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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천년을 기다려서 터지는 샘물이여야...
2017년 03월 03일 17시 00분  조회:2377  추천:0  작성자: 죽림

 

 

 





 

 詩 쓰는 사람이 착한 이유 /윤성택      

 


1. 들어가는 글 

詩 쓰는 사람이 착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칸트의 미학에서 찾고자 한다. 물론 내가 詩를 쓰는 문청文靑이기에 갖고자 하는 답은 아니다. 이 시대가 갖고 있는 어두운 면들을 살펴볼 때 詩를 쓰는 사람이라도 착한 사람이었음 하는 바램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해 이 시대의 詩人들에 대한 나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미학을 다룬다. '자연의 목적론'이라 하기도 하고 '유기체철학'이라고 하기도 하는 그의 철학세계를 접하다 보면 한 가지 답에 도달하게 된다. 도덕적 감수성이 선행되어야 진정으로 미를 감상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이 말의 이면에는 詩 쓰는 사람이 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내포하고 있다. 칸트가 말한대로 자연미와 도덕성에 관련지어 알아보기로 하자. 


2. 몸 글 

예전에 나는 수원 근교에 있는 광교산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산 정상에 올라 가뿐 숨을 내쉬며 산의 아름다움에 취해 한동안 멍하니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詩를 썼었다. 


빈몸으로 나를 초대하는 나무들이 있다 
걷다 보면 산은 돌아누우며 어느새 
좁은 샛길을 열어 보인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오르는 것이 산 앞에 조금 더 겸손해 질 즈음 
바람은 나뭇가지를 빗질하며 
눈부신 햇살을 쏟아 놓는다 
좁은 길 하나 사이로 서로 뿌리를 잇대고 
가지를 잇댄 나무들 
사랑하라 사랑하라 
고개를 끄덕이며 귀엣말로 속삭이는 것 같다 

언제나 갑갑한 넥타이에 매여 
꽉찬 만원버스에 섞여 
이정표도 없이 
지금껏 얼마나 흘러 왔던가 

세상 살아가며 
한 해 한 해 나이테를 생각하며 
봄산에 올라간다 묵묵히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의 수화를 배우러 간다 
층계를 밟아 오르며 나를 짓눌렀던 
삶의 무게 떨쳐 버리고 싶을 때, 

하늘을 나누어 이고 
서로 넉넉히 몸 맞대다 보면 알 수 있을까 
저 아래 도시에서 키웠던 허물 많은 것들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얼마나 슬퍼지는가를 
가리울 것 없는 이른 봄산에 올라서면, 
나의 황량한 정신에 초록 물을 
들이고 싶다. 

― 이른 봄산을 오르다, 윤성택 


물론 나는 진정한 詩人이 못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진정한 詩人이 되고 싶어한다. 그 간절한 바램처럼 자연 속에서는 노래가 있다. 들판에는 풀잎과 동물들이 부르는 노래가 널려 있으며, 하늘에는 별과 바람이 부르는 대자연의 합창이 메아리친다. 진정한 詩人은 그 소리를 주의 깊게 듣고 공감한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의 관찰은 그 사람에 대한 정신의 깊이와 섬세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이러한 아름다움을 통해서 도시의 세속적인 소음을 극복하려는 충동을 가지게 된다. 그 아름다움을 고찰 할 수 있는 예술가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진정한 詩人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칸트는 도덕성이 자연에 의해서 투사되는 것이 아름다움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자연의 목적론은 법칙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 자연의 유기적 질서와 근원을 탐구한다는 이론을 보인다. 이러한 노력은 취미 능력과 많은 상관관계를 가진다. 칸트의 취미능력은 바움가르텐으로부터 쉴러에게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한다. 미적인 것에 대한 즉각적인 반성적 판단력이 취미 능력이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누구나 선천적으로 미를 판단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인정하고 거기서 보편적인 도덕성을 계발시켜야 하는데, 그러한 원리를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취미비판이라고 말한다. 잠깐 더 자세히 들어가자면, '이것이 아름답다!'라고 말할 때 거기서 드러나는 미적 판단의 분석을 칸트는 성질, 양, 관계, 양태의 네 가지로 분석을 했었다. 
어쨌든 칸트는 미적 형식이 갖고 있는 특성은 목적 없는 한 목적성으로서 유기적 통일적인 질서구조가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진정 자연의 아름다움은 예술미의 모범성이 된다. 인간이 도덕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을 때 자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 자연이 마치 누군가 창조한 예술작품처럼 보일 때 아름답게 느낀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기막힌 자연을 창조한 사람이 누구냐라는 자연의 기술 앞에서 창조주에게 겸허함과 경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누가 쓴 편지일까? 
거미가 소인을 찍고 
능금나무가 저렇게 예쁜 우표를 붙인. 

― 가을 하늘, 김영남 

칸트가 말하듯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암호를 해독하는 임무를 지닌 사람은 이렇듯 예술가이다. 또한 칸트는 '천재는 자연의 총아이다'라고 말한다. 자연을 해독하는 상상력의 중요성을 보이는 것인데 여기서 이러한 천재는 천성이며, 교육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칸트는 지적한다. 그래서 일까. 詩人은 고민한다. 자연 앞에서 해독되어지는 많은 것들이 천재가 아님으로 드러나는 일말의 불안감! 


그는 그때 
구름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을 뚫고 
터져 흐르는 상처, 따가운 햇살 같은 상처를 
아름다움이라고 해독했다 
아름다움의 가장 처절한 結晶 
단단한 바위 속의 어둠을 깨기 위해 
천년을 기다려서 터지는 샘물 
차가우면서 때로는 따사롭게 느껴지는 그것을 
그는 눈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 땅의 도처에 살아 움직이는 
눈물의 내력을 모른다 
눈물의 가장 단단한 부분과 부드러운 부분이 
어떻게 만나서 어둠 속에 함께 녹아 흐르는지 
알지 못한다 
내 주위의 싱싱한 풀들이며 바위며 샘물들 
그가 이 땅에 풀어놓은 온갖 언표들을 
나는 쉽게 해독할 수가 없다 
무지한 내 생각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늘도 이 땅의 책들 위엔 이상한 꽃이 피고 
이상한 열매가 맺히고 이상한 향기들이 
춤을 추고 있다 

누군가 나를 읽고 있다 

― 이상한 독서 (2, 3연), 박남희 


결국 칸트는 진정한 예술은 자연처럼 보이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천재의 자연적인 능력은 미적인 정신과 맞닿아 있고, 이러한 미적 정신은 상상력과 지성의 자유로운 놀이에서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서 인간의 선천적인 내부의 것을 감성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미적 이념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쉴러가 말한 미적 직감 능력처럼 천재는 미적 이념을 표현해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퓨즈가 나간 숲은 깜깜하다. 나무 꼭대기 새집조차 어둡다. 길이란 길은 모두 지워지고 온전한 것이 있다면 푸르던 기억에 항거하는 단단한 그리움이다. 
한계절 사랑의 불 환하게 밝혔던 나무들, 열매들, 그리고 새들, 그 사랑의 흔적을 罪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물론 그냥 상처다. 이 겨울의 어둠 아니 한줄기 빛을 참고, 그래 빛이야말로 얼마나 많은 것들에게 상처가 되었나. 눈부신, 찬란한, 아름다운 따위의 형용사와 눈이 맞아 저지른 빛의 횡포, 가지마다 넘치는 축복인 양 위선의 잎새 덕지덕지 달아주며 오늘의 상처를 마련했었다. 누구라도 헛발 자주 내딛고 나뒹굴던 시절, 쌈짓돈마냥 숨겨둔 사랑의 잎새 하나만 있어도 가슴은 이리 훗훗한 그리움이다. 
어딘가에 한 뭉치 퓨즈가 분명 있을 것이다. 계절과 계절의 끈을 잇고 명치 끝을 꾸욱 누르면 혼곤한 잠의 머리 절레절레 흔들며 숲은 그날처럼 홀연히 일어날 것이다. 때문에 새들은 이 겨울 떠나지 않고 하늘 받들어 빈 숲을 지키고 있다. 

- 퓨즈가 나간 숲, 한혜영 


칸트 식으로 말하자면, 생명을 창조하는 것처럼 예술가는 예술작품을 남긴다. 예술작품은 곧 삶을 해석하는 것이며 그리고 매우 독창적이다. 여기서는 모방이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유일한 작품인 것이다. 
미학에는 두 가지 방법론이 있다. 하나는 '인식으로서의 예술'인데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과 행위로서의 통합으로 이어져 근대 미학으로 감성적 인식의 최초였던 바움가르텐, 영국의 경험론이었던 칸트, 그리고 현대의 분석미학, 현상학적 미학을 등을 꼽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행위로서의 미학'예술로서 쉴러, 헤겔, 신막스주의의 미학으로 들을 수 있다. 이러한 미학을 살펴볼 때 칸트의 미학은 단연, 도덕적 감수성이 선행되어야 진정으로 미를 감상할 수 있다는 결론을 생각하게 만든다.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 그 아름다움의 탐구에서 헤겔은 미적가상이라고 말했고 칸트는 미적 이념의 표현이다라고 말했다. 그러한 인상적이면서 경험적인 바탕을 둔 칸트 미학은 숭고미에 중점을 둔다. 도덕적으로 접근하여 마치 거대한 성당에 들어갔을 때 거기서 느끼는 경외감, 즉 종교적 신성미 등을 그는 중요시했다고 본다. 


고드름 기둥 
층층이 얼어붙은 
층암절벽에 
소나무 한 그루 
눈을 이고 서서 
희망과 절망의 수십 년 세월 
안간힘으로 뻗어간 뿌리의 용틀임과 
뿌리가 엉키는 자리에 터잡은 
어린 진달래의 
녹두만한 꽃눈을 
바람 타고 나는 
기러기 소리 들으며 시리게 바라보네. 

- 세한도, 최두석 


결국 칸트는 예술미와 자연미의 비중을 생각했을 때 자연미 쪽에 좀더 비중을 두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 나오는 글 

음악의 성인이라 불리우는 악성 베토벤이 존경하는 철학자는 칸트였다. 그의 생전에 음악 악보에는 칸트의 실천이성 이론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칸트의 미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미학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도덕적 감수성이 선행되어야 진정으로 미를 감상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그 바탕은 참으로 詩人이 선할 수밖에 없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 준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선천적으로 미를 판단하는 능력이 있으며,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도덕적 심성에서 우러난다는 절대절명의 명제에서 알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아름답지 못하다라고 아우성치면서 위장된 절망과 죽음을 외치는 무리들, 아니면 미증유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고 외치면서 이 시대와 야합하여 살아가는 불나방 같은 무리들. 그 진흙탕 속에서 시를 일구어 내는 진정한 시인을 그리워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동양의 예로볼 때 공자는 공자어록에서 '시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말할 게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다. 시를 배움이 곧 말배움임을 뜻하면서 시가 말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하물며 이 어두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지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만드는 좋은 예이다. 
나는 솔직히 칸트의 미학을 공부하면서, 간절한 소망 하나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시대의 시인은 분명 착해야 되는 것이며,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암호를 해독하는 그 작업이야말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시인의 길이라고 믿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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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춘(江南春) ―이흔복(1963∼ )

산에 산에 두견 너는 어이 멀리를 우짖는가. 너는 어이 가까이를 우짖는가. 달 가운데 계수나무 그늘도 짙을러니 내 후생하여 너를 엿듣는 봄은 이리도 화안히 유난하다.

일찍이 내가 먼 곳을 떠돈 것이 내가 나를 맴돎이었으니, 미쳐 떠돎이 한결같이 쉬지 않았으니 도화는 붉고 오얏꽃은 희며 장미꽃은 붉다.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가끔 슬쩍 앞자리를 다투는 듯 나고 죽고 가고 온다.

날마다 당당(堂堂)하여 천천만만의 산 멀리서 바라볼 때는 앞에 서 있더니 어느새 뒤에 서 있다.

 

 

오늘 맑은 바람만 두루 불어 뿌리 없는 눈(眼) 속의 꽃을 오며 흩고 가며 흩으면서 그침이 없으니 아름다운 날들은 점점 멀어지고 나는 홀연 서러워진다.



 

 

이 시가 담긴 시집 ‘나를 두고 내가 떠나간다’는 인간 사회를 떠나 산으로 들로 섬으로 떠돌면서 달에서도 바람에서도 산천초목에서도 무상한 존재인 ‘나’를 확인하는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내 후생하여 너를 엿듣는 봄’, 후생이라니! ‘오, 내 몸……오오, 내 사랑하는 몸!/나는 내가 내 몸을 벗었을 때 울었다’(시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 죽음을 겪었으나 미처 몸은 이승을 떠나지 못했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이후의 삶은 덤이니 ‘후생’과 다를 바 없을 테다. 두견새 멀리서 가까이서 우짖고 ‘달 가운데 계수나무 그늘도 짙’은, ‘이리도 화안히 유난’한 봄! ‘도화는 붉고 오얏꽃은 희며 장미꽃은 붉다’! 이 선연한 생의 감각! 그러나 중음신처럼 떠도는 존재에게는 스며들지 못하고 겉돌리. 

제 생명의 유한(有限)함에 질겁해서 그 너머의 무엇을 찾아 헤매는 유정(有情)한 존재의 서럽고 쓸쓸한 마음이 유장한 시어로 아득히 펼쳐진다. ‘나란 무엇인가?’ ‘인생은 무엇인가?’ 아득한 질문을 좇아가는 데는 따로 힘이 필요하리라. 그 힘은 당장 생존에 급급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있어야 낼 수 있을 테다. 지난 시절에 사회의 불의에 나서서 저항한 젊은이들 중에 살 만한 집 자식이 많았던 소치다. 먹고사느라, 등록금 버느라 쫓기면서 사회에 눈을 돌리기는 쉽지 않다. 삶의 격을 높일 기회도 평등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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