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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나 독수리로 사냥하며 즐기는것도 "스포츠"라니?!...
2017년 03월 09일 19시 47분  조회:7564  추천:0  작성자: 죽림

요약 나 독수리를 사냥하며 즐기는 스포츠.
hawking이라고도 함.

역사

매사냥은 인간이 선사시대부터 즐긴 고대의 오락이다.

BC 8세기에 아시리아에서 매사냥을 했다는 증거가 있다. 유럽과 영국의 상인·모험가·십자군들은 동양의 매사냥에 익숙해졌고, 고국으로 돌아갈 때 매와 매사냥꾼을 함께 데리고 갔다. 이것은 중세에 서유럽과 영국제국 특권층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다. 17세기에 산탄총이 도입되고 공유지가 사유지가 되는 한편, 역사가 오래된 나라에서 수많은 사회적 격변이 일어나자 매사냥은 거의 사라졌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는 주로 매사냥 클럽 회원들의 활발한 활동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다.

중세 유럽 귀족들의 매 사냥
중세 유럽 귀족들의 매 사냥

중세 유럽, 영국귀족이 매사냥을 즐기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영국에서는 1770년경 영국매사냥꾼협회가 결성되었지만, 1838년 당시 협회 간사였던 버너스 경(卿)이 죽자 해체되었다. 영국 동부지방에 있는 매사냥 클럽의 송골매들이 주로 잡는 백로가 드물어지고 매사냥꾼들의 사냥터인 황야가 개간되었기 때문에 매사냥의 중심이 영국에서 네덜란드로 옮겨갔으며, 1839년에는 네덜란드 국왕인 빌렘 2세의 후원으로 영국과 네덜란드 연합의 루 매사냥 클럽이 결성되었다.

이후 8년 동안 1,500마리의 백로를 잡았다. 1853년 왕이 후원을 철회하자 루 클럽도 사라졌다. 영국에서는 몇몇 아마추어와 그들에게 고용된 전문 매사냥꾼들이 명맥을 유지하다가, 1864년 윌트셔다운스를 휘젓고 다니는 떼까마귀를 잡기 위해 영국 올드 매사냥 클럽이 결성되어 1926년까지 존속했다.

1927년에 결성된 영국매사냥꾼 클럽은 20세기 후반에 약 250명의 회원(절반 이상이 영국인)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약 30명만이 직접 매를 키우면서 매사냥을 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액종증이라는 토끼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퍼지면서 토끼의 수가 줄고 옛날부터 잡아온 사냥감이 대부분 보호동물 목록에 올라 이 스포츠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다. 올빼미를 비롯해 사냥감이 되는 영국의 모든 조류가 법률의 보호를 받게 되었고, 매사냥꾼이 매사냥을 위해 새끼 매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내무성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야생생물보호, 수렵법).

유럽의 다른 나라에는 아직까지 매사냥 클럽이 존재한다.

프랑스의 샹파뉴 클럽은 1870년에 사라졌지만 프랑스 매사냥꾼협회라는 조직이 있다. 독일에서는 1923년 결성된 독일 매사냥꾼 클럽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에도 매사냥꾼 클럽이 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1,400명의 회원을 보유한 북아메리카 매사냥꾼협회가 매사냥을 대표하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지금도 매사냥을 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페르시아 만 연안의 족장들은 느시류를 잡기 위해 바다매를 훈련시키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펀자브 지방과 파키스탄의 북서부 변경지방에서는 매사냥꾼들이 매류를 이용하여 오리류를 잡고, 참매류를 이용하여 자고새류를 잡는다. 라호르와 암리차르에서는 매의 다리에 방울을 만들어 단다. 일본에는 몇 명의 매사냥꾼이 있는데 이들은 산에서 사는 뿔매로 토끼를 잡고, 참매로 꿩을 잡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으며, 매사냥을 다룬 잡지기사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매사냥 기술을 다룬 옛날의 전문서적들이 다시 간행되면서 새로운 매사냥 애호가들이 늘고 있다.

새와 기술

매류·올빼미류·독수리류는 육식성 야생 조류로 생존하기 위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

인간이 기술과 끈기로 이 새들을 훈련하면 특정한 사냥감을 잡아서 먹어치우지 않고 가져오도록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어떤 새는 타고난 기질과 비행습성 때문에 다른 새보다 사냥에 더 적당하기도 하다. 오랫동안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새는 사냥에 알맞는 특성을 모두 갖고 있는 매(peregrine falcon)이다. 매는 어떤 나라의 기후변화에도 견딜 수 있고, 튼튼하고 빠르며, 상황에 따라 온순해지기도 하고 사나워지기도 하며 야생상태에서 잡아도 쉽게 길들일 수 있다.

매사냥(falconry)
매사냥(falconry)

해리스 매를 훈련시키는 매 사냥꾼의 모습

이런 특성을 갖고 있는 매는 '매류'라고 부르는 날개가 긴 매와, '새매류'라고 부르는 날개가 짧은 매의 두 부류로 약 12종이 있다. 새매속(屬)에는 참매와 새매가 있다. 요즘은 농약 때문에 매도 다른 육식성 조류와 마찬가지로 급속히 즐어들고 있다.

미국에서는 DDT 사용으로 매가 거의 멸종했었지만, DDT 사용이 금지된 뒤 1980년대에 매의 수가 많이 늘어났다.

매사냥꾼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를 갖고 있다. 그들은 크기가 암컷보다 1/3이나 작은 수매를 '터슬'(tiercel)이라고 부르고, 몸집이 큰 매사냥용인 암컷을 '팰컨'(falcon)이라고 부른다. '아이어스'(eyas)는 깃털은 다 났지만 아직 날지 못하는 둥지에서 잡아온 새끼매를 가리킨다.

야생상태에서 잡은 어린 매는 대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잡히기 때문에 '패시저'(passager)라고 부르고, 다 자란 야생매는 '해거드'(haggard)라고 부른다. 새끼매를 잡은 뒤에는 길들일 수 있게 될 때까지 모이판에서 먹이를 먹여야 하는데, 이 때는 나무판자나 돌덩어리에 새끼매를 묶어두고 항상 같은 장소에서 규칙적으로 날고기를 먹인다. 인도와 아프리카에서는 새끼매를 매사냥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반면 유럽과 미국에서는 흔히 사용한다.

날개가 긴 매류는 탁 트인 곳에서, 날개가 짧은 새매류는 생울타리와 숲에서 사냥하는 데 더 적합하다.

매류는 대개 하늘을 맴돌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힘차게 땅으로 내려와 흥분상태에서 쉽게 먹이를 죽이지만, 때로는 먹이를 죽이지 않은 채 움켜쥐고 있는 경우도 있다. 토끼와 꿩을 잡을 때 주로 사용되는 참매는 나무 위에 올라앉아 사람과 사냥개들이 풀숲에 숨어 있는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동안 열심히 그 광경을 지켜보기도 한다. 사냥감이 놀라서 날아오르면, 참매는 맹렬히 추격하여 먹이를 움켜잡고 땅으로 내려온 후 거대한 발톱으로 먹이의 숨통을 끊는다.

몸집이 더 작은 새매류는 자고새류와 메추라기류처럼 작은 사냥감과 찌르레기류를 잡는 데 가장 좋다.

매사냥꾼은 새끼매와 덫으로 잡은 야생매 중 어느 것을 길들여 사냥에 사용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초보자는 대개 합법적으로 얻은 새끼매를 사용한다. 매를 덫으로 잡으려면 끈기와 기술이 필요하다. 야생매가 좋아하는 먹이 위에 그물을 치고 그 근처에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있는 것도 매를 잡는 한 가지 방법이다.

매가 먹이를 먹으러 오면 밧줄로 그물을 잡아당긴다. 매를 잡는 데 성공하면, 매사냥꾼은 당장 매를 그물에서 빼내어 다리에 '제스'라고 부르는 가죽끈을 매고 '러프터'(갓 잡은 새에게 사용하는 부드러운 가죽두건)로 매의 두 눈을 가린다 .

길들이기의 첫번째 단계는 두꺼운 장갑을 낀 손에 매를 앉히고 날마다 몇 시간씩 부드럽게 말을 걸면서 깃털로 매를 쓰다듬어주는 것이다.

매가 눈가리개를 하지 않고도 사람의 손에서 먹이를 받아먹을 수 있게 되면 두건을 벗고 사람과 사냥개와 함께 매사냥의 생활에 적응할 준비가 된 것이다. 그 다음에는 속에다 솜을 채운, 비둘기나 다른 새의 날개를 달아 만든 가짜 미끼에 진짜 고기를 묶어놓고, 이 가짜 미끼에서 먹이를 떼어먹는 훈련을 시킨다. 사람은 가짜 미끼를 밧줄에 매달아 빙빙 돌리고, 매는 점점 더 먼 거리에서 미끼를 공격하는 훈련을 받는다.

이 훈련이 완전히 끝나면 매는 스스로 사냥감을 죽이는 훈련을 끝내고 사냥할 준비가 된 것이다. 새끼매도 야생상태에서 잡힌 매와 거의 똑같은 방법으로 길들인다.

한국의 매사냥

한국에서는 아득한 고대부터 매사냥을 해왔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아신왕은 매사냥을 좋아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유사〉 영취사에는 매를 놓아 꿩을 쫓게 했으나 매의 행적을 알 수 없어 매에게 달아놓은 방울소리를 듣고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매의 사육과 사냥을 다루는 응방이라는 관청을 설치했다.

사냥을 하는 매는 송골매라 하고 새끼 때부터 길들인 매는 보라매 또는 해동청이라고 한다. 야생으로 자란 산지니는 사냥에 이용할 수 없다. 또한 보라매는 초지니 또는 갈지개(1년생 이하), 재지니(1~2년생), 삼지니(2~3년생)로 나뉘며, 이중 초지니가 사냥에 가장 적합하다. 매는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거나 달아나므로 항상 허기진 상태를 유지시켜야 한다.

호연지기를 기르는 활달한 놀이로서 즐겼던 매사냥은 일정한 제약 없이 산이나 들판을 자유롭게 다니는 스포츠로서도 손색이 없다.



[Daum백과] 매사냥 – 다음백과, D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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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개념용어
분야 예술·체육/체육

요약 매를 날려 보내어 꿩이나 토끼 따위의 짐승을 잡는 수렵활동.

 
기산풍속도첩 / 매사냥
기산풍속도첩 / 매사냥

≪기산풍속도첩≫에 보이는 매사냥 가는 모습.

내용

옛날 기록에는 방응(放鷹)이라고 하였다. 길들인 매로 사냥을 하는 것은 활이나 총으로 짐승을 잡는 수렵 행위보다는 자연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우리 선인들은 아득한 고대부터 매사냥을 하였다.

≪삼국사기≫에 백제 아신왕은 성품이 호매하여 매사냥을 좋아했으며, 법왕 1년(599) 12월에는 살생을 금지하여 집에서 기르는 매와 새매를 전부 놓아 주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삼국유사≫ 영취사에는 어떤 사람이 매를 놓아서 꿩을 쫓게 하였는데, 그 매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가 매에 달아 놓은 방울 소리를 듣고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매의 사육과 사냥을 전담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까지 설치했는데, 충렬왕은 매사냥에 열중하여 민간에 피해가 많았다. 그래서 충목왕 때는 응방을 폐지했는데, 공민왕이 매를 사랑하여 다시 설치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응방이 있고 응방군까지 있어서 매사냥이 한층 성행하였음을 알려 준다. 조선시대의 태종은 매사냥을 자주 즐겼으며, 연산군 때는 매사냥 때문에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중종 때는 일부 폐지하였으나 민간에서 행하는 매사냥은 금지하지 않았다.

김창업(金昌業)은 매사냥의 호쾌한 기개를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자 넘은 보라매를 엊그제 갓 손 떼어/빼짓체 방울 달아 석양에 받고 나니/장부의 평생 득의는 이뿐인가 하노라.”

김창업은 조선 숙종 때 사람으로 벼슬을 버리고 시골에 파묻혀 살면서 농사짓고 매사냥이나 즐기며 유유자적 학문에만 열중한 큰 학자였다. ‘빼짓체’란 ‘빼깃이’라고 해서 매의 꽁지 위에 표하기 위해 덧꽂아 맨 새의 깃을 말하는데, 이 깃에 맑은 소리가 나는 청동방울을 달아 놓아 매가 움직이는 대로 방울 소리가 울리기 때문에 꿩을 쫓아 날아간 매를 방울 소리로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사냥을 하는 매는 송골매라 하며, 새끼를 길들여서 사냥에 쓰는 매를 보라매라고 하고, 보라매를 해동청(海東靑)이라고도 부른다. 산에서 제풀로 자란 매를 산지니라고 하는데, 이 산지니는 길이 들지 않아서 먹이를 뜯어 먹고 배가 부르면 제멋대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에 사냥에는 이용할 수가 없다.

사냥매는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를 잡아서 사람 손으로 길들인 매라야 한다. 이렇게 길들인 매를 보라매 외에 육지니·수지니·수진개·수진매라고도 한다. 보라매도 1년 이내 것은 초지니 또는 갈지개라고 하고, 1년에서 2년까지는 재지니, 2년에서 3년까지는 삼지니라고 부르는데, 사냥하기에는 초지니가 날렵하고 용맹무쌍하여 가장 좋으며, 재지니·삼지니쯤 되면 동작이 느려서 별로 신통치 못하다.

매 중에서도 백송고리는 성질이 굳세고 날쌔어 해동청 가운데 아주 귀하게 아끼는 종류이며, 도롱태·황조롱이·새호리기 같은 것은 육지니로서는 적합하지 않아 기르지 않는다. 새매의 수컷인 난추니는 깃이 예리하여 새를 후려쳐서 잡고, 암컷인 익더귀는 독수리를 닮아 능히 호랑이를 잡는다고 한다.

매사냥은 보라매를 중심으로 행한다. 매의 발톱이 날카롭기 때문에 보라매를 받아드는 매꾼은 팔뚝에 두툼한 토시를 끼고, 그 토시 위에 매를 받아들고 사방이 잘 내다보이는 산마루에 오른다. 몰이꾼과 털이꾼들이 ‘우·우·’ 소리를 내면서 산줄기 나무숲을 훑어서 꿩을 퉁긴다. 어디서 꿩이 날아오르면 산마루에서 목을 지키고 있던 매꾼은 보라매가 날아가는 꿩을 확실하게 알아차리게 하고 나서 매를 떠나 보낸다.

‘매나간다’고 매꾼이 소리 지르면 몰이꾼들은 방울 소리를 듣고 매가 날아간 방향으로 달려간다. 험준한 산줄기를 타고 넘고 골짜기를 허겁지겁 건너 질러 쫓아가다가 방향을 모르게 되면 잠시 귀기울여 보라매의 방울 소리를 찾아 듣는다. 이때는 아무리 숨이 가빠도 쉴 여유가 없다. 일각이라도 속히 매를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매가 꿩을 잡았을 때는 그 날카로운 발톱으로 꿩 등 위에 올라타고 앉아서 표독한 주둥이로 꿩의 머리를 쪼거나 눈을 뽑아내는데, 그럴 적마다 꿩이 고통에 못 이겨 꿈틀거리면 매의 빼깃에 달린 방울이 가볍게 울리곤 한다. 사냥꾼이 일찌감치 도착하면 매의 발 밑에 깔려 꼼짝달싹 못하고 살아 있는 꿩을 그대로 빼앗아 낼 수 있지만, 웬만큼 늦어지면 벌써 꿩은 눈이 빠지고 머리가 깨져서 죽어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아주 늦으면 아무리 길들인 육지니라도 잡은 꿩을 포식하고 제멋대로 훨훨 날아가 버리고 말기 때문에 매가 꿩을 먹기 전에 찾아내야만 한다. 꿩을 덮친 매를 발견하면 매꾼은 허리춤에 매단 주머니 속에서 닭의 넓적다리를 꺼내어 매에게 먹이면서 잡은 꿩을 가로채 낸다. 그리고 다시 보라매를 토시 위에 받아 올려 한쪽 다리목에 잡아맨 짧은 끈을 감아쥐고는 닭고기를 더 먹이지 않는다. 매는 배가 부르면 사냥을 안하거나 달아나 버리기 때문에 항상 허기지게 먹이를 많이 먹이지 않는 것이다.

수렵 행위는 고대인의 생활활동이었다. 원시인은 식량을 획득하기 위해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였고, 부족국가시대에는 무예의 수련으로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수렵을 행하였다. 매사냥은 자연에서 호매한 지기를 기르는 활달한 행락으로서 우리 선인들이 즐겨 해왔고, 일정한 제약 없이 산야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스포츠로서도 심신을 단련하는 데 손색이 없는 활동이다.



[Daum백과] 매사냥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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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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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상훈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지역에서 매를 이용해 꿩이나 토끼 등을 잡는 전통 사냥 방식.

진안군 백운면 지역에서 행해지는 매사냥은 길들인 매로 꿩이나 토끼를 잡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하여졌던 민속놀이이다. 진안 지역 곳곳에서는 예전부터 매사냥이 행하여졌으나 2013년 현재는 백운면 원촌 마을에 거주하는 박정오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2013년 현재 매사냥 기능 보유자는 진안군 백운면 백암리 원촌 마을에 거주하는 박정오[1940년생]이다. 작고한 김용기로 부터 1980년대부터 매사냥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2007년 3월 23일이 전라북도 무형 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박정오는 그물을 이용해 매를 직접 잡아 꿩이나 토끼를 사냥할 수 있도록 길들인다. 또한 그물, 시치미, 매방울 등의 사냥 도구 제작 능력을 인정받아 무형 문화재로 지정받았다.

매를 받으려면[잡으려면] 보통 비둘기를 미끼로 이용한다. 매 사냥꾼은 매를 잡는 ‘잡는다’는 표현 대신에 ‘받는다’라고 한다. 매를 인격체로 대한다는 의미이다. 보통 2마리 정도 받는다. 매를 받는 그물은 명주실을 사용하여 만든다.

변문수에 의하면 진안군 주천면 운봉리 안정동 운장산 중턱 물통골 골짜기에 3개의 폭포[3탕, 상탕, 중탕, 하탕]가 있는데, 이곳에서 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하탕에서는 목욕재계를 하고, 중탕에서는 제수 용품을 준비하며 그곳에서 떡과 밥을 지어 상탕에서 제사를 지낸다. 매를 받을 때 이와 같이 산제를 지내는 이유는 힘이 세고 용맹스런 매를 잡을 수 있도록 기원하기 위함이다.

산제를 드린 후 운장산 복두봉에 가서 움막을 짓고 매 그물을 설치한 다음에 비둘기를 미끼로 매를 받는다. 매가 잡히면 가슴 크기에 따라 7치, 8치 등으로 부르는데 이때 “매했네” 하며 매를 받았음을 알린다. 매를 받은 후 다시 산제 지낸 곳에 가서 제사를 지낸 다음 매를 길들인다. 이후 사냥에 나서게 된다.

보라매는 당년 새끼로 부화한지 채 1년이 안 되는 새끼 매를 말한다. 송골매는 사냥용 매를 칭한다. 산진이는 야생에서 1년 이상 자란 매를 말한다. 보라매로 들어와 1년을 사람 손에 난매를 수진이라 한다. 보라매와 산진이의 구분은 털 무늬를 보고 안다. 보라매는 죽엽같이 털 무늬가 아래로 향하나 산진이는 무늬가 가로로 생긴다. 먹이로 제일 좋은 것은 쥐를 날 것으로 주는 것이다. 지금은 쥐 대신에 닭고기를 준다. 쥐는 기름기가 없고 고기가 연하며 소화가 잘되고 영양이 적어서 기운 조절에 용이하다고 한다. 반면 닭고기는 기름기가 많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기운 조절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매사냥에 나서려면 최소 5~6명이 있어야 하고 평균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매사냥에서 역할은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사냥할 매를 받는 사람을 수알치, 봉받이, 매방소, 매받이 등 다양하게 부르나 진안 지역에서는 ‘봉받이’라고 부른다. 봉받이는 매를 훈련시키는 사람이며 매의 주인이다. 매는 주인을 알아보기에 다른 사람이 훈련을 시키면 낯가림을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사랑(舍廊)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매를 앉히면서 낯가림을 없앴다고 한다. 날짐승이 첫 번째로 펼치는 날갯짓을 ‘배 본다’고 하는데, 매가 날아가는 가는 것을 지켜보는 배꾼 1~2명이 있어야 한다. 꿩을 모는 털이꾼이 있어야 한다. 털이꾼은 보통 4~5명 정도며 최소 3명은 있어야 한다. 이렇게 준비 되면 매사냥에 나서게 된다.

매사냥 나서기 2~3일전에 매의 건강 상태를 살펴야 한다. 이때부터는 평소 먹이의 절반 정도 준다. 그래서 매로 하여금 무척 배가 고픈 상태로 만들어 사냥에 나선다. 사냥 전날 사냥 장소와 시간을 정하여 사냥감을 몰아주는 털이꾼, 사냥감 방향을 추적하는 배꾼 등과 할 일을 정하고 논의한다. 사냥 장소는 사냥감인 꿩이나 토끼가 살 수 있는 논이나 밭을 끼고 있는 야산 등 농경지 부근이 좋다. 특히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야산이어야 한다.

매사냥하는 날은 소위 3불이라 하여 삼가는 것이 있다. 비가 올 때는 사냥하지 않는 우불(雨不),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사냥을 하지 않는 모불(暮不), 바람이 불 때 사냥하지 않는 풍불(風不)이 그것이다. 봉받이가 매를 데리고 산 정상에 올라가 서 있고 산 아래 자락에서는 꿩이나 토끼를 몰면 배꾼이 방향을 알려줘 봉받이의 신호에 따라 매가 사냥에 나서게 된다. 이때 봉받이는 “매 나간다”라고 외친다. 매가 꿩을 사냥하면 방울 소리를 따라 찾아가 매에게 약간의 먹이를 주고 사냥한 꿩은 슬그머니 빼돌린다. 만약 꿩을 잡지 못했으면 봉받이가 매를 달래서 다시 사냥을 시도한다. 사냥이 끝나면 꿩 탕을 끓여 막걸리를 먹으면서 하루 일과를 정리한다. 사냥에 나선 매가 먹이를 많이 먹으면 살이 올라 도망갈 수 있기 때문에 며칠 쉬었다 다시 사냥에 나선다.

매사냥은 삼국 시대 이래로 전승된 문화인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몽골은 물론 멀리는 영국이나 미국에 이르기까지 행해졌던 사냥 법이다. 우리나라는 전역에서 매사냥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매사냥이 진안 지역에서 전승되는 이유는 산세가 높고 계곡이 깊어 매의 사냥감이 되는 토끼나 꿩 등 날짐승이 많이 사는 자연환경 때문이다. 여기에 매사냥에 대한 열정을 가진 전영태, 김용기, 박정오 등 매 사냥꾼이 배출되었기에 전승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전통 수렵 문화인 매사냥 전승을 위해서는 전수자의 양성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속담에 ‘시치미를 떼다’란 말이 있다. 그 이유는 매꼬리에 달린 *시치미를 떼고 자기 것으로 달고 나서 우긴다고 하여, 나쁜 짓을 하고서도 뻔뻔스럽게 능청 떨 때 쓰이는 말이다.
또한 매가 잡은 꿩은 바로 빼앗지 아니한다. 그 이유는 바로 빼앗으며 매가 꿩 생각이 나서 사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적당히 먹게 한 뒤 준비한 닭고기로 유인하여 꿩을 치우고 대신 주는 것에서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이 있다. 



 

 

 


매들은 어둡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훈련을 하지 않는 3금 한다.
그리고 매는 여름에는 약하고 겨울에는 강하다. 


 


본행사로 ‘해리스매’는 응사 박용순씨가 고궁 호출 비행을 하였습니다. ‘해리스매’는 미국 남부나 칠레지역에 서식합니다. 전수자 유지영씨가 ‘황조롱’로 날밥 부르기, *멍텅구 시연, 메추리사냥을 하였습니다. 
전수자와 이수자가 참매 훈련과정을 *뜀밥, 날뜀박, 줄밥, 꿩 사냥을 보여 주었으며, 응사 박용순씨가 참매로 전통 봉사냥과 송골매로 고궁 선회비행을 선보였습니다. ‘송골매’는 발톱과 주둥이가 갈고리 모양으로 날카롭고 재빠르게 날개를 펴서 꿩이나 비둘기를 사냥하는 맹금류입니다. 흑진주의 눈을 가진 매우 귀여운 맹금류이며, 매 중에서 최고로 빠른 새입니다. 하늘에서 날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수직하강을 하는데 그 속도가 시속 370km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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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값을 물어준  매  사냥꾼} 

옛날  옛적에 매 사냥꾼들이 꿩 잡는 매를 길들여서 사냥을 나섰습니다.

산에서 매를 풀어두고 꿩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매에 쫓기던 꿩은 숨을 데가 없어 위태롭게 되자 산기슭에 있는 마을로 들어가 숨어 버렸습니다.

 

꿩을 쫓아 마을로 내려온 매는 아무리 찾아봐도 꿩이 보이지 않자, 어느과부 집 닭장 속에 있던 씨암탉을 채어 물고 늘어졌습니다.

닭이 죽는다고 퍼덕거리며 "꼬꼬댁" 하고 소리를 지르자, 과부는 급한 김에 들고 있던 부지깽이로 닭을 낚아채고 있던 매를 때려잡았습니다.

 

뒤늦게 매를 쫓아온 사냥꾼들이 이 사실을 알고 과부에게 매 값을 물어 내라고 을러댔습니다.

 

"매가 우리 씨암탉을 물어 죽일 판이라 하는수없이 매를 잡았다" 라고 과부가 변명을 해도, 매사냥꾼들은 " 매가 닭을 물어 죽이면 닭 값을 물어 달라고 하면 될 일이지, 왜 비싼 매를 잡았느냐? " 라며,  매를 잡은 이가 힘없는 과부인줄 알고 더욱 거칠게 매 값을 요구했습니다.

 

이렇게 "매 값을 물어달라" " 못 물어 준다"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합의가 되지 않자 마침내 원님을 찾아갔습니다.

 

원님이 양쪽 사정을 들어보니, 과부가 잘못한 일이 없건마는 매 사냥꾼들의 주장대로라면 과부가 꼼짝없이 매 값을 물어 주게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원님은  매 사냥꾼들에게 물었습니다.

 

"매는 무엇을  잡느냐?  " 꿩을 잡습니다."

"매 값은 얼마고 닭 값은 얼마냐? " " 매는 열냥이고 닭은 석냥입니다."

" 그럼 솔개는 무엇을 잡느냐? "  " 솔개는 닭과 개구리를 잡아먹습니다."

" 그럼 솔개 값은 얼마냐?"  " 솔개는 닭이나 잡아먹고 사람들에게 피해만 주기 때문에 아무도 값을 쳐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솔개 값은 없습니다."

 

" 솔개는 닭을 잡고 매는 꿩을 잡는다고 했지?  그럼 너희들 매는 무엇을 잡았느냐?  꿩을 잡지 않고 닭을 잡아서 피해만 주었으니 사실상 솔개 노릇을 한것이 아니냐 !  솔개는 값이 없고 닭은 값이 석냥이니 닭 주인에게 당장 석냥을 물어 주어라 !"

매 값을  받아내려던 매 사냥꾼들은 매 값을 받아 내기는커녕 오히려 과부에게 닭 값  석 냥을 물어 주어야 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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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매목>매과
서식지 해안의 절벽, 섬
먹이 잡식성(조류, 소형포유류, 설치류)
크기 수컷 38∼42cm, 암컷 49∼51cm
학명 Falco peregrinus
수명 약 15년

특징

•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관찰되는 텃새이고 해안이나 섬 등의 암벽에서 번식하고 겨울철에는 강 하구, 호수, 농경지, 습지 등지에서 생활한다.
• 번식기 외에는 단독생활을 하며, 비행능력이 뛰어나 공중에서 먹이를 낚아채 사냥하기도 하고 땅 위의 먹이는 덮쳐 발톱으로 움켜쥐어 잡는다.
•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Ⅰ급이며,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323-7호로 지정되어 있다.

번식정보

• 번식기인 3월 하순에서 5월 사이에 암수가 짝을 지어 생활한다.
• 해안이나 섬의 절벽에서 번식하고 움푹 들어간 맨 바닥에 바로 알을 낳는다.
• 알은 보통 3∼4개 정도 낳으며 회갈색 바탕에 적갈색 얼룩무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 알을 품는 기간은 약 28∼29일이며, 암수가 교대로 알을 품는다.

구별하기(동정 포인트)

매

• 암컷과 수컷은 크기 차이로 구분할 수 있으나, 야생에서는 구별이 쉽지 않다.
• 몸의 윗면은 짙은 청회색이며, 몸 아랫면은 흰색이지만 때론 붉은색을 띠기도 하며, 검은색의 가로 줄무늬가 있다.
• 어린 새의 몸 윗면은 옅은 황갈색을 띠며, 몸 아랫면은 갈색의 세로 줄무늬가 있다.
• 유사종인 새홀리기는 크기가 더 작고 몸 아랫면에 흑갈색의 두툼한 세로 줄무늬가 있어요. 또한, 아랫배와 경부깃이 적갈색이다.

카리스마 ‘매’로 사냥하는 응사(鷹師)

우리나라 전통의 매사냥이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특이한 것은 11개 나라가 무형 유산 등재를 공동으로 신청했다는 것이다. 문화가 전혀 다른 11개 나라가 함께 등재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현실에서 협력이 돋보이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리나라는 고조선시대 만주 동북지방에서 수렵생활을 하던 숙신족(肅愼族)때부터 전해져 내려와 그 이후 고구려를 중심으로 삼국시대에 매사냥이 성행하였다. 매사냥 기술은 나중에 중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일본에도 백제인들이 전승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의 충렬왕은 매의 사육과 사냥을 담당하는 응방(鷹坊)이라는 관청까지 따로 두어 매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으며, 조선시대에도 응방제도를 계승하여 궁에 내응방을 설치하였던 기록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 날렵한 날개를 가진 카리스마 넘치는 매를 길들이고 사냥하는 사람을 뭐라고 부를까? 예전에는 매를 부려 꿩을 잡는 사람을 수알치, 매방소, 매받이 등으로 지방에 따라 다르게 불렀지만, 현재에 와서는 ‘응사’라 부르고 있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매 사냥꾼이란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전의 박용순 응사와 전북의 박정오 응사 단 두 명만이 전통 매사냥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더. 최근에는 매사냥에 매혹되어 이수자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응사들의 전통문화 보존 및 전승과 더불어 일반 시민에게 홍보하려는 노력이 더해져 무형문화재인 매사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매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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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실 : 무덤이나 사당 근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은 집. 
* 응사 : 사냥에 쓰이는 매를 맡아서 기르고 부리는 사람. 
* 시치미 : 매의 꼬리깃에 매주인 인적사항을 적은 인식표를 말함. 
* 검수리 : 흔하게 검독수리라고 하는데, ‘독’은 대머리를 뜻함. 
* 멍텅구 : 인조 미끼를 말함. 
* 뜀밥 : 손밥먹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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