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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미국적 시인 - 칼릴 지브란
2017년 02월 19일 19시 11분  조회:4926  추천:0  작성자: 죽림

칼릴 지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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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릴 지브란
1913년 4월, 칼릴 지브란
1913년 4월, 칼릴 지브란
출생 1883년 1월 6일
오토만 시리아, 브샤리(Bsharri)
사망 1931년 4월 10일 (48세)
미국뉴욕
직업 시인화가조각가작가철학자신학자, 시각 예술가
국적 레바논-미국
장르 비유, 단편 산문
사조 뉴욕 펜 클럽
대표작 예언자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본명 지브란 카릴 지브란 빈 미카일 빈 사드, ‏아랍어: جبران خليل جبران بن ميخائيل بن سعد‏‎, 1883년 1월 6일 ~ 1931년 4월 10일)은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예술가이며, 시인, 작가이었다. 그 당시 오토만 시리아의 영토이었던 근대 레바논의 브샤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는 미국에서 예술을 공부하고,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1923년작 예언자는 영어 산문체로 쓴 철학적 에세이 연작 중 하나이다. 영감이 넘치는 창작의 초기 사례에 해당하는 이 책은, 냉담한 비평적 평판을 받았지만, 잘 팔렸고, 1960년대 반(反) 문화의 창작물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되었다.[1]

 

 

유년 시절[편집]

레바논에서[편집]

지브란은 오늘날 레바논의 북부에 위치한, 기독교 분파인 마론 교회의 신자들이 모여 사는 브샤리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마론파 가톨릭 성직자이었다.[2] 그의 어머니 카밀라는 서른 살에 지브란을 낳았다. 그의 아버지는 이름이 칼릴이었고, 어머니에게는 세 번째 남편이었다.[3] 가정이 가난했기 때문에, 지브란은 어린 시절에 어떠한 정규 교육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정기적으로 그의 집을 찾아와 그에게 아랍어와 시리아 언어로 기록된 성서를 가르쳐 주었다.

지브란의 아버지는 약국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도박으로 진 빚을 갚을 수 없게 되자, 오토만 정부에서 임명한 지방의 관리[4] 또는 장군으로 일하게 되었다.[5] 그의 통치에 대해 화가 난 백성들의 불만이 확산되었기 때문에, 행정관은 지브란의 아버지를 1891년 경에 관직에서 쫓아냈다.[6]. 지브란의 아버지는 횡령 혐의로 감옥에 갔고,[1] 오토만 황제의 관리들은 그의 가족이 지닌 재산을 몰수하였다. 머무를 집조차 없는 상황에서, 지브란의 어머니는 그녀의 친척을 뒤따라 미국으로 이민 가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브란의 아버지는 1894년에 감옥에서 풀려 났지만, 카밀라 지브란은 한 번 내린 결정을 바꾸지 않았고, 아들 칼릴과 칼릴의 어린 여동생들인 마리아나와 술타나, 그리고 칼릴의 이복 형제인 피터를 데리고 1895년 6월 25일 뉴욕으로 향했다.[4]

미국에서[편집]

 
프레드 홀랜드 데이가 찍은 칼릴 지브란 사진, 1898년

지브란은 보스턴의 사우스 엔드에 정착했다. 그 당시 그 곳에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시리아/레바논계 미국인 공동체가 있었다.[7] 그의 어머니는 여자 재봉사로 일하기 시작했다.[6] 그의 어머니는 레이스 장식이 달린 옷과 아마포로 만든 옷을 팔려고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녔다. 지브란은 1895년 9월 30일에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 당국은 이민자를 위한 영어 학습 과정에 그를 배정하였다. 지브란은 정착촌 주변에 있던 예술학교에도 등록하였다. 그 학교의 교사를 통해서 그는, 아방가르드 보스턴 예술가이자 사진사이며 출판업자이었던, 프레드 홀랜드 데이를 소개 받았다.[1] 프레드는 지브란의 창작 노력을 격려하고 후원했다. 1898년 한 출판업자가 지브란의 그림 중 일부를 책표지로 사용했다. 지브란의 어머니는 지브란의 형인 피터와 뜻을 같이하여, 지브란이 그가 당시에 매력을 느끼던 서구의 심미적인 문화보다 태어난 나라의 전통적인 문화에 더 많이 동화되길 원했다.[6] 15세에 지브란은 베이루트에 있는 고등교육 기관과 마론교회가 운영하는 입시 준비 학교에서 공부하려고 레바논으로 돌아갔다. 그는 학생 문학 잡지를 동급생과 함께 만들기 시작했고, "학교 시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몇 년간 레바논에 머물던 그는 1902년 5월 10일에 엘리스 섬을 통해 보스턴으로 돌아왔다.[8] 그가 돌아오기 2주 전에, 그의 여동생 술타나가 결핵으로 1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다음 해에는 그의 형제인 브후트로스가 같은 결핵으로 숨졌고, 그의 어머니는 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또다른 여동생 마리아나는 자신이 여성복 양장점에서 일하면서, 지브란을 뒷바라지하였다.[1]

예술과 시[편집]

지브란은 그의 첫 번째 그림 전시회를 1904년 보스턴에 있는 데이의 스튜디오에서 열었다.[1] 전시회를 여는 동안에, 지브란은 훌륭한 여교장으로 그보다 10년 연상인 메리 엘리자베스 해스켈을 만났다. 해스켈과의 중요한 우정은 지브란의 나머지 생애동안 지속되었다. 해스켈은 지브란의 개인적인 삶과 그의 창작 활동 모두에 영향을 끼쳤다. 지브란은 1908년에 파리에 가서 아우구스테 로딘과 함께 2년동안 예술을 공부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평생 친구이자 예술적 동료이었던 유세프 호와예크(Youssef Howayek)를 만났다. 그는 이후에 보스턴에서 예술을 공부했다.

지브란과 알고 지낸 사람이었던 줄리엣 톰슨은, 지브란의 여러 일화를 기록했다.[9] 그녀는 지브란이 바하이 신앙의 리더로서 대략 1911년[4]에서 1912년 경에 미국을 방문한[9] 압둘-바하를 만났다고 적었다.

지브란의 초기 작품은 거의 대부분 아랍어로 기록되었고, 1918년 이후에 출간된 그의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영어로 기록되었다. 그의 첫 번째 책은 알프레드 노프 회사에서 1918년에 "미친 사람"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두께가 얇은 그 책은 성서적 운율을 따른 경구와 비유를 담고 있으며, 시와 산문의 중간 쯤에 해당하는 문체를 지니고 있었다. 지브란은 또한 뉴욕 펜 연맹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이민자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레바논계 미국인 작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지브란은 작품에서 기독교를 많이 다루었는데, 특히 영적인 사랑의 주제를 즐겨 다루었다. 그의 시는 영감이 충만한 말로 삶의 화두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고, 그뿐 아니라 형식적인 언어의 사용으로도 주목받았다. 지브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예언자"는, 스물 여섯 편의 시적인 산문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죽음과 유산[편집]

 
워싱턴 D.C.의 칼릴 지브란 기념물
파일:Gibran Museum.jpg
지브란 박물관과 지브란의 무덤, 레바논 브샤리에 있다.

지브란은 뉴욕에서 1931년 4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사망의 원인은 간경변과 폐결핵이었다. 죽기 전에 그는 레바논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다. 그 소원은 1932년에 이루어졌다. 메리 해스켈과 그의 언니 마리아나가 레바논에 있는 마르 사르키스 수도원을 구입했고, 그 곳에 지브란을 묻고, 지브란 박물관을 세웠던 것이다.

기념물[편집]

작품[편집]

아랍어:


  • 누브사흐 피 판 알무지카 (1905)
  • 아라이스 알무루즈 (골짜기의 요정, 1906)
  • 알아르와 알무타마르리다 (반항하는 영혼, 1908)
  • 알아즈니하 알무타카스시라 (부러진 날개, 1912)
  • 다마 와 이브티사마 (눈물 한 방울과 웃음 한 조각, 1914)
  • 알마와키브 (행렬, 1919)
  • 알하와시프 (폭풍우, 1920)
  • 알바다이 와알타라이프 (새롭고도 놀라운,1923)

영어:


  • 미친 사람 (1918) 
  • 스무개의 그림 (1919)
  • 선구자 (1920)
  • 예언자 (1923)
  • 모래와 거품 (1926)
  • 상상의 왕국 (1927)
  • 예수, 사람의 아들 (1928)
  • 지구 신 (1931)

사후 출간, 영어:


  • 방랑자 (1932)
  • 예언자의 정원(1933)
  • 나사로 그의 사랑 받은 자 (1933)
  • 산문과 시 (1934)
  • 자화상 (1959)
===============================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
절반만 친구인 사람을 접대하지 말라...
절반만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하지 말라
절반의 인생을 살지 말고, 절반의 죽음을 죽지 말라

침묵을 선택했다면 온전히 침묵하고
말을 할 때는 온전히 말하라
무엇인가를 말하면서 침묵하지 말고
침묵하면서 말하지 말라
받아들인다면 솔직하게 표현하라
감추지 말라
그리고 거절한다면 분명히 하라
불분명한 거절은 나약한 받아들임일 뿐이므로

절반의 해결책을 받아들이지 말고
절반의 진실을 믿지 말라
절반의 꿈을 꾸지 말고
절반의 희망에 환상을 갖지 말라
절반의 물은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하고
절반의 식사는 배고픔을 채우지 못한다
절반만 간 길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며
절반의 구상은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한다

그대의 다른 절반은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그대
그대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절반의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
그대가 하지 않은 말이고
그대가 뒤로 미룬 웃음이며
그대가 하지 않은 사랑이고
그대가 알지 못한 우정이다
도달했지만 도착하지 않은 것이고
일했지만 일하지 않은 것이고
참석했지만 결국 참가하지 않은 것이다

그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대를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이 그것이고
그들을 그대에게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절반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그대는 할 수 있다
그대는 절반의 존재가 아니므로
그대는 절반의 삶이 아닌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하는
온전한 존재이므로

- 칼릴 지브란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말라> (류시화 옮김)

 


가장 나쁜 사랑은 절반만 사랑하는 것이고, 가장 불행한 사랑은 절반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장 무의미한 명상은 절반의 마음만 앉아 있고 절반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지루한 삶은 마음 밑바닥에서 잠든 채 반쯤 깨어 있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반의 의욕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예언자>의 시인 칼릴 지브란(1883~1931)이 쓴 시다.

레바논 베샤레 마을의 삼나무 계곡에서 태어나 뉴욕 맨해튼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살다가

독신으로 생을 마쳤지만, 그의 정신은 일생 동안 삶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에 대한 해답을 추구했다.

 우리의 삶은 지금 이 순간과의 결혼이다.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고 온전히 사랑하는 것만이 우리의 영혼을 해방시킨다.

세계적인 작문 지도 교수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말했다. 그것은 모든 일에 해당된다.

뼛속까지 느끼고, 뼛속까지 사랑하고, 뼛속까지 경험하는 것.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순간들은 그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부재하는 이 삶을 견디고 있는가.

이 지상에서 무엇인가에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마음을 쏟아 어떤 일을 할 때 우리는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우리 존재에 대해 갖는 기쁨이다.

 
/////////////////////////////////////////////////////



 

 칼릴 지브란의 편지

    - 살아남아 고뇌하는 이를 위하여

1.
술이야 언젠들 못 마시겠나
취하지 않았다고 못 견딜 것도 없는데
술로 무너지려는 건 무슨 까닭인가

미소 뒤에 감추어진 조소를 보았나
가난할 수밖에 없는 분노 때문인가
그러나 설혹 그대가 아무리 부유해져도
하루엔 세 번의 식사만 허용될 뿐이네

술인들 안 그런가, 가난한 시인과 마시든
부자이든 야누스 같은 정치인이든
취하긴 마찬가지인데
살아 남은 사람들은
술에조차 계급을 만들지

2.
세상살이 누구에게 탓하지 말게
바람처럼 허허롭게 가게나
그대가 삶의 깊이를 말하려 하면
누가 인생을 아는 척하려 하면
나는 그저 웃는다네

사람들은 누구나 비슷한 방법으로 살아가고
살아 남은 사람들의 죄나 선행은 물론
밤마다 바꾸어 꾸는 꿈조차
누구나 비슷하다는 걸
바람도 이미 잘 알고 있다네


3.
사람들은 또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산다네
누군가 실수라도 하면
"나는 괜찮은데 남들이 무어라 하겠나"
그윽한 목소리로 질타를 시작한다네

그러나 보게나, 조금은 빠르게
아니면 조금은 늦겠지만
삶에 대하여 모두들 잘 알고 있는 데도
세상에는 벙어리나 부러워할
수다쟁이와 시인
성직자 그리고 교수가 넘친다네

4.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스치며
울고 웃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누가 이제 남아서 내게 미소를 보내겠나

그대의 삶이 아무리 엄청나 보여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듯이
그대가 나와 함께 누우면
너만이라든가 너만을 위해서라는
언약이나 속삭임도 바람처럼 흩어지고

세월은 또 가고
어제처럼 새들이 울고 꽃이 피고
살아 남은 사람들은
또 서로의 매듭을 만들고


5.
그리고 무엇인가를 소유하려 들지
재물이라든가 권력이라든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또 누군가를

그러나 진실로 무엇인가 소유하고 싶으면
그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네
설혹 무엇인가 소유했을지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대가 내 곁으로 올 때는
그와 잡았던 손을 놓아야만 한다네

사람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
모두에게 자유를 주고
모두로부터 자유로울 때
진정 살아 행복할 수 있다네

6.
살아 숨쉬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길가의 들꽃인들 마구 딸 수 있겠는가
아름답다 느끼는 건 그대의 마음
보듬고 싶다는 건 그대의 욕심
꺾이는 순간이 뜰꽃에겐 종말이라네

낚시에 걸려드는 고기를 생각해 보았나
한끼의 식사를 취하려다 매달리는 물고기를
그 또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
함께 사는 네 이웃을 헤아릴 수 있을 때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진정 그대에게 환희가 있다는 말에
예수나 석가의 이름을 빌려야 하나
그들인들 그대를 대신해 살아 주겠나

7.
태양을 보게나
살아 남아 있는 동안
얼마나 태양을 보며 푸른 하늘과 숨을 쉬겠나

등을 돌리면 보이는 건 그림자뿐
아무리 그대가 삶을 버리고 싶을 만큼
지쳐 있다 해도 나는 부러워하지
그대의 한숨이나 눈물도
무덤 속보다는 행복하지 않은가

비록 여기는 죄인도 판사도 없고
그 누구에게 지배받지도 않지만
모차르트도 연주를 멈추었고
고호도 붓을 놓았다네

8.
때때로 임종을 연습을 해두게
언제든 떠날 수 있어야 해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고 나면
슬픈 기색을 보이던 이웃도
이내 평온을 찾는다네

떠나고 나면 그 뿐
그림자만 남는 빈 자리엔
타다 남은 불티들이 내리고
그대가 남긴 작은 공간마저도
누군가가 채워 줄 것이네

먼지 속에 흩날릴 몇장의 사진
읽혀지지 않던 몇 줄의 시가
누군가의 가슴에 살아 남은 들
떠난 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9.
그대
무엇을 잡고 연연하며
무엇 때문에 서러워하나
그저 하늘이나 보게.

----------------

칼릴 지브란에 대하여. 


칼릴 지브란 (Kahlil Gibran, 1883.12.6 ~ 1931.4.10)

철학자· 화가· 소설가· 시인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레바논의 대표작가. 
[국적] 레바논 
[활동분야] 문학, 미술, 철학 
[출생지] 레바논 북부 베샤르(베챠리) 
[주요작품]《예언자》《모래·물거품》《방랑자》《부러진 날개》等 

 


===================

 

 예언자

 

칼릴 지브란

 

그러나 그대들이 같이 있음에 공간이 있게 하라.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로 춤출 수 있도록.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의 구속을 만들지 말라.

 

그대들 영혼의 해변에

일렁이는 바다가 있게 하라.

 

상대방의 잔을 채워주되 한 잔으로 마시지 말라.

당신의 빵을 상대방에게 주되 같은 빵을 서로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즐거워하라.

그러나 각자는 혼자 있도록 하라.

 

마치 거문고의 줄이

 같은 음악을 따라 움직이면서도 혼자 있은 것과 같이.

 

너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주되, 상대방이 소유하지 않게 하라.

생명의 손만이 너의 마음을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느니라.

 

같이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지 마라.

 

성전의 두 기둥은 서로 떨어져 있으며

참나무와 사이프러스나무는 상대방의 그늘에서 자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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