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가 태어나기까지/이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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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그 시의 씨앗은 시인의 몸 안에, 이른바 ‘무자각적 의식’ 부분 안에 숨어든다. 거기서 그 씨앗이 점점 자라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그때 물론 그 씨앗과는 다른 많은 시적 씨앗이 함께 자라는 수도 있다. 시인은 자기 몸 안에서 몇 편의 시가 동시에 자라나도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아까 어느 새벽에 느낀 죽음에 대한 시의 씨앗은 자꾸 자란다. 일어나 기지개 켜다가 고혈압으로 죽은 사람, 봄 내내 일한 남편의 몸보신을 시킨답시고 아내가 사온 산낙지의 다리가 목구멍에 붙어 기도를 막는 바람에 되레 죽어버린 남편, 군사통치 시절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사람, 공사장 앞을 지나다가 골재가 머리 정수리에 떨어져 죽은 사람, 방금까지도 희희낙락 얘기를 나누다가 자기도 모른 심장병 때문에 숨이 억 막혀서 죽는 사람, 그뿐인가,
온갖 고생고생 끝에 이제 아이들 대학도 다 졸업시키고 나서 살만하니 덜컥 암이 걸려 죽는 사람, 아흔 일곱을 사는 할머니 앞에 일흔 두 살 먹은 딸이 먼저 죽자 예순 살 먹은 며느리가 “아이고 똥오줌 받아내는 우리 어머니나 돌아가시지 고모가 돌아갔다”고 탄식하자 “아 제 년 제 명대로 살고 나는 내 명대로 사는데 너는 내가 그렇게 죽었으면 좋겠느냐”며 역정을 냈다는 결코 안 죽겠다는 사람, 또 요사이 나온『자살』이라는 책에서 보듯 각종 이유로 자살을 택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원한 사랑을 위해 자살을 택해 죽은 사람, 불로장생을 위해 수많은 신하와 많은 국가예산을 들여 불로초를 캐러 보냈으나 끝내 죽은 진시황 같은 사람 등등에 대한 생각들이 자꾸 되고, 그 죽음 의식은 마침내 동물, 식물과 온갖 생물에까지 이어져 결국 죽음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나 해석에까지 미친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죽음들을 타인의 죽음이라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 나의 실존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될 때부터 그 인식의 성장속도는 급격히 빨라진다.
또 우리가 어떤 이별을 보았다 하자. 마침 이시영 시인의「어떤 이별」이란 시가 있어 그것을 먼저 여기에 적는다.
여름 한낮의 햇빛 속을
맨 손의 한 여자가 울면서 길을 가고 있다
저 적요의 뒷모습에 쏟아져 내리는
한낮 여름의 강렬한 함성!
여름 한낮의 햇빛의 그늘 속에서
가방을 든 한 남자가 비스듬히 서서
그 여자를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다
아, 사라지고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는
흰 길 위의 두 점의 가없는 펄럭임
보다시피 이 시는 어떤 이별의 광경을 그 이유나 사정에 대한 시시콜콜한 천착이 없이 거시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 이별의 경험 뒤에 나의 생각은 더더욱 자란다. 그녀를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떠나보내면 더 서럽겠지, 소슬한 바람에 낙엽이 지는 날 보내는 것은 너무 고전적이니까 차라리 벚꽃 만발한 그 화려한 날 보내는 게 더 서럽겠지, 불치병에 걸린 걸 알리지 않고 떠나는 여인의 속내를 모르는 남자의 미칠 것 같은 마음에 천착해보는 게 났겠지, 산모퉁이를 기적소리와 함께 돌아서 떠나버린 여인 뒤의 철로에 주저앉아 그 많은 눈물로 주변에 무더기무더기 망초꽃을 피우거나 언약의 징표였던 구리반지를 구겨버리는 남자의 속마음에 대해 탐구해보는 게 났겠지… 회자정리라는 말이 있는데 그 관념의 실제를 겪는 자의 서러움과 고통에 대한 생각은 날로 자라서 시인은 실제로 삶에서 이별을 겪고 마는 경우까지 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한 편의 시가 바로 탄생하려는 순간이 온다. 한 편의 시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 씨앗의 자람이 며칠이 될 때도 있고 몇 년이 걸릴 때도 있다. 더구나 시의 씨앗은 우리의 의식 속에도 자라고 꿈같은 무의식 속에서도 자란다. 그 씨앗의 배경과 전경, 그 씨앗의 본질과 실존, 그 씨앗의 꿈과 현실, 그리고 씨앗의 형태의 구체성과 본질의 철학성에까지 미치도록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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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빚을 탕감해달라고 관아에 바친다(呈分司乞?戶米·정분사걸견호미)
호젓한 집을 개울가 응달에 장만하여
메추라기와 작은 숲을 나눠 가졌는데
썰렁한 부엌에는 아침밥 지을 불이 꺼졌고
쓸쓸한 방아에는 새벽 서리만 들이친다.
초가삼간에는 빈 그릇만 달랑 걸려 있고
쌀알 한 톨은 값이 만금(萬金)이나 나간다.
낙엽 쌓인 사립문에 관리가 나타나자
삽살개는 짖어대며 흰 구름 속으로 달아난다.
幽棲寄在澗之陰(유서기재간지음)
分與??占一林(분여초료점일림)
冷落山廚朝火死(냉락산주조화사)
蕭條野確曉霜侵(소조야확효상침)
三椽小屋懸孤磬(삼연소옥현고경)
一粒長腰抵萬金(일립장요저만금)
落葉柴門官吏到(낙엽시문관리도)
仙尨走吠白雲深(선방주폐백운심)
―정초부(鄭樵夫·1714~1789)
가난뱅이 시인의 낭만적인 넋두리 시다. 영조 시대의 노비 시인 정초부의 초가집으로 쌀 빚을 갚으라고 아전들이 쳐들어왔다. 그에게는 갚을 쌀도 없었고 버틸 권력도 없었지만 다행히 시를 쓸 능력은 있었다. 며칠 굶은 궁상을 늘어놓아 빚을 갚을 처지가 못 됨을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메추라기와 산자락을 나눠 차지했다니 그의 삶은 메추라기처럼 미약해보이고, 삽살개가 짖어대며 흰 구름 속으로 달아났다고 하니 조금만 더 몰아세우면 그도 곧 영영 인간 세상을 버릴 것만 같다. 시를 아는 관리라면 연민의 정이 들어 그냥 되돌아갔으리라. 시는 때때로 논리가 정연한 문서보다도 더 강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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