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동시집"을 돗자리로 깔고 "동시놀이" 알콩달콩 하자야...
2017년 02월 04일 18시 07분  조회:2502  추천:0  작성자: 죽림

시험지 다 풀고 / 추필숙

  
  

다 풀고 뒤집어 놓은

시험지

 

엉덩이만한 시험지 돗자리처럼 깔고 앉아 공기놀이하고 싶다.

정답과 오답이 답답하다고 소리치겠지.

공깃돌 하나씩 집을 때마다 오답 하나가 정답 하나로 바뀌어

1점씩 들어나 100점을 훌쩍 넘으면 어쩌지 어쩌지

 

종이 울리자

걱정까지 걷어간다.


-----------------------------

발표공포증 / 추필숙

 

  

발표해볼까요?

 

성교육 시간

선생님이 질문하자마자

 

쏙 머릴 집어넣고

 

두 손 두 발 넣고

 

폭 엎드리는데

 

― 거기건욱이!

 

내 이름 듣자마자

고개 드는

 

우리반 거북이들.

 

-------------------------------------

 

/추필숙 시인

동시집 일기장 유령 >


 

 

    이 글은 시평도 발문도 평론도 아닌 같은 동시작가로서의 개인적인 감상문임을 밝혀둔다.
하여 동시평의 일반적 
서론을 생략하고
추필숙 제2동시집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의 특징 몇 가지만 짚어보려 한다.

   2집은 1집과 많이 달라져 있다.

 

   그 첫 번째는 구성이 간결해졌다.

   어느 심사평 일부를 옮긴다. ‘시는 보태기가 아니라 빼기 작업이라는 말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한 단어

만 빠져도 시 전체가 와해 될 정도로 정제된 시어로 간결하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군더더기가 없

다는 것은 시 쓰기가 어느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며 퇴고에도 심혈을 기우렸다는 얘기다. 그 퇴고도 뭘

알고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함축성이 뛰어나다.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 초기 단계에는 ‘독자가 내 의도를 모르면 어쩌지?’하는 마음에 자꾸 친절해 진

다. 의도를 빨리 알아차리도록 설명을 하고 싶어진다. 2집의 대부분의 시편들은 설명은 행간에 묻어두

고 시적 맵시에 정성을 들렸다. 여기서 시적 맵시란 치장을 말함이 아니고 함축, 상징, 은유 등 시적 기

본에 충실해졌다는 얘기다.

 

   세 번째,

   어쩌면 현대시의 최대 화두인 새롭게 생각하기(낯설게 보기)에의 성과이다. 사실은 이 부분이 모든

예술 창작 성패의 바로미터가 된다. 낯설게 보기는 아이 같은 직관이 필요한 부분이다. 바꾸어 말하면

기존의 관습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그러면 아이 아닌 어른이 어떻게 아이

같은 직관을 자질 수 있을까? 선천적인 부분도 있겠으나 이것은 훈련에 의해 어느 정도 도달할 수 있기

도 하다.

   어떤 사물을 볼 때 관찰은 세밀하게 하되 표현은 단순하게 한다. 예로 <폭포1>을 보자

 

 

산 속에

몰래 걸어 둔

웨딩드레스

 

 

   폭포는 흰색이다. 물보라가 꼭 장식 같다. 수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서 있는 자세이다. 여기까지는

관찰이다. 관찰의 결과로 스치는 생각이 있다면 그것이 직관이다. 여기서 직관으로 얻은 결과는 웨딩

드레스다. 단지 쇼윈도가 아니기에 ‘산 속에 몰래 걸어 둔’ 것이 된다. 1집에 비해 직관으로 길어 올린

작품이 많다는 것은 어떤 훈련에 의해 도달한 성과이지 싶다.

   그런 점에 비추어 추필숙 제2동시집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는 우수한 작품집 군에 속하며 성공적

작품집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누차 하는 얘기지만 작품집 한 권을 읽고 나면 그저 고만고만하다는 생각으로 지나쳐 버리기 일수

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뭔가 느낌이 팍, 오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나같이 문외한도 감상문 한 줄 정도

쓰고 싶어진다. 지금처럼.

   다만 존경하는 전병호 선생님께서 아주 훌륭한 발문을 써 주셨기에 나는 중복을 피하여 다루지 않은

작품에서 독후 생각의 번짐을 적어보려 한다.

 

 

반딧불이

 

 

꽁무니에 불 켜들고

반딧불이야, 뭐하니?

 

 

어둠을 지우려고

깜깜한 밤 닦고 있지.

 

 

그래야,

날이 새거든

아침이 오거든.

 

 

   이 시를 읽는 순간 전율 같은 것이 전해 왔다.

   시란 어떤 사물에 관해 새로운 해석 또는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지 싶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우

주의 섭리를 찾아 내는 작업이 시인에게 주어진 책무이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하지만

위의 시편을 보자.

   반딧불이 꽁무니 불로 어둠을 지우므로 아침이 온단다. 바꾸어 말하면 아침이 오는 것은 반딧불이 때

문이라는 얘기다. 일반인들이야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시인이라면 이 대목에서 무릎을 칠만하지 않는

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등의 우주 섭리는 하느님의 영역이다. 그 하느님의 자리에 반딧불이를 앉

수 있는 사람은 시인 밖에 없다.

   어떤 시인은 ‘떨어지는 한 잎 나뭇잎에서 우주의 무게를 느낀다’고 했다. 공감은 가지만 당위성의 확보

에서는 다소 막연한 느낌이 있었지만 <반딧불이>는 구체적 묘사에서 당위성은 물론이고 합리성과 시적

서정성까지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이 시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다만 꽁무니에 불 켜들고/반딧불이야, 뭐하니? 자칫 꽁무니에 불을 켜든 누군가가 반딧불이야, 뭐

하니? 하고 묻는 것으로 오해 할 수도 있어 ‘반딧불이야, 뭐하니?/꽁무니에 불 켜들고’처럼 1행과 2행을

바꾸면 도치법의 효과와 함께 그런 문제점은 확실하게 정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빗방울 후드득―

 

 

땅 위의 모든 것들이

마냥, 젖습니다.

 

 

사람들 후다닥―

우산을 펼쳐

 

 

비를, 밀어냅니다.

 

 

   이 한편의 시에서 대단한 시의 힘을 느낀다. 그것은 이 시가 마련해 두고 있는 엄청난 후경(숨은 뜻)

때문이다.

   현재 인류가 직면한 제일 큰 문제는 지구 환경이다. 극지의 빙하는 녹아내리고 적도 해양에서는 엘니

뇨현상이 잦아지는가 하면 광범한 지역이 사막화 되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는 여름에 폭설이 내리고 때  

아닌 홍수로 난리를 치는 등 계절성마저 흐릿해 진다. 한편 에이즈, AI, 샤쓰 등 옛날에는 듣도 보도 못

던 무서운 유행성 질환이 인류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어딘 가서 읽은 한마디가 생각난다. 우연히 지구에 들렀다 떠나는 우주소년이 지구 친구에게 “참 아름

다운 별이야. 하지만 언젠가 이 지구가 멸망한다면 그것은 아마 인간 때문일 거야.”

   그렇다. 이 모든 현상의 원인제공자는 인간이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조화이다. 빗방울이 후두둑 하면

그것을 수용하는 것이 조화이다. 땅 위의 모든 것은 수용하지만 거부하는 것은 아니 거부 할 줄 아는 것은

인간 밖에 없다.

   우산이 무엇인가?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의 이기이다. 이 문명의 이기를 자랑이나 하듯 후다닥-(후다

닥은 경망스럽고 신중하지 못한 행동에 대한 부사일 터) 펼쳐들고 비를 밀어내는 것이다. ‘이제 비에 좀

젖어 보아요’란 싯귀가 생각난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시를 쓸 수가 없다. 황사, 미세먼지, 납 등 온갖 유

해물질을 함유한 비는 젖을 수 있는 낭만마저 빼앗아버린 것이다. 아니 빼앗긴 것이 아니고 자업자득이

다. 자신이 만든 유해물질로 인해 점차 낭만은 사라지고 사회는 건조해 지는 것이다.

   안락하고 편리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지구는 병들어 가고 그 결과가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온다는 사실을 이 시는 행간에 숨겨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사막

 

 

처음엔 산이었을지 몰라.

 

 

1마리, 23마리, 456마리, 7890마리 낙타가

발자국을 찍고, 찍고, 찍고, 찍고, 찍고,

 

 

찍어서 모래땅이 된 건지 몰라.

 

 

   시인은 일망무제 사막을 보며 압도당하였을 것이다. 그를 압도하는 실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거대한

시간과 공간이다. 그 거대한 느낌을 시인은 참 재치 있게 풀어놓았다.

   상전벽해란 말이 있고, 천지개벽이란 말도 있다. 산이 사막이 되는 현상을 이렇게 간단히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시인이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세월동안 헤아릴 수 없는 낙타의 발들이 산을 부수어 사막을 만들었다? 이 얼마나 기

상천외한 발상인가!

   우리가 영원에 가까운 긴 시간을 말할 때 억겁이라 한다. ‘겁’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 단위이다. 1겁

이란 사방 십리 되는 큰 바위에 일 년에 한번 선녀가 내려 와 바위를 돌 때 하늘하늘한 옷자락에 쓸려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말함이다. 아마 낙타의 발에 찍혀 산이 사막이 되는 세월도 1겁 쯤 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사막의 생성원인 치고는 기발하다. 이런 엉뚱함이야말로 동시를 쓸 수 있는 기본이다.

1단위, 10단위, 100단위, 1000단위씩 기하급수로 늘어가는 숫자의 표현도 1에서 0까지 열 개의 숫자를

1, 23, 456, 7890 이렇게 차례로 잘라 배열 시킨 것도 참 재미있는 착안이다.

 

 

 

피아노 치는 꽃게

 

 

피아노 치는

언니 손은

두 마리 꽃게

 

 

옆으로만 가다 서다

살짝 뒷걸음도 치는

 

 

건반 위에서

파도치는

꽃게 두 마리

 

 

   이 시를 읽으면 하나의 그림이 그려진다. 자신의 연주에 취한듯 무아지경에 빠져 음악의 흐름을 따라

가는 언니와 그런 언니를 경이와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동생, 그러다 문득 좌우로 움직이는 다섯 손가

락. 꽃게의 다섯 발가락. 이렇게 詩作은 始作되는 것이다.

   피아노 연주를 소재로 한 시 작품은 참 많다. 그 비유도 ‘파도를 베는 칼’에까지 왔지만 피아노 치는 손

을 꽃게에 비유한 것은 처음이지 싶다. 또한 동시의 비유로서 너무 잘 어울린다.

   발발발발 기어가다 멈추는 듯 또 기어가는...

   기어가는 게의 행동을 건반 위를 미끌어지는 손 위에, 반대로 건반 위 손 움직임을 갯바위를 기어가는

게의 모습에 오버랩 시켜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만큼 비유가 적절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또 하나 재미

있는 부분, ‘살짝 뒷걸음도 치는’.

   악보에서 긴 쉼표가 있을 때는 손을 잠시 피아노에서 내린다. 이것을 뒷걸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른

쪽 고음, 왼쪽 저음, 뒤로 쉼표, 파도는 아마 클라이맥스 아니면 스타카토 부분일 것이다. 이로서 음악은

완성되는 것이다.

   이 시를 읽고 난 후 바닷가에 기어가는 게를 만나면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길을

가다 피아노 소리가 들리면 파도 사이로 기어가는 게를 만날지 모른다.

 

 

 

 

 

 

둘이서

 

 

할아버지와 누렁소

벼농사 지어

 

 

낱알은 할아버지가

볏짚은 소가

 

 

오물오물 쌀밥

우물우물 여물

 

 

꼭꼭 씹고

되새겨 씹고.

 

 

   이 시를 읽는 순간 김종삼의 <묵화>라는 시가 떠오른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평생 농사를 지으며 동고동락한 할머니와 소. 운명적인 동행이 한 폭의 묵화처럼 그려져 있다. 목덜미

에 얹힌 할머니 손은 동반자에 대한 애틋함이며 동병상련적 측은지심의 발현이다.

   <둘이서>는 비록 동심적 언어를 썼지만 위의 시에서 느끼는 뭉클함이 있다.

   비록 사람은 알맹이를 먹고 소는 껍질을 먹지만 공동작업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는 풍경이 흐뭇하

고 정겹고 평화롭지 않은가.

   온갖 비리와 불법과 사술로 자신들은 수백억, 수천억의 치부를 하면서 선원들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부적격자와 임시직을 채용하여 쥐꼬리 월급을 주고 불법개조와 과적 등으로 개인의 배만 불리다 결국 무

수한 생명을 회생시킨 세월호의 탐욕이 이 시의 의미에 대비 된다.

 

 

 

 

빨강 신호등이 한 일

 

 

뚝,

 

길을

끊었다.

 

 

뚝,

 

길을

붙였다.

 

 

그 애가

건너편에 서 있다.

 

 

   추필숙 시인은 독자를 가지고 논다.

   길을/ 끊었다. 길을/ 붙였다. 여기까지만 읽을 때는 너무 뻔한 얘기여서 ‘뭐야? 장난치나?’ 싶다. 빨간

등이 들어오면 이쪽 길과 저쪽 길이 끊긴다. 빨간등이 나가면 이쪽 길과 저쪽 길이 연결된다. 이걸 누가

모르냐? 하다가 그 애가/ 건너편에 서 있다. 와 만나면 머릿속에서 뭔가 열심히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건너편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 아이라면 가슴이 뛰기 시작할 것이다. 하여 길을 붙여준 신호등이 고마

울 것이고 내가 싫어하는 아이라면 길을 붙여준 신호등이 미울 것이다. 아니면 그 아이는 환상속의 아이

일 수가 있다. 보고 싶지만 지금은 볼 수 없는 아이, 어쩌면 그 아이는 빨간등 때문에 지금은 볼 수 없는

아이일지 모른다. 2연과 4연과 5연은 경우에 따라 다양한 함수 관계를 형성하며 끝없는 사연을 만들어

낸다. 시인은 그 사연을 만드는 일을 독자에게 떠넘겼다.

   밑도 끝도 없는 몇 마디에 독자는 한없이 바쁘다. 시인은 단수가 높다.

 

 

 

 

개미 열쇠

 

 

열쇠 구멍만한

개미집 입구

 

 

열쇠가

개미라서

 

 

대문도 없고

초인종도 없다.

 

 

그 많은 식구

나눠 줄 열쇠

다 만들 수 없어

 

 

개미 몸이

열쇠다.

 

 

   추필숙 시인은 연상력이 뛰어나다.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의 힘이 강하다는 말

아다. 폭포를 서 있는 강으로, 피아노 치는 손을 꽃게로, 낙엽을 나무의 신발로, 여기서는 개미를 열쇠로

 보고 있다. 그것도 자기집 열쇠로. 어느 누구는 깜깜한 밤 하늘의 달을 열쇠구멍이라 했는데 추필숙 시인

도 어지간 하다.

   개미의 행렬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듯 연상은 연상을 낳는다. 개미집 입구는 열쇠구멍이 되고 개미는 

쇠가 되고, 지 몸이 열쇠니 대문도 초인종도 필요 없단다. 지몸이 열쇠가 된 것은 식구가 너무 많아 열쇠를

다 만들어 줄 수 없어서란다. 하나의 관념이 다른 관념으로 끝 없이 흘러간다. 단어는 단어를 낳고 그 단어

는 행을 낳고 행은 연은 낳고... 연은 다시...

 

 

 

 

 

 

   위에서 보듯이 추필숙 제2동시집 <새들도 번지점프를 한다>에 수록된 거의 모든 시편들은 그 구성이

간결하고 함축적이다. 전병호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앙상한 가지’ 같다. 단순 명료하다. 잎이나 꽃은

가지 속에 숨겨 두었다. 독자는 어떤 잎과 꽃을 숨겨놓았는지 찾아야 한다.

   이 시집에서 제일 두드러진 부분은 <낯설게 보기>와 <알레고리>이다. 여기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편들

이 참신하고 기발하다. 한편 단순한 은유에 머물지 않는다. <반딧불이><비><사막>등에서 보듯이 반딧불

이, 비, 사막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전혀 다른 얘기, 즉 우주섭리에 대한 또

다른 해석, 편의주의 또는 탐욕적 문명비판, 거대한 시공에 대한 철학적 관조 등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알레고리의 전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는 동시의 지평을 넓히는

데 성공한 작품집이라 하겠다.

   다만 동시는 아이들을 위해 쓰여 진 것이고 1차 독자 또한 아이들이라고 볼 때 위의 여러 시적 장치들

이 아이들이 읽어 내기엔 적합지 않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도 시일진대 시가 갖추어야

할 제요소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요즘 아이들의 지적 감수성과 이해력 또한 가볍게 볼 일

도 아니다.

   쉬운 시어로 짧고 간결하게 리듬감을 살린 점만 하여도 충분히 아이들을 배려한 동시가 아닌가 생각

한다. 추필숙 시인은 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이 부분에 대해 더 많은 이해나 배려, 즉 어느 정도가

아이들에 적절한 수준인지를 고민하였으리라 믿는다.

 

 

 

 

 

 

///////////////////////////////////////////////////////////////////////////////////
 

알모책방 동시모임은 동시를 읽고 즐기는 독자들의 모임이다.

한 달 동안 각자 읽은 동시(시) 중에서 좋았던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번 모임에서는 각자 읽은 시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동시마중 25호>에 대한 이야기와 추필숙 동시집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시모임에 대한 이야기는 연어알님이 후기에 정리할 것이므로 나는 추필숙 동시집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 시집에 대해서 굳이 얘기할 생각은 없었는데 동시마중 까페에 하빈님이 올린 글을 보고 나와 동시모임 친구들이 읽은 느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동시마중 까페에 하빈님이 올린 글을 읽고 무척 놀랐다.

한 권의 시집을 읽은 느낌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다.

하빈님은 시인이라니 어쩌면 그분이 읽은 느낌이 더 보편적일 수도 있겠다.

나는 시를 써보기는 커녕 작년 가을부터 동시를 제대로 읽기 시작한 말 그대로 동시에 있어서 왕초보자이다.

하빈님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고 추필숙이라는 시인도 처음 만났다.

다른 시인들 역시 시로 처음 만났을 뿐 어떤 분들인지는 거의 모른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추필숙 동시집 <새들도 번지점프 한다>에 실린 시 몇 편을 읽고 느낀 내 생각을 위주로 정리를 하겠다.

 

문학 작품에는 어쩔 수 없이 작가의 사상이나 세계관 등이 담기기 마련이다.

시집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시 한 편을 봤을 때는 모르겠지만 시집 한 권을 다 읽었을 때는 시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아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동시집에 실린 시를 읽고 나는 이 시인이 굉장히 관념적인 시를 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연이나 생명에 대한 배려심이 있는 사람인가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내가 주목한 시를 읽어보자.

 

 

봄 낚시

 

 

사과나무는 사과꽃을

배나무는 배꽃을

대추나무는 대추꽃을

 

 

기다린다,

나비와 벌이

낚싯밥을 물 때까지.

 

 

이 시는 아래에 본문 삽화를 함께 올린다.

봄은 시인들이 즐겨 노래하는 소재이다.

이 시인은 봄을 낚시에 비유했다.

꽃이 핀 나무에 사과꽃을 미끼로 배꽃을 미끼로 대추꽃을 미끼로 매달아놓고 나비와 벌이 물 때까지 기다린다고 표현했다.

아마 '낚시' '낚싯밥'이라는 흔히 쓰는 표현을 나무에 달린 꽃의 유혹을 받는 나비와 벌과 함께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낚시, 낚싯밥이 어떤 것인지 한 번만 더 생각했다면 그런 표현을 써서 봄과 나무와 꽃과 나비와 벌의 관계를 노래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낚싯밥에 대해서는 멀리 가서 찾아볼 것도 없다.

친절한 삽화가께서 적나라하게 그림을 그려주셨으니까.

 

낚시에 미끼를 끼우려면 저렇게 살벌한 바늘을 미끼의 살을 찢어가며 끼워야 한다.

단순히 걸어놓는 게 아니란 말이다.

일단 낚싯밥을 문 물고기는 입이며 아가미가 죄다 찢겨나가는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낚싯대를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바늘은 더 깊이 물고기의 살로 파고들어 물고기를 고통스럽게 한다.

시인이 낚시와 낚싯밥을 생생하게 떠올렸어도 '나비와 벌이 낚싯밥을 물 때까지'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을까 궁금하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낚시는 고통과 죽음의 자리이다.

낚시는 피 튀기는 모습이 덜 느껴져서 그렇지 덫이나 올무와 다르지 않다.

나비와 벌이 찾아드는 사과꽃 배꽃 대추꽃은 생명의 자리이다.

나무와 꽃과 나비와 벌과 봄이 어우러져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아름답고 숭고한 자리란 말이다.

낚시가 봄을 '낯설게보기' 위해 사용한 참신한 소재라면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게다가 정말이지 리얼하게 낚시바늘에 꽂힌 꽃을 그린 삽화를 시와 함께 보면서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시를 살펴보자.

 

팝콘

 

 

씨앗 되려던

옥수수 알맹이

 

- 제발,

   땅으로 보내 줘!

 

전자레인지 안에서

소리친다.

 

팝팝팝

튀어 오른다.

 

줄기도 싹도 없이

3분 만에

옥수수 꽃 핀다.

 

 

이 시를 읽고 어떤 사람이 한마디 했다.

미친 거 아냐?

이 시를 읽고 동심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씨앗 되려던 옥수수 알맹이의 "제발, 땅으로 보내 줘!" 호소를 듣고 전자레인지에 팝팝팝 튀긴다니.

씨앗 되려던 소망도 못 이룬 옥수수의 죽음을 '꽃'으로 표현하다니.

 

땅으로 보내달라는 옥수수의 호소가 담긴 앞부분이 없었다면 그냥 팝콘에 대한 재미있는 시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옥수수의 소리를 듣고도 전자렌지에 넣고 팝팝팝 튀길 수 있는 것은 동심이 아니다.

혹시 동심이라고 주장한다면 삐뚤어진 동심이다.

제발 땅으로 보내 달라는 옥수수의 호소를 들었다면 땅으로 보내주는 것이 동심이다.

옥수수의 호소를, 그것도 '제발~'이라 부탁하는 간절한 호소를 듣고도 그것을 전자렌지에 돌리고 옥수수의 죽음을 목도하고도 그것을 꽃으로 미화시키는 이 시를 나는 도대체 어떻게 봐야할 지 모르겠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이 시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현충일

 

 

오전 10시

우우우웅

사이렌 울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모두 경례

 

국립묘지에

묻혀서

절 받는 병사들

 

이 날만큼은 

장군도

부럽지 않다.

 

 

이미 철저한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한 시이다.

대통령 밑에 국회의원, 국회의원 밑에 장군, 장군 밑에 병사.

일개 죽은 병사가 대통령 국회의원 장군에게 절 받는 영광을 누리니 부러울 것 없다는 말인가.

이 시를 읽으니 나라와 국민을 위해 죽어 땅에 묻혀서도 계급이라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병사의 영혼이 가엽게 느껴진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따위에게 절을 받아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병사는 자랑스러워야 한다.

죽은 병사가 장군 따위를 부러워하게 해서는 안된다.

 

암묵적으로 상대방을 내려다보는 시각은 바로 옆에 실린 시 '기념 촬영'에서도 드러난다.

 

 

기념 촬영

 

 

사진사 아저씨

내시 목소리로 말한다.

 

- 입궐하신 6학년 나으리들 모이시오.

- 궁궐 잘 보이게 쪼그리게 앉으시오.

 

사람보다 더 대접받는 경복궁

여덟팔자 지붕 꼬리가, 에헴!

 

 

'내시 목소리'를 내는, 은근한 폄하 대상이 된 사진사 아저씨의 나으리들 모이시오 부름에 아이들이 제대로 모이기나 할까.

궁궐 잘 보이게 앉아 사진을 찍는 게 사람보다 더 대접받는 경복궁에 대한 비유로 적절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읽게 되는 시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지친다.

한 편 한 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면 끝이 없을 테니 이 정도로 줄여야겠다.

덕분에 생각이 많았다.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이 글은 하빈님이 올린 글이 동력은 되었지만 그에 대한 답글이 아님을 밝힌다.

그분이 올린 글이 아니었어도 이 시집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좋은 시를 읽고 친구들과 나누는 글쓰기에도 부족한 에너지를 굳이 이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밀쳐두고 있었을 뿐이다.

이 시집을 읽고 전율을 느낄 정도로 좋았다는, 동시의 지평을 넓히는데 성공한 작품이라는, 하빈님의 생각을 존중한다.

다만 그와는 다른 면에서 전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싶었다.

이 시집을 한 권이라도 팔기 전에 먼저 읽어서 다행이다.

 

 

 


 


 

 


======================
 

 

‘낯설게 하기’ 또는 ‘다르게 보기’

 

전 영 관(동시인)

 

“요즘에 읽는 동시들은 새로움이 없는 것 같아요. 그 내용이 그 내용이어요.”

얼마 전에 어느 문학모임에서 연세가 있으신 어느 여류시인이 내게 한 말이다. 내가 구독하고 있는 아동문학지에 발표되는 동시들을 읽어보면 그 여류시인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흔한 비유, 새롭지 않은 발상, 상투적인 표현 등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동시와의 거리감을 넓히게 되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된다.

러시아의 문학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슈클로프스키는(Shklovsky, Viktor Borisovich)는 ‘문학은 언어와 문자에 의한 예술이므로 표현에 있어서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가 요구된다. 예술은 삶의 경험에 대한 감각을 새롭게 하는 것이기에, 습관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탈피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하였다. 친숙하거나 인습화된 사물이나 관념을 특수화하고 낯설게 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갖도록 표현하는 방법인 ‘낯설게 하기’는 ‘다르게 보기’ 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적 형상화, 비유, 구성 등 다양한 장치와 표현방법을 통해서 느낌이나 생각을 새롭게 하여 표현할 때, 어린이 독자들은 일상 세계를 새롭게 경험하고 자신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방식에 관해 새롭게 지각하게 된다.

2013년 『오늘의 동시문학』 여름호에 발표된 ‘이 작가를 주목한다.’와 ‘여름을 여는 22인의 신작동시’를 중심으로 ‘낯설게 하기’ 또는 ‘다르게 보기’ 와 관련하여 다음 몇 편을 대상으로 살펴본다.

 

낚/ 싯/ 대/ 끝/ 에// 사과나무는 사과꽃을/

배나무는 배꽃을/ 대추나무는 대추꽃을//

매/ 달/ 아/ 놓/ 고// 기다린다./

나비와 벌이/ 낚싯밥을 물 때까지.

- 추필숙, 「봄 낚시」 전문

 

사과꽃이나 배꽃, 대추꽃이 가지 끝에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낚싯대 끝에 낚싯밥’ 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나비와 벌’을 물고기로 표현하고 있다. 아주 재미있는 비유이고, 발상이다. 그동안 흔하게 표현하여 왔던 사과 꽃과 배꽃, 대추꽃이 아니다. ‘낚싯밥’이란 표현으로 낯설게, 다르게 독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느끼게 하고 있다. 특히 ‘ 낚/ 싯/ 대/ 끝/ 에/’ 와 ‘매/ 달/ 아/ 놓/ 고’ 와 같이 한 글자를 바로 한 행으로 나타내어 ‘행 나누기의 낯설음’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낚싯대와 비슷한 모양의 시각적 이미지를 통한 시적 형상화를 꾀하고 있다.

 

참나무 소나무 잣나무의/ 울퉁불퉁한/ 나무 등걸//

다람쥐들 오르내릴 때/ 미끄러지지 않게/ 발받침이 돼 준다.//

산개미들 오르내릴 때/ 미끄러지지 않게/ 손잡이가 돼 준다.//

추위에 껍질 터져 울퉁불퉁/ 비바람에 속 터져 생긴 울퉁불퉁/

나무의 그 상처들이.

- 문성란, 「울퉁불퉁 계단」 전문

 

‘추위에 껍질 터져 울퉁불퉁/ 비바람에 속 터져 생긴 울퉁불퉁/’한 참나무, 소나무, 잣나무의 나무 등걸은 바로 나무의 상처들로서 다람쥐와 산개미들이 오르내릴 때의 발받침과 손잡이가 되어 준다는 재미있는 발상의 동시이다. ‘울퉁불퉁한/ 나무 등걸’은 자신도 상처를 갖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람쥐, 산개미들에게 발받침, 손잡이가 되어 준다는 자기희생과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가 새로운 비유로 신선하게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울퉁불퉁한/ 나무 등걸’을 나무의 상처로 본 시인의 시선이 낯설음에서 낯익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곱슬머리 세탁소 아저씨/ “세에탁~ 세에탁~”/ 아침마다 동네 한 바퀴//

아버지 때 묻은 양복/ 어머니 구겨진 저고리/ 세탁소 자전거에 실려간다.//

묵은 때가 말끔하게/ 구김살이 반듯하게 되돌아오듯// 욕심 때. 가뭇가뭇

묻어 있는 나/ 게으름 때, 다닥다닥 늘어나는 나// “세에탁~ 세에탁~”/

마음 세탁소 하나 생겼음 좋겠다.

- 김완기, 「세탁소」 전문

 

마음의 세탁소가 생겨 구겨진 옷을 세탁하듯 마음을 깨끗이 세탁한다면 참 좋을 것이다. “세에탁~ 세에탁~” 하는 세탁소 아저씨의 음성을 들으며 ‘묵은 때가 말끔하게/ 구김살이 반듯하게 되돌아오듯’ 시인은 ‘욕심 때. 가뭇가뭇 묻어 있는 나/ 게으름 때, 다닥다닥 늘어나는 나’를 깨끗하게 없애주는 ‘마음의 세탁소’가 있다면 좋겠다는 재미있는 생각을 한 것은 바로 ‘세탁소’를 ‘마음 세탁소’로 다르게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고정관념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없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 창작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을 없애고 하얀 백지 상태에서 출발한다면 사물이나 현상 등이 새롭게 인식되어진다. 새로움을 찾는 일이 바로 ‘낯설게 하기’ 이며 ‘다르게 보기’이다.

 

달님이 내려와/ 놀다 가는 우리 동네// 지팡이가 오르고/

연탄이 오르고/ 채소장사 쉰 목소리 오르다 마는 곳//

대학생 형 누나들이 다녀간 뒤/ 담벼락에선/ 너울너울

새가 날고/ 알록달록 꽃이 피고// 매일 아침/ 갈라진 벽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면// 사람들은/ 골목골목 그림책을

넘기며/ 꽃 계단을 오르내린다.

- 이유정, 「벽화마을」 전문

 

고정관념을 없애고, 하얀 백지 상태로 출발해야 새로움을 찾을 수 있으며 그 새로움이 바로 ‘낯설게 하기’ 이며 ‘다르게 보기’ 라고 앞에서 언급하였다. 위 동시 「벽화마을」은 ‘달님이 내려와/ 놀다 가는 우리 동네’ 는 달님 대신 그 빈자리를 ‘지팡이’, ‘연탄’, ‘채소장사의 쉰 목소리’ 가 채운다. 또 ‘대학생 형 누나들이 다녀간 뒤/ 담벼락’ 그 빈자리는 ‘새’와 ‘꽃’, ‘햇살’이 채워 마을 사람들은 ‘골목골목 그림책을 넘기며/ 꽃 계단을 오르내린다.’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고정관념’을 ‘달님’으로 비유를 한다면, 달님이 떠나 하얀 백지상태에서 새로움으로 찾아온 것들이 ‘지팡이’, ‘연탄’, ‘채소장사의 쉰 목소리’ 이다. 또 역시 ‘고정관념’이 바로 ‘대학생 형 누나들’이라 비유한다면, 그들이 떠나 하얀 백지상태에서 새로움으로 찾아온 것들이 ‘새’와 ‘꽃’, ‘햇살’이다. 이렇게 고정관념을 없애고, 하얀 백지상태로 두어야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고, 모든 것들을 새롭게 인식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인식들이 바로

낯설고 다르게 보이게 함으로써 어린이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주고,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에 관해 새롭게 지각할 수 있게 해준다.

 

사과나무 배나무를/ 흔들어대더니/ 하얀 바람은/드디어 하얀 꽃을 피웠다.//

개나리 가지 똑똑/ 흔들어 깨우더니/ 노오란 바람은/ 노오란 꽃을 피워/

활짝 웃는다.// 장미나무 가시 피해/ 봉숭아 꽃잎간질이더니/ 화장을 한

빨간 바람은/ 빠알간 꽃을 피운다.// 천연색 바람은/ 꽃 이름 불러 물들이고/

봄부터 사계절을 만든다.

- 조무근, 「천연색 바람은」 전문

 

‘하얀 바람’, ‘노오란 바람’, ‘빨간 바람’, 바람이 어떻게 색깔을 가지고 있으며, 천연색 바람은 또 무엇일까? 어린이 독자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이 ‘낯섦’이 시적 긴장을 가져오고, 그 시적 긴장은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위의 동시 내용을 다음과 같은 구도로 재미있게 요약할 수 있다.

 

하얀 바람 → 사과나무 배나무 → 하얀 꽃

노오란 바람 → 개나리 → 노오란 꽃

빨간 바람 → 봉숭아 → 빠알간 꽃

천연색 바람 → 꽃물 → 사계절

 

‘다르게 보기’란 단지 시각적인 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의 감각 기관 중 시각, 즉 눈은 대단히 중요하다. 모든 지식은 눈을 통해서 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볼 때, 우리 눈에 ‘있는 그대로’ 보아서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기보다는, 그에 앞서 들어와 있는 어떤 경험이나 지식에 의해 재해석된 모습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사람마다 재해석된 모습들이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르게 보기’는 시적 다양성으로 인해 흥미롭게 독자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다음 동시 「기와지붕처럼」 은 기와지붕의 모습을 의인화하여 기와지붕의 일상의 모습들을 시인의 눈을 통하여 새롭게 형상화시키고 있다. ‘다르게 보기’의 결과이다.

 

너랑/ 친구했으면 좋겠다.// 땡볕 아래서/ 함께 땀을 흘리던//

천둥 속에서/ 나란히 비를 맞던// 달빛 한 장 끌어 덮고/

팔베개를 나누던// 서로 등 기대고/ 한 하늘을 바라보던//

순이네 집/ 기와지붕처럼.

- 조기호, 「기와지붕처럼」 전문

 

지금까지 『오늘의 동시문학』 여름호에 발표된 ‘이 작가를 주목한다.’와 ‘여름을 여는 22인의 신작동시’를 중심으로 ‘낯설게 하기’ 또는 ‘다르게 보기’ 와 관련하여 몇 편을 대상으로 살펴보았다. 어린이 독자들에게 일상의 세계를 새롭게 경험하고, 자신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에 관해 새롭게 지각시키기 위해서는 ‘낯설게 하기’와 ‘다르게 보기’를 통한 동시 창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시적 형상화, 비유, 구성 등 다양한 장치와 표현방법을 통해서 느낌이나 생각을 새롭게 하여 표현할 때 가능하다. 위에서 거론한 몇 편 외에 다른 동시작품들 모두 여기에서 함께 거론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면관계로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490 [시공부 101] - 32... 2020-04-04 0 3173
1489 언어 - 마음의 소리, 문자 - 마음의 그림 2020-04-03 0 3474
1488 [시공부 101] - 31... 2020-03-28 0 3422
1487 [시공부 101] - 30... 2020-03-28 0 3233
1486 [시공부 101] - 29... 2020-03-28 0 3270
1485 [시소사전] - 서사시 2020-03-09 0 3774
1484 [시공부 101] - 28... 2020-03-08 0 3220
1483 [시공부 101] - 27... 2020-03-08 0 3006
1482 [시공부 101] - 26... 2020-03-08 0 3714
1481 [시공부 101] - 25... 2020-03-07 0 3041
1480 [시공부 101] - 24... 2020-03-07 0 3078
1479 [시공부 101] - 23... 2020-03-07 0 2523
1478 [시공부 101] - 22... 2020-03-01 0 3041
1477 [시공부 101] - 21... 2020-03-01 0 2647
1476 [시공부 101] - 20... 2020-03-01 0 2899
1475 [시공부 101] - 19... 2020-02-28 0 2828
1474 [시공부 101] - 18... 2020-02-28 0 2845
1473 [시공부 101] - 17... 2020-02-28 0 2606
1472 [시공부 101] - 16... 2020-02-25 0 2669
1471 [시공부 101] - 15... 2020-02-25 0 2747
1470 [시공부 101] - 14... 2020-02-25 0 2565
1469 [시공부 101] - 13... 2020-02-22 0 2893
1468 [시공부 101] - 12... 2020-02-22 0 2388
1467 [시공부 101] - 11... 2020-02-22 0 2908
1466 [시공부 101] - 10... 2020-02-04 0 2995
1465 [시공부 101] - 9... 2020-02-04 0 2935
1464 [공부공부공부] - "이(머릿니)타령" 2020-02-02 0 2751
1463 [공부공부공부] - "서캐타령" 2020-02-02 0 2468
1462 [시공부 101] - 8... 2020-02-02 0 2679
1461 [시공부 101] - 7... 2020-02-02 0 2381
1460 [시공부 101] - 6... 2020-02-02 0 2667
1459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저작권보호문제", 남의 일이 아니다... 2020-02-02 0 2794
1458 [그것이 알고싶다] - "판도라" 2020-02-01 0 4107
1457 시와 그림, 그림과 시 2020-01-30 0 3855
1456 시와 문장부호 2020-01-30 0 2639
1455 [시공부 101] - 5... 2020-01-30 0 2738
1454 [시공부 101] - 4... 2020-01-30 0 2631
1453 [시공부 101] - 3... 2020-01-30 0 2403
1452 [시공부 101] - 2... 2020-01-30 0 2660
1451 [시공부 101] - 1... 2020-01-30 0 2493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