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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서라도 피카소를 보살펴야겠다고 목을 맨 녀인
2017년 01월 15일 18시 06분  조회:3225  추천:0  작성자: 죽림

 

< 피카소가 남긴 명언 >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일상의 먼지로부터 씻어 준다."

 

"작품은 그것을 보는 사람을 위해서만 살아 있다."

 

"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피카소는 창작과 혁신의 일생을 살았으며 90세가 넘어서까지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위대한 예술가였다그는 56세에 기념비적인 대작 <게르니카>를 완성하였다당시 서구는 산업사회로 그 나이는 은퇴할 나이였다그는 66세 도자기 제작에도 도전하였고 87세에 347장으로 된 동판화 <화가와 모델시리즈를 완성하였다.

 

 90세에는 새로운 화풍을 창안하였다피카소의 일생은 새로운 화풍을 창조해 내는 일생이었는데 불멸의 명작을 그릴 때마다 여인이 옆에 있었고 그 여인을 통해서 그림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그리고 피카소의 작품 중 여인을 그린 인물화가 많은데 그 인물화는 거의 그의 애인들을 모델로 한 것이다피카소의 예술은 연인에게서 영감을 얻고 연인을 통해서 승화하였다.

 

 피카소는 10명의 여인과 평균 7년씩 동거를 하였으며 그중 결혼은 두 번 뿐이었고 한 번은 비밀 결혼을 하였다그 10명의 여인 중 적어도 7명이 피카소의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그들 여인들은 서로 간의 질투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하였다도라 마르라는 여인이 나타나 피카소의 부인 마리테레사 월터를 슬픈 여인으로 만들어 버렸고 그 부인은 피카소에 의해 상처를 많이 받았다. 1943년 또 다른 여인 프랑수아즈 질로와 사랑에 빠지자 도라 마르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다그녀는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쓸쓸하게 저세상으로 떠났는데 피카소의 초상화를 간직하고 죽었다질로는 피카소와 62세 때 만난 여인으로 당시에 22세였으며 피카소는 그녀를 태양의 여자라고 불렀다.

 

 17세 때인 마리테레즈라는 여인은 피카소로부터 6개월 동안의 구애를 받고 피카소의 여인이 된다그러나 마리테레즈는 20세 때 딸을 낳자마자 피카소가 또 다른 여자를 만나는 바람에 버림을 받고 만다마리테레즈는 1973년 피카소의 사망 소식을 듣고 저승에서라도 피카소를 보살펴야겠다고 목을 매었다.

 

 피카소의 마지막 여인 자클린 노크는 33세에 73세의 피카소를 만나 비밀 결혼을 하였다사람들은 그녀를 비웃었다. “그 늙은 사람과 결혼하다니정신이 나갔느냐?” 그러나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어요오히려 늙은 사람은 저였지요.”

 

 자클린은 피카소 사후 1986년 마드리드 전시를 앞두고 권총 자살을 하고 만다. 10명의 여인 중 스스로 피카소 곁을 떠난 여자는 두 아들을 가진 프랑수아즈 질로 한 여인 뿐이었다피카소는 평생 동안 무려 45,000점의 작품을 남기고 떠났다.

 

 피카소와 여인들그 여인들은 위대한 창작의 소재가 되었고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상처도 많이 받았다피카소에게서 본받을 것은 여인의 정복자가 아니라 90이 넘도록 꾸준히 새로운 화풍을 창조했다는 것이다.

 

 늙었다고 인생을 포기할 것인가많은 건강한 노인들이 일하고 싶어하지만 적당한 일자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그러나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노년은 페기 처분된 인생의 낙엽이 아니다아데나워는 85세에 독일의 총리가 되었고 90세에 기독교 민주당 당수가 되었다폰 볼트는 88세에 그의 5권짜리 저작(우주)를 탈고했다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작가 파울 하이제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라.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항상 잘 여문 과일을 갖고 싶다면 젊을 적에는 나이 든 이를 따르고 늙어가면서는 젊은이들을 따르라.”

 

김종재 / ‘예방경영의 인생을 위하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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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울고 있는 여인〉
파블로 피카소 〈울고 있는 여인〉

1937, 캔버스에 유채, 60.8×50cm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울고 있는 여인〉을 테이트 모던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서인지, 내가 테이트 모던에 갈 때마다 이 작품은 다른 테이트 갤러리에 가 있거나 순회 전시 중이었다. 그런데 별생각 없이 3층 전시실을 돌다가 늘 교과서에서 보아 오던 〈울고 있는 여인〉과 딱 마주쳤다. 테이트 모던은 독특한 전시 원칙만큼이나 그림을 거는 방식도 특이해서 전시실 벽의 아래위로 작품들을 빽빽하게 걸어 놓는다. 그래서 전시된 작품뿐 아니라 전시실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뜻하지 않은 피카소와의 조우에 조금 놀랐다. 〈울고 있는 여인〉은 내 예상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그림이었다. 피카소의 현란한 색채와 해체된 형태들이 넘치는 이 작은 캔버스를 나는 가만히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피카소의 삶과, 그리고 이 그림 뒤에 숨겨진 여러 배경들, 역사적 비극과 한 여자의 개인적 비극들이 차례로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갔다.

사실 나는 피카소라는 화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피카소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의 아이콘이다. 90년이 넘는 인생을 살면서 3만 점이 넘는 그림을 그리고, 열네 살에 이미 라파엘로처럼 드로잉했다는 이 천재 화가는 여성 편력도 정말이지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평생 일곱 명의 여자와 같이 살고 그중 두 명과 결혼했다. 그 일곱 명 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여인들도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울고 있는 여인〉은 그 일곱 명의 여인들 중 하나인 사진작가 도라 마르(Dora Maar, 1907-1997)를 모델로 한 그림이다.

도라 마르는 1937년에 피카소가 그 유명한 대작 〈게르니카〉를 작업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면서 처음 피카소와 만났다. 도라는 프랑스인이지만 에스파냐어도 유창하게 구사하는 촉망받는 젊은 사진작가였다. 피카소는 1937년 에스파냐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가 독일 공군에 의해 무차별 폭격을 당하자 그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높이 3.5미터, 길이 7.7미터에 달하는 대작 〈게르니카〉를 6주 동안 그렸다. 그는 이 6주 동안 벽화 작업뿐 아니라(〈게르니카〉는 파리 만국박람회의 에스파냐관에 전시하기 위해 제작된 벽화다) 이 대작의 부분에 대한 스케치도 무수히 그려 댔다. 도라는 그 과정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가며 6주 내내 피카소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게르니카〉가 완성된 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다. 도라가 30세, 피카소가 56세 때의 일이었다.

〈울고 있는 여인〉은 〈게르니카〉의 한 부분을 닮아 있다. 〈게르니카〉 벽화에서 아이를 잃고 울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유화로 그린 작품이 이 〈울고 있는 여인〉이다. 〈게르니카〉는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흑백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게르니카〉의 참상은 〈울고 있는 여인〉에서 선명한 색채로 되살아나 있다.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원색과 함께 여인의 얼굴은 하얀 눈물로 온통 덮여 있다. 하얀 눈물은 여인의 볼과 입술, 목으로 흘러내린다. 피카소는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에스파냐 내전과 게르니카에 대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피카소는 도라를 주제로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대부분이 슬프거나 고통스러워하는, 왜곡되고 뒤틀린 이미지들이다. 그리고 피카소의 그림에 그려진 모습처럼, 도라의 인생은 피카소에 의해 굴절되었다. 1943년, 피카소는 새로운 연인인 젊고 아름다운 여자 프랑수아즈 질로(Françoise Gilot)를 만났다. 피카소는 자신의 정물화 몇 점과 프로방스에 있는 집을 주어 도라를 쫓아 보냈다. 버려진 도라는 정신발작을 일으켰다. 그녀는 훗날 정신병에서는 회복되지만 피카소를 만나기 전에 자신이 추구했던 사진과 그림의 세계로는 되돌아가지 못했다. 한마디로 도라에게 피카소는 파멸로 이르는 길이었던 것이다.

피카소는 90세에 이르는 긴 생애 내내 화가로서 늘 명예와 찬탄을 받았고, 엄청난 부를 쌓아 올렸다. 그의 절친한 친구 조르주 브라크의 표현대로라면, 피카소는 “불을 뿜기 위해 석유를 마시는 광대처럼” 광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피카소가 늘 즐겨 그린 대상 중에는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수(半人半獸) 미노타우로스가 있다. 왕자로 태어났지만 괴물이 되어서 미궁에 갇힌 채 젊은이들을 잡아먹는 미노타우로스는 결국 피카소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도라는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에 갇힐 운명으로 태어난 여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말로 설명하더라도, 피카소라는 이 놀라운 천재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늘 나에게 대단한 화가이자, 너무 멀리 있는 천재, 인간적으로 결코 좋아할 수 없는 남자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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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72세에 만난

마지막 여인 쟈클린 로크와

 

 

 

 

 

피카소

 
는 여인들과 평균 10년 주기로 동거를 했지만, 정식 결혼은 일생에두 번만 했다.
여러 여인들중 7명은 피카소의 작품에영감을 준중요한 인물들이다.

피카소의 첫 여인은 페르낭드 올리비에. (1881 - 1966)


 



피카소가 처음 사랑한 여자는 유부녀였다.
1904년 파리로 영구 이주했을 때 만난
프랑스 여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는 피카소의 모델이었고,

둘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피카소와 동갑내기로 1904년(23세)에 만났다.
검붉은 머리에 키가 크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육감적인 여인 올리비에는
항상 쾌활한 성격으로 피카소를 기쁘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절박한 생활을 묘사하던
"청색 시대"에 올리비에를 만난 피카소는 그녀의
헌신적 도움으로 침울한 청색을 벗고 "장미색 시대"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 백미가 "아비뇽의 처녀들"로 이 작품으로 피카소는 큐비즘을 개척했다.
그러나,이 시기에 피카소는 올리비에에게 등을 돌렸고
덕분에 올리비에는 피카소와의 모든 것을 청산해야 했다.


다음으로 만난 여인이 에바 구엘. (1885 - 1915)


 



가냘프게 생긴 이 여인은 피카소가
차갑고 날카로운 분석적 큐비즘을 버리고 격정과 선율에
가득 찬 종합적 큐비즘으로 들어설 때 인도자 역할을 맡았다.
청순 가련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으로 1911년(30세)에 만났다.
피카소는 9년에 걸친 페르낭드와 동거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녀를 선택한다.
유달리 몸이 약했던 에바는1차세계대전 이듬해인 1915년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죽는다.
피카소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피카소를 비난했다.
그 이유는 육체적으로 허약한 마르셀을 혹독하게 다루었으며
그녀가 병을 얻었을 때 피카소는 전염될까 봐 혼자 이사를 가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만난 여인은 러시아 발레단의 일원인 올가 코글로바. (1891 - 1955)


 



세번째 연인 올가는 발레리나로
귀족적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었다고 한다.
사티의 음악에 디아길레프가 안무를 맡은 장 콕도의 발레 "페레이드"에
무대미술을 맡은 피카소는 36살에 25살의 발레리나 올가와 처음으로 결혼을 한다.
올가는 서민적이고 편안한 것을 즐겼던 피카소와 달리
깔끔하고 상류사회적인 기질을 가졌다.
그녀는 피카소의 첫 아들 파울로를 낳았으나 버림을 받는다.


피카소는 곧 바로 열일곱 살 난
처녀 마리 테레즈 발터(1909 - 1977)에게 눈을돌렸다.


 


그녀를 6개월 동안이나 쫓아다닌 끝에
마리를 작업실로 데려와 초현실주의 때의 걸작
<거울 앞에 선 처녀>의 모델로 세울 수 있었다.
마리 테레즈는 순정에 가득 찬 청순한 여인이었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피카소가 죽었을 때 저승에서도 피카소를 보살펴야 한다며 자살한 여인이 바로
마리 테레즈였다.
그러나 그녀가 스물두 살 때 딸 마리아를 낳자마자 피카소는 몰래 앙리에트 마르코비치를
만나고 다녔다.
앙리에트는 마리 테레즈와 달리 성격이 급하고 날카로운 여자로 프로급 사진가이기도 했다.
피카소는 이지적이고 날카로운 앙리에트와 함께 스페인 내전 시기를 보냈다.
생애 최대의 걸작 <게르니카>는 앙리에트와 살 무렵에 그린 것이다.


다섯번째 도라 마르 (1907 - 1997)


 


그녀는"지성미"가 돋보이는 여성으로
대표작 <게르니카>를 그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친구인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만난 화가이며 사진작가.
현대 미술에 열중했으며 특히,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2차 대전이 끝날무렵 피카소는 40살이나 아래인 법대 출신의지적인 처녀
프랑수아즈 질로(1921 - )에게 추파를 던진다.


 


피카소가 62세 때 그녀 나이는 22세였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술학도였으며 피카소가 63세 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와
피카소의 작업실에 살림을 차렸다.
완벽주의자이고 독점력이 강했던 프랑스와즈는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는다.
피카소는 이 때에 자신의 아이들을 소재로 해 생동감 넘치는 초상화들을 남겼다.
그녀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와 피카소의 작업실에 살림을 차렸다.
이 무렵 피카소는 공산당에 가입했다.
스페인 내전의 참혹상을 세계에 고발한 <게르니카>로 명성이 드높던 피카소는
"프랑코 독재를 반대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공산당에 입당하는 것뿐" 이라며 입당 원서를 제출했다.
이 극적인 사실을 취재하기 이해 열 일곱 살 난 여기자 주느비에브가 찾아왔고
그녀는 취재가 끝난 뒤에도 자주 찾아왔다.
친구 사이인 프랑수아즈와 주느비에브는 서로이 사실을모른 채 지냈다.

결국 피카소의 애정 행각을 알게 된 프랑수아즈는 피카소의여자로서는 처음으로 먼저 그를
버리기로 결심한다.
늘자신이 여자 관계를 결정짓던 피카소로서는 이러한 사실이 몹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와중에그녀는 자신이 낳은 아들 딸을 법정투쟁을 통해 피카소의 호적에 입적시키는 데 성공하고,
그녀의 자식들은 뒷날 어마어마한 피카소의 재산을 물려받게 됐다.

프랑수아즈가 떠난 뒤 피카소는 더욱 열정적으로 수많은 여인들을 만났다.
이미 70살이넘은 피카소였지만 젊은 여인에 대한 열망은 그칠 줄 몰랐다.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이 된 자클린 로크 (1927 - 1986)


 



그녀는 커다랗고 짙은 눈망울을 지닌 지중해 풍의 여인이다.
피카소 나이72세에 만났다.
이 시기는 피카소가 최고의 명성을 누렸던 시기로 그녀는
피카소가 말년에 오직 작품에만 전념하도록 도와 줬다고 한다.
이혼 경험이 있는 자클린은 1961년 피카소와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훗날, "서른 살의 젊은 여인이 어떻게 곧 여든이 되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냐"는 말에 그녀는,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어요.
오히려 늙은 사람은 나였지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피카소에게 언제나"나의 주인님"이라 부르며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바쳤다.
또한, 그녀는 피카소의 사후 유산을 둘러싼 법정투쟁과
다른 여자들이 낳은 피카소 후손들과의 핏줄 싸움까지도 책임졌다.

20세기 현대 미술의 거장피카소는 197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자 그가 만났던 수많은 여인들과 후손들은 한결같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피카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리 테레즈는 목을 매달았으며
자클린은 1986년 마드리드 전시회를 앞두고 권총 자살을 했다.
올가와 피카소 사이에 난 아들 파울로는 약물 중독으로 죽었고,
피카소의 손자 파블리토는 피카소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왔다가
자클린이 완강하게 거절하자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피카소가 남긴 작품은 무려 4만 5000점에 달한다.
회화 1885점, 조각 1228점, 도자기 2280점,
스케치 4659점, 3만 점에 달하는 판화 작품 등...



 

 
파블로 피카소가 사랑한 여인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할 때,  
빠짐 없이 그가 사랑했던 7명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는 열정적으로 수많은 여인들과 함께 했으며, 
그들은 피카소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23세 때 만난 첫 애인을 시작으로 피카소는 만나는 여인과 
평균 10년 주기로 동거를 했고 두 번 결혼했다. 
여러 여인들 가운데 특히 7명은 피카소의 작품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다. 
 
현대미술의 커다란 기둥인 피카소는 여인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던탓인지 
그의 작품수는 무려 4만 5000점으로 회화 1885점, 조각 1228점, 
도자기 2280점, 스케치 4659점과 3만 점에 달하는 판화 작품 등을 남겼다. 
피카소가 사랑했던 여인과 작품속의 모습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첫번째 연인-페르낭드 올리비에Fernande Olivier 

피카소가 처음 사랑한 여자는 유부녀였다. 1904년 파리로 영구 이주했을 때 만난 프랑스 여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는 피카소의 모델이었고, 둘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피카소와 동갑내기로 1904년(23세)에 만났다. 검붉은 머리에 키가 크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육감적인 여인 올리비에는 항상 쾌활한 성격으로 피카소를 기쁘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절박한 생활을 묘사하던 "청색 시대"에 올리비에를 만난 피카소는 그녀의 헌신적 도움으로 침울한 청색을 벗고 "장미색 시대"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 백미가 "아비뇽의 처녀들"로 이 작품으로 피카소는 큐비즘을 개척했다. 그러나,이 시기에 피카소는 올리비에에게 등을 돌렸고 덕분에 올리비에는 피카소와의 모든 것을 청산해야 했다. 올리비에는 회고록 <피카소와 그의 친구들 Picasso et ses amis>에서 피카소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적었다. "그를 모른다면 피카소는 그리 특별나게 유혹적이지 않았다. 물론 그의 수상쩍게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 때문에 집중이 되긴 했다. 여러분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에게서 감지하는 이러한 열정, 내면의 불꽃은 그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자석처럼 작용했다. 그리고 나를 알고 싶어 하자, 나 역시 그를 알고 싶어졌다." 두번째 연인- 에바구엘Eva Gouel 피부가 무척 하얗던 여인. 피카소는 구년에 걸친 페르낭드와 동거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녀를 선택한다. 유달리 몸이 약했던 에바. 1차세계대전 이듬해인 1915년 12월 14일 이 젊은 여인은 결핵으로 죽는다. 세번째 연인- 올가 코클로바Olga Kokhlova <퍼레이드> 공연 때 만난 러시아 무용수, 피카소가 서른 여섯 살 때 처음으로 결혼을 한 여인이다. 올가는 서민적이고 편안한 것을 즐겼던 피카소와 달리 깔끔하고 상류사회적인 기질을 가졌다. 그녀는 피카소의 첫 아들 파울로를 낳았으나 결혼 4년 만에 부부관계가 소원해진다. 네번째 연인- 마리 테레즈 발터Marie Therese Walter 피카소가 마흔다섯 살이 되던 해인 1927년 당시 열일곱 살의 건강하고 관능미 넘쳤던 소녀 마리를 6개월동안 쫒아 다닌 끝에 작업실로 데려와 초현실주의때의 걸작 <거울앞에 선 처녀>의 모델로 세울 수 있었다. 페르낭드와 에바, 올가가 갈색 머리카락을 가졌던 것과 달리 그녀는 금발이였다. 그녀가 스물두살 때 피카소의 두 번째 아이 딸 마리야를 낳는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피카소가 죽었을 때 저승에서도 피카소를 보살펴야한다며 자살한 여인이 바로 마리테레즈였다.
다섯번째 연인-도라 마르Dora Maar





1936년 피카소는 친하게 지내던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로부터 사진작가 도라 마르(본명 마르코비츠 앙리에뜨)를 소개 받는다. 피카소의 모국어인 에스파냐어로 몇시간 그와 예술을 논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이었다. 1936년(55세) 피카소가 '파시즘 광기와 싸우던 시절'에 만났다. 그녀는 피카소의 ‘게르니카’ 시대를 함께 했으며, 이 작품의 제작 과정 전체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우울한 2차대전의 시기를 함께 한 마르는 피카소 작품에서 주로 ‘우는 여인’으로 등장한다. 도라 마르는 우울증 때문에 심리 치료를 받아야만 했는데, 피카소의 친구이자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의 정신 분석을 오랫동안 받게 되었다.


여섯번째 연인-프랑스와즈 질로Françoise Gilot





2차 세계대전 중에 만난 그녀는 아주 젊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류화가이다. 피카소가 예순세 살 때인 1945년부터 함께 살게 되는데 이 때,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완벽주의자이고 독점력이 강했던 프랑스와즈는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는다. 피카소는 이때에 자신의 아이들을 소재로 해 매혹적이고도 생동감 넘치는 초상화들을 남겼다. 여기서 아이들은 때로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모습으로, 때로는 자기들끼리 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훗날 프랑스와즈는 당시를 솔직하게 회상하며 이렇게 썼다. "이렇게 올가, 마리 테레즈, 도라 마르와 관계가 계속되고, 그들이 지속적으로 피카소와 나의 삶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통해 나는 그들이 피카소의 '푸른 수염 콤플렉스'의 표현이며, 그것이 또 자신이 수집한 이 모든 여자들을 개인 소유의 작은 박물관에 전시하고자 하는 피카소의 욕망에 불을 지핀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피카소는 그녀들의 머리를 완전히 베어내지 못했다. 그녀는 그렇게 삶이 계속되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한 때 그와 함께 살았던 여자들은 나약하게 기쁨과 고통의 소리를 질러댔고, 부서진 인형들처럼 발작적으로 움직였다. 그들에게 여전히 생명의 숨결이 이어진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될 수 있었다. 그녀들의 생명은 피카소의 손이 잡고 있는 끈에 매달려 있었다. 때때로 그들은 희극적인, 또는 비극적인 허영을 보탰고 피카소는 그것을 이용했다." 1953년,72세에 만난 자클린 로크Jacqueline Roque 피카소의 말기 작품들은 외재적으로나 내재적으로 성애가 두드러진다. 이 때 피카소가 도자기 예술과 '고전 작가의 재해석'에 심취한 시기였다. 피카소가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내조해준 마지막 여자 자클린 로크는 피카소가 72세 되던 해 만난 여인이다. 그녀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 딸이 있는 이혼녀로, 피카소와 8년간 동거한 뒤 결혼했다. 자클린은 요리를 잘하고 가사일도 잘 돌보았으며 피카소와 에스파냐어로 예술가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또한 피카소를 돌보며 그의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는 매력적인 안주인 역할을 했다. 자클린은 피카소보다 13년을 더 살았다. 그리고 그동안 사심 없이 피카소의 복잡한 재산 문제들을 처리했다. 1986년 10월 15일 피카소의 105번째 생일을 열흘 앞두고 그녀는 피카소의 무덤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세기 현대 미술의 거장 피카소는 1973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자 그가 만났던 수많은 여인들과 후손들은 한결같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피카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리 테레즈는 목을 매달았으며 자클린은 1986년 마드리드 전시회를 앞두고 권총 자살을 했다. 올가와 피카소 사이에 난 아들 파울로는 약물 중독으로 죽었고, 피카소의 손자 파블리토는 피카소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왔다가 자클린이 완강하게 거절하자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피카소와 연인들에 관한 내용은 2편의 영화로도 나왔다. 첫번째는 1956년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다큐멘트리 The Mystery of Picasso (피카소 출연)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베니스영화제 최우수다큐상을 받았으며, 두번째 영화는 1996년 제임스 아이버리 감독의 Surviving Picasso (안소니홉킨스 출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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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결혼했던 일곱 명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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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연인-페르낭드 올리비에

피카소와 동갑이었던 그녀는
검붉은 머리에 키가 크고 균형잡힌 몸매를 가진 육감적인 여자였는데
항상 쾌활한 성격으로 피카소를 기쁘게 했다.
피카소는 페르낭드를 만나면서 청색시대를 마감하고
장밋빛 시대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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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번째 연인- 에바구엘

피부가 무척 하얗던 여인.
피카소는 구년에 걸친 페르낭드와 동거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녀를 선택한다.
유달리 몸이 약했던 에바. 1차세계대전 이듬해인 1915년 12월 14일 이 젊은 여인은 결핵으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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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번째 연인- 올가 코클로바

<퍼레이드> 공연 때 만난 러시아 무용수,
피카소가 서른 여섯 살 때 처음으로 결혼을 한 여인이다.
올가는 서민적이고 편안한 것을 즐겼던 피카소와 달리 깔끔하고
상류사회적인 기질을 가졌다.
그녀는 피카소의 첫 아들 파울로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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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번째 연인- 마리 테레즈 발터

피카소가 마흔다섯 살이 되던 해인 1927년 당시 열일곱 살의 건강하고 관능미 넘쳤던 소녀.
페르낭드와 에바, 올가가 갈색 머리카락을 가졌던 것과 달리 그녀는 금발이였다.
피카소의 두 번째 아이 딸 마야를 낳는다.
피카소에게 가장 창조적인 영감을 준 여성이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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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번째 연인-도라 마알

친구인 폴 엘뤼아르의 소개로 만난 화가이며 사진작가.
피카소의 다섯 번째 연인인 도라는 지적이고 교양을 갖춘 여성으로
현대 미술에 열중했으며 특히,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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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번째 연인-프랑스와즈 질로

2차 세계대전 중에 만난 그녀는 아주 젊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류화가이다.
피카소가 예순세 살 때인 1945년부터 함께 살게 되는데 이 때, 그녀는 스무 살이었다.
완벽주의자이고 독점력이 강했던 프랑스와즈는 아들 클로드와 딸 팔로마를 낳는다.
피카소는 이대에 자신의 아이들을 소재로 해 매혹적이고도 생동감 넘치는 초상화들을 남겼다.
여기서 아이들은 때로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모습으로,
때로는 자기들끼리 놀이에 빠져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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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72세에 만난 자클린 로크

피카소의 마지막 연인이 된 그녀는 커다랗고 짙은 눈망울을 지닌
 
지중해 풍의 여인이다.
자클린은 1961년 피카소와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후에 서른 살의 젊은 여인이 어떻게 곧 여든이 되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느냐는
 
말에 그녀는 말한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과 결혼했어요.
 
오히려 늙은 사람은 나였지요"
그녀는 피카소에게 헌신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바친다.
피카소가 죽고 난 며칠 뒤 그녀도 그를 따라 죽음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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