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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2017년 02월 02일 19시 17분  조회:2574  추천:0  작성자: 죽림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강인한 


좀 심한 말을 하자면 요즘 우리 나라에 시인은 많지만 독자들이 읽어주는 시인의 작품은 드물다고 한다. 또 시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고들 말한다. 과연 오늘의 시는 소월이나 한하운의 시보다 어렵고, 그러므로 읽히지 않고 독자로부터 외면 당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대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고, 현대시의 이해 요령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현대시에 무심코 접근하고자 하는 젊은 독자들을 위하여 여기에 한 가지 이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20 세기 최대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는 시의 요소를 네 가지로 설명한 바 있다. 센스, 사운드, 이미지, 톤이 그것이다. 이 네 가지 요소에 대한 이해가 해결되면 어느 정도 현대시에 접근하는 하나의 요령에 자연히 터득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1. 센스(sense) 

흔히들 "그 친구, 센스가 제법이야." 하는 말을 곧잘 한다. 바로 그것이다. 단순한 감각으로서가 아니라 지적(知的)인 감각을 현대시의 한 요소로 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한다 
사람들은 입에서 거미줄을 꺼낸다 

그 거미줄에 걸려 죽은 사람의 그림자가 
눈감은 것처럼 어두운 세상 

…… 그래도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본다 
꿈으로 우는 거리를 꿈꾼다 
― 정현종의 '꿈으로 우는 거리' 

사람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말. 그 말로 인해서 그 자신이 죽기도 하는 시대. 그것은 바로 자기도 모르게 허공을 날아가다 거미줄에 걸려 목숨을 잃은 작은 날벌레로 비유되고 있다. 사람들은 입에서 거미줄을 꺼낸다. 그 거미줄에 걸려서 죽은 사람의 그림자가 어두운 세상. 말(언어)과 거미줄의 유추라는 이 뛰어난 감각으로 후반의 약간 모호하고 처진 가락조차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시이다. 대체로 현대시는 범속한 상투적 표현을 멀리하고 참신한 감각을 즐겨 표현한다. 봄에 관한 글에서 아지랑이 운운, 한다든가 가을의 시에서 낙엽이 뒹구는 무상한 삶, 운운하는 따위는 우리가 혐오해 마지않는 상투적인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참신한 감각에 갈채를 보낼 수 있는 독자들의 이해력이 요청되는 까닭에 더러는 난해하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다. 

2. 사운드(sound) 

시의 표현 재료는 언어다. 언어는 그러므로 단순한 사상 전달의 매개체가 아닌 음악성을 띤 언어라야 시어가 된다. 많은 현대시가 오로지 현대시라는 이유로 해서 음악성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반성을 요한다고 본다. 언어의 음악성은 독자에게 예술적인 흥분과 쾌감을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좋은 시들이 이러한 음악성, 곧 운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정형시나 동요의 가락과 같은 외형률보다 미묘한 내재율에 현대시의 묘미가 있다. 

허리띠 매는 시악시의 마음실같이 
꽃가지에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날의 내 가슴 아즈랑이 낀다 
흰날의 내 가슴 아즈랑이 낀다. 
― 김영랑의 '4행시' 

다 아는 바와 같이 영랑의 시는 음악적인 점에서 가장 아름답다. 물론 위에서 보인 시는 7.5조라는 운율 자체가 이 시의 주된 리듬이기도 하지만 나는 영랑의 시에서 그보다는 섬세한 언어 감각을 취하고 싶다. 영랑의 시는 얼핏 보면 여성적이고 가냘파서 우수를 느끼게도 하지만 그 우수가 사실은 매우 밝고 화사한 편이다. 왜냐 하면 대부분의 그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시어들이 비음 ㄴ, ㅁ, ㅇ 이나 유음 ㄹ의 구사가 유려하기 때문이다. 비음이나 유음은 밝은 어감을 주는 것으로 ㄱ, ㄷ, ㅂ, ㅅ, ㅈ, ㅊ 등의 무성음 자음이 주는 어둡고 격한 어감과는 대조적이라 할 것이다. 마음실, 은은한, 그늘이 지면, 흰날, 아즈랑이… 이러한 단어들은 입술에서 구르는 영롱한 방울 소리와 같은 음악성을 느끼기에 족한 것이다. 

3. 이미지(image) 

이미지란 심상(心象) 또는 영상(映像), 형상(形象)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말로 시를 읽어 가는 동안 우리의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을 말한다. 현대시는 곧 이미지라고까지 극단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만큼 현대시에서 비중이 큰 요소라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하여 이 이미지를 함부로 남용하거나 혹사하면 시를 망칠 우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요리에 맛을 내는 양념과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 현대시의 이미지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이미지는 대체로 비유로써 형성되는데 이에는 직유와 은유가 대표적이다. 
직유(simile)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로 '앵두 같은 입술', '타는 듯한 눈빛'과 같은 비유를 말하며, 은유(metaphor)는 나타내고자 하는 본래의 뜻이 감춰진다는 데서 시가 함축적 의미를 띤다. 일반적으로 은유는 A는 B이다, B의 A, 또는 구체어+추상어 등으로써 나타난다. '괴로움을 질겅질겅 씹는 표정이었다.', '파아란 슬픔이 내리는 거리', '눈물의 빵', '꽃은 한 떨기 거울' 등과 같이 두 가지 이상의 개념이 결합되는 것인데 이게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무턱대고 혼자만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이미지를 표현한다고 하여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비밀 암호 같은 비유를 써서는 곤란할 것이다.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어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물어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ㅅ 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 
스며라 배암! 
― 서정주의 '화사(花蛇)' 

미당 서정주의 초기를 대표하는 시 중의 하나이다.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뱀이 되었을까. 
이 시는 도입부터 충격적인 이미지를 제시한다. 푸른 하늘 아래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달변의 혓바닥 혹은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은 입술. 이러한 색채 이미지는 대단히 강렬한 원색적인 것이다. 마치 에드거 앨런 포의 환상적이며 음울한 분위기를 연상시키는 시라 하겠다. 
이미지 그 자체가 단순히 현대시라는 틀을 고수하기 위해서 쓰여진 시라면 그 시는 이미지 이상일 수 없다. 그런 시는 시가 아니라 이미지에 그치고 마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현대시라고 해서 무조건 난해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4. 톤(tone) 

어조(語調), 시인의 말하는 자세. 똑같은 세 끼 밥을 먹고 살아가면서 우리 인간은 모두 다 똑같은 생활,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지는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시인들도 시인들 나름대로 인생을 보는 눈이 다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떠한 자세로 인생 또는 세계를 보는가, 어떠한 어조로 말하는가 하는 따위를 '톤'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편의 시 속에서도 어조에 변화를 주어 표현하는 기교적인 시도를 때로 볼 수도 있다. 가령 처음부터 중반까지는 엄숙한 어조로 말하다가 종반에 이르러 갑자기 톤을 바꾸어 익살스럽게 끝내는 베이소스(bathos) 혹은 안티 클라이맥스(anti climax)라는 방법이 그러한 것이다. 

누가 흘렸을까 

막내딸을 찾아가는 
다 쭈그러진 시골 할머니의 
구멍난 보따리에서 
빠져 떨어졌을까 

역전(驛前) 광장 
아스팔트 위에 
밟히며 뒹구는 
파아란 콩알 하나 

나는 그 엄청난 생명을 집어들어 
도회지 밖으로 나가 

강 건너 밭이랑에 
깊숙이 깊숙이 심어주었다 
그 때 사방팔방에서 
저녁 노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김준태의 '콩알 하나' 

이 시인의 작품 속에는 현대시에 으레 나타나는 이미지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낡은 시인가? 그렇지 않다. 기교적인 이미지나참신한 감각이 구사되지 않은 데서 역설적으로 새로움을 찾을 수도 있다. 도시의 역전 광장 아스팔트에 떨어진 콩알 하나. 도회지의 아스팔트로 대표되는 현대 문명의 거대한 폭력 앞에 떨어져 뒹구는 한 개의 콩알은 하나의 생명이며 진실한 인간이다. 그런데 이 콩알은 짓밟히며 잊혀지는 처참한 상황 속에 놓여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생명의 존재를 알아줄 사람을. 어쩌면 그는 우리가 떠나온 농촌의 쭈글쭈글한 주름 투성이의 시골 할머니인지도 모른다. 농촌과 도시, 혹은 현대의 비인간적 폭력과 인간적 각성의 대비를 이 시는 대단히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이러한 비정한 상황 속에서 시인은 밟히며 뒹구는 소중한 생명을 안고 가서 강 건너 밭이랑에 인간성의 씨앗을 심는다. 강 이쪽의 살벌한 곳을 떠난 강 건너 저쪽이란 의미도 퍽 상징적이다. 이 시는 참다운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인이 지닌 생명에의 외경 내지 존엄성 인식이 세계를 바라보는 이 시의 톤이다. 한 편의 시가 꽃의 아름다움이나 말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우울한 비인간화의 시대에 있어서 꽃은 아름다움 이상의 하나의 생명으로써 표현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말한 현대시의 네 가지 요소 ―센스, 사운드, 이미지, 톤을 고루 조화시킨 그러한 시를 우리는 훌륭한 시라고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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