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보물 + 뒷간
조선시대를 다룬 수많은 책 가운데서도 이 연구서는 무척 새롭다. 사람 대신 사람을 둘러싼 '환경'을 중심에 놓은 저작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사 연구로 한국교원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서울대에서 수의과학·역사학 학제 간 연구에 참여했고, 생태환경사로 연구 범위를 넓혔다. 그는 이 책에서 '한반도의 자연환경은 산업화가 시작된 20세기에 들어와 망가지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짐작에 쐐기를 박는다. 이미 15~19세기 조선시대에 이 땅의 생태 환경이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는 얘기다.
사람 때문에 바뀐 환경은 또 다시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한번 환경이 바뀌면 이전과 같은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연구의 근거 중 대부분이 '기록의 왕국'이라 할 조선의 각종 문헌인 점도 흥미롭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비롯한 공식 기록은 물론 '임하필기' '산림경제' '수운잡방' 같은 개인 저술이 다양하게 응용된다.
예를 들어 15세기의 임목 축적량(단위 면적당 살아있는 나무의 부피)을 추산하기 위해 저자는 '경국대전'을 조사한다. 관청인 사재감·선공감에서 1년에 거둬들인 땔감의 양과 이 관청들이 나무를 가꿔 벌채하던 시장(柴場)의 면적을 따지고 땔감 채취 주기를 60년으로 했다. 그 결과 임목 축적량은 1㏊당 600㎥ 이상이었던 것으로 계산됐는데, 2010년의 임목 축적량이 1㏊당 125㎥인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풍성한 산림이 존재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것이 1910년 조사에서는 15세기의 7%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던 것이다.
환경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기도 했다.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줄어든 반면, 농사에 꼭 필요한 가축은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조선 초만 해도 2만~3만 마리 정도였던 소는 16세기에는 40만 마리가 됐고, 17세기엔 100만 마리에 이르게 된다(2010년 현재 국내 소는 268만 마리). 소는 누가 키우나? 농민이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소는 부와 권력의 상징에서 보편적 농업의 동반자로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가축과 야생동물의 접촉이 늘어나면서 미생물계에도 변화가 생겨나 전염병이 창궐하기도 했다. 소 때문에 번성한 홍역과 천연두는 숱한 인간을 고통에 빠뜨렸다, 저자는 기후변화, 종(種) 다양성의 감소, 바이러스 변이 등 현재의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과거 생태 환경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위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현대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