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世界 색점선
|
출처 :화실전
아웃사이더의 대 사제 Grand Maitre of the Outsider,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47, 구상적인 아르브뤼 Art Brut, 캔버스 위에 에멀션 도료와 유채 혼합. 의심할 여지없이 불쾌하고 조잡하게 묘사된 것이 틀림없는 이 초상화는 그림이 발표되자마자 파리 화단에는 거대한 논쟁에 휩쌓였습니다. 사실은 뒤뷔페가 예감하고 있었고요. 자신의 새로운 미술 스타일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이 그림은 아스팔트 에멀션 도료로 섞어 두텁게 그린 '오트 파트 hautes pates'입니다. 논쟁에 휩쌓일수록 뒤뷔페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성공을 예감했습니다.
벨기에 태생의 시인이자 미술가인 '앙리 미쇼의 초상 Portrait of Henri Michaux', 장 뒤뷔페 Jean Dubuffet 그림
파리의 아파트 Apartment Houses, Paris,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46년, 캔버스에 모래와 목탄과 유채,
거룩한 사제님의 흉측한 초상만 아니라 건물들도 난리가 났습니다. 파리의 도시 생활에 초점을 맞춘 아파트 그림, 장난스럽게 기울어진 아파트, 건축의 무결성이나 미술의 원근법 등을 무시하고 하늘, 사람들, 그리고 공간들이 제멋대로 놓여있습니다. 그는 아웃 사이더입니다. 정통 미술에서는 이단아이며, 사고뭉치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당나귀를 탄 베드윈 족 Bedouin on a donkey, 베드윈 족은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사막에 사는 노매드, 유랑 민족입니다.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48년.
장 뒤뷔페는 장 미셸 바스 키아 Jean-Michel Basquiat(1960-1988)처럼 원초적 미술, 말하자면 '익히지 않은, 날 것의, 가공되거나 꾸며지지 않은, 다듬어지지 않은, 무엇보다 화장한 모습이 아닌 민낯의 존재감'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내었는데요, 호불호를 넘어서 하나의 시도란 창의력이나 영감을 자극하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끕니다.
이상한 코뚜레를 한 암소 The Cow With The Subtle Nose,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54년, 아르브뤼 Art Brut, 캔버스에 에나멜을 섞은 유채,
마치 기원전 1만 5천 년 전 라스코 동굴 벽에 그려진 야생의 들소가 오늘의 현세에 환생한 것 같은, 바보 젖소의 모습, 좋게 말하면 아이처럼 순진무구하고, 자유로우면서 야만적인 이 그림과 제목을 보면, 고귀한 문명에 대한 그의 계산된 조롱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요? 특별히 미술사조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고급 미술'에 대한 심한 농담과 야만적 savage인 돌진 같은 거요. 그 스스로도 전체적으로 문명화 시대를 향해, 미래의 새대를 향한 전진, 그 재확인 작업이라고 하네요.
지하의 영혼 Soul of the Underground, '흙과 땅바닥'이라는 제목으로도 소개됩니다.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59년 12월, 재질이 곧 미술의 중심이 되는 태시즘 Tachisme, 보드 종이와 알루미늄 호일과 오일 혼합,
올 것이 드디어 와버렸는데요, 그는 본격적으로 그림물감에 모래나 석회, 알루미늄 호일, 아스팔트 등을 오일과 섞어 만들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런 물감? 을 뿌려 그리는 그림을 태시즘 Tachisme이라고 부르는데요, 화면에 두꺼운 반죽을 두른 풍부한 느낌의 이 재료들은 거친 텍스처를 가진 부조처럼 중후한 질감을 만들면서, 옆집 벽이나 마당을 파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지요. 이런 미술을 ‘오트 파트 hautes pates'라 합니다.
아름답고 거대한 가슴 The beautiful heavy breasts, 장 뒤뷔페 Jean Dubuffet,
그의 누드 작품인데요, 그의 작품들은 구상인지? 추상인지? 분류하기 어려운 일련의 작품들이 계속됩니다. 이 무렵 그의 작품을 일컬어 재질학 Texturologies이라 분류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 두꺼운 반죽 미술로 짓이겨서 화면 질감의 물질성이 회화적 요소를 창출해냅니다. 1950년부터 그가 오트 파트 hautes pates' 방식으로 '귀부인의 신체' 연작 시리즈를 연속적으로 그려 나갔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우를루프 l'Hourloupe,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66년, 아르브뤼 Art Brut의 ‘우를루프(L’Hourloupe)’ 시리즈.
우를루프(L’Hourloupe)는 프랑스어로 ‘소리 지르다’ ‘새가 지저귀다’ ‘늑대’ 등의 단어를 조합해 뒤뷔페가 만든 신조어입니다. 길들지 않은 그대로의 야생성이 담겨 있지요다. 피아노나 계단, 탑, 배, 찻주전자 등 일상의 사물들을 해체해 검은색 굵은 테두리를 가진 비정형의 모습으로 재구성하고 흰색과 붉은색·파란색으로 조각 맞추기처럼 해체해놓았습니다.
왕래 Comings and goings,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65년
1950년대 후반부터는 그는 차츰 장식성이 강한 조각 그림 맞추기 ‘지그소 퍼즐 jigsaw puzzle, 지그소 퍼즐, 그림 조각 맞추기와
1960년대는 작곡과 건축 환경 조성을 함께 실험하였고, 1970년대 후반부터는 형상과 바탕이 되는 화면과의 종합적 시도를
꾀하였다. 회화와 조각의 다양한 재료로 계속 아르브뤼의 가능성을 탐구하였으며, 만년(晩年)에는 공공장소에 놓은 흑백의
유리 섬유로 만든 대형 조각을 여러 개 만들었다.
볼러 해트(중절모)를 쓰고 있는 이중 자화상 Double self-portrait in a bowler hat, 젊은 날의 장 뒤뷔페 Jean Dubuffet 자화상, 1936년. 이 중산(中山) 모자는 1849년 빅토리아 여왕 시대 처음 고안자인 영국의 모자점 주인이며 제임스 볼러 J. Bowler의 이름에서 따와 '볼러 헤트'라 불립니다.
익히지 않은, 날 것의 야만, 장 뒤뷔페의 미술 장 뒤뷔페 Jean Philippe Arthur Dubuffet (1901년 7월 31일 생 - 1985년 5월 12일 몰)는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미학에 대한 그의 이상적인 접근 방식은 주로 어린이와 정신병자의 그림 연구에서 유래하고 있는데, 이른바 '저급 예술 low art'이라 불리는, 인간적이고 더욱 사실에 부합한 접근들로 이미지를 만들어 가는, 익히지 않은, 날 것의, 가공되거나 꾸며지지 않은, 다듬어지지 않은, 노골적이며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자연발생적이고 무엇보다 원초적인 기법과 생각들, 찬란한 과거 미술적 전통의 기성(旣成) 예술 관념을 부정했다.(회피하고 가 맞다)
장 뒤뷔페는 1918년 파리로 나와, 아카데미 쥘리앵 Academie Julian에서 공부하였으나 약 6개월 동안에 불과하고 학교를 때려치우고 주로 혼자 독학(獨學) 하였다. 이 시절 유대계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막스 자코브 Max Jacob (1876 -1944)를 만났다. 나중에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죽은 시인 자코브는 생전에 뒤뷔페에게 파리의 몽마르트에서 아폴리네르, 피카소 등 당대의 시인과 화가들을 소개해주었다. 이때만 해도 뒤뷔페도 모범 화가로 전통주의적 기법의 그림에 열중하던 시절이다.
그러다 장 뒤뷔페는 갑자기 그림을 중단하고 아버지를 도와 가업인 포도주 도매상을 10여 년 정도 오래 했다. 그는 다시 미술을 하리라 생각하지 못했으나 41살 되던 1942년 그는 다시 파리에 나타나 붓을 들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말썽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1944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때 화랑에 등장한 그의 그림은 달라졌다. 그의 그림은 특히 재료에 의해 큰 변화가 있었는데, 화방에서 구할 수없는 것, 우리들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재료들, 예컨대 쓰레기나 폐물들, 이른바 정크 junk들을 모아 쌓아놓은 마티에르 matiere의 변화였다.
장 뒤뷔페는 캔버스나 종이나 패널에 우아하게 그리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종종 타르나 유리, 자갈이나 숯과 모래 같은 재료들을 니스나 아교 같은 접착제에 버무려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를 만들어 거기에 어린아이들 그림 같은(아니 낙서 같은) 소박한 (아니 유치한) 그림과 소묘들을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직 미완성된 것' 같은 그림이었다.
장 뒤뷔페가 한낱 말썽쟁이 아웃사이더로 끝나지 않은 것도 '시대적인 행운'이 있었다. 2차대전이 끝난 뒤 1948년, 이른바 파리 몽파르나스 Montparnasse를 중심으로 모인 뜨내기 화가들 중심으로 형성된 '에콜 드 파리 Ecole de Paris', 즉 파리파(派)에서 비정형 추상 운동인 '앵포르멜 Informel 운동'이 시작되자, 때마침 시작한 그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하고 주목받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뒤뷔페의 비정형 회회들이 파리의 미술 평론가로부터 전후 유럽의 추상미술 중에 가장 선구적인 추상 운동 선구자로 추앙되었다.
마술 수업 Lecciones Botanica,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25년. 그는 미술의 어떤 카테고리에 들어가기를 희망하지 않았지만, 그의 미술은 ‘원시 예술, 아르브뤼 art brut’라 부른다.
스모킹 체리 Smoking Cherries, 장 뒤뷔페 Jean Dubuffet,
익히지 않은, 날 것의, 가공되거나 꾸며지지 않은, 다듬어지지 않은, 원시미술 ‘아르브뤼 art brut’의 기법과 사상, 그래서 어쩌자고? 과거 미술은 계산되었다. 너무 딱딱하다. 계획적이고 너무 권위적이다. 무엇보다 저 높고 높은 곳에 계신 귀한 신분이다. 그런 전통적인 그림에서는 즉흥성이 없다. 모두 마네킹처럼 생명력이 없다. 즉흥성과 생명력을 향한 원초적인 도전이 바로 원시미술이다, 아마 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소박한 조형에 강 한 관심을 가지고 1947년부터 그러한 종류의 작품을 만들어 갔다.
루조 레스토랑 1 Restaurant rougeot I,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61
그는 비난받고 경멸 당하던 원시미술 운동 the art movement Art Brut 작업을 줄기차게 진행하면서 미국과 프랑스를 베이스로 풍부하고 다량의 작품 생산을 즐기면서 자신의 미술 경력을 쌓아갔다. 그의 창작 활동은 기존의 모든 미술적 전통을 회피했고, 자본시장에 찌들고 엘리트주의에 빠진 기존 서구 미술을 경멸했다. 차라리 길바닥이나 동네 거리의 낙서나 쓰레기에서 영감을 받았고 발끝에 닿는 하찮은 것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크고 검은 풍경 Large Black Landscape,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46년. 영국 런던 테이트 현대미술관 소장
그가 공격하는 기성 화단은 엘리트주의와 자본가의 힘이 만든 허상, 가식과 인공적이고 모방적인 자기선전으로 가득 찬, 우아하고 멋진 박물관에 양반다리를 하고 걸려 있는 미술 개념 대신 우리 주변에 흔한 것, 쌩짜들의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을 아름다움의 이상으로 삼았다.
지름길 Court les rues,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62년
새로운 예술이란 문화적 인습과 가치에 길들여지지 않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 것, 야만적인 것, 야생적인 것(sauvagerie)에서
새로운 순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배우거나 훈련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어야 그것이 예술이다'라고 말했다.
악당들이 타고 가는 자동차 Automobile a la route noire,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63,
그래서인지 그의 인생 완숙기이던 1940년대부터는 파리와 뉴욕은 물론 유럽 전 지역에서 수많은 전시회가 줄을 이었으며 수많은 저술과 연구 논문들이 봇물을 이루었고 2001년에는 '퐁피두센터'에서 '장 뒤뷔페 탄생 100주년 전'이 대대적으로 열렸으며 프랑스에서는 현재 제1의 국민화가로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장 뒤뷔페 Jean Dubuffet, 1960년 초상사진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