가 죽었을 때  저승에서도 그를 보살펴야 한다며  자살한 여인이다
  부인 올가 코클로바가 이혼해 주지않아 피카소는 오랬동안 몰래 사랑을  나눴다고 한다
22살 때 피카소의 마리아를   낳았다

 발터는 주로 그의 작품에서 ‘잠자는 여인’이나 ‘꿈꾸는 여인’으로 표현됐으며, 주로 화려한 초현실주의풍의 그림을 그렸다. 발터는 1935년 두번 째  딸 마야를  비밀리에 
 낳았으나 피카소는 발터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같은 시기에 부인 코클로바와도 이혼한다.

    


 


*거울앞의 잠자는 여인ᆞ 1927 좌
* 꿈ᆞ 1932  우
 




 

  
Marie Therese Walter
1937
Size: 81cm x 100cm
Medium: Oil on Canvas

 









6ᆞ게르니카
         ㅡ 도라 마르     ᆞ사진가
    
     (Dora Maar1907~ 97)
      
   
¤  1936~ 43
       
 1936년 피카소는 친하게 지내던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로부터 사진작가 도라 마르(본명 마르코비츠 앙리에뜨)를 소개 받는다. 



  1937  
스페인 내전 중   독일 공군이  스페인 북부 소도시 게르니카에 폭격을 가해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피카소는 이를 고발하는 대작  《게르니카》를 그렸다.

사진가  Dora Maar
게르니카의 제작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Picasso 때문에 받은 상처로 Dora Maar가 우는 모습을 즐겨 그렸다 

☆2 차 대전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고  유대인에  대한  검열 ,핍박이 시작되자  많은 예술가들이 떠났다.
피카소는 스페인 국적 ( 당시 중립국)으로 안전한  편이어서 파리에 남았다.
전시에도 진귀한 식품을 구해 도라 마르와 친구들에게 접대했다.



우는 여인
  1937


ㅡ도라 마르는  마리  테레즈의  존재가  늘 불만이었다



게르니카 
1937
파블로 피카소
캔버스에 유채, 350.5*782.3cm,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미술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민간인 학살 현장이었던 1937년 4월 26일의 게르니카는 나치와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 정부에 의한 폭격  (독일 콘도르 군단)으로 1500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이다. 
신무기를 시험하고,민간인의 기를 꺾고자 감행했다

 이에 분노한 피카소는 전쟁의 참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차분한 흑백의 모노톤을 중심으로, 비유적인 형상들로 가득한 평면적인 작품을 완성한다. 
“황소는 파시즘일 뿐 아니라 잔악성과 어둠을 상징한다. 말은 국민들을 상징한다. 
<게르니카>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라는 피카소의 말처럼 <게르니카>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벌어진 시민들의 죽음과 고통을 요약하고 있다. 

*스페인 내란
ㅡ프랑코는 독일과 이탈리아에 지원군 요청했고.
  앙드레 말로와 몇몇  예술가들은  비행중대를  이끌고 스페인  전투에  공화군을  도우러  참전했다ㅡ
ㅡ헤밍웨이 , 타로 ,카파 (사진가)

ㅡ피카소는 파리에서  도라마르와 지냄
ㅡ1937 만국 박람회  스페인  전시관 전시용 그림으뢰
ㅡ   5ᆞ1   습작 드로잉 100 여작 작성
ㅡ칼라를 시도하다 포기 
ㅢ1 일ᆞ자신의  집 벽면에 사타리를 놓고 작성



*Guernica (1937)

"I am openly declaring my revulsion against the military caste which has submerged Spain into an ocean of suffering and death."  Here Picasso was making use of stylistic methods and motifs he had worked out in the preceding years, invoking Cubist multiplicity of forms, Surrealist distortions of form and size, and simultaneous perspective.  For the first time, Picasso employed the language of children's drawings, with its simplified forms and signs.






*Minotaur with Dead Mare in front of a Cave
 1936
 


minotauromachia (1935)

The minotaur was Picasso's means of coming to terms with his distress, it seems to have embodied untamed natureal forces, and so combined error with vitality.  
It may be assumed that Picasso identified this hybrid being with himself, and expressed through it both his own masculinity, and also his artistic genius, which often made him feel isolated and lonely.
 

자신을 미노타우르스로 표현
여성에 대한  2분법적 사고 (피에타이미지.폭력 피해자)
말 ㅡ무기력한 여성  상징
황소ㅡ윈초적 폭력을 가하는 자  (자신)
같은 패턴 반복해서 그린 그림이 많다
 


☆ Minotaur  
ㅡ인간을 잡아먹는 숫소 ㅡ

그리스 신화 중 크레타 섬에 살고 있다고 알려진 수소 괴물. 인간의 몸에 거대한 수소의 머리를 지니고 있다. 
크레타 섬의 왕비 파시파에와 수소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인간을 잡아먹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미노스 왕은 이 괴물을, 한번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하는 미궁 안에 집어넣고 아테네에서 끌려온 소년소녀를 먹이로 주고 있었다. 
이것을 안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에 진입하여 괴물을 퇴치했다고 한다.





7 ᆞ앙티브 시대
         ㅡ 프랑수아즈 질로
       
 (Francoise Gilot 1921~     )ᆞ화가
    


¤ 1943~53

 법대를 졸업한 화가 
피카소는 질로의 첫 전시회에서 만났다.
피카소의 나이 63세,  그녀의 나이 20세
프랑수아즈 질로를 만나는 동안 피카소는 가족, 삶의 기쁨, 평화 등을 주제로 작업을 했으며, 주로 ‘꽃여인’으로 그려졌다.
유일하게 피카소를 버린 여성이다.

 

제 2 차대전 말에  피카소의 연인이 된 Gilot는
가장 지적이었고,  결 별 후에도 피카소와 마티스에 대해 책을 썼다.
피카소와의 사이에서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았다


☆ 저서

《 피카소와 산다는 것》1964
  10년 동거생활을 낱낱이 폭로해 화제가 됨
《마티스와 피카소ㅡ예술가의  우정》   1990



☆ 1946   남 프랑스   앙티브(Antive)에서  2 개월간  지내며  그림  23 점  데생   44점   78  세라믹을   제작함
피카소 미술관이  있음

 
마티스는  피카소에게 경쟁상대이자 ,질투의 대상이기도 하였지만  이상형 인간  또는 이상적인  아버지상이기도 하였다.

Femmufleur
 1946
 


☆ 프랑스와 질로

 






8ᆞ긴 황혼 ㅡ자클린느 로크
      (Jacqueline Roque 1927~86)
     
   ¤  1953~73
    26세의 자크린느 ᆞ 72 세의  피카소
Pablo Picasso는  1953년 도예공방에서 Jacqueline
만났다 .
34세 되던 해,  
첫부인  Olga Khokhlova 가  죽자  1961년 결혼한
딸이 있던 이혼녀로 8년간 동거한 뒤,  80세의 피카소와 결혼했다

 
세계2차 대전 뒤로 피카소는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지만 ,더 이상 혁신적 작품을 내놓지는 못했다.
Jacqueline Roque  마지막까지 간호하고 보살피며 그의 재산과 작품을 관리했다.




*Jacqueline At The Studio
1956
Style: Cubism, Surrealism

 그녀는 피카소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내조해준
마지막 여자다
 훗날 서른 살의 젊은 여인이 어떻게 여든이 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냐는질문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어요. 오히려 늙은 사람은 나였지요"
 라고 답했다

자클린느 로크는 피카소의 임종을 지키기도 하였지만, 피카소 사후에 그의 작품값으로 먹고 산다는 비난을 듣게 되자 자살을 한다.

피카소는 말년인 1960년대에 자신과 새 부인인 
자클린느를 한 화폭에 넣어 어두움과 밝음을 대비시킨 작품을 여러점 제작했다
1964   
 전립선  수술후 피카소의 그림은 지리 멸렬하게  변해갔다
무너진 자아를 느끼며  .판화숫자를  미리 바꿔써야함을  잊을 정도로   정신은  희미해져 갔다
 



 

 
*사비니 여인의 약탈
 1963
 

The confrontation with old masters was the fundamental theme in his late work, Picasso painted variations on works by Lucas Cranach, El Greco, Delacroix, Manet, Courbet, Poussin.  
The original composition, color scheme, and meaning were freely at his disposal and he altered them greatly.  Later he heightened the impact of painting by abandoning color in favor of gray, black and white.
 




 


 *Painter And His Model
   Pablo Picasso
   Original Title: Le peintre et son modele
 1963
   Cubism, Naïve Art (Primitivism)


1964년작인 ‘화가와 모델'

말년의 피카소가 굵은 붓질로 자신의 얼굴을 검게 처리해 죽음을 암시한 작품이다



키   스 
   1969
 



 



Embrace  
   1971
    Pablo Picasso ᆞ포옹





*자화상
  1972

마지막 유작 
 

자신감 결여된  얼굴엔  박력이라곤  찾기 힘들다.
자신의  죽음을 바라본 걸까? 



이 글은 이연식님의 서양미술사 강의를 듣고 재구성한 것입니다.(퍼옴)

===========================






[출처]피카소는 창작과 혁신의 일생을 살았으며 90세가 넘어서까지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위대한 예술가였다그는 56세에 기념비적인 대작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당시 서구는 산업사회로 그 나이는 은퇴할 나이였다그는 66세 도자기 제작에도 도전하였고 87세에 347장으로 된 동판화 <화가와 모델시리즈를 완성하였다.

 

 90세에는 새로운 화풍을 창안하였다피카소의 일생은 새로운 화풍을 창조해 내는 일생이었는데 불멸의 명작을 그릴 때마다 여인이 옆에 있었고 그 여인을 통해서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그리고 피카소의 작품 중 여인을 그린 인물화가 많은데 그 인물화는 거의 그의 애인들을 모델로 한 것이다피카소의 예술은 연인에게서 영감을 얻고 연인을 통해서 승화하였다.

 

 피카소는 10명의 여인과 평균 7년씩 동거를 하였으며 그중 결혼은 두 번 뿐이었고 한 번은 비밀 결혼을 하였다그 10명의 여인 중 적어도 7명이 피카소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그들 여인들은 서로 간의 질투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도라 마르라는 여인이 나타나 피카소의 부인 마리테레사 월터를 슬픈 여인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 부인은 피카소에 의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1943년 또 다른 여인 프랑수아즈 질로와 사랑에 빠지자 도라 마르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다그녀는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쓸쓸하게 저세상으로 떠났는데 피카소의 초상화를 간직하고 죽었다질로는 피카소와 62세 때 만난 여인으로 당시에 22세였으며 피카소는 그녀를 태양의 여자라고 불렀다.

 

 17세 때인 마리테레즈라는 여인은 피카소로부터 6개월 동안의 구애를 받고 피카소의 여인이 된다그러나 마리테레즈는 20세 때 딸을 낳자마자 피카소가 또 다른 여자를 만나는 바람에 버림을 받고 만다마리테레즈는 1973년 피카소의 사망 소식을 듣 피카소와 여인들|작성자 dang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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